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세상보기

4대강, 수자원학회 그리고 사르트르의 지식인

by 격암(강국진) 2011. 6. 27.

장 폴 사르트르는 행동하는 지성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입니다. 1964년에는 노벨문학상을 거부하기도 했는데요.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은 즉흥적으로 그렇게 한것이 아니며 사실상 모든 종류의 명예를 거부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는 2차세계대전이 끝난후에도 르종 드뇌르 훈장을 주겠다는 친구들이 있었으나 거부했으며 몇몇 사람이 권했지만 프랑스교직에 들어서는 것도 거부합니다. 그 이유는 일단 자기가 어떤 명예를 얻게 되면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노벨상을 받은 사르트르는 그이전의 자신과 다른 사람이 된다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사르트르는 제약받지 않는 양심이 되고 싶어했습니다. 


사르트르는 전쟁때는 독일에 저항하여 레지스땅스운동을 하기도 했고 포로수용소 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알제리 전쟁때는 잔혹한 식민지정책을 자행하는 조국 프랑스에 대항해서 싸웠고 냉전체제에서는 미국과 소련의 식민정책을 비판했으며 인도차이나 전쟁때는 프랑스와 미국을 비난하고, 체코 침공을 한 소련을 비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는 한때 공산당에도 가입했으나 다시 공산당을 비판하고 고독한 지식인의 길을 걷습니다. 


사르트르는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지식인을 단순히 기능적인 지식을 전문가적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고 정의합니다. 사르트르의 견해에 따르면 그러한 사람들은 자본가들, 부르조아들에 의해 길러진 자본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능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중에서 자기내부와 사회속에서 구체적 진실을 탐구하는 가운데 이러한 진실의 탐구와 지배적 이데올로기간의 대립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만이 지식인입니다. 


물론 시대가 달랐을때, 서구에서의 일이긴 하지만 사르트르에 따르면 지식인이란 기능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이들은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즉 이들은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착취하는 대상이 되는 피착취계층에 속한다기 보다는 지배계층의 하부를 이루는 계층의 출신입니다. 이들은 한마디로 자본이 만들어 낸 자본의 전사들입니다. 


자본가들이 힘을 얻기전에 중세시대에 이들은 자본가들을 위해 싸우는, 자본가들을 사회의 중심세력으로 싸우는 전쟁에 도움을 줍니다. 그 전쟁에서 그들이 행한 것은 상업 공업세력들을 보편적 인간으로 세상의 중심으로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전쟁에서 이기고 나자 지식인들이라 불릴수 있는 사람들은 자본가들이 중심이 되는 세계란 무수히 많은 피착취계층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그러한 모순을 스스로가 기득권계층출신임에도 해소하려고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사회바깥쪽에서 무심한 중립적 시각으로 사회를 보는척하면서 결국 기득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가장 착취를 많이 당하는 사람의 눈으로 사회를 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못하고 기능적 지식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지식인이라고 불리기 보다는 자본의 도구와 무기로 불려야 하는 존재입니다. 


4대강공사에 대해서 어느정도 뉴스를 읽었던 분들은 정권이 끝나가는 지금, 그리고 4대강공사가 전국을 헤집어 놓은 지금, 위에서 말한 사르트르의 지식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가지 질문을 할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한국의 수자원학회는 지식인이라고 부를수 있는 사람들의 집단인가. 


저는 최근에 4대강공사를 반대하는 세가지 이유라는 글을 쓴적이 있습니다. ( http://blog.daum.net/irepublic/7888056 ) 그세가지 이유란 이렇습니다. 첫째 개발이 너무 빠르다. 둘째, 콘크리트로 개발된 것이 모두 좋은게 아니다. 그리고 세째로 그 돈을 인간을 위해 써야 하지 않겠는가. 


4대강공사는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개발 공사가 만들어 내는 비극의 전국판이며 극대판입니다. 빠르고 거대한 개발은 필연적으로 몇가지를 가져옵니다. 하나는 외부의 자본과 인력의 투입이고 또하나는 거기에 존재하는 기존의 것들을 지우고 망가뜨린다는 것입니다. 마을을 재개발하면 그 마을에 존재하는 인간의공동체가 파괴됩니다. 강을 바꾸고 물길을 바꾸면 그래서 그 주변에 여러가지 개발을 하면 그것이 그 지역을 바꿉니다. 그런데 그런 변화가 천천히 주체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고통과 요구를 반영해서 일어나겠지만 외부의 자본을 바탕으로 걷잡을수 없이 일어나면 돈과 인력을 대는 외부인들의 시각과 요구에 따라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들은 물론 강에 얽힌 역사며 의미에 큰 관심이 없으며 예를 들어 카지노나 유람선 사업같은 것을 해서 투자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빼내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개발을 다 반대할수는 없으며 천천히란 절대 개발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아닐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는게 옳은가 아닌가 이상으로 어떻게 하는가에 충분히 고심을 하는가 하는 것이죠. 


바로 이부분에서 우리는 다시 지식인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근래에 나온 보도에 따르면 수자원학회는 정권이 끝나가니까 슬슬 4대강 건설에 찬성했던 자신들의 입장이 궁색해 지는 것을 걱정하기 시작한다고 하더군요. 누군가가 말합니다. 사실 교수자리 유지하고 연구하려면 연구비를 정부에 의존하게 되기 때문에 정부정책에 반대할수 없는게 사실이라고. 교수자리는 물론 노벨상까지 거부했던 사르트르가 생각나는 말입니다. 그정도는 아니더라도 말도 안되는 것을 결국 판명난 물고기 로보트 쇼며, 유람선 사업이라고 했다가 홍수도 안나는 4대강 본류에 치수사업이라고 같은 공사를 벌이는 것을 보면서, 누가보더라도 말도 안되는 속력으로 밀어부쳐지는 공사를 보면서 지식인은 뭐라고 해야 했을까요. 하는게 옳더라도 이건 아니다라고 말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수자원학회가 모든 책임을 질일은 아니겠지만 기상예보는 기상청이 하고 도둑은 경찰이 잡고 불은 소방서가 끕니다. 4대강 공사 같은 것이 벌어질때 전문가적 견해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이땅에 수자원학회 같은게 존재해야 하는거 아닐까요. 


그렇게 하지 못할때 대중은 수자원학회같은 곳 아니 대학같은 곳 자체를 지식인을 길러내고 지원하는 곳으로 인식하기 보다는 자본가가 대중을 착취하기 위한 무기로 활용하는 곳으로 인식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할때 이미 거리로 나가서 가난한 젊음에게 돈을 빼앗아 더 화려한 건물을 세우는 대학들에 항의하는 젊음들은 더더욱 지금의 대학들을 악으로 적대시하는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물론 4대강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한국에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한국 사회에서 합리성이라는게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조차 없었더라면 불끄는데 소방관 이야기는 뭐하러 들을것이며 요리하는데 요리사 이야기는 뭐하러 듣겠습니까. 어차피 전문가라는게 아는대로 말하는게 아니라 자본의 명령대로 말하는 기계에 불과한데. 모든 전문가, 지식인에 대한 신뢰가 실종될때 우리는 히틀러같은 독재를 실시하는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고 믿게 되기 쉽습니다. 모든 전문가, 지식인이 헛소리를 하고 있으며 믿을수 없다면 한사람을 뽑아서 독재를 시키지 않는한 뭔가를 이룰수 없다고 느끼게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수자원학회에서 대충 지내시던 분들은 그저 소시민인 자신이 뭘할수 있었겠냐고 말할지 모릅니다. 실제로 막을수는 없었겠지요. 하필 다른 공사도 아니고 4대강공사같은게 이시대에 벌어진 것은 그분들에게 불운한 일입니다. 그러나 소방관으로 월급받다가 하필 내가 당직일때 불이나냐면서 불안끄고 나만 살겠다고 도망가는 것을 칭찬해 줄수는 없는 일입니다. 


4대강 공사가 완공되면 해마다 1조원의 유지비가 들고 지천 공사로 해서 다시 끝도 없이 돈이 들어가야 합니다. 벌써 인천공항같은 곳을 매각하는 것이나 내국인이 출입가능한 카지노같은 것을 허락해서 무리하게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4대강 공사비가 부족해서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낭비되는 돈은 마땅히 쓰여야 할곳에서 쓰이지 못할 것입니다. 4대강 공사는 이미 20명의 인부들을 사망케 했고 그 주변에서는 단수사고같은 것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해마다 비만오면 멀쩡하던 4대강변에서 홍수걱정을 하게 될판입니다. 많은 농민들이 자기 땅에서 쫒겨났습니다. 이제 돈을 더 벌자고 이런 저런 공사판을 벌이면 그 땅에서 자리잡고 살던 많은 약한 사람들이 몰려나겠지요. 누군가는 돈을 좀 더 벌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이것은 응당 경고의 목소리를 내야할 사람들이 충분히 크게 소리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만약 이모든것이 자신이 해야할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라면, 연구비며 교수자리가 조금 위험해 지는 것이며 하는 것때문에 벌어지는 것이었다면 수자원학회는 한국에 존재하는 자칭 타칭 지식인들에게 아주 부끄러운 일을 행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