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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by 격암(강국진) 2011.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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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8.30

논어 위정편 17편에 보면 제자 자로에게 공자는 안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가르침을 내림니다.  그 가르침은 이렇습니다. 

 

안다는 것은 아는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솔직해라 이런 뜻이죠. 그러나 별거 아닌 것같아 보이는 문장의 의미는 주어진 문맥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왜 그런 말을 했나에 따라 진짜 뜻은 전혀 달라질 수 있습니다. 2천년이상 전에 자로에게 그렇게 말한 공자의 참뜻이 무엇인가는 유학전문가도 아닌 제가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공자가 말한 이 유명한 문장을 읽고 저 나름의 문맥에서 이에 대해 몇마디 적어볼까 합니다. 

 

인터넷을 보건,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건 제가 언제나 느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일단 말이란 하게 되면 실제 마음속에 있는 것보다 훨씬 선명하게 선이 그어지고 강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그 답을 잘 알지 못하는 일이 있다고 해봅시다. 요즘 곽노현서울시 교육감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곽노현이 2억을 박명기교수에게 주었다는 사실이 어떤 뜻이 있는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다는 것은 진실이 뭔가에 대한 의견들이 여러가지라는 것이죠. 이걸 단순 뇌물사건이라고 단정하는 사람은 아마도 곽노현을 믿지 않았던 사람일 것입니다. 믿었던 사람중에도 법은 법이야 하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특별히 곽노현의 지지자나 반대자는 아닙니다만 사람의 한 평생에 대한 평가가 순간에 바뀔 수가 있는 것일까요?

 

작년까지만해도 4대강공사 반대론자였다가 갑자기 찬성론자로 돌아서는 사람이라던가 한나라당에서 꼭대기로 올라서려고 하다가 좌절되니까 거기를 나와서 한나라당을 비판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 봅시다. 이런 사람의 말에 대해서도 과거는 따지지 말고 그 말만 사실인가 아닌가 시비를 따지자고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과학에서는 이 말이 옳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과학이 아니니까요. 우리가 세상에서 말하는 진실이란 과학적 팩트같은 게 아닙니다. 어떻게 하나의 사건을 보고 서둘러 세상을 확뒤집을 수가 있겠습니까. 진짜 진실은 알기 어렵죠. 하나의 사건이 모든 의미를 밝혀주는 것이 아닙니다. 강도나 살인범에게도 자기 나름의 사연이 있는데 하물며 오랜간 지지받았던 인물이라면 하나의 사건으로 진실을 알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참 세상에는 서둘러 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고 단 한 사람도 서로 똑같지 않은데도 이래저래 사람을 가르고 딱지를 붙여서는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 안다고 단언합니다. 많은 사안들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는데요. 그 이유는 사실 서둘러 남보다 빨리 안다고 해야 주도권을 잡고 자신의 지적능력을 자랑할 수 있어서가 아닌가 합니다. 사람들마다 말하는 태도는 상당히 틀립니다. 보면 굉장히 빨리 이건 이거다라고 단정짓듯이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항상 그럴까, 아마도 그런 것 같아하는 식으로 흐리멍텅하게 대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종종 내가 안다고 말하는 사람, 귀신처럼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라고 단언하는 사람을 똑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좌중의 의견을 이끌어 가는 쪽은 대개 전자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회색입니다. 말안하고 입다물고 있을 때는 한 70대 30으로 옳다와 그르다라고 생각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흐리멍텅한 생각이 사실은 현실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나 입을 열어서 이것이 옳다라고 말한 순간부터는 사물이 또렷해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의견을 방어하려고 합니다. 70대 30이었던 것이 이제 마치 100대 0인것처럼 됩니다. 

 

대화나 주장이 난무하는 곳에서 가장 용기있는 행위는 나는 모른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들 사실 그걸 잘 알 방법이 없는데도 너도 나도 확언을 하면서 이건 이렇다라고 말하는 곳에서 나는 잘 모른다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명확히 나보다 모를 것같은 사람은 이거니 저거니 말을 하는데 더 잘아는 내가 나는 모른다고 하기가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말잘하는 사람들은 종종 대중은 원래 이렇고, 민주주의는 원래 이러하며, 선진국 정서는 원래 이렇고 하는 식으로 말합니다. 그들은 본질주의자입니다. 그들의 말은 그럴듯하게 들리고 그들은 때로 어느정도 통계적 증거도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법칙이라고 믿고 따르기는 곤란한 사실들을 '원래' 그렇다면서 팍팍 선언하고 있을 뿐입니다. 

 

가장 나쁜 것은 모르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사람이고 그 다음으로 좋은 것은 아는 것에만 말하고 나머지는 침묵을 지키는 사람이며 가장 훌룡한 것은 많이 알지만 모른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아닌가 합니다. 그 사람이 정말로 수준이 낮고 아는것이 없는 사람이라면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의미가 없지만 모두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모른다라고 말해주면 그건 그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모두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잘나신 저분이 모른다고 하는데 그 앞에서 나는 확실히 안다고 말하기 조심스러워집니다. 그럼 정말 아는것만 말하는 분위기가 만들어 집니다. 그렇지 않고 너도 나도 입을 열어 서로의 지식을 자랑하고 경쟁하는 분위기가 되면 점점 더 모든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고 선언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패거리가 생기고 싸움이 생깁니다. 잘 모르는 일을 가지고 말이죠. 어떤 사람들은 개싸움을 하듯 말싸움을 해서 상대방의 말문을 막히게 만들면 자기가 무슨 대단한 증명이라도 한 듯이 굽니다. 

 

한국은 이런 저런 일로 시끄럽습니다. 그런 이유중의 하나가 이런 무지의 철학이 전파되지 못해서 그런게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몰라서 모르는게 아니라 열심히 생각하고 알려고하면 세상에 확실한 것이 없고 그래서 거기에는 항상 불확실과 무지가 가득히 존재한다는 것을 모두 느껴야 합니다. 그럼 모두가 조금 더 겸손해 질것이고 그럼 모르면서 확실하다고 하는 경우도 조금 더 줄어들 것이고 그럼 싸우고 비방하고 미쳤다고 서로 손가락질하는 일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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