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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표총장을 비판하는것으론 충분치 않다.

by 격암(강국진) 2011. 4. 9.

카이스트 학생들의 잇달은 자살은 서남표총장과 그의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조국 교수는 서남표총장의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비판들은 일리가 있지만 뻔한 현실에 대한 외면이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영어수업과 학점에 따른 징벌적 등록금징수가 과연 좋은 학생을 길러내는데 도움은 되는가 하는것에 더하여 오늘날의 경쟁시대에 대학의 생존도 쉽지 않은 문제가아닌가 하는 것을 고려하여 고민해야 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들의 배경에는 국제화의 물결이 있으며 한국 사회의 다른 분야도 크고작게 마찬가지 상황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같이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것이죠.


대학생들이 자살을 했고 카이스트에서 공부하는것이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올때 서남표총장을 비판하고 보다 경쟁이 없는 환경을 주문하는것은 쉬운일입니다. 문제는 국제화시대에 한국대학이 자신의 존립근거를 확보하는일이 절박한 것도 사실이라는 겁니다. 


한국대학은 사회로부터의 요구와 사회적 현실안에서 짓눌리고 있습니다. 사회로부터의 요구란 전세계 최고급 인재를 길러낼것을 말하는것입니다. 사회적 현실이란 그러기 어려운 한국사회의 현실을 말하는것이죠.


한국도 이젠 잘사는 나라가 되었고 고부가가치 산업을 해야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누군가의 복제는 통하지 않고 미국이나 유럽 일본등의 회사들과 1등을 겨뤄야하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연구소건 기업이건 그들은 세계 최고와 경쟁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국제화되고 더 국제적 수준의 능력을 가진 인재를 사회는 요구합니다. 


그런 요구가 만약 지속적으로 충족되지 않는다면? 기업이나 연구분야가 한국을 떠나거나 한국대학이 아닌 외국대학에서 훈련된 사람들을 더 많이 채용하는 쪽으로 가고 이는 한국대학에 대한 투자나 지원의 저하로 이어져 한국대학이 완전 몰락하는 악순환으로 갈수 있습니다.  카이스트같은 한국최고라는 대학 출신도 별거없다라는 이야기가 되면 그들도 취업이 안되고 그래서 인재도 한국대학을 기피하고 수준은 더떨어지는 악순환이 일어날것입니다. 


서남표총장의 영어수업원칙이 비판받지만 이미 한국에 영어수업하는 대학이 한둘이 아닌걸로 압니다. 거기엔 회사나 연구소에서 미국대학나온 학생들에게 논문좀 읽어오라고 했더니 읽는 속력이 다르더라고 하는 불평이 나오는 현실이 결부되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카이스트 아니라도 대학생들은 취업때문에 영어에 전력투구하게 된지 오래죠. 


요즘은 학생뿐만 아니라 대학교수들도 신임교수들을 중심으로 극심하게 시달리는 것으로 압니다. 어떻하든 대학이 점점 발전하는 선순환을 만들어 내고자 학생과 교수들이 모두 쥐어짜지는 상황인데 물론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이 학점에 매달리게 하는것이 반드시 인재를 길러내는게 아니고 눈앞의 성과에만 매달리는것이 훌룡한 연구를 하게하는 일이 되지 않는 면이 무시된다는 불평이 나오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서남표총장의 개혁이 답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대학으로서는 앞도 뒤도 막힌 것같은 상황인것도 사실이라는 겁니다. 느슨하게 하자니 망할것같고 채찍질을 하자니 부작용이 나오고 그런것이죠. 대학의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입장에서는 이거너무 심한것 아니냐는 말에 그래 우리 편하게 가자고 쉽게 답이 나오지 않으니 다른 문제로 대중적 비판이 잦아들면 상황이 같은 곳으로 돌아 오는 것은 시간문제가 되기 쉽습니다. 


이런 현실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벤쳐나 중소기업이 잘안되고 지적재산권같은 것이 무시되는 일이 많은 한국의 현실과 연계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대학에서 빌게이츠나 스티브잡스같은 사람이 배출되고 그런 사람들이 내가 아이디어는 많다 나를 도와달라고 해서 한국대학생들의 진로를 다양화할뿐 아니라 대학에 기부도 펑펑하는 사회라면 대학의 존립은 좀더 쉬울것입니다. 즉 학문, 지식이 성공에 도움되는 사회라면, 한국시민들이 단순히 간판제조기로서의 대학이 아니라 진정한 학문의 전당으로서의 대학의 가치를 깊이 공감한다면 한국대학은 당연히 좀더 편안한 위치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서울대나 카이스트 나온 사람보다 할아버지에게 강남의 아파트한채 물려받은 사람의 장래가 더욱 빛나보이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건희일가의 아들딸들의 패션이 어떠니 하는 기사가 세상에 가득하고 드라마나 영화는 신데렐라 이야기나 출생의 비밀로 범벅된 이야기로 채워집니다. 왜 이렇겠습니까. 성공하려면 집안잘만나 태어나는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현실이 사방에서 표현되는것입니다. 한국에서 중산층내지 상류층에 속하는 집안에서 자식이 미국가서 공부하는 일이 많은데 심지어 그들도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이 그들에게조차 충분히 기회의 땅으로 보이질 않는다는 뜻입니다. 같은 재능으로 같은 노력하면 미국에 사는 쪽이 행복하다, 안전하다는 계산인것입니다. 


한국의 대학은 이런 사회현실속에서 왜 우리나라에는 노벨상이 없는가, 왜 서울대는 하버드보다 못한가 같은 잘문으로 시민들에게 두들겨맞고 있습니다. 10년뒤에도 우리 괜찮을까를 걱정하면서 말입니다. 물론 제일 약한 사람에게 경쟁력 강화의 짐은 제일 많이 전가됩니다. 바로 학생과 젊은 신임교수들이죠. 시간강사도 포함해야 할것입니다. 등록금도 올리고 경쟁구도 만들고 평가를 더 자주 더 엄격하게 하는것이죠. 


이런 현실의 극복이 어떻게 이뤄질수 있는가는 제가 다 아는바도 아니고 몇줄로 쓸수도 없습니다. 또 궁극적으로는 대학만의 문제도 아니고 사회문제이기도 하니까요. 


일단은 올바른 문제인식이 중요하겠죠. 서남표총장같은 사람이 문제의 핵심이라거나 그사람이 나빠서 문제가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으론 아무런 진전이 없을 것입니다. 철학적 빈곤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교육에는 폭넓은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카이스트 학생들은 지나친 경쟁구도로 몰렸던것 이상으로 철학적 빈곤에 시달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학문이전에 삶에 대한 철학이 말입니다. 그들은 대학에서도 그저 문제푸는 기계로만 가공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인재에게는 철학이 중요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은 영어교육이나 학점 이전의 문제입니다. 서남표총장에 대해 잘알지는 못하지만 그의 개혁은 철학에 대한 필요성을 간과한것이 아닌가합니다. 미국적 환경과 한국은 다른데 말이죠. 한국에 비하면 미국은 철학이 넘칩니다. 그는 이런 차이를 무시한 것이 아닐까요? 얼음나라에서 온사람이 불볕더위의 나라에서 차를 과열시켜서 고장내듯이 말입니다. 옛날 내가 있던 나라에서 다 이렇게 했다는 생각에 빠져서 말이지요. 


철학이라고 하니까 또 생각나는데요. 한국대학도 철학적 가치판단과 특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대학의 현실은 왠지 기술자만 가득한 곳이라는 생각입니다. 기술자를 비하하려는게 아니라 철학과 비전방면으로 특화된 사람들이 큰 그림을 그려주는 부분이 부족해 보인다는겁니다, 스티브잡스가 직접 프로그래밍하고 회로설계하겠습니까? 사람들이 요즘 안철수교수에 환호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일반론자가 없고 전부 코앞의 미미한 자기가 맡은 부분에만 특화한 사람이 많아서 그렇죠. 미국대학과 한국대학에서 나오는 이야기들, 분위기를 보면 극단적으로 말해 미국대학은 지도자를 키우고 있고 한국대학은 말단직원을 기르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한국에서 대학을 제대로 다 나온 사람들중에는 지도자가 없다는 생각도 종종합니다. 인재를 받아서 쫌팽이로 작은 인간으로 만드는것아 제대로된 교육일까요? 도올김용옥이나 안철수같은 사람이 대학마다 있어서 한국에 자유로운 일반론자가 보다 넘치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합니다. 본래 학부교육이란 넓은 가능성을 살피고 배우는 곳인데 기술학교처럼 되버린 느낌이 듭니다. 뭐 내버려둬서 잘되는 것도 아닌것도 사실이었지만 말입니다. 시스템이 일반론자를 대부분 도태시키고 기술자같은 사람만 너무 많이 남기는 것이 사실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래서는 연구에 있어서도 한계가 클것입니다, 상상력이 제한되기 때문이죠.


모두가 국제화를 노릴때 거꾸로 가장 한국적인 대학을 만드는것도 한가지 답일 것입니다. 영어 이젠 흔합니다. 어쩌면 한국 역사와 문화 한국의 각 지역의 현실에 대해 정통한 인재 나아가 일본과 중국등 동아시아 지역에 정통한 인재가 우리사회에 가장 필요한 인재일수 았습니다. 그들이 서울 서울만 바라보고 대기업 취업에만 목매다는 현실을 극복하고 지역에서 창업하고 지역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행복하게 한국사회에서 살아갈 자기자리를 찾을수 있는 그런일에 매진하는것도 좋을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생겨나는 가치관적 공감대위에서 이공계도 이문계도 연구를 행해질수 있다면 나름의 경쟁력을 가질수 있을것입니다.  실은 이것이 쉽지는 않지만 길게봐서 거의 유일한 생존경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이냐 외국이냐를 떠나서 결국은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에 대한 고민의 깊이가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도 핵심적인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즉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하나의 발명품, 하나의 이론에까지 스밀때 진짜 일반적이면서도 우리만의 특징을 가진 학문과 기술이 될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자동차는 왜 이런 모양이어야 할까에서 거주공간은 어떻게 생겨야 하나, 왜 뇌의 어느 부분을 연구하는 것이 다른 부분을 연구하는 것보다 더욱 흥미로운가 하는 질문에 이르기까지 그런 고민이 독창적이어야 우리의 독창적 연구가 있을수 있으며 그렇지 않을때 결국 연구는 서양사람이 한국창 흉내내는 것과 비슷한 꼴이 될것입니다. 그렇다고 할때 한국의 수준으로봐서 연구기관의 존립이 어려운 것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될때 대학은 시민사회와 같이 호흡할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할때 대학은 뭔가 이해할수 없는 것을 하는 곳이고 우리의 삶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곳이 라는 일반시민의 인식을 바꾸기 어려울 것입니다.  


저는 슈퍼슈퍼마켓이나 FTA문제 같은것과 대학의 현실은 본질적으로 크게 겹친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규모가 큰 녀석과 지역사회의 요구에 밀접하게 적응한 것들만 살아남을것입니다. 서울대 연고대 포항공대 카이스트 모두 합친것같은 거대한 국제화 대학이 탄생하거나 거꾸로 매우 한국화된 대학이 살아남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학이 뭔지에 대한 고민이 아주 많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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