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앵커가 박원순시장의 온라인 취임식에 대해 프로그램 마지막 발언을 한것을 두고 내내 화제가 되고 있다. 결국 네티즌들의 항의에 댓구라고 한 모양인데 그게 그렇게 나를 억압하면 자유롭게 발언하는 것을 막는게 된다는 정도에 그쳤다.
나는 상식의 문제라는게 오늘의 한국에서 큰 파열음을 일으키면서 고통스런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문제와 관련되어 오해되고 있거나 남용되고 있는 말이 주장을 자유롭게 할수 있는 자유에 대한 것이다.
상식이란 건 왜 필요한가.
일단 자유라는게 그렇다. 만약 화가 난 SBS 앵커의 집에 누가 불을 질렀다거나 그 사람을 구속해서 감옥에 가뒀다면 황당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주장하는 상식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다. 당연한 것같지만 사실 미네르바가 인터넷에 글쓰다가 사법당국에 체포된 적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런 상식도 한국에서는 깨진다.
그렇다면 다수의 사람들이 열받아서 그 앵커에게 항의를 하고 있는 현상황은 어떨까. 이것도 지나친 것일까. 이것도 발언의 자유에 대해 억압하는 것일까?
이 세상에는 테두리없는 자유나 평등이란건 없다. 자기 성찰이 없는 사람들이 흔히 무한대의 정의, 무한대의 평등 무한대의 자유같은 것을 말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런 착각이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발언의 자유가 있다는 주장 자체를 억압할 자유도 있을까? 방송국 사장이나 뉴스 프로그램 진행자처럼 정보채널을 조절하는데 유리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그걸 이용해서 자신의 몰상식한 정신세계를 계속 국민들에게 선전할 자유가 있을까?
어느 나라나 별별 사람이 다있다. 조선이 일본에게 병합된 것을 좋은 일이라고 말하는 한국인은 없을까? 그럼 그런 사람을 방송에다 불러서 그 사람주장을 계속틀어주는 것도 언론의 자유, 주장의 자유에 속하는 것일까? 돈많은 재벌회사들이 광고를 댄다고 해서 재벌회사들에게 세금을 퍼부어 더더욱 부자만들어 줘야 한다는 주장을 방송에서 계속 내보낸다면 이것도 비판할수 없는 언론의 자유일까?
조금 생각해 보면 알수 있는데 결국 한 사회, 공동체, 국가에는 하나의 상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대중매체는 상식이라는 불문율을 지키면서 방송을 하는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상식을 깰 자유조차 허용한다면 너무나 많은 불협화음으로 사람들이 괴로워하기 때문이다.
상식이란게 없는 한국 사회
없다와 있다로 말하기는좀 곤란하니까 없다고 까지 말하면 좀 너무 과장이지만 한국은 상식이 없거나 상식이 미약하다. 상식은 상식이지라고 당연한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상식이란건 전혀 당연한게 아니다. 상식은 그 인간집단내부에서 합의되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이다. 모든 논의의 출발점이 된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것이 상식이다. 누가 무슨 국민이 주인이야 무식한 한국인이 뭘 알아. 역시 우리 주인은 일본인이셔라고 말하면 이 사람과의 대화는 통상의 상식테두리에서 하는 대화의 범주를 훨씬넘어가게 된다. 대화는 거의 불가능하며 한다고 해도 대개는 대화라기 보다는 정신치료의 경지에 이르르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종교국가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국교가 이슬람교로 종교의 자유가 없다. 이나라의 상식은 종교는 이슬람교라는 것이다. 이나라의 방송에서 역시 이슬람교는 기독교나 불교에 비하면 열등한 종교지요라고 말할 자유가 있을까?
종교의 자유가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럴수 있을 듯도 보이지만 당신이 사려깊은 사람이라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상식을 뒤짚어 엎을수 있고 반드시 당장 그래야 하는 큰 이유가 없는 경우라면 당신이 기독교 신자라고 해도 그런 말을 하는 것에 그다지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국가적 분노와 혼란만 만들것이기 때문이다.
전부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상식은 역사적 결단과 투쟁에 의해서 탄생한다. 국민은 평등하다던가, 우리는 모두 자유롭게 자신이 믿는 것을 말할 권리가 있다라는 상식도 결단과 투쟁에 의해서 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망국의 역사로 일제의 침탈을 겪어서 정체성 문제를 가지게 되었는데다가 해방도 온전히 우리힘으로 한게 아니라 결단과 투쟁의 역사가 좀 약하다.
김구와 유관순을 모독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들도 자신들이 상식의 범주안에 들어 있다고 믿는 게 현실이다. 이승만과 박정희가 독재자로 무덤에서 되살아서는 안되는 존재라는 것이 상식이 아닌 나라다.
1년에 식비만 수천만원씩 쓰던 시장, 여러가지 개발사업에 몇조씩 돈을 낭비하던 시장이 무상급식 분담금 몇백억내면 나라망한다고 투표까지 실시하게 만드는 나라다. 그걸 보면서도 취임식에 들어가는 돈을 절약한다고 인터넷 취임식하는 새 시장에 대해 방송국에서 말하기를 시민의 권리를 빼앗아 갔다, 이것이 진보냐고 말하는 것이 '상식'의 범주에 들어가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그럴리가 있는가. 이런 말들은 결국 우리나라의 상식은 조각이 나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같은 상식을 믿는게 아니면 한국에는 상식이란게 없는 것인데 한국에는 상식이 없다는 것이다.
SBS 앵커발언에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진 상식이 짓밟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대해 항의해도 지적해도 그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 사실 이문제가 단순히 한사람의 문제를 넘어서 있는 사회적 문제인 이유다. 전체 SBS가 다 그 문제의 SBS앵커와 다른 생각을 하는데 그 한사람만 몰상식하다면 시민들이 항의를 하기전에 이미 그 앵커는 교체될것이기 때문이다.
상식은 왜 중요한가
상식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너무 많은 것이 상식이 되버려서도 곤란하다. 그러나 사회를 하나로 뭉치고 대화가 가능하게 할 정도의 상식은 필요하다. 그 역사와 합의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필요하며 상식을 교체하고 싶다면 많은 설득후에도 피가 흐르게 된다. 예를 들어 왕조에서 공화정으로 상식을 교체하는게 당연한 일이고 모두가 찬성하고 납득하는 일 일리가 있겠는가.
상식이 없으면 믿음이 없다. 상식이 없는 사람은 대화의 대상이 아니라 치료의 대상인데 방송에서 대학교수며 방송국 아나운서며 정치가며 심지어 대통령도 상식을 초월하는 발언을 하는 것을 보여주면 국가적 분란이 날수 밖에 없다. 상식이 없는 나라는 결국 국민통합이 안되서 내부적으로 갈라져서 모든 싸움에 기력을 다하고 망하기 쉽다.
지금 FTA로 시끄러운데. 조약의 세부사항이전에 우리가 지금 상식이 있는 사회에 있다는 것, 즉 비슷한 가치관을 어느정도 공유하는 사회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FTA는 남에게 국경을 여는 것인데 우리가 우리로 하나가 아닌데 남에게 국경을 열면 뭐가 되겠는가. 매국노의 양산이다. 공동체의 파괴다. 그런데 지금의 정부는 그 상식을 넘어서 있는 모습을 나에게는 자주 보여주었다. 그런 정부가 재협상한 것을 승인해야 하는가? 무슨 믿음을 근거로?
육탄공격이 아니라 총이라도 쏴서 FTA를 통과시키자는 무식한 국회의원도 있다고 한다. 국가간의 조약이란 단순 다수결투표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 대다수가 공감해야만 한다. 그게 아니라면 그건 그저 다수에 의한 소수의 착취가 될뿐이다. 이것도 사실 상식인데 국회의원도 모른다.
맺는말
상식은 쉬운 것이고 복잡한 전문지식이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은 틀린 것이다. 사실은 상식을 꽤뚫어 보는 것이 더 어렵고 복잡한 전문지식은 상식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저 어린애 손에 들린 수류탄 같은 것이 될 뿐이다.
상식은 고민을 많이 해야 보인다. 그런데 사람들이 코앞에 있는 세상일에만 집중하다보면 그 상식까지 가지 않고 표면적인것에 머물러서 말싸움을 벌인다. 불교신자와 기독교신자가 각자가 믿는 종교적 믿음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채 결혼식 절차에 대해 떠들어봐야 답은 안나온다.
한국은 상식이 무너지고 있다. 원래 있지도 않은 상식이지만 좀 더 폐쇄적인 환경에서는 그럭저럭 한국을 유지시키던 상식이 한국이 부자가 되고 세계로 더 열리게 되면서 그 허약성을 들어내고 있다. 대놓고 외국인 노동자 천만명쯤 들여오자고 말하는 말도 쉽게 나온다.
상식이 제역할을 못한다. 그럼 윤리적으로도 썩으며 국민통합은 깨진다. 그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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