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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노무현 이야기

노무현과 실용주의

by 격암(강국진) 2010. 4. 5.

2010.4.5

그간 노무현 대통령의 원고를 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진보의 미래라는 주제에 대해 글도 써보고 생각도 해본 최근에 이르러 다시 노무현대통령의 글을 읽으니 느껴지는 것이 각별합니다. 

 

저는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진보와 보수 양쪽에게 모두 비현실적이며 관념적이라고 거듭 말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의 철학을 어떤 기존의 철학체계와 연계하고 그에 기반하여 논리를 펴가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의 혼란과 세부적 오류에 시달리게 될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노무현 대통령이야 말로 실용주의 철학을 추구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존 듀이 같은 사람에 의해 대표되는 실용주의 철학은 그것이 하나의 일관된 철학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비판도 있기는 하지만 사상과 관념을 도구적 입장에서 바라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실질적 가치는 관념을 뛰어넘은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일관되게 분배하자 라던가 시장주의를 따르자 라는 식의 말에 빠져드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의미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신자유주의라고 참여정부를 공격하지만 단순히 정부가 제약을 가한다던가 가하지 않는다던가 하는 것을 가지고 신자유주의라고 부르고 비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정책과 제약의 대상이 되는 현장에 가서 보면 제약과 간섭이라고 해도 마땅히 해야할 제약과 간섭이 있고 또 그렇지 못한 제약과 간섭이 있을 뿐 제약과 간섭이 일반적으로 좋다 나쁘다를 따지는 것은 공허하다는 것입니다. 

 

한미 FTA 같은 시장개방의 경우도 개방이 일반적으로 좋다 나쁘다로 따져서 보수면 개방에 찬성이고 진보면 개방에 반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이 되어서는 안된다. 바로 부드러운 진보를 하자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부드럽다는 것을 단순한 단어로만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하는 부드러움은 논리와 사실과 사상에 의해 딱딱하게 세상을 나누지 말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용적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 이르면 노무현 대통령은 철학자처럼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시지는 못하는 것같습니다. 스스로를 부드러운 진보라고 부르기는 하되 그게 뭔지,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보다 심층을 파고들지는 않으셨습니다. 이래서는 심하게 말해서 부드러운 진보란 노무현식 가치판단이 되버리고 맙니다. 즉 나는 이게 바람직하다고 느끼는데 못느끼겠는가 이런 정도의 말이 된다는 말입니다. 

 

어찌보면 우습게도 들리지만 이런 말은 결코 수준이 낮은 것도 단순한 일도 아닙니다. 이것은 오히려 수준이 높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형이상학적 논의이며 미학적 논의입니다. 예를 들어 미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런 저런 기준을 정할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미인이 진짜 뭔지는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지 논리로 하는게 아닙니다. 이런 저런 미인의 규정에 매달려서 세상을 보면 오히려 진짜 미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얼굴의 대칭이 깨졌다던가 키가 작다거나 하면 무조건 미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럴때 미인에 대해 부드러운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아름다움은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여러가지 정책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거기에 신자유주의 같은 이름을 붙이거나 이런 저런 논리를 붙이고 사실을 가져다 대어 마치 그런 분류나 논리로 그 정책의 가치를 증명해 낼 수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상과 논리를 교조적으로 믿는 것이며 노무현 식으로 말하면 부드럽지 못한 것입니다. 노무현이 말하고 있는 것은 보수와 진보 모두 문구나 관념과 사상에 매몰되어 현실 감각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물론 참여정부에게 비판적이었던 사람들의 냉소는 쏟아질것입니다. 그런 애매한 말이 어디있는가하고 말입니다. 실제로 가치에 대한 감수성이 없는 실용주의란 배금주의나 기회주의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사람이 실용주의를 말하는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하지만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중에도 이명박과 노무현의 차이를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제게는 엄청난 시각장애나 청각장애처럼 느껴집니다. 참여정부시대와 지금의 정부시대에 대하여 나는 피부로 엄청난 차이를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정책이건 복지정책이건 인권이건 사법이건 모든 면에서 엄청난 격차를 느낍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차이를 느끼려고 하기보다는 문구에 매달립니다. 그래서 결국은 엄청난 숲은 보지 못하고 풀이나 나무수준에 빠져들어서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차이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단단한 진보고 가치에 대한 감수성이 없는 진보입니다. 

 

그런 진보들은 대개 세상을 칼로 자른듯이 이런저런 정책을 펴면 천국이 올 것처럼 믿으며 그런 일을 행하지않는 사람들은 모두 위선자고 권력에 취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 자신들끼리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데다가 현실에서 그들이 믿는 방안들은 대개 턱도 없이 비현실적인 것입니다. 

 

결국 노무현이 보여준 미래는 가치에 대한 감수성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 말하길 나는 논리적인 것을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거기에 얽매이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결국 탁상공론이 아니라 현장에 가보면 뭐가 필요한 가를 결정하는 것은 가치에 대한 감수성이지 세계를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는 무슨 주의나 사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은 가고 남은 사람들은 이런 저런 논리를 펴면서 이게 노무현이 믿은 정신이고 사상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은 노무현은 스스로 그것을 의식했던 의식하지 않았던 진보니 보수니 하는 분류자체를 뛰어넘어 가치 있는 것을 행하는 것에 집중하고자 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실용주의가 아닐까하고 생각이 들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그게 무슨 주의인지에 크게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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