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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

by 격암(강국진) 2011. 9. 20.

% 쓰고보니 원래 그렇긴 하지만 새로운 이야기가 없군요. 그저 생각의 정리일 뿐입니다. 이 블로그 글을 많이 읽으신 분은 굳이 안읽어도 되겠습니다. 


시대적 결핍


요즘 한국에서는 여러사람들이 자살해서 죽고 있습니다. 사는게 그만큼 힘들다는 것도 있지만 저는 이러한 현상을 외로움 혹은 문화적 결핍이라는 측면으로 이해합니다. 인간은 힘들어서 죽는게 아니라 외로워서 죽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같은 곳에 있어도 자신이 살아야 할 의미를 알고 그 의미속에서 자신을 파악하는 사람은 살아남습니다. 반면에 그런게 없는 사람은 약한 충격에도 좌절하고 죽기 마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한국은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인 것을 결핍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그것은 바로 지난 수십년간 파괴되어지기만 했던 문화입니다. 문화라고 하면 한복입거나 한국음식이나 음악을 즐기는 것같은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더 깊은 의미에서 문화란 하나이상의 이야기들 안에서 자신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야기란 문맥을 제시하고 그것이 바로 우리의 여러가지 가치판단을 결정하는 의미를 제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 그저 돈버는 것을 인생의 의미로 생각하는 얄팍한 이야기에 기대어 사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의 대부분의 것이 의미를 잃어가게 됩니다. 그말은 그만큼 외로워진다는 말이죠. 그래서 돈을 잃거나 돈을 벌 희망이 좌절될때 완전히 외로워지고 극단의 선택이 나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새삼스레 자살을 막는 것에 대해 쓰기 위해 이글을 시작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예를 든것은 자살을 선택하게 할만큼 사람들을 괴롭히는 결핍이 현재 한국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말은 뒤집으면 이것이야 말로 새로운 시대을 살아갈 젊은이들이 더욱 노력해서 쌓아야 하는 귀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핍된게 무엇인가, 답은 이미 여러분이 많이 들은 것입니다. 창의력, 감수성, 사회적 관계를 만드는 능력, 가치판단의 능력. 중요한 것은 그 이름이 뭔가가 아니라 그런 이름이 진짜로 의미하는게 뭔지를 이해하는 맥락 즉 또다른 이야기를 아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빨리 안다고 생각하는 병


이 부분자체가 중요합니다. 4지선다형 시험문제에 익숙한 사람, 기계적 사고에 익숙한 사람은 맥락이란 것의 무한한 가능성과 중요성을 잘 모릅니다. 물한잔은 그냥 물한잔인 것이죠. 그래서 누가 창의성. 그러면 아 그거 하고는 쉽사리 자신이 다 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실은 극한의 경우에는 하나의 단어는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문맥안에서, 많은 단어들이 서로 연결되는 관계안에서만 의미가 있으며 내가 말하는 창의성이란 단어는 다른 누가 말하는 창의성이란 단어와 아무 관계도 없을수 있습니다. 사랑이란 단어도 종종 그렇게 쓰이지요. 


만약 이글을 읽는 분중 앞의 문단에서 뭔가가 애매하지만 의미가 있는 것같다고 느낀다면 일단 잠시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나는 너무 쉽게 단언하고 너무 쉽게 안다고 하는 병에 걸려있지 않은지. 특히 남자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이 가져야 할것이며 동시에 한국에서 많이 결핍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소위 정의란 무엇인가같은 베스트셀러가 논하는 것이며 인문학운운하는 것들에서 배워야 하는 무엇입니다. 소위 점과 점을 연결하는 능력입니다. 


결핍되는 것과 구체적 예


손가는 대로 쓰는 것이라 이야기가 추상적이 되기 쉬우니 구체적인 것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이제 살만큼 산다는 한국만해도 무수히 많은 물건들을 봅니다. 그리고 그 물건들의 가치는 전부 이미지, 문맥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고급스포츠카와 천만원조금 넘는 경차가 실질적으로 얼마나 가치가 차이가 있을까요. 얼마안됩니다. 시속백키로만 달릴수 있으면 어차피 속력빨리낸다고 해봐야 거기서 거기입니다. 수십배의 가격차의 대부분은 이미지에서 나옵니다. 요즘 전국에서 펜션이 가득하고 여러가지 축제가 벌어집니다. 얼마전에 저희 부모님이 메밀꽃축제를 다녀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메밀꽃축제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 뭘까요. 이효석의 소설입니다. 드라마 촬영지가 여기저기서 관광지입니다. 그것도 결국 이야기에서 나온 힘입니다. 3천원짜리 라면과 만원짜리 라면의 차이는 때로는 정말 사소한 이미지의 차이일수도 있습니다. 대장금이 히트치자 거기서 나온 돌솥비빔밥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중국사람들이 발견하듯이 말입니다. 


더 많이 예를 들것도 없습니다. 스스로 가만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돈을 만들어 내는 능력의 대부분은 의미찾기, 이야기만들기 능력에서 나옵니다. 트위터나 아이패드를 왜 한국이 못만들었을까요. 한국이 기술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기술적 격차가 있다고 해도 그 기술적 격차는 우리가 그 기술을 원햇다면 만들어 낼수 있는 기술들입니다. 문제는 기술개발능력이 아니라 비전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삶의 방식이나 사용자 시각의 이야기만들기 능력입니다. 


정말 자신이 부족한게 뭔지 알고 있는가.


물론 이렇게 말하면 누가 그런 능력 안원한데 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전 그런 능력과 우리 삶의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연결되어져 있는가를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녁때 집에 가다가 붉은 노을을 보고 감탄한게 언제일까요. 작은 들꽃의 아름다움이나 주변 친구나 연인의 감정표현에 공감해서 눈물지어 본적이 언제일까요. 잡화점에서 예쁜 밥주걱을 보고 이걸 어머니에게 드리면 좋아하실텐데라는 생각이 절로 납니까? 그런데 그런걸 전혀 하지 않는 자신을 보면서 나는 왜 창의성이 없을까 하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남자들은 한국사회에서 관습적으로 감정을 억누르는 문화가 있어서 더더욱 이시대를 살아가기 어려운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문화 상품을 소비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여자입니다. 그들은 엄마에 의해 로보트처럼 키워져서 수학문제나 영어단어나 줄줄이 잘풀고 잘외워서 시험잘보면 어찌저찌 잘살게 된다는 신화가 예전에 죽었다는 것을 아직 모릅니다. 밥먹는거에서 옷입는거까지 모두 엄마가 골라주고 엄마없으면 양말도 못골라신는 그 남자들말입니다. 


이전의 시대는 말하자면 기계의 시대였습니다. 더빨리 생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사회가 회사가 원하던 사람은 정밀하고 튼튼한 부속품이었습니다. 감정을 죽이고 남보다 열배빨리 움직일수 있는 사람말이죠.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그래서 다들 문제를 일으킵니다. 


소위 헛똑똑이라고 하는게 그런겁니다. 죽도록 일하는데 결국 어딘가에서 연료가 줄줄 샙니다. 배로 말하자면 이 사람은 온전한 배가 아니라 엔진만 크고 앞에 구멍이 뚫린 배라던가 몸체는 너무 훌룡하고 육중하지만 노저어 가야 하는 엔진없는 배같은 그런 모습입니다. 그리고 특히 그런 문화를 가진 남자들이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경우는 자살하는 겁니다. 그들은 이야기가 없어서 질식하는 것입니다. 


엉터리 인문학 공부


그런데 관성은 그대로 남아있고 창의성이니 인문학이니 말하지만 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다시 주입식 암기수업처럼 배우려고 합니다. 좋은 예는 고전백권을 요약만해서 모아 놓은 책들을 읽는 것이죠. 물론 그런 책도 경우에 따라서는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쉽게 시작하면 나중에 어려워지는 법. 말하자면 미각을 단련한다면서 음식맛을 하루에 수백개씩 보고 그 맛의 특징을 달달 외우는게 과연 길게봐서 미각단련이 되는 걸까요.  


이렇게 말해 봅시다. 대화의 기술을 배우려고 하는데 가장 훌룡한 대사들을 줄줄이 외우는 것에 몰두한다면 어찌될까요. 대화의 기술의 핵심은 상대방과의 교감입니다. 둘이서 서로 적절한데서 호흡을 맞춰야 대화가 흘러가는 것입니다. 느끼지 못하는 로보트는 진정한 대화를 못합니다. 그러니까 슬픈 이야기듣고 눈물흘리고 아름다운것보고 감동해서 가슴이 찌르르하고 하는 그런 '증상'이 없다면 열심히 공부한다는 게 의미가 없고 거꾸로 더 바보를 만듭니다. 더많은 지식과 권위에 억눌려서 더 기계가 되니까요. 니체가 이랬다 저랬다 문구를 외우면 뭐합니까. 그걸로 연애가 됩니까. 인문학 철학은 지식이 아니라 체험입니다. 왜 호연지기 기른다고 산에 올라가고 바다보고 여행하고 그렇죠. 인문학은 아름다운 사람을 보고 아름다운 산을 보는게 책백권읽는거 보다 중요할수 있습니다. 지식을 외우는 것이 불필요하지는 않지만 그게 핵심이 아닙니다. 가장 많은 악보를 외운 사람이 가장 훌룡한 작곡가일까요? 가장 많은 레시피를 외운 사람이 가장 훌룡한 요리사일까요? 책을 읽어도 필자와 공감을 공유하는게 중요합니다. 


이 시대에 잘나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박원순, 박경철, 안철수 같은 분들이죠. 이분들은 다 다독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다독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동시에 이분들은 철저히 혼자가 되었던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주목하지 않습니다. 성공할줄 알고 일탈을 한게 아니라 자기 느낌대로 살았는데 그길이 무척이나 외로웠던 길입니다. 그 외로움속에서 이들은 뭔가를 잡은 것입니다. 그 삶이 첫번째요 그들이 글에서 배운 것은 안에서 아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작업일뿐이라는 것입니다. 


인문학을 공부하고 싶으면 피할수 없는 것은 고독입니다. 인간은 고독한것입니다. 고독을 겪고서야 고독에서 빠져나오는 법, 사람들과 진정으로 같이 사는 법을 배웁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혼자 헤매었고 부처님도 혼자 수행길을 다녔다고 하지요. 종교적 지도자가 아니더라도 고독의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냥 친구들과 뭉쳐만 다니면 서로 서로 장님을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만남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고 영원한 고독속에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닐것입니다. 성숙한 인격체를 체험하는 것은 좋은 자극이 뒬수도 있습니다. 훌룡한 책을 통해 대화를 나누는 것은 너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고독한 시기가 없이 꽃은 피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을 직접 자기눈으로 보고자 하는 사람은 결국 고독해질수 밖에 없습니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좋은 일일 뿐입니다. 자기도 구원못하는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발목잡는 일일수도 있습니다. 조금 뛰어난 친구는 자신이 신처럼 대단한줄 착각하고 조금 못한 친구들은 그 친구의 지적 노예가 되기 쉽습니다. 


그럼 뭘해야 할까.


결국 이런 이야기는 뭘해야 할까로 결론 짓는 것이 자연스럽겠죠. 그런데 이 질문은 어느정도 완전히 답하기 불가능한 것입니다. 첫째는 첫번째 계율이 자신의 느낌을 소중히 하라는 것이어야 하는데 타인인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모든 사람들이 어느정도는 서로 다른 상황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어느정도 건강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과 비슷합니다. 어떤 사람은 비만이라 살부터 빼야겠지만 어떤 사람은 영양부족이라 영양섭취부터 해야 할것입니다.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혹은 필요없을수도 있습니다. 다만 일반적으로 좋은것도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선은 자신을 괴롭히고 움직이는 것이 뭔지, 자신이 추구하는 질문이라는게 있는지, 있다면 그게 뭔지를 보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나는 왜 이러저러하게 살아왔을까를 돌아보는 것이죠. 어느새 생각해 보면 이러저러한 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 있고 관습화 되어있는데 그게 언제부터 그런 것일까. 왜 그렇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어렸을때 외로웠는지, 가난했는지, 누가 부러웠는지, 심심했는지, 화가 났었는지, 뭔가를 두려워 했는지. 우리는 종종 우리 자신도 속입니다. 우리가 이러저러하게 행동하는 것은 곰곰히 생각해 보면 어떤 뿌리가 있습니다. 내가 말이 많다던가, 수줍음을 탄다던가 하는 것에도 어떤 기원이 있을수 있습니다. 나를 발견하려면 다른 사람도 발견해야 합니다. 저사람은 저런데 나는 왜 이럴까라고 해야 나를 발견하기 쉬우니까요. 


그렇게 해서 불필요한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그렇게 확실한게 아니라는 것, 그게 꼭 그럴필요가 없었다는 것, 누군가가 말한 그것이 반드시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알고보면 우리는 꽤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것일수 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당신은 지금 누군가의 노예인지 모릅니다. 


법정이 무소유를 말할때 그것이 단지 물건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고 버리겠다는 의지를 가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모든 것은 불확실해라고 선언해서 모든 것이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고독하게 자신을 정리해 나가면 잊혀졌던 감각이 돌아올것입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될것입니다. 일단 보이고 나면 그렇게 뻔한 진실을 못보고 괴로움에 시간보낸걸 놀라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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