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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에세이들/나의 철학적 자서전

나의 철학적 자서전 1

by 격암(강국진) 2010. 4. 27.

나는 철학을 전공하지도 않았으며 고금의 철학책들을 두루 읽었다고 할수도 없다. 이 철학적 자서전이란 몇몇철학자들이 하듯이 자서전을 통한 동서양의 철학을 소개하는 글이 될수도 없고 될 의도도 없다. 이글은 다만 내가 쓰는 대부분의 글이 그러하듯 이러한 주제를 던짐으로서 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가다듬으려는 시도중의 하나일 뿐이다. 어떤 철학자들 거론할것도 아니면서 철학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생각해 보면 나의 사고가 걸어온 길은 분명 철학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장대한 기획도 아니기 때문에 역시 가볍게 읽어야 할것이다. 


인생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가 기억하는 한도에서 내가 철학적인 것에 눈을 뜨고 생각을 하기 시작한 첫걸음은 초등학교 때 지희라는 여학생을 좋아하면서 부터였던 것같다. 키가 크고 시원시원하게 생겼으며 공부도 운동도 뛰어났던 그아이를 나는 이성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짝사랑이었지만 말이다. 


그전의 나는 말하자면 다른 사람과 나를 구분하지 못하는, 따라서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볼까라던가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인다던가 하는 것에 거의 신경쓰지 않는 생활을 했던 것같다. 나의 세계는 주로 집안의 것들로 이뤄져 있었으며 더 자세히 말하면 집의 책들과 의자 그리고 기껏해야 집앞의 공터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물론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전자오락도 동네에서 가장 잘하는 아이였으므로 바깥 세상이란 것을 경험하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중요하지 않은 것, 관심이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초등학교때의 나의 세상은 거의 책들로 채워져 있다고 해야 할것이다. 나는 나이가 많은 형들이 둘이 있고 따라서 집에는 그들을 위해 사둔 이런저런 책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그안에서 행복했고 그 바깥의 세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다른 아이들과도 거의 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여학생을 좋아하게 되고 부터 그리고 그 여학생을 나만의 특별한 사람으로 만드는데 실패하면서 부터 나는 남을 생각하고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를 생각하고 나아가서는 인생의 의미란 도대체 뭘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세계는 부서졌고 나의 세계의 무력함을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인간은 암수 딴몸으로 태어나서 이성을 좋아하게 되는 본성을 가졌다. 또 인간은 먹어야 한다. 게다가 굳이 이성적인 것이 아니라도 인간은 다른 인간을 정서적으로건 생리적으로건 필요로하는 사회적 인간인것 같다.  


이렇게 인간은 타고난 결핍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 주어진 자신의 세계안에서 모든 요구를 해결할수 있다면 자신의 세계속에서 벗어나서 잘 모르는 미지의 영토로 발을 들여놓는 모험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은 순순히 학문적 호기심만으로는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정말 치열하게 쏟지 못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한다.  뭐뭐하는 일은 좋은 일이다라고 한가하게 생각하는것과 가슴이 터질듯이 괴로워서 자살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의 심정이 되어서 '아 이게 무슨 엉터리 같은 것인가. 도대체 인생이란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가'하고 생각할때의 절박함은 서로 다른 것이다. 절박하지 않으면 진정으로 에너지를 쓰게 되지 않는다.  


물론 기쁨에 찬 일도 조금은 있었지만 대개 인생은 좋은 일보다 나쁜일이 더 기억에 잘남기 마련이다. 그 당시 나를 괴롭게 했던 일들 중에는 내가 오랬동안 괴로워했던 생일파티 사건이 있었다. 어떤 여자아이가 생일이라 많은 아이들을 초대했는데 나는 초대받지 못했다. 그런데 그날 한 남자친구와 놀다가 축하해 주러가는데 초대가 무슨 필요있냐는 그 친구의 강권에 따라 그 생일파티장소에 가게 되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는 그 파티의 주인으로 부터 너는 초대도 안했는데 왜왔냐는 말을 들었다. 더구나 나는 그말을 내가 좋아하던 여학생이 보는 앞에서 들었던 것이다. 나는 그대로 그 장소에서 나와버렸다. 그리고 너무도 비참하게 상처입었다. 그것은 내가 입었던 정신적 상처중 최초의 것중의 하나이며 가장 깊은 상처중의 하나였다. 그것은 이후 내가 가지게 되었던 어떤 어른의 고민에도 뒤지지 않을 진지하고 비참한 것이었다. 나는 이후 나는 왜 나는 초대받지 못했을까, 왜 나는 그 지희의 관심을 끌수 없을까. 무엇을 가지면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 할까 같은 문제를 종종 생각하게 되었다.  


당연히 기억해 보면 좋은 일도 있었다. 예를 들어 어찌보면 정말 사소한 일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크리스마스 이브에 전해 주고 고맙다는 전화를 받았던 것을 기억한다. 수화기에 얼굴을 댄 나는 분명 붉게 상기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사소한 전화를 오래기억할만큼 나는 그녀를 매우 좋아했다. 


이렇게 여러가지 실망스러운 일과 약간 좋은 일들 겪으면서 나는 도대체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질문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하나있다. 난 이것을 자랑스러워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나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비교적 책을 많이 보던 소년이었기는 하지만 그 답을 책을 통해 얻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내가 이런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던 초등학교 후반부에는 오히려 나의 독서량은 급감했다. 나는 답을 책에서 찾기보다는 내 스스로 찾아내고자 했다. 그것은 일면으로는 게으름때문일 것이고 일면으로는 누군가의 말에 설득당한다는 것이 누군가의 지배를 받는 것같은 일이 된다는 것을, 불안한 일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었기 때문일 것이다. 돌아보면 이같은 것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남의 생각을 참조하고 남에게 배우려고 했지만 대개는 보수적으로 내가 직접생각하고 이해하고 경험한 것만을 기반으로 생각을 구성해 나갔다. 


아뭏튼 나는 혼자서 답을 찾았다. 일단 나는 가설의 검증이라는 방법으로 답을 찾기로 했다. 즉 인간은 뭐뭐 때문에 산다라는 명제를 만들고 그것을 부인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은 예쁜 여자와 결혼하려고 산다라는 명제를 세우고 그것이 참일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나는 솔직해 지기 위해 될수있으면 가능한 모든것을 다 시도해 보려고 노력했다. 돈이라던가 출세라던가 권력이라던가 욕망이라던가 하는 것들을 그 뭐뭐의 자리에 얹어놓고 그것을 부인하려고 했다. 이것은 말하자면 가치의 이론에 대한 과학적 탐구방법이라고 할수 있다. 당시에는 이런 말은 몰랐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는 금새 벽에 부딛혓다. 우선 모든 명제들은 너무도 부인하기 쉬웠다. 두번째는 내가 동원하는 논리가 매우 부실해 보였다. 내가 인간은 권력을 위해 살지 않는다고 말해본들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무슨 권력을 가져봤겠는가. 해보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이러니 저러니 말하는게 옳을까? 내가 말하는 권력이라는 단어, 이 단어는 진실된 내용이 있는 것일까? 


나는 곧 이런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나는 인간이 무엇을 위해 사는지 모른다. 다만 이런 질문의 답을 만들어 내기에는 나는 너무 인생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보다 많은 자료, 다시말해 보다 많은 직접적 삶의 경험을 쌓기 전에는 이대로 이 질문의 답을 추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리고 나는 이 질문을 덮어버렸다. 그리곤 말하자면 그냥 생각없이 살기 시작했다. 질문은 있지만 답은 없는채 시간이 나에게 좀더 많은 힌트를 주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난 그냥 별일없이 조용히 살았다. 한가지 사건이 있기 전에는 말이다. 


부모님의 죽음에 대하여 : 중학교 시절.


오해를 피하기 위해 서둘러 말한다. 우리 부모님은 모두 아직도 잘 살아계신다. 다만 나는 중학생이었던 어느날 밤, 밤새도록 펑펑 울었던 그밤을 잊지 못한다. 그것은 단 하룻 밤의 일이었지만 분명히 나의 삶에 아주 커다란 계기가 되었고 깊은 영향을 끼쳤다.  


나는 평상시에는 형과 같은 방을 썼는데 그날 밤은 뭔가의 이유로 혼자서 잠을 자게 되었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우리 부모님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부모님보다 어리기 때문에 꽤 높은 확율로 나는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질거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책과 부모님으로 이뤄진 세상이 첫사랑에 의해 흔들린 이래 다시한번 더욱 큰 상처를 입은 순간이었다. 즉 나는 내가 들어 있던 그 세계는 영원하지 않으며 결국 붕괴할 것이고 나는 홀로 남겨질것이라는 것을 강렬하게 깨달은 것이다. 언젠가 나를 둘어싼 이 부모님이 만들어 낸 세상이 없어지고 나는 혼자가 될것이다. 나는 그 생각을 곱씹다가 엉엉울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이 세상에 나밖에 없이 혼자서 살아야 할때가 온다는 사실이 갑자기 너무 막막하고 두려워 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도대체 인간은 뭘위해서 사는지도 전혀 아는게 없는 상태였다. 그런 내가 믿을수 있고 뭘해야 하는지 힌트를 얻을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부모님일 터였다. 말하자면 암묵적으로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것이 좋은지, 뭐가 바람직한지를 모른다면 나는 그냥 다른 사람이 사는 모습을 보고 흉내내면서 살면 되지 않겠는가. 그냥 중간에 끼어가면서 살면되지 않겠는가. 남이 웃으면 웃고 남이 울면 같이 울면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대책없는 나의 머리에는 어느정도 들어 있었던 것이다. 특히 누군가를 흉내내고 기댄다면 그것은 부모님일 터였다. 나는 부모님이 사는 것을 보고 부모님이 판단하는 것을 보고 흉내내면서 살면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암묵적으로 내 머릿속에는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부모님이 이 세상에 안계시고 나혼자 있게 될수도 있다는 사실, 부모님과 내가 영원한 하나가 아니라 한쪽은 죽고 사라지고 한쪽은 뒤떨어져 혼자될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무시무시한 일로 느껴졌던 것이다. 나는 나다. 나는 혼자서 존재해야 한다. 나는 그것을 느꼈던 것이다. 


책으로 이뤄진 세계가 지희라는 여자아이때문에 파열되고 바깥세상과 만나게 되었다면 죽음과 늙는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 우리 부모님과 나의 세계를 분열시켰다. 나는 영원히 부모님이 만들어 내는 세계의 일부로 살수는 없다. 나는 혼자다. 나는 이런 것을 느끼고 두려움에 밤새 울었다. 


밤새도록 울어서 베개가 축축해질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나서부터 나는 한가지 결심을 했다. 나는 운동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집에 돈이 많거나 장사를 할 만큼 사교성이 있지도 못하니 공부라도 잘해야 겠다는 것이었다. 일단 혼자서 살아갈수 있어야 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를 잘해야 겠다. 나는 중학교 3학년이 되던 어느해에 이런 밤을 가졌다. 그리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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