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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책 이야기

윤오영이라는 약

by 격암(강국진) 2011. 2. 23.

나는 윤오영을 종종 꺼내어 읽는다. 비타민을 먹는 기분으로 한두줄 읽을때도 있고 딸아이에게 낭독하게 하고 눈을 감고 듣던 때도 있다. 오늘 아침에만 해도 나는 윤오영 수필집을 빼내어 가지고 사무실에 왔다. 이 책은 좋지 않은 뉴스들로 마음이 어지러울 때 내게 필요한 영양제가 아닌가 한다

 

 

 

 


윤오영의 글이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글안에 살아있는 한국인들의 정이 있기 때문이다. 윤오영의 글이라하여 세상을 장미빛으로 그리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사라져가는것, 잊혀진 것이며 각박해져가는 인심을 안타까이 여기는 글을 많이 쓴다.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소년이여 야망을 가지자라는 식의 야심을 보인다던가, 정치가의 웅변마냥 이렇게 하면 세상이 바뀐다는 주장도 확신도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각박한 것, 실망스러운 것, 무서운 것을 이야기하면서도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것은 작더라도 따스한 세계다. 그것은 때로 길바깥쪽과 대비되는 작은 쪽방의 정서일 때도 있고 한가로이 보낸 강변의 풍경일 때도 있으며 우연히 마주친 작은 염소새끼의 모습일 때도 있다. 그 따스한 세계는 크지는 않더라도 외롭지 않은 세계다. 그는 스스로의 글이나 옛사람의 글과 그림을 벗하기도 하지만 그 작은 공간에는 윤오영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있고 그래서 이웃이나 아내에 대한 정이 흐르는 공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무척 짧은 달밤이란 글을 보면 이야기가 이렇다. 필자는 아는 김군을 달밤에 찾아갔는데 만날 수가 없었고 대신 그 이웃의 평상에 앉아 잠시 쉬었다가 돌아온다. 평상에 나와 달을 보던 그집 노인은 처음 본 필자에게 평상에서 쉬어가도록 할뿐만 아니라 말없이 탁주한그릇을 주었다. 한잔마시고 필자는 살펴가우라는 인사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이야기는 이게 다다. 격한 감정도 논리도 없다. 인물들간에 대화도 몇마디 없다. 그러나 오히려 조용해서 좋다. 그안에는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인간세계가 있다. 평상과 달이 있고 사람간에 믿음과 정이 있다.

내가 각박한 세상, 답답한 소식만 있는 세상에서 윤오영의 글을 영양제먹듯이 읽는 것은 두가지 이유다. 하나는 앞에서 말했듯이 이 세상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그래도 정이 흐르는 세상이라는 것을 보고 느끼고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또하나는 그게 어디 아프리카나 아메리카나 중국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에 대해 좀더 믿게 되기 때문이다. 

포털의 뉴스라도 볼까치면 사람을 믿기 힘들고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다 눈감고 조용하게 나만의 세상에서 살아야한다는 생각이 자주난다. 그러나 윤오영의 글을 읽으면 한국사회에 대한 희망과 인간에 대한 희망이 다시 솟아오르는 듯한 느낌이 나는 것이다.

물론 윤오영의 글은 이젠 낡은 것이다. 이 세상엔 포스트모더니즘도 이젠 낡은 것이 되었고 새로 나온 자동차나 컴퓨터, 새로운 패션을 따르는 옷마냥 좀더 자극적이고 많은 메세지를 품은듯한 글도 많다. 사람들은 이젠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이 진짜라고 믿거나 진짜라고 말해지던 것들을 억압으로만 인식하거나 위선으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 것같다. 

 

그래서 이젠 친절한 것과 친절한 척하는 것, 아름다운 것과 인위적으로 아름답게 꾸민 것의 구분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늘어간다. 그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들먹이면서 잘난체 하지만 실제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극복한다고 하는 모더니즘의 세계가 만드는 기계화된 인간이 되어가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나 한다. 바닥없는 허무주의는 결국 가장 생생하게 느껴지는 감각적 자극에 중독되어가는 일상으로 밖에 이끌지 않는다. 또한 남과 달라지려는 노력이 표면적인 것에만 머무를때 '나는 달라'라는 광고 카피에 넘어가서 대량생산되는 가방이며 옷을 사들이고는 남과 달라졌다고 믿는 그런 모습이 되고 마는 것이다. 

 

종종 나는 그 새로운 필자들이 너무 쉽게 세상을 포기하거나 너무 간단하게 세상을 단순화하거나 독자를 지배하려드는 권력욕을 나타내거나 너무 잘난체하거나 너무 자기비하에 빠진 것같은 느낌을 받으며 무엇보다 그 안에서는 윤오영의 그것과 같은 따스하고 인간이 있는 세계를 느끼기가 힘들다. 있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의 정서와는 달라 왠지모르게 허술한 느낌이 들고 조작된 감동에 빠지는 느낌도 든다. 어쨌건 만마디 십만마디의 논리와 말도 결국 그것, 그런 공간의 제시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그냥 자기 혼자되어 누에고치속의 인간마냥 살 생각이라면 뭐 그리 많은 말이 필요할것이며 세상에 무슨 재미가 있을 것인가. 같이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윤오영의 글은 낡았지만 나는 그래도 윤오영의 글이 더 좋게 느껴지며 거기에는 씹어도 씹어도 나오는 맛이 있다. 반면 오히려 요즘의 글들이 화려한 치장만 있을뿐 조미료맛만 가득한 가짜음식같은 느낌이 든다. 윤오영의 글속에 있는 한국인의 정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반지의제왕이나 배트맨 이상으로 환상의 산물일지 모르나 나는 희망을 가지고 모든 것을 허무로 돌리고 싶지 않으며 이왕이면 우리사회에 있던 것을 한번 더 느끼고 싶다. 

요즘들어 만성피로가 느껴지는 분, 눈이 침침한 분, 이따금씩 자리에서 일어나기 싫다는 생각에 빠지시는분들에게 다시 한번 약하나를 권한다. 윤오영을 읽어라. 특히 한국사회가 신물이 난다고 하는 분. 빨리 이 약을 복용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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