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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에세이들/문명의 썰물과 밀물

문명의 썰물과 밀물 2 : 신기술이 아닌 신기술

by 격암(강국진) 2010. 6. 25.

2010.6.25

앞에서 말했듯이 오늘날 현대과학기술의 발전은 투자대비 효과라는 측면에서 점점 효율이 떨어져 가고 있다. 반면에 윤리적, 가치적 능력 혹은 문화적 능력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앞으로 어떻게 되어 갈 것인가에 대한 전망을 단순히 그것이 멈출 것이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사실 우리는 매일같이 새로운 기계나 기술의 발전에 대한 장미빛전망과 그 성취에 감탄하면서 살고 있지 않은가. 20세기 후반에 와서 세상을 크게 바꾼게 뭘까를 생각해 보자. 그건 핸드폰, 인터넷, 이런 것이다. 요즘은 스마트폰과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가 세상을 바꾼다. 이런 것들은 모두 눈부신 기술발전의 결과가 아닐까?

 

그런데 이런 기술들은 특징이 있다. 그것은 커뮤니케이션에 관련된 것이라는 것이다. 이 기술들은 뭐뭐란 무엇인가에 대해 연구함으로서 얻어지기 보다는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대해 연구함으로서 얻어지는 것이다. 인간이 없으면 핸드폰과 인터넷은 소용이 없다. 인간이 있어도 인간들 사이에 정보가 오고가질 못하면 소용이 없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그 자체가 문화를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그 관계가 일방적인 것은 아니다. 뒤집어 말하면 문화가 없으면 기술이 있어도 사장된다. 

 

서구에서 지난 천년동안 최고의 기술로 꼽는 것이 쿠덴베르크 금속활자다. 그런데 우리는 그보다 더 빨리 그 기술을 습득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으로 지식이 전파되고 문화혁명이 일어나지는 못했다. 이것은 철학과 문화의 차이다. 사람의 차이다. 기술은 있었지만 그것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할 가능성만을 줄뿐이고 실제로 연결되는 사람과 사람자체도 중요하다. 두뇌란 무엇인가, 이성이란 무엇인가, 우주란 무엇인가, 핵융합이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은 그 답을 단 한명의 인간이 알아도 굉장히 중요한 정보를 준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전화선 반대편에 아무도 없으면 별로 소용이 없다. 최고의 컨텐츠는 다른 사람이다.  

 

기술이란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것과 한 사람의 능력을 증가시키기 위한 것으로 명확히 양분되기 힘들지만 그래도 이렇게 구분해 보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닌 것같다. 우마차가 하던 일을 증기기관이 한다. 이것은 뭐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나오는 답이 세상을 바꾸는 예다. 새로운 증기기관은 수많은 사람들이 할수 있는 일을 단숨에 해치운다. 이것은 커뮤니케이션과 문화에 대한 것이 아니다. 신개척지를 개발하고 더 많은 땅을 확보하는 기술, 원자력기술, 이런 것들은 인간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것이 아니다. 

 

내가 앞의 글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이 정점에 이른것이 아닐까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과학과 기술들에 대한 것이다. 이런 쪽은 투자 효과로 보면 효율이 좋지 않다. 반면에 커뮤니케이션 쪽은 크게 발전하고 있다. 여기서 기술만이 중요하고 논리만이 중요한게 아니다. 스티브잡스가 없는 애플이 당장에 죽지는 않겠지만 스티브잡스와 애플간의 관계를 보면 가치, 윤리적 상징의 현대적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한마디로 오늘날에는 믿음을 준다는 것의 가치가 날로 커지고 있다. 기술이 있어도 믿음이 있어야 비로소 소통이 가능하다. 정보가 존재해도 그 정보를 준 사람을 믿을 수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스티브잡스는 그 특유의 설득력으로 일종의 소비자, 생산자, 개발자, 출판업자, 광고업자를 잇는 거대한 생태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건 기술이전에 신뢰의 문제고 철학의 문제다. 이건희 회장은 절대로 이런 것을 할 수가 없다. 그 차이가 돈의 차이로도 나타난다. 

 

내가 말한 문명의 썰물이란것이 실제로 본격화될 때 그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나는 엄청나게 발전한 커뮤니케이션 시대를 상상한다. 그러나 모두들 이제 기술자체는 크게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티브이 스타에 열광할 때 대개의 경우 방송국에 열광하지는 않고 티브이에 열광하지는 않는다. 기술이 보편화되면 이제 기술은 더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 기술을 타고 흐르는 컨텐츠, 인간이 보다 가치있는 것으로 평가받게 된다. 

 

트위터 공간을 예로 들어 보자. 트위터 공간에서 확실히 유명인들은 쉽게 주목받는다. 단지 예쁘다는 이유로 사진한장 걸어놓으면 수많은 팔로워를 얻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단지 유명인이기만 하면 트위터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종의 인격적 일관성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인격적으로 훌룡한 사람이라는 단순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의미로 위선을 보이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보가 끊기고 숨겨지는 것이 가능할 때 사람들은 위선적인 행동을 하고 앞뒤가 안맞는 이야기로 세상을 속이는게 더 쉽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더더욱 발달할수록 이제는 일관성이 있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신뢰의 기본조건이 된다. 그럼 일관성이란게 어떻게 가능할까? 자신이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하건 이것의 바탕에는 깊이있는 문화적 영향, 정돈된 가치관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네트웍에서 배척된다. 많은 사람을 이어줄 수 있는 능력을 보이는 사람은 훗날 자신의영향력을 늘리게 될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문명의 썰물이라고 해서 우리가 당장 무슨 원시시대로 간다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이런 썰물이 계속되어 정신적 가치만 강조되고 기술을 천시하는 것이 오래되면 다시 그것은 그것대로 억압이되고 실제로 많은 기술문명이 잊혀질 것이다. 그리스의 수학이 한 때 잊혀졌었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것은 오랜 시간 후의 일이다. 우리는 지금 과학기술문명의 정점에 있으며 기술의 발전은 적어도 당분간 눈부실 것이다. 다만 시끄러운 미디어들의 소란뒤에서 조용히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데 있어 중요한 다른 것들이 힘을 얻어가게 되지 않을까? 따라서 이런 시대에는 진짜 신기술은 문화와 철학이다. 세상 사람을 이어줄 새로운 사고방식이다. 트위터가 기술일까? 그렇지 않다. 이것은 그 이상으로 문화다. 트위터 사업이 미국 아니라 어느 다른 나라에서 먼저 시작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성공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새로운 시대에는 문화, 삶의 방식, 사고 방식이 가장 첨단 기술이고 가장 가치 있고 비싼 것이다. 우리는 이미 관광산업에서 그걸 본다. 관광산업은 결코 가장 화려한 자연경관에서 발전하는게 아니다. 관광산업을 진짜로 돈되게 만드는 것은 행복하고 조화롭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 그자체다. 그런 마을에서 축제가 나오고 전통주가 나오고 전통음식이 나오고 전통공연이 나온다. 사람들은 거기서 마음의 평화를 얻고 다시 방문하고 싶어 진다. 거기에서 살고 싶어진다. 피라미드 같은 엄청난 문화유산을 가졌다고 해도 이런 커뮤니티가 없으면 문화적 인기를 달성하는데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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