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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인테리어 쇼핑/음식과 가구,

일본에 사는 사람의 생각 : 행복과 그릇

by 격암(강국진) 2011. 11. 30.

사람은 자기가 뭘 원하는가에 따라 그와 관련된 것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예를 들어 컴퓨터 게임을 즐기는 남자라면 새로운 기종의 컴퓨터가 나온다는 말을 들으면 그걸 사지 않더라도 계속 매장을 돌면서 신기종 기계를 구경하는데 시간을 쓰기 마련이다.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를 좋아하는 여자라면 예쁜 옷이나 구두를 실제로는 당장 입을 일도 구매할 의사도 없으면서 하염없이 질리지도않고 구경할 수가 있다.


그런의미에서 가족이 타는 밴형의 RV라던가 탁자며 소파같은 가구라던가 찻잔이며 밥그릇이며 주방용품을 보러다니기 좋아하는 사람은 매우 가정적인 소망을 가진 것이 아닐까. 나는 미국에 있을때부터 벼룩시장이며 염가가구매장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습관을 들였지만 우리가족이 일본에 와서 살게 된 이후 그 버릇은 좀 더 본격적이 된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나는 특별한 계획은 없고 멀리가기는 귀찮을때면 가까운 쇼핑몰에 가서 밥을 먹고 매장을 돌아다니곤 하는데 어느샌가부터 전자제품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주로 그릇매장이라던가 가구매장 주방용품매장 같은데를 돌아다니는 것이 재미있어졌다.


하나의 도구는 생활에 대한 어떤 아이디어나 그림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커다란 머그잔은 어딘가에서 오랬동안 느긋이 뭔가를 잔뜩 마시는 사람을 생각나게 하고, 예쁘지만 작은 쟁반은 공간이 협소하지만 잘 꾸며진 집을 생각나게 한다. 귀여운 곰인형이 그려진 접시는 아이들이 있는 집을 생각나게 하고 이렇다할 장식없이 깔끔한 소파는 너저분한 것을 자제하고 단순한 삶을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나게 한다. 


차주전자도 유럽풍의 주전자가 있는가하면 중국의 전통 자기같은 느낌이 나게 만드는 것이 있다. 말하자면 신사가 있고 선비가 있는 식이다. 그래서 분명 이것은 커피에 어울리고 이것은 녹차에 어울리며 어떤 것은 일식 과자를 올려놓아야 할것같은 접시가 있고 어떤 것은 치즈케이크가 어울리는 것이 있다. 


그러니까 주방용품이며 가구점이며 식기점을 돌아다니다보면 나는 무수하게 많은 생활에 대한 그림들을 만나는 것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런 상상력들과 만난다는 것은 내가 특별히 가정적인 남자라서 즐거운 것은 아닐것이다.


지금 우리집 바로 앞의 공원에서는 그릇판매 특별전을 열고 있다. 전국각지의 그릇제조사들이 모여서 그릇들을 파는 것이다. 









본래도 내가 좋아하는 산책코스였지만 이렇게 그릇들이 와있으니 그릇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니토리며 자스코며 여기저기서 그릇을 구경하지만 참 다들 그릇이 예쁘다. 우리부부는 여기를 산책하다가 결국 3천엔짜리 차주전자와 두개 천엔하는 찻잔을 사고 말았다. 콩차도 팔길래 한봉지. 그래서 몇일 연달아 콩차를 주전자에 만들어서 마시고 있다. 이런 전시회는 일본에는 참 많다. 전에 쯔난에서 본 전시회도 기억이 난다 (사진을 보고 싶으면 여기를 참조하라  http://blog.daum.net/irepublic/7887916). 


일본은 본래 도자기로 유명한 나라다. 도자기라는 다큐와 사금파리한조각이란 소설이 생각난다. 거기서 나는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었다. 한때 도자기는 도자기 하나가 보석처럼 거래될만큼 대단한 수출품이었고 중국의 청화백자는 세계적 상품이었단다. 그런데 청이 건국되면서 해변을 봉쇄했고 도자기 수출의 길이 막혔다. 그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릇을 만들수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도공들을 천대만 했단다. 그리고 임진왜란때 조선의 도공을 왜군들이 싹쓸이해가서 일본에서 도자기를 만들게 한다. 그 도자기가 세계적 상품이 되고 일본이 엄청난 돈을 무역으로 벌여들였다는 이야기다. 그 일본그릇에 포장지로 쓰였던 일본그림도 유럽으로 건너가서 일본문화는 일찌감치 유럽에 전파되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도자기때문에 일본은 훗날 선진국이 되고 우리는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뿐만 아니라 세계최고의 도자기 수출국이 될수있는 기술도 있었던 우리였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게 다 엄청난 보물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걸 잘 쓰지 못했다. 


결국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가의 문제가 아닐까. 지금도 우리는 마찬가지 질문을 던질수 있다. 우리는 지금 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는가. 아이를 사랑하면 아무래도 아동복 코너를 기웃거리게 되기 쉽다. 우리는 우리가 한가할때 뭘 힐끗거리면서 다니는 가를 보고 우리의 관심사를 알게 된다. 만약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이런 저런 것들에 오랜동안 관심이 없었다면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일상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닐까. 


한국에서 형님과 일본의 물가를 이야기했던 때가 생각난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물가라고 하면 가족과 같이 가는 식당의 식비가 얼마라던가 돈안내고도 갈수있는 주변의 공원이 많다던가 같은 것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형님이 이야기하는 것은 주로 직장동료와 술마시러가면 술값이 얼마나 나오는가를 따지는 것이었다. 이것은 보다 바쁘게 직장생활하고 집안에 붙어있는 시간은 별로 없으며 접대로 이어지는 형님의 생활을 반영하는 것일 것이다. 나보다 출세했다고 할수 있는 형님이지만 이런 면을 생각하면 좀 안돼보인다. 여유가 너무 없는 생활이다. 


지난번 한국에 갔을때 이천에 들린적이 있다. 이천에서는 도자기 박람회도 하고 여기저기서 예쁜 그릇들도 많이 팔고 있었다. 이천이 아니라도 요즘 전국에서 이런 저런 행사를 많이 열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일 것이다. 즉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릇을 보고 즐기는 여유를 가질수 있는가 하는 것일 것이다. 다이아몬드나 명품가방이나 고급승용차도 물론 좋은 것이겠지만 그것보다는 오백엔 천엔하는 그릇들을 보고 즐거운 상상에 잠기는 사람의 삶이 왠지 더 마음에 든다. 그게 더 행복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은 결국 나자신에게 가장 가까운것부터 챙겨야 얻을수 있을 것이다. 내몸이나 내머리속은 나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내 가족도 그렇고 내 일상도 그렇다. 그런것에 비하면 비싼 옷이나 장신구나 자동차는 더 내게서 멀다. 밥그릇이나 찻잔은 그래도 조금은 더 나에게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닐까.


좋은 자동차를 사면 자동차를 타고 싶을 것이다. 좋은 찻잔을 가지면 좋은 밥그릇을 가지면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싶어진다. 이왕이면 젓가락도 좀 깨끗해 보이는 걸 쓰고 싶고 내친김에 차도 좀 맛있는 걸 구해보고 싶다. 우리가 좋아하는것이 이렇게 줄줄이 사탕처럼 연결되어 우리의 생활을 바꾼다. 소중하고 중요한 것들은 대개 우리 집안에 있다. 내 자신이라던가 우리 가족이라던가. 집에서 쓰는 식기나 찻잔은 그래서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을 계속 기억나게 해주는 것같다. 


한국도 좀 그릇보러 다니는 남자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통계를 낼수는 없지만 내주변에는 그런 남자가 별로 없었다. 사실은 심지어 여자도 남자보다는 훨씬 그렇다는 것이지 좀 여유가 없어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아파트가 몇평, 누구는 BMW탄다더라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대화보다는 지난번에 산 찻잔에 대한 이야기, 생활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누는 대화가 훨씬 행복에 가깝다. 한국이 지금보다 좀더 그런 사회가 된다면 좀 더 행복한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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