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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이해하기

너무 쉬운 답들 : 금붕어, 아이 그리고 사랑의 문제

by 격암(강국진) 2010. 7. 7.

10.7.7

1. 

 

엉터리 논증의 예에는 이런 것이 있다. 어항속의 금붕어앞에서 박수를 치니까 금붕어가 놀라서 도망간다. 이번에는 -좀 잔인하지만- 금붕어의 지느러미를 모두 떼어내고 박수를 치니까 금붕어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실험을 통해 우리는 '금붕어는 지느러미가 없으면 소리를 듣지 못한다'라는 결론을 얻는다. 

 

이 논증 혹은 과학이 엉터리인 이유는 가능한한 다른 많은 가능성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너무 쉽게 답을 정해놓고 그것이 답이라고 믿어버리기 때문이다. 

 

2. 

 

아이가 겪는 경험적 사실에는 이런 것이 있다. 물컵을 깬다. 엄마가 화를 낸다. 곰인형을 떨어뜨린다. 엄마가 화를 내지 않는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물컵은 바닥에 떨어뜨리면 안되는 것이지만 곰인형은 그래도 되는 것이라는 것을 배운다. 

 

여기서 한발만 나가면 이렇게 된다. 내가 무슨일 A를 한다. 아빠가 화를 낸다. 무슨일 B를 한다. 아빠가 화를 내지 않는다. 따라서 A는 잘못된 일이고 B는 문제가 없다. 

 

이런 생각은 사실 모두가 아니면 거의 다라고 할만큼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다. 그들이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화를 낸다는 행위가 만들어 내는 여러가지 다양한 결과다. 부모가 인상을 찡그리고 화를 내야만 아이가 열심히 공부를 하더라라는 것은 아이와 부모에게 있어서 양쪽 모두 일종의 마약같은 중독현상을 일으킨다. 

 

아이는 이제 부모가 화를 내지 않으면 나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부모가 화내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된다. 같은 효과를 보려면 부모는 점점 더 크게 더 자주 화를 내야 한다. 그래서 목표치가 좀 멀다 싶으면 결과적으로 부모는 매일 매일 아이만 보면 아유 저 왠수.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부모 힘든지도 모르고. 왠수야 왠수. 뭐 이런 말을 실제로 하거나 그런 분위기를 풍기며 살게 되기 쉽다. 

 

물론 이런 일들은 마약이 그렇듯 가족의 건강에 좋지 않다. 이제 부모는 점점 더 아이에게 감정이 생기고 아이는 점점 더 부모와 보내는 시간이 싫어진다. 가족의 화기가 깨어진다. 가족의 생활도 망가지고 만다. 한국에서는 많은 아이들이 학원을 오고가면서 가족의 돈과 시간을 써버리고 있다. 부모도 바쁘지만 아이들도 이런 저런 스케줄로 바쁘니 가족의 시간이란게 있기 어렵다. 그러므로 가족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시간은 더더욱 줄어들고 만다. 

 

때문에 어떤 부모는 마약투여를 중단한다. 즉 성적이 불만스러워도 걱정되도 화를 내지 않고 그냥 웃어준다.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공부는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라지만 부모가 웃고 있으니 나는 문제없다라고 생각하는 아이는 좀좀 그런 부모의 마음을 몰라준다. 부모가 화내기 전까지는 그냥 시간을 낭비하고 만다. 아이가 빠져 있는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는한 어른은 부모자식간의 관계를 황폐화시키지 않는한 아이를 도와주기 어렵다. 결국 도와줄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부모가 겪는 고민이다. 아이가 스스로 알을 깨고 그 세계를 탈출하지 않으면 부모가 아이를 돕는 일에 한계가 많다. 

 

3. 

 

젊었을때 자주 연속극이나 혹은 대학동기들이 자신있게 하던  그런 말 하나가 있다. 그건 바로 이거다.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그 사람을 보내줄수도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주로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에 대해 말할때 등장하곤 하는 이 말은 많은 사람에게 일종의 부인할수 없는 자명한 진리처럼 여겨진다. 적어도 젊은 날의 나는 이런 말에는 그게 아니라고 말하기 어려운 절대성이 보였다. 틀린 말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나이를 먹고 그 사랑이란 것도 해보고 결혼도 해보니 말이란 결국 말일뿐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위에서 말한 저런 대사를 쉽게 말하는 사람은 내가 보기엔 사랑에 진지해져본 적이 없거나 사랑을 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무슨 철학적이고 인류애적인 고상한 사랑이 아니라 그저 이성에 대한 사랑이라고 해도 사랑은 이거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은 은행이나 슈퍼에서 돈계산하는 것처럼 대차대조표 따져서 뭐가 더 큰가 작은가 따져서 하는게 아니라 가슴이 얼마나 뛰는가, 얼마나 상대를 원하는 가를 가지고 하는 것이다. 

 

물론 사랑은 이런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말은 아마도 틀린 게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옳다기 보다는 시적으로 문학적으로 옳은 것이고 그 말들은 하나가 옳은면 종종 그 반대말도 옳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런 말에 빠져서 무의식적으로 사랑에 어떤 틀을 집어 넣는다. 그 틀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그렇게 변형된 사랑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므로 반박할 말이 없다. 이 말은 틀리지 않지만 그런 냄새가 난다. 

 

더 행복하다는 것이 뭘까? 보내준다는 것이 뭘까. 사랑이 섹스가 아니듯이 행복도 반드시 명예나 돈이 아니다. 나는 반드시 비물질적이고 정신적인 것이 우월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아직 상대방을 좋아하면 결코 보내주지 말고 끝까지 붙들고 늘어지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지금 내가 뭘해야 하는가 하는 것은 자기 가슴에 어떤 조건없이 물어야 하는 일이지 거기에 어떤 형상화된 사랑에 대한 논리를 집어넣어 계산을 해서 이러저러하니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할수는 없다는 것이다. 논리적인 답은 쉬운 답이다. 그러나 종종 핵심을 놓친다. 

 

병사하나를 구하기 위해 수백명이 구조작전에 가서 열명쯤 죽고 돌아오는게 합리적일까. 애초에 사랑에 빠진다는게 합리적일까. 논리적으로 볼때 돈과 시간만 잔뜩 드는 일, 마치 불량식품처럼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일로 생각될수도 있지 않을까. 

 

이 세상엔 사랑은 이러저러하니까 이런거 아냐라고 말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 경험이 생기고 나이가 들면 그런말은 덜하게 된다.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그 말에 속박되는 것은 너무 쉬운 답이기 때문이다. 남이 도와줄수 없는 문제기 때문에 조언을 한다고 해도 방향이 다르다. 즉 자기를 우선 돌아보라는 식으로 하게 된다. 사랑은 이런거니까 논리적으로 이래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게 된다. 너무 쉬운 답에 빠지지 않는 법 한두가지는 경험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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