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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본 미국 이스라엘

주말 보내기

by 격암(강국진) 2011. 7. 20.

얼마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에게서 자동차 캠핑장에 가족동반으로 여행을 가지 않겠냐는 제안이 왔다. 자동차를 주차하고 그앞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지내는 것이다. 그 가족은 무엇보다 막내의 친구가 있는 집이므로 나는 두말없이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 가족은 새로운 텐트를 사게 되었다. 되도록 짐을 늘리지 않으려고 텐트며 바베큐 기계같은 것을 사지 않고 살았지만 이번에 그 둘다 장만하기로 한것이다. 아내는 인터넷을 뒤지더니 금방 싸고 좋은 텐트를 하나 찾아서는 주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자동차 캠핑을 가기전에 그 텐트를 시험해 볼겸 동네의 강변공원으로 가서 반나절을 보내기로 했다. 


요즘은 워낙에 날이 더워서 그렇지 우리동네의 아라카와 강변공원에는 바베큐를 해먹는 사람들이 치는 텐트가 철이좋을때는 항상 만원이다. 봄가을이면 아침 7시쯤부터 사람들이 나와서 텐트를 친다. 그리고는 탁자며 의자를 놓고 바베큐를 천천히 해먹다가 강변을 산책하기도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워낙에 덥다. 그래서 9시가 넘어서 도착했는데도 나무아래에 자리를 잡을수가 있었다. 텐트는 내 예상대로 아주 쉽게 칠수 있었다. 텐트라는게 대학생무렵때는 내가 서툴러서 그런지 몰라도 무척이나 치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그러나 발전을 많이 한탓인지 요즘에는 너무 쉽다. 


나무 그늘아래에 새텐트를 치고 누워보니 오랜만에 느끼는 한가한 분위기다. 몸이 바쁘다 안바쁘다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는 항상 기계가 많다. 컴퓨터며 에어콘이며 티브이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들이 알게 모르게 웅웅대는데다가 자동차들이 만들어 내는 소음들이 항상 있고 보니 우리가 거기에 익숙해서 그렇지 우리는 항상 높은 주파수의 잡음속에서 뭍혀서 산다. 아라카와 강변공원만 해도 무슨 심심산골의 적막함같은 것을 느낄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주택가를 벗어나 땅에 등을 대고 누워 보니 내가 있던 곳이 시끄러운 곳이었다는 것을 알겠다. 지친 신경이 이제야 나 사실은 그 소음들때문에 지쳐있었다는 말을 한다. 우리는 뭔가가 없어봐야 그게 있는지를 자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를 지쳐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게 항상 우리 곁에 있을때에는 우리는 그게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는 괜시리 컨디션이 이유없이 나쁘다던가, 날씨나, 사무실에서의 어떤 일이나, 누군가의 어떤 언행이 우리를 기분나쁘게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알고보면 기분 나쁘게 군사람이나 시비걸림을 당한 사람이나 모두 지쳐있었을 뿐인것이 아닐까. 


기온으로 말하자면야 집안에서 에어콘 틀고 있는 쪽이 훨씬 쾌적하지마는 왠지 하루쯤은 땀에 흠뻑적더라도 이렇게 야외에 나와서 텐트도 치고 강변도 보는 게 기운이 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활은 금새 단조로워진다. 중요한것은 여기냐 저기냐가 아니고 리듬이고 변화인것 같다. 이따금씩 변화를 주고 리듬을 살려주지 않으면 생활에서 활력은 금새 빠져나가고 만다. 


그늘에 앉아서 양지쪽을 쳐다보니 햇볕에 빛나는 잔디가 인상깊다. 특별한 경치는 아니고 그저 잔디에 햇볕이 밝게 비췃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왠지 이런 장면이 좋다. 오늘이 맑은 봄날이면 더욱 좋을 것이고 여기가 이런 도시냄새나는 공원이 아니라 어디 먼곳에 한적하게 있는 찻집이나 주점이면 더욱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따뜻한 봄날에 창밖을 쳐다보는데 창밖에 잔디가 보이는 것이다. 날씨는 따스해서 꾸벅꾸벅 잠이 오는 날이다. 그런 날 햇볕에 거의 하햫게 빛나는 잔디를 보고 있으면 아무 근심걱정이 없어질것같다. 이게 내가 좋아하는 장면이다. 그러니 비록 지금이 더운 여름이고 여기는 큰 도시옆의 강변공원이며 통나무집도 아닌 텐트에 앉아 있더라도 빛나는 잔디를 보면서 그런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강변공원의 한쪽구석에는 빙수를 파는 가게가 있다. 포장마차처럼 임시로 설치한 가게다. 일본의 빙수는 한국의 팥빙수처럼 화려하게 이것저것들어있지 않고 그저 얼음 갈은 것에다가 여러가지 소스중의 하나를 선택해서 뿌려먹는 것뿐이다.  우리는 빙수를 하나 사서 가족이 둘러앉아 나눠먹었다. 


빙수를 다먹고 책을 좀 보다가 좀 졸다가 강변을 산책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점심때는 집에서 가져온 가스버너에 짜파게티를 끓여 먹었다. 주변에서는 바베큐냄새가 진동했지만 우리는 짜파게티밖에 먹지 않았는데 첫번째로는 우리가 무슨 계획을 세우고 나온게 아니라 준비할 시간없이 즉흥적으로 아침에 나오기로 했기 때문이고 두번째로는 날씨가 너무 더워서 바베큐 불길앞에서 시간을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요 마지막으로는 요즘에는 체중을 좀 줄여볼까해서 절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주변 냄새가 유혹을 좀 하지만 야외에서 짜파게티를 먹는것도 나름으로 괜찮다. 나는 조금만 끓여먹자고 하는데 아내는 한사코 더 많이 끓여서 많이 먹자고 한다. 많이 끓이면 결국 많이 먹는 건 나일것이 분명해서 말렸다. 아내는 부족하다면서 툴툴댄다. 야외로 나오니 애처럼 구는게 좋은가 보다. 


더위속에서 몇시간을 견디고 산책하고 강을 구경하고 한끝에 점심먹고 3시쯤에 일찍 텐트를 거뒀다. 그리고 가까운 쟈스코 쇼핑센터로 차를 몰았다. 가족이 모두 우르르 에어컨 바람속으로 달려들어가니 이젠 인공이고 뭐고 에어콘의 소중함을 느낀다. 아 문명이 해독함이 많지만 문명 아닌곳에서 버티는 것은 반나절이면 족하다. 우리는 푸드코트의 탁자에 둘어앉아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으며 잡담을 했다. 


에어콘이란 참 이상한 물건이다. 사실 여름이 덥다고 하는데 더운 집을 나와서 집앞 공원의 나무밑으로 가보면 생각보다 훨씬 시원하다. 결국 우리가 느끼는 더위의 상당부분은 우리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다들 바람도 잘 통하지 않는 성냥갑같은 집에 사는데다가 서로 서로 에어콘을 틀어 뜨거운 기운을 만들어 내고 집안에는 냉장고며 티브이며 각종 전자제품이 열기를 뿜어대니까 더운 것이다. 스스로 더위를 만들고 그걸 쫒아보겠다고 에어콘을 틀어댄다.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그걸 해결하겠다고 문제를 더만든다.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쇼핑센터에서 열을 식히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하루가 모두 갔다. 하루를 빈둥대며 보낸셈이고 어찌보면 스스로 일을 만들어낸 셈이다. 집안에 가만히 있었으면 덥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렇게 하루가 가버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집안에만 있으면 사람이 시들어 버리는 것같다. 귀찮기도 하고 덥기도 하며 나중엔 그저 시간을 낭비하고 만것만 같기도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확 생활을 뒤집어 주는게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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