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모든 단어가 아니라면 많은 단어, 개념들은 나름의 용도가 있고 쓸모가 있지만 그 개념에 한계가 있고 따라서 때에따라 그자체로 혼돈을 만들어 낸다. 생명이라는 개념도 그렇다. 코끼리 한마리는 지렁이 백마리의 생명과 같은 가치가 있을까. 없을까. 겨우 백마리냐고? 생명은 숫자로 가치를 따질수 없다고 말은 하기 쉽지만 정말 현실적으로 백사람의 생명이랑 한사람의 생명이랑 같다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자신있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냥 고집이다. 사실은 우리는 다들 잘 모른다. 생명이란 개념에 속한 애매함때문이다.
나는 나라라는 개념이 오늘날 그런거 아닌가 하고 다른 나라들 특히 중국을 떠올리면서 생각을 한다. 우리는 종종 한국의 경제규모, 중국의 경제규모를 따지거나 한국의 과학, 일본의 과학, 미국, 중국의 과학이라고 해서 각 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이라는 걸 생각한다. 경쟁의식도 느낀다. 한국의 문화, 중국의 문화 하는 식으로 문화도 그렇다.
그런데 인구 13억의 중국과 한국을 나란히 나라라는 개념으로 놓고 누가 더 경제규모가 크니 작니를 말하고 누구의 과학기술이 높니 낮니를 따진다는게 어딘지 모르게 실패의 냄새가 난다. 이제 유럽이 통합되어가는데 그럼 유럽도 하나의 나라로 놓고 우리는 유럽전체와 경쟁할 것인가? 우리가 어떤 대상을 하나의 나라로 파악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언제 성공적이고 언제 실패하는 것일까. 이제 미국의 시대가 끝나고 중국의 시대가 온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게 무슨 의미일까.
망하지 않는게 신기한 중국
중국과 관련해서 여러 걱정이 앞서는 것은 물론 과거의 침략의 역사때문이다. 사실 오늘날에도 중국은 좋아하기만 하기는 힘든 나라다. 내가 만난 중국인들은 다 그런 건 아니라고 해도 대개는 공공의식이 많이 부족하고 배금주의에 빠진 사람들이었으며 심지어 중국계 미국인들의 입을 통해서는 중국은 금방 망할 나라라는 말을 여러번 들었다. 상류계층은 돈들고 선진국으로 도망갈 생각만 하고 빈부격차가 말도 안되게 심하며 제대로 된 민주주의 선거도 없는 나라가 중국이라는 것이 그들의 말이고 사실도 그러한것 같다.
그런데 그 중국이 안망한다. 망한다 망한다 한지가 적어도 10년은 되었는데도 중국은 망하기는 커녕 점점 경제규모가 커져서 이제 G2 즉 미국과 더불어 세계의 양대 축으로 행세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중국이 망할 거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아직도 많지만 나는 이제 그 믿음에 대해 의구심을 보낸다.
이같은 믿음도 중국을 하나의 나라로 인식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닐까. 중국을 하나의 나라로 인식하면서 다른 선진국과 비교했을때 그런 나라가 분열하고 폭동이 나지 않는 다는 것은 말이 안되기 때문에 그런 생각들을 하는데 어느날 문득 발상의 전환을 한다면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는 것을 알았다. 중국을 나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의 세계로 본후에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전세계와 한번 비교해 보자.
중국에 민주선거가 없다지만 그럼 우리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불만을 가지고 있는가. 중국에 빈부격차가 심하다지만 그럼 세계적인 규모로 보았을때 빈부격차는 엄청심하지 않는가. 그래도 세계인들이 들고 일어나 미국을 공격해서 미국이 망하는 미래는 그리기 힘든다. 그렇다고 지구를 떠나나? 물론 테러도 있고 반미감정도 있다. 그리고 중국에도 데모가 있고 중앙을 욕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래도 중국이 망하기는 생각보다 힘든다. 그것은 오직 중국인들을 받아들여서 지금 보다 더 잘 먹일수 있는 나라가 있을때만 가능하다. 다시 말해 우리는 보통 절대적인 기준으로 선진국이나 한국같은 나라보다 이게 부족하다 저게 부족하다 하는데 그건 옳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떼로 죽어나가도. 한 1억명쯤 죽는 대참사가 난다고 해도 중국인들을 조직하거나 받아들여서 지금보다 더 잘먹일수 있는 나라가 없다면 중국인들은 중국인으로 살것이다. 왜냐면 분열 이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중국을 떠나서 다른 나라로 간다고 할때 그걸 받아줄 나라가 있을까? 중국이 분열하여 각자살때 더 잘살수 있다면 그런 분리운동이 더 힘을 받겠지만 역사적 정의로는 그럴지 몰라도 실제적으로는 그러기 힘들것이다. G2의 하나로 있다가 가난한 동남아시아의 빈국하나가 더 생기는 것이 될지 모른다.
중국이란 왕국
가만히 보면 중국은 왕국이다. 민주적 선거가 없다는 것이외에도 국가가 엄청난 재산을 직접 소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부동산이고 회사고 정부에서 직접 엄청나게 가지고 있다. 왕국에서 가장 부자는 왕이며 왕은 그 재산을 직접 써서 통치를 한다. 공화국의 정부도 공공자산을 가지고 있지만 왕처럼 부자는 아니며 특히 21세기에는 미국 유럽 일본 한국등 많은 나라의 정부가 공공자산을 팔아넘겼다. 공화국에서 공공자산을 팔아서 대중에게 뿌리면 인기가 좋다. 자기 돈 안내고 공공자산을 쓴다는 것인데 미래는 생각지 않는다. 그래서 공동체는 가난해지다못해 엄청난 빚쟁이가 되어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장 부자 회사를 가진 나라들의 정부는 상상도 할수 없을 정도의 빚을 지고 있다.
중국은 그렇지 않다. 중국은 그냥 중앙이 돈을 엄청나게 가지고 있으니 그 돈을 어떻게 쓰건 기본적으로 국민의 의결이 필요치 않다. 애초에 민주선거로 유지되는 정권도 아니다. 공화국은 국민들이 자신들의 대리를 뽑아 나라를 운영한다는 개념이지만 왕국은 왕과 국민의 암묵적 묵계속에서 유지된다. 그것은 우리를 먹여살려주면 당신을 왕으로 인정한다는 개념이다. 왕은 돈이 많다. 국민은 왕의 규칙을 지키고 그대신 왕이 국민이 잘먹고 잘살게 하기를 기대한다. 그렇지 못하면 물론 나쁜 왕으로 혁명의 기운이 싹튼다.
민주국가에서는 경제성장이 멈추거나 느려도 불만이 잠재적으로 적다. 정권은 민주주의에 의해 뽑힌것이므로 국민도 정권에 책임이 있고 정권이 모든 권력을 가지지도 않는다. 적은 권력에 적은 책임이랄까. 왕국에서는 경제성장이 느려지거나 멈춰지면 훨씬 더 많은 책임을 중앙이 져야 한다. 그들이 모든 걸 다가지고 있으니까 그렇다.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본격화되어 중국의 경제성장이 멈추면 민중이 가지는 불만은 선진국에서 보다 훨씬 더 크게 불타오를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중국정부는 2008년의 경제위기때는 물론 지금도 세계적 경제불황에 대해 두려워 할수 밖에 없다. 불황이 곧 정권의 몰락이 될수 있다. 중국이 북한처럼 작은 나라도 아닌데 억압과 통제와 세뇌로 버티는게 가능할까.
우리가 할일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개인으로서 혹은 하나의 공동체로서의 한국이 이런 중국을 이웃에 두고 뭘해야 할것인가 하는 질문일 것이다. 정말 중국의 세기가 올까. 온다면 우리는 미리 중국을 배워야 할까. 한국은 뭘해야 할까.
짧게 말한다면 미래는 지극히 불확실하니 환경이 어떻게 바뀔것인가를 예측하는 시간에 자신을 굳건히 다지라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중국은 왕국이고 그때문에 중국이 더 잘나갈수록 위기가 닥칠것이다. 중국이 1등에 근접한다는 말은 다른 나라가 약해졌다는 뜻이고 그것은 세계적 경제불황이라는 뜻인데 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중국의 정치사회적 안정성을 보장하는 경제성장이 둔화되거나 멈출것이기때문이다. 1등으로 올라서거나 그 직전에 갔다고 느끼는 순간 중국은 환상처럼 산산히 부서져서 중국을 하나의 나라로 보았던 일이 꿈같아 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중국의 세기가 올것이라던가 그럴리가 없고 미국의 세기가 계속될것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미래를 섯불리 예측해서 그런 예측속에서 우리에게 유리한 일을 찾는 것은 부동산 투기 혹은 도박이나 다름없다. 오를지도 모른다면서 재산 투자하는 것은 좋다. 그런데 그건 요행수를 노리는 것이다. 대개는 그러다가 부자가되는게 아니라 쪽박을 찬다.
중요한 건 개인으로서 한국이라는 공동체로서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굳건히 해서 다가오는 혼란속에서도 자기를 지킬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외부적 환경에 무조건 맞출 생각하지 말고 자신을 지킬수 있게 하는게 가장 확실한 투자다.
설혹 중국의 시대가 온다고 하더라도 중국이란 우리가 싸우거나 경쟁해야할 상대라기보다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 같은 것이다. 물고기가 바닷물과 경쟁할 필요가 있는가. 둘다 나라라고 불린다고 해서 섯불리 한국과 중국을 같은 위치에 놓는것은 착오다.
중국의 인구가 13억인데 미국과 유럽을 합쳐봐야 그 절반정도다. 전세계 인구의 21%가 중국어를 쓴다고 한다. 영어는 8.3%로 2위다. 말만 많이 쓰는게 아니다. 중국문화에는 깊이가 있다. 그래서 중국화교들이 소수인 인도네시아 같은 곳에서도 경제를 장악한다. 이렇게 말하면 중국찬양을 늘어놓는 것같지만 인정할건해야 한다. 중국인들은 무지 많다. 그리고 그 문화적 깊이가 깊다.
한국문화가 못따라간다는 것이 아니다. 한국문화는 중국문화가 아니지만 그래봐야 서양이나 동남아시아 남미쪽에서 보면 사촌이나 형제처럼 닮은 꼴문화다. 평균으로따지자면야 작금의 세계에서 한국인들이 중국인들보다 훨씬더 문화국민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한국사람이 백만명쯤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로 간다면 한국인들이 경제를 장악할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타 문화권에 비하면 중국문화는 우수한 면이 있고 사람이 숫자가 많다.
우리는 그안을 물고기가 바다를 헤엄쳐가듯 살아야 하는 것이지 중국은 맞붙고 경쟁하고 해야 할 상대가 아니다. 한국과 비교하기에는 규모도 틀리지만 나라가 유지되는 원리도 틀리다. 중국은 중국이 원하는게 있을 것이고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게 있을 것이다.
우리가 중국에 팔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문화일 것이다. 우리는 문화는 미국에서 수입하고 반도체같은 기술을 팔았지만 중국과의 관계는 정반대가 되어야 한다. 전통문화의 폭이야 중국이 더 넓겠지만 오늘날, 다시말해 현대에서 동아시아인의 삶의 형태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중국보다 한국이 더 앞선 답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왕국이라는 사회적 모순, 불합리의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지와 이야기를 파는 것이다. 그것은 곧 관광수입으로도 연결될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선망의 대상이 되는 자유롭고 민주적으로 살아가는 나라를 만들면 되고 그러면 중국에 문화와 철학을 수출할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한국이 중국수준의 민주주의로 역행한다면 한국은 중국이 보기에 무시해 마땅한 좁쌀만한 존재가 된다. 그러면 중국이라는 바다를 헤엄치기 힘들 것이다. 긴다리를 만들고 운하를 파고 반도체를 만드는 것은 중국과 경쟁상대가 못된다. 우리 앞에 있는 것은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의 판매처가 커지는 세상, 물질보다 정신적인 것의 수요가 더욱 커지는 세상일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등 기존의 선진국을 상대로 살던때와 정반대로 살아가는 세상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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