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는 PC를 대체하지 않는다. 다만 PC가 소모시켰던 시간을 무한히 잠식한다. PC는 이제 크고 무거운 건설장비처럼 보인다. 필요하지만 불편하고 흉칙하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옳은 일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그리고 할수 있는 일은 우리를 찾고 그저 우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이상의 것이 될수는 없다. 우리는 그저 우리를 노출시킬수 있을 뿐이다.
목욕탕에서 그러면 괜찮지만 길에서 벌거벗으면 미친짓이 된다. 작게 파악된 의미에서 나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졌는가는 나 자신이상으로 나를 둘러싼 환경속의 위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형편이 좋으면 당장 자기 코앞의 일에만 신경쓰고 자신의 작은 세계에 처박힌다. 그러다가 거대한 외부의 힘에 당하고 나면 이건 정의롭지 못하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자기 세계에만 파뭍혀 있었던때는 자기가 뭘 밟고 지나갔는지 알지도 못한다.
사는게 재미있는가. 이 질문은 중요하다. 재미가 사라진 삶, 본래 삶이란 재미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람은 위험하다. 그런 사람은 결국 온 세상을 재미없게 만든다.
왠지 마음이 무거울땐 억지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마음의 짐이 있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그걸 내려놓지 않고 다른 일을 해도 몸과 마음은 결코 가벼워 지지 않기 때문이다.
돈이란 항상 뭔가에 대한 댓가다. 남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다던가 남이 양심상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 해주고 받는 것이다. 물론 많은 사람에게는 후자가 쉽다.특히 분업으로 책임을 회피하면 더 그렇다.
빈부의 격차가 날로 커져서 소수의 사람들이 대부분의 부를 소유하는 사회가 되어간다. 이런 사회에서 돈을 가치평가의 척도로 삼는 일이 계속된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둘중의 하나가 아니면 두가지 모두 변하지 않으면 곤란하다.
민주국가에서 일인 한표의 주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가치의 기준이 인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돈의 크기에 따라 가치를 많이 평가하는가. 오늘날 우리가 가진 문제의 핵심 중 하나는 이 양자간의 불화다.
늘상 켜져있는 거실의 노트북 컴퓨터를 꺼보면 내가 얼마나 큰 소음 속에서 살고 있었는지에 놀라게 된다. 늘상 우리에게 짐이 되는 뭔가를 꺼보는것 그것은 소중한 경험이다.
때로 이런 인상을 받는다. 2억짜리 집이 10억이 되면 그것은 개인적 행운이나 좋은 투자안목의 정당한 결과가 된다. 10억짜리 집이 2억이 되면 그것은 사회적 문제이며 불행한 피해자가 된다. 마치 그들이 우리사회에서 가장 힘없는 계층인것처럼.
한때 일본드라마는 가족내지 인간관계묘사가 약한 대신에 직업세계의 세부사항에서 뛰어나고 한국드라마는 뭐든지 사랑아니면 가족관계이며 직업세계는 거의 무시된다고 느꼈다. 요즘은 드라마를 잘보지 않지만 가족도 없고 직업도 없는것같다. 그저 사랑과 돈뿐.
가족중의 한 사람이 청각에 시각에 촉각 장애라면 생활에 무리가 온다. 이명박 정부를 볼때는 이런 느낌이 든다. 듣지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들딸들에게 돈까스와 맥도널드와 우동과 짜장면 그리고 엄마의 음식이 백점만점으로 얼마만큼씩 맛있는지 물어보았다. 이렇게 해보면 단순히 좋다나쁘다로 알고 있던것과 인식의 차이가 느껴진다. 최소한 가격대비 최고효과를 내는게 뭔지를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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