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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에 대한 단상

by 격암(강국진) 2011. 3. 22.
나는 가수다 3회가 끝난날 트위터의 타임라인은 그 프로그램에 대한 분노로 가득 덮혔다. 일견하기에는 이 문제가 리비아의 비극이나 일본의 지진보다 더욱 비극적인 사건으로 보일정도의 극렬한 반응이었다. 나는 애초에 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가수들의 노래는 즐겁게 듣기는 했지만 이 프로그램이 어떤 만행을 저지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것 같다.  

 내가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낀 감상은 도대체 이 프로그램은 뭐하는 프로그램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한가하는 점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시시껄렁한 연예계이야기나 농담, 왕따시키기로 시간을 때우는 소위 예능 프로그램인가 아니면 가수들의 노래를 들려주는 가요프로그램인가.  

비중있는 개그맨들이 나오고 많은 사람이 흥분해가면서 비판했던 것같은 막장편집으로 보았을때 이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은 이걸 예능프로라고 만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이 프로그램의 주요 장점이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의 호소력이라고 믿고 있다면, 그들은 결코 노래가 가장 감동적일때 마구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집어널는 편집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가수들을 예술가, 장인의 경지에이른 전문가로 생각한다면 개그맨들과 뒤섞여 썰렁한 농담을 하게해서 그들의 노래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를 연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대단한 가수들을 섭외해 놓고도 그들의 노래만으로 충분하다고 믿지 않았던 것이다. 실은 대중은 이 가수들의 노래를 경연없이 6개월내내들었어도 만족했을지 모른다. 애초에 이런 프로그램에 그런 명망있는 가수들이 우르르 몰려나올수 있다는 것은 방송국의 섭외능력이전에 오늘날 가요계의 처참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 나는 가수다는 가요프로그램으로 대중에게 인식되었고 가요프로그램으로 대단한 화제의 프로그램으로 '떳다'는 것이다. 그들의 노래가 가지는 호소력과 거의 폭력적으로 대중에게 들이밀어지는 선정적 댄스가수의 노래들에 식상해 있는 현실때문에 대중들은 환호했다. 솔직히 왜 개그맨들이 그 프로그램에 나와야 하는지 절감한 시청자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거의 아무도 개그맨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들의 무례해 보이는 언사를 지적할때 이외에는 말이다. 도대체 왜 꼴등한 가수와 짝이되는 개그맨은 떨려나야 하는가. 개그맨이 경연에 무슨 영향을 미치기는 하나? 

 하나의 프로그램이 만든 사람의 의도와 상관없이 다른 것으로 인식되고 환호될때 비극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자동차 운전자가 자기가 뭘 모는지 모른다면 어떨까. 더구나 그들은 패배자는 한번의 패배로 프로그램에서 떨려난다는 전혀 희극적이지 않은 규칙을 만들어 두고 시작했다. 모두가 선의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는 비극은 탄생된다.  

나는 3회방송을 몇일동안 보지 않고 유튜브에서 그들의 노래만을 들었다. 솔직히 그들의 노래를 좋아하기는 했다.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같은 노래는 몇번이나 듣곤 했었다. 그래서 노래를 듣고 싶은 생각은 있었으나 아슬아슬한 잔혹극을 보는 듣한 기분은 별로 느끼고 싶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흥분해서 비판하는 모습을 보니 더더욱 그 프로그램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노래를 듣다보니 결국 프로그램을 보게 되고 만다. 

취향은 각각일수 밖에 없지만 음악에 문외한인 내취향으로는 사실 김건모는 분명 가장 잘 노래를 부른 사람중의 하나였지 떨어져야할 사람이 아닌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가지 작은 질문이 등장한다. 그리고 진짜 중요한 한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우선 작은 질문들부터 보자. 첫째로 과연 이러한 평가의 규칙이 올바른가 하는것이다. 500명의 평가단의선정이야 그렇다고 해도 많은 사람에게 1등을 하지않으면 꼴등이 된다는 것이 규칙이다. 만약 사람들에게 좋았던 세사람의 가수를 적어내라고 해서 평가를 했다면 등수는 또 바뀌지 않을까? 백점제로 모두 평가하게 해서 합산을 하면 또다르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여기서 음악평가의 방법론을 논하는게 아니다. 다만 평가방식이 여러가지 있다는 점을 질문함으로서 두번째 질문을 보다 의미있게 하고 싶은 것이다.  

두번째는 평가의 방식이 비록 의문점이 있고 심지어 잘못된 것이라고 해도 참가자들은 그 결과에 순종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앞에서 김건모의 노래가 내게는 상위권이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내기준으로 보면 김건모가 탈락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런 나같은 사람도 결과에 순종하는 것이 옳을까 이건 말도 안된다면서 평가결과를 뒤집으려고 해야 할까. 

이 작은 질문들을 던지다보면 왜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극렬한 반응을 일으켰는가를 알수가 있다. 어찌되었건 오락을 위한 프로그램인 이 프로그램은 너무나 경쟁사회의 현실과 겹쳐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진지하게 참가자들의 노래 경연대회를 기본발상으로 하는 슈퍼스타케이같은 프로그램과는 달리 예능프로그램만들듯 엉성하게 경연을 진행하면서 패배를 경험으로 말할수 있는 신인이 아닌 최정상 가수들의 평판을 걸고 하는 판을 짯으니 이건 주유소에서 불쇼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결국은 현실세계에서 상처입는 사람은 물론 참가 가수들에게 까지 그 불꽃을 튀고 말았다. 

일단 참가자들은 막연하게 경연이구나 하는 생각은 하면서도 그 프로그램이 얼마나 잔혹한 것인지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단번에 오랜간 한국가요계에서 알고지내던 사람들을 동료에서 패배자로 쫒아내야 한다는 경험은 참가자들 모두를 쇼크상태에 빠트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그 프로그램의 형태자체가 잔혹한 인간조롱이고 가수모독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마치 자기가 이제 친구나 선배를 칼로 찔러죽여야 한다는 사실을 모른채 경기장에 던져진 검투사처럼 그들은 프로그램의 본질에 부딪히자 어쩔줄 몰라한다. 

관객도 그점은 마찬가지다. 아마 나처럼 관객중에서도 김건모의 탈락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관객도 어느정도는 프로그램의 마수에 걸려들었다. 어떤의미에서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은 매우 교육적인 프로그램이다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질문을 던지니까. 과연 평가결과를 번복하는 것을 우리는 긍정해야 하는가. 

 이것이 얼마나 많은 현대인의 삶의 중심에 있는 질문인가. 이것때문에 얼마나 많은 현대인들이 잔혹한 비극을 참고 넘겼는가. 친구를 이겨야 내가 대학에 들어가고 진급하는 세상, 모두가 승리할수 없고 누군가가 패배해야 내가 승리한다는 현실은 비극을 만든다. 누구도 친구와 헤어지고 동료가 해고당하는 모습을 보고 위아래로 직급이 갈려서 무시당하거나 하는 꼴을 겪고 싶지 않다. 그리고 현실속의 평가기준이란게 항상 정당하다고만 생각하지도 않는다. 경쟁중에 하나인 대학입시만을 생각해 보라. 그까짓것 잘풀고 잘왼다고 훌룡한 인간이라고 누구나 동의하는가.  

그래도 우리는 승복한다. 승복하지 않을때 생기는 무질서보다는 불완전한 평가시스템에나마 승복하는 현실이 살만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눈물을 참으면서 승복한다. 누구는 고액과외에 빽에, 뒤로 나오는 정보가 다른 상황에서 경쟁하지만 누구는 몇번이나 계속 기회가 주어지는 반면 누구는 단한번에 끝이지만 그래도 무질서한 세상보다는 이세상이 낫다고 믿기에 비극을 참으면서 살고 결과에 승복하며 산다.  

거기에 프로그램은 질문을 던진다. 과연 평가결과는 번복될수 있는가. 이쯤되면 이건 거의 사람들의 삶자체를 부정하냐 긍정하냐 수준의 절박한 질문이 되고 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규칙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밟고 뒤에 버리고, 자기자리에 서있다. 규칙이란 이름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수가 있었다. 그런데 평가결과는 번복될수 있는거던가? 그럼 나는 뭘하며 산건가.  

나는 이것을 작은 질문들이라고 불렀다. 큰질문은그럼 뭘까. 큰질문은 바로 이 시스템 전체에 대한 질문이다. 일단 시스템을 받아들이고나서,  평가하는건 당연한데 평가를 잘했는가 못했는가를 묻거나 결과를 받아들이는가 마는가를 묻기전에 이 전체 시스템자체는 도대체 뭘 위한 것인가를 묻는것이다. 

나는 가수다를 기준으로 묻자면 이렇다. 이렇게 경쟁하니까 그결과 우리는 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던가? 적어도 처음에는 사람들은 역시 경연이니까 긴장감이 감돌면서 가수들이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건 이 시스템의 본질이 들어나기 전의 일이다. 이 엉성한 시스템의 본질이 들어나자 가수들은 충격을 받는다. 자 이프로그램이 이대로 계속되어진다면 가수들은 정말 계속 노래를 잘부를수 있을까? 패배한 사람은 상처를 가지게 되기 쉽상이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쉽다. 즐거운 마음으로 계속 하하호호거리면서 노래 부를수 있을까? 진지하게 노래부를 수 있을까? 그들은 아 경연없이 계속 공연하라면 정말 즐겁게 더 잘 부를수 있을텐데 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듣는 관객은 과연 계속 좋은 노래를 들을수가 있을까? 그런 심정으로 잔혹하게 인간성이 부서지는 화면앞에서 계속 인간의 감정을 노래한 노래들에 감동받을수 있을까? 아닐것이다. 가장 훌룡한 공연은 그들이 마음속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을때 노래를 부르는 행위에 보람을 느끼고 재미를 느낄때 이뤄질수 있으며 지속될수 있을 것이다.  

슈퍼스타케이같은 것을 보고 저것이 공정한 사회의 모델이라고 말했던 정치인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야말로 잔혹한 호러물을 볼때의 느낌이다. 우리는 모두 그냥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고 싶은거 아닌가. 그결과 경쟁이 생기고 분배의 문제가 생긴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어쩔수 없는 필요악인것이지 누가 누구를 이기는 것이 그래서 결국은 한사람의 잔혹한 승자와 수없는 패배자를 양산하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슈퍼스타케이같은 것이 공정한 사회의 모델이라고생각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세상은 약육강식으로 서로 먹고 먹히는 세상이며 따라서 믿을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것이 한국에서는 자칭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사회라는 것은 어떤 호러물보다 무서운 이야기다. 

 나는 가수다는 본의아니게 자본주의 한국사회의 비참한 현실의 핵심을 찌르고 말았다. 평가결과를 수긍하여 잔혹하게 이기는 것도 답이 될수 없고 그렇다고 평가의 결과를 부정하는 것도 답이 아니라면 답은 어디에도 없는 것같다. 결국 박스안에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 프로그램은 도대체 뭐하는 프로그램인가 하는 질문이다. 대중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 아닌가?  

더 중요한 진짜 질문은, 그러나 본질적으로 같은 질문은 이것일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이건지 저건지 어디도 답이 아니라 우왕좌왕할때 우리는 답을 찾지 못한다. 결국 박스안에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자신이 출연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뭔가. 이 삶이란 프로그램은 도대체 뭐하는 프로그램인가. 우리 삶을 이끄는 가치란 무엇인가? 당신은 어떻게 가치판단을 내리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사족으로 한마디 하자면 이소라를 비롯한 출연진들이 평가를 뒤집으려고 하건 아니건 그건 다 있을수 있는 인간적 반응이지 비판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굳이 비판하자면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만드는 사람의 책임이지 나머지는 선악을 가릴일이 아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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