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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전문가의 도움

by 격암(강국진) 2011. 7. 19.

2011.7.19
우리는 종종 이런 저런 전문가들이 여러가지 일을 이해시켜 주는 현장을 목격합니다. 그들의 말은 종종 매우 매력적이고 그럴듯해서 듣고 있으면 나에게 아주 많은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실은 그것이 과연 도움인지 독인지는 그리 쉽게 판단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인기있고 존경받는 사람의 말이라고 할지라도 유명대학의 교수가 자기전공에 대해 말한 것이며 실험으로 검증된 사실들이며 세계의 석학이 보장한 사실들만 말했다고 할지라도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남녀간의 차이점이나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과학을 설명하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어떤 교수가 등장해서 여러가지 사실들을 늘어놓고 이야기하는데 그 교수가 과학적인 사람이며 명쾌한 논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의 강의는 필연적으로 정의와 분류와 성질늘어놓기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즉 이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라는 두종류의 사람이 있다. 그런데 남자는 이런저런 행동을 하지 않는가. 여자는 이런 저런 행동을 하지 않는가. 그와 같은 것은 이런 저런 관찰 예를 들어 동물관찰에서 뇌의 FMRI관찰, 홀몬분비의 관찰등을 통해 이런저런 원인을 가진 것으로 이해될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식과 분류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물론 아닙니다만 사실 대부분의 경우는 그다지 생각한 것만큼 도움을 주지 못하며 오히려 해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에 대한 과학을 설명하는 과학자의 화려한 논변에 빠져들기 전에 과연 저 과학자는 내가 원하는 만큼 사랑을 잘 할수 있는 것같아 보이는가를 생각해 보면 왠지 그렇지 않은 것같은 경우도 많습니다. 뭐랄까 연애에 대한 이론, 요리에 대한 이론은 화려한데 연애는 엉망이고 라면도 제대로 끓이지 못하는 것같은 경우가 주변에 많지 않습니까? 전문가라고 해서 그렇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 전문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실험이 잘못된 것일까요? 그게 아니라는데 핵심이 있습니다. 잘못된 것이라 부를 수 있는 부분은 매우 깊은 곳, 사고의 기반을 이루는 가정들에 있습니다. 사실은 잘못된 것이다 혹은 옳은 것이다라고 이분법적으로 말할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은 낫이나 식칼처럼 각자의 용도가 있을 뿐입니다. 스테이크를 먹는데 톱으로 먹으면 잘못된 것이지만 톱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 잘못된 곳이라 부를 수 있는 부분은 깊고 깊어서 우리가 흔히 데카르트의 이분법의 오류라고도 부르는 부분에 까지 이를 수 있는 것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뭐가 잘못된건지 느끼지 못하고 박수치는 일이 벌어집니다. 다시 구체적인 예로 들어갑시다. 여기 한남자가 있습니다. 그 남자는 자기 아내가 왜 쇼핑몰에만 가면 그렇게 미친듯이 시간을 낭비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으며 자기 생각은 안해주는지 섭섭합니다. 그런데 한 '전문가'가 나타납니다. 그가 말하길 여자는 남자와 두뇌구조가 다르다. 유전적으로 다르고 화학적으로 다르고 FMRI를 찍어봐도 다르다. 그래서 쇼핑몰에 가면 그렇게 행동할수 밖에 없다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 말을 들으니 이 남자는 왜 상황이 그런지 이해가 갑니다. 이제 화도 덜납니다. 아 그녀는 나와 이렇게 다르구나 어쩔수 없는것이구나. 참 좋은 걸 배웠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반드시 도움을 준것인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 과학자가 한 일은 그 남자와 그 아내사이에 깊고 확실한 구분의 선을 그은 것입니다. 그 선이 존재한다는 권위는 과학의 권위고 세계유명대학의 석학이 보장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선을 믿어서 이제 그녀는 이러저러하므로 이렇게 행동한다고 이해하는 행위는 실은 그녀와 남편간의 애정, 관계를 일정부분 손상시킵니다. 그녀를 일종의 기계로 이해하는 것이며 그녀는 아마도 이런 이해를 불편해 할 것입니다. 여자가 화를 날 때마다 너 생리중이냐고 묻는 것이 그 여자를 기분좋게 하지 않습니다. 설사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구분과 설명은 상대방을 객체로 만듭니다. 관찰하고 이해할 구조를 가진 대상이죠. 그런데 아내를 비과학적인 시각으로 봐서 그녀를 요정이나 여신으로 생각하는 쪽이 어떤 때는 아내를 컴퓨터로 생각하는 것보다 사랑에 도움이 됩니다. 사실 사랑은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합치는 것입니다. 똑같아 지는 것은 아니지만 둘로 갈라서 선을 긋는 것은 사랑을 쪼개어 죽이는 것입니다. 쪼개는 행위가 영원히 둘을 만날 수 없게 합니다. 물질과 마음으로 이분법을 적용하고 나면 둘이 만나는 곳이 어딘지 알 수 없어지듯이 말입니다. 

아내는 이렇다라고 선을 그어 확정짓고 그걸 믿는 것은 아내를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이런 자극이 들어오면 이렇게 행동하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며 그만큼 아내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어느 부분에 대해서는 '니가 그렇지. 생긴게 그렇게 생겨먹어서 그럴 수 밖에 없지.'하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바람직한 전문가는 소크라테스처럼 이렇게 말해야 할지 모릅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것도 확실치가 않다. 다만 그런데 세상에는 나는 뭔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다만 그 사람에게 당신이 뭔가를 알고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나는 설명해 주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전문가다. 당신이 당신의 아내는 이러저러하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그걸 벗어던지고 아내를 매순간 새롭게 느껴지는대로 대하고 주목한다면 당신과 그녀의 사랑은 더욱 깊어질것이다. 그녀는 다르게 행동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말하는 소크라테스는 현대에 특히 현대한국에 인기가 없습니다. 나는 무지 많이 알거든이라고 말하면서 수없는 규칙, 사실, 관찰의 결과들을 낭송하는 전문가는 그러면 그럴수록 찬사를 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인기있고 없고는 개의치 않았지만 자신이 죽고나면 아테네는 망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내용없는 화려한 장식에만 몰두하는 사람들만 아테네에 남을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혜를 원하면서 엉뚱한 것들에 주목하고 자신의 삶을 부질없는 것들로 채우는 것같아 보일 때가 많습니다. 도움안되는 전문가의 지식이란 그 중의 하나입니다. 객관적으로 너무나 좋은 물건이라도 내게 도움이 안되면 나에게는 쓸모없는 물건입니다. 세상의 인정을 받는 사람의 말이라도 그것과 나의 관계에 주목하지 않으면 우리는 권위때문에 쓸데 없는 것에 에너지를 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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