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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에세이들/문명의 썰물과 밀물

문명의 썰물과 밀물 4 : 그리스와 로마의 차이

by 격암(강국진) 2010. 7. 8.

2010.7.8

문명의 썰물과 밀물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면서 내 가슴속에서 맴돌았던 이야기는 그리스에서 로마로 그리고 중세를 거치는 유럽의 역사였다. 과거의 역사 이야기에서 미래를 추론하는 것은 사실 과학의 영역은 아니다. 즉 제 아무리 비슷하게 들리는 그럴듯한 이야기라도 그것이 미래에 대한 논리적 증명일 수는 없으며 특히 사회변화같이 여러가지 요소가 관여된 경우는 더욱 그렇다. 따라서 이같은 주제에 대한 논의는 논증이라기보다는 직관이나 느낌에 대한 기술이 되며 특히 이 글들은 그렇다. 나는 로마와 그리스에 대해 간단한 언급을 하고 이 시리즈를 끝내고 싶은데 그렇게 될런지는 모르겠다. 왜냐면 애초에 이걸 쓸 때는 글하나를 쓰겠다고 했는데 자꾸 쓰게 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의 글을 안읽고 바로 이걸 읽는 분을 위해 앞의 세개의 글을 간단히 요약해 보자. 3번째글에서 나는 앞의 두개의 글을 이렇게 소개했다. 

 

"우선 과학기술의 발전이 투자대비 효과가 떨어져 가는 것 같다라는 말을 했다. 두번째 글에서 내가 한 것은 과학기술을 두 개로 나눈 것이다. 그 두개중 하나는 홀로 존재하는 기술이고 또하나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이다. 홀로 존재하는 기술은 핵발전소나 우주선처럼 원리적으로 말해서 단 한명의 인간이 존재한다고 할 때 그 인간의 능력을 증대시켜주는 기술이다. 이에 반해서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다수의 사람들, 적어도 두사람이 존재해야 의미를 가진다. 난 홀로 존재하는기술의 발전은 느려지고 있으며 커뮤니케이션 기술만 그 효과가 커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번째 글에서 나는 소위 선진국과 후진국에 대해 말했다. 우리는 과학기술의 시대를 살고 있으므로 사회적 혹은 국가적 경쟁력, 경제력은 상당부분 과학, 기술적인 우위에 의해 정해진다. 그런데 그 과학기술발전의 속력이 느려질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해 나는 생각해 본 것이다. 바로 커뮤니티, 소통, 도덕적 우위, 사회적 융합력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되는 것이다. 이제 중요한 건 발달한 하드웨어 스펙이 아니라 사용자 커뮤니티와 잘 결합된 생태계다. 

 

우리는 과거에 이같은 변화가 일었던 때를 생각해 볼 수가 있을까. 나는 그 같은 변화가 일어난 던 때가 바로 로마제국시대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며 훗날의 역사에서 찾아보자면 미국을 로마제국처럼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하고 상상해 본다. 

 

로마를 이야기하기 전에 그리스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위대한 수학자이며 철학자들을 만들어 낸 나라로 고대 그리스를 기억하고 있다. 실제로 로마는 그리스가 쇠퇴한 이후에도 그리스보다 기술이나 문화적으로 뒤져있는 나라였다. 그래서 로마의 시민들은 그리스 문화를 배우고 그리스어를 열심히 배웠다. 그런데 잠깐. 뭐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기술문화적으로 뒤진 로마가 왜 그럼 승승장구해서 대제국을 건설했고 그 잘난 그리스는 망했을까? 그것은 기술적인 것이 주는 것 이상의 것이 로마에 있었고 기술은 오히려 그리스보다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는 융합하는데 문제가 있었다. 그리스는 많은 식민도시들을 건설했지만 그 도시들은 거의 독립된 나라나 마찬가지였다. 그리스는 나라를 키우는데도 문제가 많았는데 시민계층이 개방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오래 살아도 제아무리 대단한 명성을 날려도 아테네의 시민권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심지어는 대통령급의 인사의 아들도 시민권을 따기가 힘든데 부모 양쪽이 모두 시민이 아니면 시민권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다른 그리스 문명의 패자 스파르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분열때문에 그리스는 결국 페르시아 같은 외세의 침입에서 타격을 입고 내부적 분열로 자멸하고 만다. 

 

반면에 무식하고 기술적으로 뒤졌던 로마는 압도적으로 뛰어난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 개방성과 실용적 사고방식이었다. 사실 혈통을 중요시하는 그리스에 비해 로마는 처음부터 여러가지 사람들이 뒤섞여 있는나라였다. 로마는 전쟁을 해서 이웃도시를 이기면 그 이웃도시의 시민들에게 로마의 시민권을 주었다. 이렇게 해서 전쟁에 패한 부족출신사람이 그 패전 이후 고작 몇년만에 로마의 최고 지위관인 집정관을 하게 되는 일도 있었다. 

 

또 로마하면 생각나는 것이 바로 로마의 도로다. 로마는 오늘날로 말하면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이것도 역시 식민도시를 건설하면 그곳은 그냥 독립국처럼 되버리는 그리스와 차이가 나는 점이다. 이같은 도로를 통해 로마는 강력하게 하나로 뭉쳐있었던 것이다. 

 

그리스에서는 노예는 노예신분을 벗어날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개나 노예를 동등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로마의 경우에는 노예가 자유를 살 수 있었을뿐 아니라 자유인이 되면 그 사람은 해방노예고 해방노예의 자식들은 시민권을 누렸다. 로마의 시민들이 귀족들에게 여러가지 권한을 요구하자 로마는 아예 귀족과 평민의 경계를 완전히 없애 버린다. 로마는 선거로 집정관을 포함한 여러 관직을 뽑고 그 사람들이 나중에 원로회에도 들어가게 되는데 애초에 시민들이 요구한 것은 일종의 쿼터제였다고 한다. 즉 귀족들만 자리를 독점하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로마는 아예 쿼터제가 아니라 2명을 뽑는 집정관자리에 모두 시민만 당선되는 것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로마에서도 가지고 있는 재산에 따라 나라에 내는 세금이 달랐다. 즉 병역의 무거움은 재산에 따라 차등적이었다. 하지만 가진거 없는 사람도 로마에서는 능력만 있으면 최고층에 올랐다. 귀족적 그리스와는 비교할 수 없이 열려 있는 사회다. 

 

로마시대의 윤리가 요즘같지는 않겠지만 로마는 높은 수준의 윤리를 가지고 있었다. 약속은 목숨보다 중했다. 로마에서는 전쟁에 나가 패배해도 그 책임을 묻지 않았는데 이것은 전쟁에 패하면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불명예를 가지게 되므로 그걸로 충분히 처벌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리해 보자면 로마는 개방된 나라였고 매우 명예를 소중히 여겼으며 사방으로 도로를 건설하고 성문법을 실시하여 질서를 유지하고 나라를 강력하게 융합시킨 나라였다. 그리스나 로마나 모두 귀족층과 평민층의 분열이 문제가 된다. 그리스는 특유의 폐쇄성으로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고 만다. 분명 문화적으로 기술적으로 그리스는 로마를 능가했지만 그런 장점이 사회적 융합력이 약하다는 단점을 극복할 만큼 강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역사는 관성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철학자를 만들어 내지 못했던 로마는 그 나름의 번영끝에 쇠퇴하고 만다. 그 이후 유럽을 지배한 것도 기술적 우위라기 보다는 가치관적으로 사회적 융합력을 가졌던 교황세력 즉 종교세력이었다. 이 같은 흐름은 중세가 끝나고 르네상스나 산업혁명으로 다시 기술과학의 발전이 한 사회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로 바뀌게 된다. 이것은 그리스로의 복귀였다.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기에 적어도 서양인들에게 그리스는 문명의 출발점으로 숭상되는 것이고 중세는 암흑시대로 이성이 질식한 시대로 기억되는 것이다. 

 

내가 말해 온 것은 과학기술과 내적인 가치가 서로 반복해서 우위를 점하는 일이 계속 일어났으며 우리는 그중에서 과학기술시대의 끝자락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은 과학기술발전의 본거지였다. 서양세력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워서 발전을 이어간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저 대단한 미국도 그 힘의 근원이 순수히 과학기술과 문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미국은 과학기술의 세계적 중심이지만 그 상당부분은 유럽에서 넘어온 학자들이 1세대를 이뤘고 그들에게 직접 배우고 함께 일한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다. 유럽은 자기들이 분열하고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2번의 세계대전을 겪고 나서 폐허가 된다. 그 이후에 미국은 세계적 패권국가가 되었는데 미국이 미국일 수 있는 것은 자유와 법치라는 원칙이 잘지켜지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외부인을 잘 포용하고 실용적인 사고를 펼친다. 

 

그 미국은 과연 그럼 얼마나 대단한 사회적 융합력을 보여주고 있는가. 요즘엔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라는 사회가 금이 갔다는 생각이 든다.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인종문제도 날로 심해진다는 느낌이다. 미국에서 생활하다가 한국이나 일본같은 나라로 오면 때로 야만국에서 문명국으로 온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런 나의 표현에 여러가지 반론이 있을 수 있으며 나역시 그런 반론들을 들어보기도 전에 인정할 용의가 있다. 다만 문명국이란게 여러가지를 의미할 수가 있다. 

 

하지만 여러분이 아주 부자가 아니라면 미국 사회에서 먹고 쓰는 물건들은 실상 한국에서 먹고 쓰는 것보다도 저질의 것이 될수 있다. 미국에는 싸구려 식료품과 싸구려 전자제품같은 것이 넘친다. 한국에서는 팔지도 않는 옛날 모델같은 것이 흔하다. 상점이나 레스토랑 점원들도 그다지 친절하지 않고 질이 높지 않다. 좀 으슥한 동네로 가면 맨하탄의 거리인지 어디 남미의 아주 가난한 국가의 거리인지 알 수 없는 곳도 많다. 별로 안전하다고 느껴지지 않으며 도둑도 많다고 느껴진다. 내가 문명국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무질서하고 삶의 질이 낮은 부분이다. 물론 미국에는 존경할만한 부분도 많이 있다. 

 

한국은 작은 나라다. 그러나 오늘날 진짜 중요한 것은 땅의 넓이나 자원의 크기가 아니다. 오늘날 진짜 중요한 것은 문화고 정신이다. 한류드라마가 꽤 인기있는 경우가 있다. 중국이 다음 세대의 슈퍼파워가 될거라는 말을 한다. 이것도 다 기본적으로는 문화의 힘 혹은 살아가는 방식의 힘이다. 

 

한국은 서구문화를 수입해서 선진국 수준까지 도달한 드문 나라다. 대만도 있지만 크기가 작고 일본은 문화가 너무 특이해서 다른 동양국가들에게 문화적 모범이 되기 어렵다. 여기에 한국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갈등과 해법이 한국이라는 테두리를 넘어서 까지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가 있다. 

 

중국은 수천년간 쌓아온 문화가 있다. 그걸로 13억이라는 사람을 한테두리로 묶는 괴력을 보여준다. 분명한 사회적 융합력이다. 일본 역시 사회적 융합력하면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물론 지금 상태로는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 모두가 문제를 보이고 있다. 

 

만약 어떤 집단이, 윤리적 가치적으로 경쟁력을 가진 집단이 탄생할 수 있다면 나는 그 집단이 대단한 경쟁력을 가지게 될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집단의 씨앗으로 한국문화가 작용할 수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크게 밝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같은 것은 우리 민족만을 위한 폐쇄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말이다. 

 

또한 오늘날의 여러일들을 이런 방면으로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로마의 도로를 인터넷과 전자통신과 비교해서 생각해 보라.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국민통합이란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해 보라. 개방적이면서도 통합된 사회를 유지할수 있는 능력은 오늘날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한쪽만 보는 경향이 있다. 즉 외로운 입자처럼 외로운 개인을 상정하고 무한한 개방만 생각하거나 지나친 통합논리로 외부적으로 폐쇄적이 되고 만다. 그걸 극복하는 것은 21세기의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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