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 문화적 충격
내 고등학교 시절에 대해서는 난 할말이 거의 없다. 중학교때 나는 반에서 10등정도를 하던 학생이었는데 그정도 성적으로는 좋은 대학에는 입학할 성적이되지 않았다. 나는 물리학을 전공하기로 일찌감치 결정했는데 당시에는 물리학이 이공계계열에서 가장 인기가 좋아서 성적이 엄청나게 좋을 필요가 있었다. 나는 공부하는 일에만 전심전력했다. 따라서 참고서가 아니면 읽어본 책이 없고 가본곳도 거의 없다. 단 한번 고3때 오대산으로 친구들과 캠핑을 갔던 기억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종종 많은 일들이 그렇듯이 당시에는 내기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돌아보면 나의 삶에 어떤 시기가 어떻게 큰 영향을 주었는가 하는 것을 후에 새삼스레 알게 되는 일이 있다. 나는 그것만은 지적해 둬야 겠다. 예를 들어 나는 입시공부 이외에는 아무것도 경험한 것이 없었다라고 썼는데 대학에 가서 보니 그것자체가 특이한 경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저 막연히 고등학교는 다 그런줄 알았는데 우리고등학교는 다른 고등학교와는 다른 특징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사실 돌아보면 대학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문화적 차이를 나는 아주 크게 느꼈다.
우리집이 이사를 했기 때문에 나는 고등학교와 중학교를 같은 서울이기는 하지만 지역적으로 떨어진 곳에서 다녔다. 아마도 동네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두 학교의 분위기는 단순히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차이라고 할수 없을 정도로 크게 달랐다. 극단적으로 단순하게 말한다면 중학교는 깡패, 아웃사이더, 불량아들의 학교였다면 고등학교는 모범생, 따분한 아이, 겁쟁이들의 학교였다.
중학교때는 내가 좀더 문학적 재능이 있었다면 반드시 멋진 소설거리가 될만한 극적인 일들이 많이 있었다. 말썽꾸러기들이 많은 학교였기 때문에 별별일이 다있었다. 교실문을 부셔다가 난로에서 태워먹은 일도 있었고 깡패한테 당한일, 수업시간에 음란한 서적이 돌아다녔다던가 화투를 치는 학생이 있었다던가 하는 일등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런 싸움뿐만이 아니라 축구라던가 과학이야기, 정치며 사업에 대한 이야기에도 즉 어른들의 세계에도 아이들은 꽤 박식했다.
반면에 고등학교친구들은 놀라울 만큼 아무것도 없었다. 교과서 이외의 것은 알지도 못하는것 같았고 교칙따위는 있는지 없는지 관심도 없었던 중학생 친구들에 비하면 정해진 선에 따라서 살고 그걸 벗어나면 죽을것처럼 호들갑을 떤다는 느낌이었다. 따라서 더더욱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이 문화적 차이는 돌아보면 내 마음속에 어떤 씨앗을 심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상식이 상식이 아니다라는 생각이다. 즉 여기서 당연한 것은 저기서 당연하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가장 강력하게 경험한 것은 중학교나 고등학교 어느 한쪽에 대한 세부적 문화내용이 아니라 그 차이였다. 서로 다른 것이 서로 다른곳에서는 아주 당연스레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이었다. 이말은 서로 다른것이 모두가 틀리거나 모두가 맞을수도 있다는 것 즉 어떤 상대적 가치관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의 이런 경험은 훗날 이스라엘, 미국, 일본등 몇개국의 문화적으로 다른 나라들에서 살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 : 일관성에 관하여
모진 고등학교 입시생활끝에 나는 대학에 들어가고 잠시잠깐 꿈같은 삶을 즐겼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대학입시가 끝나고 나자 모든 질문들이 내게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너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아는가, 너는 뭐하는 사람인가. 나는 그저 불안하고 괴로웠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지고 이따금씩은 공부를 하지 못하고 방황하기도 했다. 그런 시간들이 괴로워서 학생들을 심리상담해주는 선생님을 정기적으로 찾아가서 상담을 하기도 했다.
나는 그 선생님에게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지만 무슨 이야기들을 했는지는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나의불안증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나 스스로도 알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녀가 나에게 에리히 프롬을 읽으라고 권해준 것만이 기억날 뿐이다.
지금 생각하면 이것은 내가 일종의 출세지향주의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시절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외고 다니곤 했다. 그것은 내가 더 발전해야 하고 더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에 대한 집착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 것이지만 사실 공허한 것이기도 하다. 애초에 이런 태도가 시작된 것은 따지고 보면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것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내가 연약하고 혼자라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가운데 더 많은 돈과 지위를 소유하면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노력을 한 덕분에 대학입시에서는 우리 고등학교에서 최고의 점수를 얻을 정도의 성적을 얻었지만 대학에 입학하고 나자 오히려 불안했다. 이제 미래는 안정적인가? 대학에 가보면 내 동기들은 전부다 나만큼은 공부를 잘하던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이젠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공부를 잘할수 있을까. 내가 물리에 소질이 있는가를 두렵게 생각했다. 내 스스로가 허무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뭔가가 되고 싶은 것이고 내가 뭔가가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견뎌할수 없는 것이다. 단지 불안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뭘 이뤄도 없어지지 않는다. 거의 확실히 신경증적 불안으로 가는 길이다.
나는 대학교 신입생시절에는 물리나 화학시간에 꽤 주목을 받는 학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성적은 들쑬날쑥이었지만 교수가 던지는 어려운 질문이나 시험에서 나오는 어려운 문제를 풀어내기도 했다. 몇번인가는 그해의 대학 신입생중 내가 유일하게 그렇게 한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은 난 재능이 있어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것은 모두 아무것도 아니다. 아주 잠시간 정말 몇분간 안도감을 줄뿐 금방 불안감은 다시 나를 덮쳤고 나의 초라한 현실에 대한 무게가 나를 눌렀다.
그렇기는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성적이 나쁜 학생들은 성적이 나빠서 매우 괴로워했다. 평생 반에서 중간미만이라는 성적을 받아본적도 없던 학생도 누군가는 반최하위의 성적을 받을수 밖에 없는 것이 대학교다. 거기에 있는 것은 모두 성적이 좋았던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그 성적이란게 단순히 성적이 좋은가 나쁜가의 문제가 아니라 과연 나는 뭘하고 살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라고 생각할때 공부가 어려운 것에 학생들이 우울해 하는 것은 당연했다. 적어도 대학에 입학할 무렵에는 모든 친구들이 다 박사과정까지 밟아서 물리학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질문은 나는 물리학자로 살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 신입생시절 나는 한번은 도서관의 물리학책 구역에서 바닥에 주저앉아 매우 우울해 했던 것을 기억한다. 당시의 내 어학과 수학실력으로는 전화번호부책 두께쯤 되는 일반물리책 한권을 언제 다 공부할까 하는 것에 막막해 했다. 깨알같은 영어를 읽어나가는데 도무지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그런데 도서관에 가니 도무지 평생을 읽어도 한귀퉁이 정도나 읽을까 싶은 원서 물리학 전공책들이 끝도 없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로 위로 가는 것에는 끝이 없고 어쩌다 한단계 위에 도달한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불안하다. 어디에 가도 나보다 위인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며 내게 최종적 평온감을 제시할수는 없다. 사실은 이런 불안한 심정으로는 공부도 착실하게 못한다. 금방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불안해서 공부를 하지 못하고 심리적인 파탄상태로 빠져들어가거나 술에 취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불행했다. 그래서 나는 안정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나는 그걸 몰랐다. 물리공부에만 열중하다가도 나는 우울해졌고 그러다가 이따금 씩은 언젠가 먼 과거에 덮어두었던 문제가 나에게 되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인간을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인생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 나는 병적인 수준은 아닐지 몰라도 주기적인 조울증을 겪었다. 희망에 차서 탈진할때까지 공부를 한다 싶은가 하면 또 몇일간은 모든 희망을 잃은채 우울해서는 전혀 공부를 못하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학생 심리상담을 해주시는 선생님과 대화를 진행하면서 뭐하나 진전을 보고 있지 못하던 어느날 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가던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버스속에서 일관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는 너무도 흥분되어 한동안 온몸의 머리칼이 솓아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당시 나의 생각은 대충 이러한 것이다. 인생은 그 근거를 알수 없는 물에 떠있는 허공에 떠있는 것과 같은 것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행동양식을 간단한 원리하에서 일관적인 원칙을 가지고 설명해 낼수 있다면 우리가 일관적으로 살아갈수 있다면 우리는 매일 매일의 결정,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좋다. 따라서 일관성이 있는 철학을 가지는 것 그것이 가능하다면 인간은 근원적 불안감에서 벗어날수 있다. 인생은 오직 일관적일때 불확실하지 않고 가치를 가질수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같은 생각은 너무도 당연하고 시시한 것처럼 들린다. 문제는 그같은 철학이 가능한 것인가, 그같은 철학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일텐데 당시의 나로서는 그 같은 철학으로 삶의 불안감에서 벗어날수 있다라는 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일관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대단한 발견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나를 약간 변명하자면 나는 이것을 어떤 종교적 경험과 비슷한 것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즉 이 세상에는 신이 존재한다는 혹은 어떤 거대한 원리가 존재한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 그런 걸 목격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많은 사람들은 기쁨에 넘치게 되는 것이다. 매순간이 흩어지고 모든 장소에서 모든 상황에서 원칙도 없이 그저 남의 눈치나 보면서 불안하게 사는것이 아니라 어떤 원리를 알고 그에 따라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기뻐할수 있는것이다. 신이 존재함을 느꼈으니 신의 뜻이 뭔지는 이제 곧 알수 있을거라는 생각, 자연의 법칙의 아름다운과 단순함을 느꼈으니 이제 그게 뭔가는 쉽게 찾아낼수 있을거라는 느낌뭐 그런것과 같은 것이다. 내가 어떤 종교적 생각을 한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내가 새삼스레 절실히 체험했던 것은 말하자면 진리가 너를 자유롭게 한다라는 말의 뜻을 종교적으로 경험했다고나 해야 할것이다.
이당시의 특기할만한 점으로 나는 소설 무용론을 주장하면서 픽션의 가치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던 것을 들수 있다. 지금와 이러한 일을 돌아보면서 그것이 유달리 기억나는 것은 아마도 내가 자연의 법칙과 인간의 삶의 법칙은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 세상의 자연법칙을 알고 싶다면 우리는 오직 자연을 관찰해야 할일이지 있을수 있는 가상의 세계들에 대한 생각에 빠져서는 안된다. 따라서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한 기술 즉 전기나 실화는 가치가 있지만 가상적으로 만든 이야기에는 가치가 없다라고 나는 생각했던 것같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세계에 대해 정보를 모아야 한다. 그것으로 진리를 발견해야 한다. 그것으로 세계에 대한 올바른 그림을 그려야 한다. 있지도 않은 세계에 대한 몽상에는 가치가 없다. 나는 이렇게 느꼈던것 같다.
이렇게 글을 쓰다보니 내가 이런 삶의 의미나 가치의 문제에 대해서만 고민했던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공부는 언제나 힘든 것이다. 대학시절, 나는 전공공부로 대부분 바빴다. 나는 더 많은 물리와 수학과목들을 수강했고 그러면서 물리학자로 살아야 한다는 어떤 소명의식 같은 것을 느꼈다. 취업걱정에 바쁜 요즘 학생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내가 대학에 들어갔던 1988년에는 나를 포함한 많은 학생들이 전혀 취업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내경우 내가 물리학과에 들어가는 것은 어떤 종교단체에 가입하는 것과 같았다. 그것은 먹고살 수단을 마련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다. 물리학이 나를 거룩하게 할것이며 나를 행복하게 할것이며 나의 살아가는 방식이 될것이라!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이글을 철학적 자서전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읽었던 철학책들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실제로 내가 철학책을 많이 읽지 않았고 특히 이때까지는 그랬으며 읽었던 몇권중에도 내가 전혀 이해할수 없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순수이성비판을 사서 늘상 읽었지만 거의 하나도 이해할수가 없었다. 특히 순수이성비판은 도무지 손톱도 들어가지 않는 느낌이었다. 따라서 책의 맨처음을 그저 폈다 닫았다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반면에 역시 지금와 돌아보면 그렇게 생각이 드는 것이지만 학부와 대학원시절을 거치면서 내게 학문적으로 뿐만 아니라 사고하는 방식에서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것은 나의 전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수학적 모델을 써서 자연이나 인공지능 기계를 연구하는 일을 했는데 나는 이 일을 너무나 좋아했다. 그래서 끝도 없이 복잡해 보이던 계산을 하고 또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수학자로서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런 수학적 트레이닝이 나의 생각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는데 영향을 주었다.
또 내가 모델을 개발하고 분석하는 일을 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모델이란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다. 모델은 끝없이 복잡하고 세부적인 것을 포함할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별로 주어진 이해의 대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고 너무 단순하면 중요한 현상을 완전히 놓치게 된다. 적당한 복잡도를 가진 모델이 어떠한 것일까 그것을 어떻게 분석해 낼수 있는가 하는 것이 수학적 모델로 사회나 경제계나 학습기계를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핵심적 문제다.
내게 있어서 인생에 대한 이론이란 모델의 문제처럼 느껴졌다. 나는 적당한 모델을 찾아서 적정량의 경험을 이용해 구조 조정을 하는 것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인생을 이해할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일관성이란 단어를 떠올린 그날이후 나는 시간이 흐르면 이제 저절로 내앞에 적당한 모델 혹은 적당한 관점이 나타날것이며 나는 쌓여가는 경험을 토대로 살아가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나침판을 가지게 될것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여기서도 나는 내가 그걸 직접 만들어 내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 고금의 고전들도 약간은 들춰보았으나 이해가 가지 않으면 굳이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나는 이제 대학원을 마칠 무렵쯤 되면 나는 내가 가야할길, 세상의 일들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가 하는 문제들에 대해 또렷한 견해를 가질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이란 것을 하면서 통계이론의 해석적 해와 비교하는 일을 했었는데 그 둘이 예상대로 일치했을때 대단한 희열을 느끼곤 했었다. 이렇게 세상에 대해 정확한 예측과 이해를 주는 모델과 이론을 나는 곧가지게 될거라는 생각, 그런 긍정적인 생각을 나는 했다. 나는 상식적이었고 나는 희망에 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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