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념적 소비니 윤리적 소비니 착한 소비니 하는 것에 대한 논쟁이 트위터 공간에서 시작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이것은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에서 시작되어 조국교수의 칼럼, 공병호소장과 이원재 한겨례 연구소장의 논의로 까지 번지고 있다. 이런 논의들에 대해 여러가지 찬반 반응이 나오고는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논의를 매우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왜냐면 이런 논의들이 결국은 매우 표면적인 차원에서 다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표면이란 결국 소비자 편익과 형식적 윤리다. 한쪽에서는 싸고 좋은 물건 팔고 소비하는데 거기에 무슨 이념이 나오고 윤리가 나오는가. 현실적으로 암만 윤리 이야기해 봐라 싸고 편하고 좋은 쪽으로 소비하는 쪽으로 가지. 이렇게 이야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부자고 힘쎈 쪽에서 약자들 생각안하고 저인망 훓듯 장사해서 되겠냐. 다함께 살아야지. 배터져 죽을거다. 하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공방이 계속되는 느낌이며 이에 대해 많은 논의를 해왔다고 하는 이원재 연구소장의 논의를 봐도 도무지 시원한 데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얼마전에 SSM을 통해서 본 한국사회 (http://blog.daum.net/irepublic/7887911)라는 글을 통해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조금더 축약된 형식으로 논의가 어떤 것을 중심으로 나가야 하는가를 다시 한번 말해 볼까 한다.
문제는 강자가 약자 생각안해주는 것은 문제다 라는 윤리적 발상만으로는 한계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그것이 의미없는 것은 아니다. 당장 힘든 사람들에게는 논리를 떠나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 사람이 당장 죽을 판인데 거기다가 그거 다 평소에 이런저런 잘못했기 때문이야라고 설교하고 있을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그점을 제외하면 그런 발상과 주장만으로는 정용진, 공병호의 주장에 매우 무력하다. 조금만 길게 보면 결국 자유국가에서 싸고 편하고 자본력강한 사람이 이기게 된다. 소비자도 그걸 원한다. 단순한 윤리적 발상으로 얻을수 있는 것은 이직을 할수 있는 시간적 여유지 해결이 아니다.
그럼 단순하지 않은 윤리란 무엇인가. 윤리일반에 대해 논하지 않더라도 이경우 우리는 한가지 당연한 것을 지적할수 있겠다. 이경우 윤리를 공동체라는 것과 떼어내서는 이야기되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강자가 약자를 생각하는 것은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를 전제로 해야 이야기가 된다. 세계로 말하자면 인류공동체를 이야기해야 이야기가 된다. 우리는 참치나 소와는 매우 약한 공동체의식을 지니기에 그들을 잡아먹는것에 대해 윤리적 문제를 별로 못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공동체는 여러 수준이 있는데 국가 공동체라는 정체성만 있을 경우 그 국가라는 틀 안에서 모든 것이 균일화되고 표준화되는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그러니까 중앙에서 최고로 싸고 맛있게 피자를 만들어 전국민이 그것만 먹는 것은, 온국토에 SSM이 퍼지고 지역마다 차이가 있는 소규모 상인들이 없어지는 것은, 기술적인 장벽을 해결할수 있다면 당연한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왜 서울과 부산과 밀양과 광주가 완전히 판박이여서는 안되는가. 국가적 평등론은 오히려 그것을 지향하지 않는가? 서울에 있는 이마트 우리 고장도 있으면 좋겠다고 하지 않는가? 서울과 부산과 밀양과 광주가 각자의 작은 공동체적 정체성을 지니지 못한다면 그래서 각자의 개성을 발현하지 못한다면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정체성이 없다면 이름은 거의 의미가 없다. 싸고 편한데 왜 전국을 똑같이 만들면 안된다는 말인가. 규모의 이득을 달성하는 것은 자동차나 비행기나 컴퓨터처럼 기술적 문명적 성취다.
다양성이 나오는 이유는 그 지역에는 지역적 공동체의 정체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정체성에서 나오는 특징이 있어서 다양성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다양성이 클때는 전국을 표준적으로 연결하는 시스템이 그다지 경쟁력이 크지 않다. 표준화의 힘이 정체성의 힘과 균형을 이루게 되어 구석구석까지 파급되지 않는 것이다.
이건 서비스의 문제일뿐만 아니라 신뢰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 상점이 그 지역사회가 요구하는 필요에 얼마나 진심으로 전력을 다해 반응해 줄것인가 하는 결과에 대한 평가일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그럴것이라는 신뢰의 문제다.
이정도를 읽고 나서 성급하게 뭔가 했더니 공동체 정신 이야기야 우린 그런걸 다알아. 그건 사소한 것이지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그렇지 않다. 이 부분을 너무 사소한 것으로 간과하기 때문에 논의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것이다. (사실 내가 흔하게 하는 말이지만 사람들은 윤리의 문제를 옳은 게 뭔지는 이미 다 알려져 있고 유혹에 지지않고 그걸 행하는 문제라고 종종 생각한다. 이렇게 이런 문제를 사소하고 당연한 것으로 아니까 논의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우선 물어야 하는 것은 그 지역에 지역공동체라고 할만한 것이 실존하는가 하는 것이고 그게 필요하다고 스스로 느끼는 가 하는 것이다. 지역공동체의 유익함에 대해 떠들수도 있지만 실은 절대적인 것은 없다. 모든 지역민이 다 지역공동체에 참여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인류공동체나 국가공동체 수준에서만 사고하고 지역에 대해 어떤 소속감이나 애착이 없을수 있고 그것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자기 선택이다. 사람은 선택한 대로 그 댓가를 치루고 받으며 산다.
윤리적 소비의 문제는 선택의 문제이지 지역공동체를 위하는 것이 좋아라는 문장을 그저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문제가 아니다. 그냥 뻔하고 당연하다고 말하지 말고 진지하게 자기에게, 지역민에게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지역공동체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가, 그런게 필요하다고 느끼는 가.
그 답이 강력하게 긍정적으로 나올때만이 -이건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닌데- 전국이 똑같은 제품을 소비하는 상태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니까 정부와 이야기하고 사회전체에서 대기업이 이런 일 해도 되는가하고 논의하는 것도 필요는하지만 더욱 필요한 것은 지역별로 상권별로 동종업자들 별로 모이고 지역민과도 모이고 소통해서 이 질문을 던지고 검토하고 솔직하게 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 커뮤니티가 활성화될때만이 전국적 표준화의 힘을 막아내고 지역의 정체성을 지킬수 있다.
답은 국가적인 수준에 있는게 아니라 각 지역수준에서 각 동네수준에서 있다. 선택은 지역민이 스스로의 가치판단에 의해 내리는 것이다. 거기에 어떤 일반론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각 지역민들이 지역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 일반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효용이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사실 지역을 넘어 각 가족의 정체성, 개인으로의 정체성과 선택에 대한 고민이 되어야 하며 그렇게 해서 윤리에 대한 근본적 논의가 되고 비로소 윤리적 소비라는 말에 걸맞는 논의가 되는것이다.
지역민이 대기업보다도 믿어주지 않는 자영업자가 나는 그저 소규모니까 계속 여기서 장사해야 겠다는 말은 그저 지역민 피를 빨겠다고 하는 것밖에 안된다. 거기 사는 사람들이 모두 나는 그저 이동네에서 잠만 잔다. 나는 이웃들하고 무슨 소통같은것 필요없고 애착도 없다. 라고 생각하는데 더 싸고 편한 가게가 들어오는 것에 반대하는 논리가 얼마나 사람들을 지탱할 것인가.
우리는 국가적 수준에서, 지역적 수준에서, 가족적 수준에서, 개인적 수준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냥 주어진 이러저러한 것을 지키는 것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라는 노예적 발상으로는 결국 자유주의가 모든 것을 평준화 시키는 미래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개인도 가족도 지역도 물론 나라도 지키지 못할 것이다.
단순한 표준화 논리로 다 똑같아지자며 주장하다가 생태적 몰살을 가져올수 있는 제살파먹기를 하게 될것이다. 대기업이 전국을 표준화시킨다면 국제적 기업이 더욱 쉽게 한국을 침투할 것이다. 그저 단순한 윤리적 주장만 하다가는 시간만 지날수록 오히려 상황은 더더욱 어려워 질것이다. 개인이 가족이 지역이 깨어나야 한다. 거기서 답이 나와야 한다.
'주제별 글모음 > 세상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과 정치는 예술인가 논리인가 (0) | 2010.10.24 |
---|---|
황장엽의 죽음, 남북통일. (0) | 2010.10.14 |
해묵은 미래, 개방의 문제 (0) | 2010.09.21 |
SSM을 통해서 생각해 보는 한국 사회. (0) | 2010.09.09 |
좋은 사람, 좋은 문화 : 세상을 바꾸기 위해 우리가 할수 있는 것 (0) | 2010.09.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