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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우리를 지키는 일,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일

by 격암(강국진) 2012. 1. 1.

2012.1.1

사람들은 흔히 우리가 성공하는 것은 악을 쳐부술 능력이 있기에 그렇다고 생각하며 악을 쳐부수는 능력이야말로 우리가 결여한 것이며 우리가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한 국가나 정당같은 경우에도 그러하고 한 개인의 차원에서도 그런 것같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가 않다. 로마나 미국이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건설한 것은 무엇보다 통합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 통합의 정신을 법질서의 존중이라는 형식이 떠받쳐주었기 때문이다. 

 

로마는 파죽지세로 대 제국을 건설했는데 그렇게 된 힘의 근원은 단순한 군사력이 아니라 정복지의 시민들을 로마의 귀족으로 받아들이는 개방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때는 피정복지로서 전쟁의 대상이 되었던 곳의 시민들이 얼마지나지 않아 로마의 최고지위에 오르는 일도 벌어진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다. 미국이 개방적이고 통합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런 힘을 상실한 유럽이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걷는 동안 세계 최고의 국가로 부상해 올랐다. 

 

일본역시 무시할 만한 나라는 아니지만 미국에 비하면 크게 결여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그때문에 결국 일본은 주변국가로 부터 지지도 얻지 못했다. 일본의 국가적 구심력은 메이지유신이래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질서에서 나왔는데 이러한 것을 주변국가에 적용한다는 것은 애초에 힘에 의한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면 가능할 리가 없다. 이러한 통합력의 부족은 식민지의 반발을 만들어 냈을 뿐 아니라 전후 경제적 발전을 통해 일본이 세계적 강국으로 떠오른 1980년대에도 결정적으로 일본의 앞길을 막는다. 당시 미국은 경제난을 겪고 있었고 많은 나라들이 일본식의 사회가 가지는 성공에 찬탄을 보내고 있었지만 결국 일본식의 사회를 세계적으로 확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1등이 될 기회를 놓친 일본은 그이후 경제적으로 천천히 고사하다가 중국에게 2등의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그렇다면 통합의 힘이란 뭔가. 통합의 힘이란 두개의 서로 다른 단체가 공존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다. 서로 싸우고 다투면 설사 이기는 쪽도 상처입게 되고 결국은 계속된 싸움속에서 죽게 되고 만다. 우리는 각각의 단체속에 있으면서 그 단체를 지키고 강하게 하는 것은 그 단체밖의 존재나 그로부터 오는 위협과 싸워 이기는 힘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즉 악과 싸우는 능력이 선을 이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악을 지목하고 싸우는 능력이 필요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충분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걸핏하면 빨갱이 논쟁을 일으키는 사람을 보라. 그들도 다는 아니더라도 얼마간은 순수한 사람들이다. 그들도 악과 싸워 이기려고 한다. 즉 빨갱이로부터 우리를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노력은 경우에 따라, 그리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미친사람의 행동이상의 것이 아닌 것이 되었다. 까쓰통들고 설치는 사람들, 정동영, 박원순폭행에 이어 김근태의 영결식에서 난동을 부렸다는 아주머니를 생각해 보라. 

 

우리는 때로 악과 싸우는 일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통합의 능력같은 것은 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용기와 지혜따위는 별로 필요없으며 그저 큰 관용의 정신정도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가 않다. 가장 큰 용기와 지혜가 필요한 것이 통합의 능력이며 통합의 능력은 아무런 자기반성없이 그저 서로 잘지내자라고 격려하고 관용하는 정신을 가지자는 말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자신의 좁은 세상에서 벗어나 모두가 다 같이 잘 지낼 수 있는 세상이라는 더 큰 틀에서 서로의 관계를 보는 문맥을 가져야 가능한 것이다. 자기가 갇혀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 

 

통합의 힘은 단순한 관용이 아니다. 미국과 로마는 대제국을 건설했지만 동시에 법에 대한 존중이 대단히 강했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우리는 아직도 로마법에 대해 가끔 듣지 않는가? 그런데 요즘 보면 한국에서 세계화니 뭐니하는 소리를 많이 하는데 그와 동시에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법에 대한 불신이 나날이 더 커져만 가는 것이다. 사회적 근본이 무너지고 있다. 전에는 우리나라가 더 부패가 없고 정의로운 사회였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두환 박정희 독재시대에 독재권력이 시민을 누르는 것은 어디까지나 독재 즉 탈법적 권위였다. 그러므로 국민들을 법이 지켜지는 사회를 원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을 보면 법이 날로 복잡해져만 가고 있으며 시민들의 권력과 불평등에 대한 항의를 법으로 제압하는 형태를 띄고 있다. 그래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강력한 설득력을 얻게 되고 말았다. 관습헌법운운하면서 수도이전을 막았던일, 지금보면 정말 하찮은 일을 가지고 탄핵을 추진해서 대통령의 업무를 막았던 일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부결이 되고는 말았으나 그것이 탄핵사유가 된다고 찬성한 법관도 많았다는 사실부터 법의 권위는 무너진다. 그것이 현정권에 들어서서는 거의 매일 매주마다 법의 권위와 형평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뉴스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한마디로 이젠 시민들은 더이상 법이 지켜지는 사회를 원하지 않는다. 법자체를 의심하게 된 사회가 되고 만것이다. 법이 정말 정의라면 감옥에 가야마땅한 사람들이 세상을 활보하고 있지 않은가? 

 

세상에는 잘난 사람이 참 많다. 그들은 이런 저런 지식을 휘두르고 이런 저런 직함이며 돈 번 경험을 자랑하면서 그런 것들이 우리를 잘살게 해줄 수있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또 그것에 환호한다. 그게 문제다. 지금 스스로 사회지도층을 말하는 사람중에 스스로 잘난 사람이 너무 많다. 대통령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성공한 경험을 토대로 사대강 건설같은 것이나 FTA를 밀어부치고 뉴타운 건설같은 재개발사업을 마구한다. 사람들은 제발 시민들에게 귀를 기울이라고 말하고 그들은 물론 나는 귀기울이고 있다고 말할것이다. 실제로도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성공에 눈이 멀고 귀가 먼사람은 노력해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 그게 바로 그 잘나고 성공한 사람들이 가지는 병이다. 그리고 그 병은 그런 사람들에게 환호하는 사람들에게도 전파된다. 아니 매스미디어에 의해 그런 병이 사람들에게 주입된다. 

 

그들은 대개 일본처럼 통합의 능력없이 성공한 사람들이다. 경쟁하고 싸우고 이겨서 성공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나가수같은 프로그램에서 1등하는 것을 보고 박수치고 있지 않은가. 바로 그들은 그런 경쟁의 사다리 성공의 사디리에서 권위와 직함을 따온 사람들이다. 하버드대학나온 강용석이 뭐하고 있는가를 보라. 바로 철학없는 사회가 어떤 사람들에게 그 사회의 운전대를 맡기는가를 잘 보여준다.

 

오늘날의 한국이 필요한 것은 오히려 계속 경쟁에 지기만 했던 사람이나 애초에 경쟁하는 곳에는 뛰어들지 않았던 사람들 중에 있다. 노무현도 박원순도 다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 계속 지기만 했거나 승승장구할수 있는 길을 버리고 다른 길로 갔거나 하다가 나중에 주목받은 사람들이다. 지금보면 그들의 길이 화려하지만 그들이 사회적으로 주목받기전에는 딱 내일이라도 백수되고 거지되기 쉽게 살았던 것이다. 우리는 화려하지 않은 곳에 서있는 진짜로 가치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무시하면서, 눈멀고 귀가 멀어서 스펙이 화려한 사람들에게만 환호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문학의 위기라고 하는데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을 사랑한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가 되면 주류가 되는 사회가 되면 바로 탈출이다. 김대중도 노무현도 박원순도 다 책을 사랑했다. 왜 책을 사람들이 안 읽을까? 무식해도 성공하더라는 것을, 무식해도 권력을 휘두르며 잘 살더라는 것을 사방에서 보기 때문이다. 앞에서 거론한 인물들이 비주류로 외롭고 어렵게 거의 가끔 기적적으로 성공하는 듯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인문학에 길이 있다고 할것인가.

 

통합의 힘은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많이 나오는 것으로는 되지 않고 유연한 정신을 가지고 우리의 전통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자기를 지키면서 남과 공존하는 능력을 구체화해야 나오게 될것이다. 그 구체화는 결국 우리 사회의 문화와 철학이라고 불리게 될 것이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닐뿐더라 내 의견을 여기 글 하나에 쓸 상황도 물론 되지 못한다. 다만 사회적인 것에만 이야기가 집중되었으므로 개인의 차원에서 간단히 이야기하고 글을 마치도록 하자.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사회적 차원에서 말했던 것은 수신에서 제가에서 다 통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즉 나를 지키는 일이나 나의 가족을 지키는 일에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남을 만난다. 아내나 아들딸이라고 해도 남은 남이다. 결국 우리가 공존의 규칙을 만들고 문화를 만드는 공간이 필요한데 그게 가족이다. 그걸 하지 못하면 가족은 허울만 가족일뿐 가족이 될수 없는 것이다. 반드시 모든 것이 계층적일 필요는 없지만 개인과 가족과 지역사회가 모두 공존할 수 있는 문화를 찾고 시각을 찾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그건 우리 모두에 달린 일이다. 즉 거창하게 민족이나 국가를 말하지 않아도 가족끼리 좋은 시간을 가지는 것, 나 자신을 지키는 것에 모두 같은 문제, 즉 통합의 능력이 필요하게 된다는 것이다. 남과 공존하면서도 나를 지키는 것 이것이 물론 중요하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모두 통합의 능력과 규율의 형식이 다 잘 발휘되어야 가능하다. 물론 환경도 좋아야 한다. 그렇지 못할때 우리는 남을 상처주면서 살게되거나 외로운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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