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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의 죽음, 남북통일.

by 격암(강국진) 2010. 10. 14.

제가 바뻐서 글을 쓰지 못하던 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중 주목할 만한 일로 황장엽씨의 죽음과 북한의 3대 세습사건이 있었고 이에 따른 진중권, 이정희민노당 대표의 논쟁이 있었군요. 트위터에서 관련된 글을 하나 추천받아서 읽어보았습니다 (http://ht.ly/2SAMI). 


매우 지적인 글이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읽는 내내 매우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한국에서 남북통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때면 항상들던 느낌과 비슷하고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이라는 사람들이 뭔가를 논할때 더 자주 느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건 바로 관념의 과잉과 전체주의적 사고 방식이랄까요. 그런 방식으로 21세기에 과연 통일에 도움이 되는 어떤 실질적인 변화가 있을수 있을까에 대해 지극히 회의가 듭니다. 


한국은 20세기를 거치면서 충분하고도 넘치게 거대한 단어들이 나열되는 논리들의 폭동을 겪었습니다. 소위 사상가들은 민중이라던가 노동자계급, 사회주의, 자본주의 따위의 단어를 휘두르면서 남북한 간의 상황을 정리하는데 사실 그들이 부르는 그 단어 하나에 포용되는 현실은 매우 복잡하다는 사실을 지나치게 간단히 무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이미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전자통신의 발달로 훨씬 더 빠르게 변하면서도 다양성이 폭팔하는 현실에서 거대한 단어가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것을 무시합니다. 


우리가 남자라던가 신월동 주민이라던가 어떤 집단에 이름을 붙이면 그것은 신통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바로 그 개념안에 포함되는 것을 같은 것, 평등한 것, 동질의 것으로 파악하려고 하는 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거대한 단어만을 남발하는 사람이란 현실세계와는 동떨어진, 현실감각이 없는 사람임을 자백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지 모릅니다. 


이러한 논의의 문제점들을 나열하고 비판하는 대신에 우리가 통일을 하려면 뭘해야 하는지에 대한 나의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답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한 논의로 공간을 채우는 것보다 효율적일테니까요. 


나는 우리가 통일을 하려면 한국에 있는 사람 하나 하나 개인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있는 한국 사람하나 하나가 보다 행복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서 철학적으로 깊어지고 가치적으로 흔들림이 없는 주관을 가지면서도 남을 포용할수 있는 폭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생각처럼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그저 우리 다 착한 사람이 되고 좀 더 너그러워지자라는 결의를 다지는 정도로 이뤄지는것일이 아닙니다. 철학적 일관성과 세상을 보는 눈, 가치판단의 방식을 바꾸는 것을 종종 그렇게 단순하고 사소한 일로 생각한다는 사실자체가 한국 사회가 얼마나 이부분에서 망가져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이런 것이 얼마나 실질적인 가를 말하기 위해 이런 질문을 해봅시다. 한국의 학교가 촌지를 받는 선생님이 있고 그런 학부형이 있으며 폭력을 행사하는 교장이 있는데 과연 통일이 될까요? 한국의 문화가 사람들을 이런 저런 호칭으로 가르고 딱지를 붙여서 위아래 열심히 따지고 모욕적인 언사와 차별을 하는 것이라면, 이런 문화가 계속된다면 과연 통일이 될까요? 한국의 경제가 자본주의 시장논리도 아니고 독과점으로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을때 과연 통일이 될까요? 한국 사람들이 한탕주의에 젖어서 부동산 투기열풍이 불면 앞뒤도 안가리고 뛰어들고 학군좋게 한다고 위전전입이 보편적으로 일어나고 손님에게 바가지 씌우기, 엉터리로 식품관리하기따위를 하면서 통일이 될까요? 한국에서 연변족 사람들, 동남아출신 노동자들이 어떤 대접을 받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과연 통일이 될까요?


이런 말들은 끝없이 쓸수 있습니다. 이런 말들과 통일의 논리적 관계를 논하기 전에 스스로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과연 통일이 될까요?


많은 사상가들의 문제는 그들은 사람을 객체로 봅니다. 공을 하늘에 던지면 그 궤적이 어떻게 될지 우리는 계산할수 있습니다. 공기의 영향은 어떻게 받는지. 던질때의 각도와 힘에는 어떻게 의존하는지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공이 아닙니다. 사람은 객관적으로 시간에 따라 정지해 존재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실 모든 생명체가 그렇지 않습니다. 


사상가들, 경제학자들은 흔히 사람들을 많이 뭉뚱거리면 그 전체집단은 당연히 공처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들이 남한 민중이라거나 노동자계층이라고 하면 이 세상에는 그 이름에 대응되는 어떤 실체가 시간에 따라 그 본질이 변화하지 않으면서 던져진 공처럼 외부의 힘에 반응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때로 피할수 없는 것인지는 모릅니다만 첫째로 피할수 없는 것이라는게 옳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둘째로 사회에 관한 이론중 가장 발달한 경제학도 그다지 성과가 신통치 않아 우울한 학문이라고 불립니다. 사회과학이론이라는 거 과연 그렇게 대단한 것일까요? 가설수준보다 그렇게 대단한걸까요? 요즘도 무슨 주의를 믿는다는건 비과학적입니다. 세째로 앞에서도 말했습니다만 요즘처럼 복잡하고 빨리변하는 세상, 민주화된 세상에 한국민중에게 좋은 것은 너에게 좋은 것이다라던가 한민족에게 좋은 것은 너에게 좋은것이다라는 식의무식한 발상이 통할까요? 디테일이야 나중에 잘해결하면 된다고 하는 말이 과연 도움이 될까요? 몸통은 디테일이라고 무시하고 추상적 단어의 나열이나 하고 있는거 아닐까요?


저는 거시적 단어를 쓴 세계관들이 모두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모든 것이 그렇듯이 그런 것들은 득을 주는 동시에 해를 끼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조잡한 사상은 득은 거의 없고 해만 끼칩니다. 그 해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개인들의 주체성을 파괴하고 개인들의 자기 정체성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분자가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이고 가치판단의 주체라는 사실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런 거시적 단어들의 나열로 이뤄지는 논의속에서 그 단어들이 지칭하는 사람들은 마치 분자처럼, 공처럼 무력하게 원리대로 움직이니까요. 


한국 사회는 개개인의 정신적 발전없이는 더이상의 시스템개혁이 불가능합니다. 개인이 달라져야 하고 그 달라지는 방향은 한국 민중은 이렇게 변했다는 식의 문장으로는 거의 표현 안 되는 것입니다. 제가 종종 하는 말이지만 한무리의 위선자가 모여있어도 시스템과 규칙만 올바르면 살기 좋은 사회가 만들어 질수 있다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개개인이 올바로 서야 시스템에 구멍이 좀 있어도 돌아갑니다. 애초에 항상 시스템은 단순해야 하고 구멍은 개개인의 올바른 가치관, 인간의 보조로 돌아갈수 밖에 없습니다. 완벽한 시스템이란 자유가 없는, 인간을 말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외교는 누가 합니까. 대통령이 하고 집권여당이 하겠죠. 그 집권당의 권력은 누가 줍니까. 국민이 줍니다. 국민이 이런 저런 소리하고 이런 저런 행동하고 할때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정치가들의 행동패턴을 결정할수 밖에 없습니다. 그냥 국민은 무식하고 위선적이고 썩어있는데 훌룡한 지도자 한명뽑으면 그 지도자가 나라 구해줄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그런 경우 지도자가 훌룡해서 훌룡한 행동을 하려고 할수록 국민은 저항에 나설 것입니다. 대통령을 욕할 것입니다. 가치판단이 다르기 때문이죠. 


우리는 이런 교훈은 지난 10년간 지긋지긋하게 반복해서 목격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거대담론으로 뭐가 될거라고 믿는 사상가들이 있다는 것은 슬픈일입니다. 


아이들을 잘키우면 통일이 됩니다. 차별없는 문화를 만들고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면 통일이 됩니다.  한국경제가 투명하고 공평하다면 통일이 됩니다. 한국 사람들이 한탕주의 버리고 투기바람같은것에 빠지지 않는다면 통일이 됩니다. 손님에게 친절하고 위생적으로 식품관리하는 사회가 되면 통일이 됩니다. 외국인들, 교포들도 우리 사회가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 규칙이 공평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면 통일이 됩니다. 제 생각에는 한국 사회의 기본 즉 한국인 개개인이 서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통일이 됩니다. 


지식인이라면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지적하고 제공해야 할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지식인들이 그러고 있질 않은 것같습니다. 쓸모없는 혼란만 키우려면 책은 뭐하러 읽고 논쟁은 뭐하러 하며 의견개진은 뭐하러 하는 것인지 알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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