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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고전 읽기

당시를 읽으며

by 격암(강국진) 2010. 10. 21.

본래 시를 읽는 사람이 아닌지라 나는 시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어제는 우연히 두보가 쓴 시를 한 수 읽게 되었다. 


春夜喜雨(봄날 밤에 기쁜 비)


好 雨 知 時 

當 春 乃 發 

隨 風 潛 入 

潤 物 細 無 

野 徑 雲 俱 

江 船 火 燭 

曉 看 紅 濕 

花 重 錦 官 


즐거운 비가 그 내릴 때를 알아
봄이 되면 내려 생을 피우는구나.
바람 따라 밤에 살며시 내리니
세상을 소리 없이 촉촉하게 적시네.
들길은 낮게 드리운 구름으로 어둡고
강 위에 배 불빛만 외로이 비치네.
새벽녁 붉게 비가 적신 곳을 바라보면
금관성에 꽃들도 활짝 피어 있으리라.


호우시절이라는 영화를 보고 감상을 쓰면서 스스로 찾아서 붙여둔것인데 거기에 답글이 달리면서 새삼 읽어보니 참 좋았다.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랄까. 거듭 읽어보면 더욱 좋은데 더듬거려도 한문쪽을 천천히 읽는 쪽이 좋은 것같다. 한문을 한자한자 읽으며 그림을 그리면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보는 느낌이 들며 그것은 익숙한 할리우드영화나 드라마보다 훌룡한면이 있다. 옛사람들에게는 아마도 당시같은 것이 드라마요 영화였을 것이다. 아무리 읽고 읽어도 분위기 잡고 다시 읽으면 새롭고 또 새롭다. 그러니 천년에서 천오백년이상전의 시들이 아직도 읽히고 있다. 




나는 한국을 떠나 외국 생활을 한지 10년이 넘었다. 한국에는 해마다 가고는 있지만 뿌리박고 사는 것과 그저 방문을 하는 것은 다르다. 때때로 한국이 그립다. 그래서 그런지 두보의 다음과 같은 시가 마음에 와 닿는다. 


               解悶


          一辭故國十經秋  每見秋瓜憶故丘

          今日南湖采薇蕨  何人爲覓鄭瓜州


               고국을 떠나


          고국을 떠나 온지 십년을 지나

          추과 볼적마다 그리운 고향

          오늘도 남호에 뜯는 고사리

          누구를 위하여 정과주를 찾는다.


고향에 사는 것이 좋다. 그러나 고향에서 행복하게 산다는 것만큼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이 없는 것같다. 


나는 평소에 윤오영의 수필을 즐겨읽는데 윤오영수필을 보면 윤오영도 당시를 좋아했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윤오영의 수필에 도연명과 국화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그것은 이 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飮酒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此中有眞意  欲辨已忘言


               국화 따 들고


          동녘 울밑에 심은 국화 제철이여

          따든채 남산을 조용히 바라보노니

          해질 무렵 먼 산은 진정 아름다워라

          저물어 뭇새들도 깃 찾아 돌아오고

          여기 우리 살며 느끼는 끝없는 기쁨이 있어라

          무어라 이것을 모집어 이를길도 없구나.


울밑의 국화에서 삶의 아름다움과 새로움을 느낄수 있는 사람에게는 진기하고 흥분되는 일을 찾아 천하를 뒤지는 일이 필요없을 것이다. 도연명이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생각하면 이시는 정말 근사하게 느껴진다.


재미있게 사는 일, 새로움을 느끼며 사는 일이 중요하다. 당시 몇편을 읽으면서 몇가지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첫째는 오래된 당시가 아직도 새롭다는 것이다. 인간이 많이 진보했다는 사실에 자만감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가소로운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천년 천5백년된 시들이 말하는 정서와 풍경이 오늘에도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둘째는 시를 읽지 않게 된 시대라는 말을 종종 듣는 요즘, 그것은 무엇때문일까 하는 것이다. 일반 시민들의 마음이 이제는 좁고 삭막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요즘 나오는 시들이 내 시가 지금은 인기가 없지만 천년후에 읽어도 여전히 새로울 것입니다라고 말할 깊이가 있는 것일까? 나는 물론 당대의 시인들 개인에게 왜 역사의 명작만한 것을 못쓰냐고 책망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요즘엔 문학이 사람들에게 희망과 미래로의 길을 보여주는 일을 하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물론 문학에 무식한 나의 느낌일 뿐이다. 


막장 드라마는 한번 보기도 지겹다. 그런의미에서 평생 틈틈히 두고 두고 꺼내보아도 새로운 것을 몇개 안다는 것은 매우 큰 자산이 되는 것같다. 이제 나도 시를 좀 읽어볼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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