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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은 세상에 있는가.

by 격암(강국진) 2011. 4. 23.

우리가 거미와 같은 방에 있다고 하자. 우리가 거미와 같은 세상에 있지 않다라고 누가 말한다면 그 문장의 뜻은 알만한 것이 된다. 우리가 거미와 보고 듣는 것이 다르다. 어떻게 우리가 생각한 세상과 거미가 느끼는 세상이 같을 수가 있을 것인가. 시각장애인과 같은 방에 있다고 해도 그 시각장애인은 누가 잘 생겼다던가 섹시하다던가 하는 것을 알기 어려울 것이다. 석양이 멋지다던가 춤이 어떤 것이라던가 하는 것도 알지 못하거나 다르게 느낄 것이다. 

 

서로 다르다는 말은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미각이 없는 사람은 맛있는 음식만 찾아다니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의 차이는 다른 많은 차이도 만들어 낼 것이다. 따라서 단순해 보이는 차이는 세상의 여러 일에 대한 가치판단에 영향을 미치고 더 나아가면 세상살아가는 이치, 세상사는 게임의 법칙에 대해서도 전혀 다르게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런 점은 어린 아이와 삼십분만 같이 있어보면 잘 알 수가 있다. 어린아이는 그 경험의 미숙으로 인해 자기가 하는 말의 의미를 잘 모른다. 어른은 가난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데 무지한 아이는 단순하게 저 아저씨는 양복에 구멍이 있다고 웃으며 놀릴 수 있다. 그 아이에게 옷에 난 구멍은 단지 구멍일 뿐이며 재미있는 것이지만 그 어른에게는 그 구멍은 엄청난 사회적 의미를 가진 것이다. 그나 그녀는 대중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죽을만큼 아플 수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거미때문도 아니고 어린 아이나 시각장애인때문도 아니며 미각이 없는 사람때문도 아니다. 우리 눈에 멀쩡해 보이고 따라서 우리와 똑같다고 생각되어지는 많은 사람들은 과연 우리와 같은 세상에 있는가하는 점을 되새겨보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통상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한국말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엄청나게 극단적인 상황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개는 우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즉 같은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큰 착각이며 그런 착각은 대개 우리가 비슷한 사람들에 의해 둘러쌓여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즉 우리는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만 만나면서 산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자주 만나기 때문에 이미 비슷해져 있달까. 비슷한 재력을 가진 사람, 비슷한 학벌을 가진 사람, 비슷한 지방에서 나고 자란 사람 그런 사람에 둘러쌓여 살기 떄문에 우리는 앞에서 말한대로 사람들이란 대개 나와 다른점도 있지만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물리적으로는 우리와 다른 사람과도 자주 만난다. 그러나 그 접촉이 제한적이고 어떤 고정된 형식을 가졌을 때 그 만남은 거의 의미가 없다. 엄청나게 가난한 나라나 가난한 동네에서 구호활동을 벌이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은 거기를 매번 드나들기 떄문에 나는 이 동네를 잘 알며 자신과 그 가난한 사람들이 같은 세상을 같은 방식으로 보고 있다고 착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대개는 그렇지 않다. 신문팔이가 재벌회사의 사장과 아무리 자주 만나도, 대통령이 재래시장 상인을 아무리 자주 만나도 두사람의 세상을 보는 인식은 같은 것으로 수렴하지 않는다. 서로 대화를 해도 그렇다.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착각이 깨지는 경우가 가끔있다. 남자의 경우는 군대에 가는 것이고 사업이 실패했다거나 로또에 맞아서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거나 출세한 경우로 거기에는 소위 문화적 충격이라는게 있다. 이럴 때는 도무지 말이 통하질 않는다. 상황을 똑같이 경험해도 두 사람이 보게 되고 느끼게 되는 것은 서로 전혀 다르다. 

 

이런 착각은 그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무시할 수도 없다. 요즘은 민주주의 시대이며 사회적인 변화가 빠른 시대이기 때문이다. 2-30년만에 친구를 만나면 차라리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보다 어색할 때가 있다. 선입견없이 모르는 사람이라고 만나게 되는게 아니라 전에 서로를 파악하던 방식이 기억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2-30년만에 만난 친구사이에만 벌어진다면 좋은 일이지만 요즘은 사람들이 몇년마다 서로의 관계를 확인해보면 뒤집어지고 바뀌고 하는 그런 시대 아닌가? 

 

온 국민이 삼국지를 읽는 나라는 좋은 나라다. 삼국지가 좋다는 것이 아니다. 삼국지같이 어떤 특정한 이야기가 있는 내용을 함께 읽음으로서 사람들은 비로소 약간은 겹쳐지는 세계에 살게 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삶이라는 게임의 법칙을 공유하게 된달까. 그게 안되면 나는 바둑두는데 저쪽은 알까기하고 있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당연히 서로가 서로를 반칙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되기 쉽다. 

 

부하직원이었을 때 상사에게 뺨을 맞아도 참고 높은 자리에 올라간 사람과 자기는 항상 희생하면서 부하직원 뒤치닥거리만 하다가 승진한 사람이 만났다고 하자. 이 두사람의 게임의 법칙은 크게 다르니 싸움나기 쉽상 아니겠는가. 어린아이가 남의 구멍난 옷에 대해 아무생각없이 이야기를 하듯 한 쪽은 자기말이 다른 쪽에게 어떻게 들리는지 전혀 모른다. 

 

우리는 같은 세상에 있는가. 생각하면 할수록 이 문제는 중요한 문제다. 우리는 모두 고독한 섬처럼 살지못한다. 그러나 나와 너의 간격이 느껴지는 때는 상당히 있으며 그 간격을 메꾸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러기 위한 에너지 소모를 생각하면 그저 한숨만 나는 일이 있다. 이 세상이 조금 더 살만한 곳이 되는데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겠는가. 싸움이 나는 곳에 가보면 앞에 말한대로 한쪽은 바둑두고 한쪽은 알까기 하면서 서로 똑같은 게임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같은 상황도 많다. 자기가 무슨 게임을 하는지를 성찰하는 사람자체가 드물다. 그러니 싸움이 어찌 없겠으며 싸움이 어찌 멈출 것인가. 한숨이 날뿐이다. 

 

우리는 같은 세상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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