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9
리영희의 삶을 읽어야 할 이유
자신이 기독교를 믿고 있지 않더라도 유럽인으로 태어나 성장했다면 그나 그녀는 자신의 내부에 기독교적 견해의 영향이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한국사회에서 성장하고 자란 사람중 60대 미만의 사람이라면 리영희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 모른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리영희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많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연세대학원신문이 교수와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1999년에 설문조사를 했다고 한다. 그 내용은 20세기 인문과학분야에 영향을 끼친 학자를 묻는 것이었는데 여기서 리영희는 1등을 했다. 이런 예를 들지 않아도 80년대 학생운동을 한 사람들중 리영희가 쓴 책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며 그는 한국의 사상적 스승으로 지칭되기도 했었다. 따라서 리영희를 좋아하건 그에 반대하건 한국사회는 리영희를 화두로 삼아 많은 것을 배우거나 그에 저항하는 시간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리영희의 대화는 리영희가 자신의 평생에 대해 임헌영과 대담한 것들을 글로 옮긴 것이거니와 대담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아주 여러번 원고를 정리하고 자료를 더해서 고쳐 쓴 것으로 본격적인 자서전이자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좋은 소개서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이승만 시대에는 외국에 갈 때 존경하는 사람을 써야 출국 허가가 나왔다. 그리고 그 존경하는 사람은 꼭 이승만이라고 써야만 허가를 해주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황당해 하는 김일성 독재가 이 땅에서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사실 한국의 근현대사를 읽으면 우리는 북한과 남한사이의 유사성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나는 리영희라는 한 개인은 한국사회가 무엇을 필요로했던가 하는 것을 말해주는 동시에 그의 영향을 받고 자라난 김근태나 유시민같은 정치인은 물론 각종 진보세력의 현재에 대해 우리의 이해를 깊게 해주며 무엇보다 리영희의 한계를 통해 21세기 한국 사회의 과제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한다. 나는 요근래에 이승만이나 박정희에 대한 재평가주장이 나오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근현대사에 대한 조명은 오히려 줄어드는 경향이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리영희라는 개인을 통해서 본 근현대사가 유일한 근현대사는 아니겠지만 한국의 과거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데 이 책 리영희의 대화는 좋은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다. 또한 이 책에는 당연히 리영희와 인연을 맺었던 여러인물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이들은 분명 한국의 근현대사를 만들어 온 주된 인물들이므로 그런 사실들은 이 책에 읽는 흥미를 더한다.
리영희는 누구인가
2010년에 작고한 리영희가 누구인가를 쓰는 방식은 여러가지 이며 자세하고 길게 쓰자면 결국 자서전의 내용을 모두 참고해야 할 것이다. 그의 책 대화를 읽고 리영희가 누구인가를 한마디로 쓰자면 나는 그를 기자라고 말하고 싶다. 그는 누구보다 훌룡한 기자였고 기자정신에 투철한 사람이었으며 바로 그것이 그의 한계이기도 한 것같다.
리영희를 리영희이게한 것중에는 두가지 중요한 사실들이 있다. 하나는 그가 가진 세계적 정세에 대한 관심때문인지 혹은 그저 타고난 재능때문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는 훌룡한 어학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그는 일본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한국전쟁때 통역장교로 일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영어에 뛰어났으며 그밖에도 프랑스어, 중국어도 구사했다. 이러한 뛰어난 언어능력과 통역장교로 일했던 경력은 한국이 지금보다 훨씬 폐쇄적이었던 시절에 그를 남보다 훨씬 국제적인 인간으로 만들게 했고 대다수 한국인들이 반공 이데올로기에 빠지거나 반대로 좌익이데올로기에 빠져들 때 비교적 중간적인 균형을 가질 수 있게해 주었다.
두번째 중요한 사실은 군대에 대한 그의 혐오와 그의 사회관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는 권위주의적이고 위선적이며 타락한 풍토를 매우 혐오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한국전쟁과 해방이후의 사회적 혼란을 경험하면서 인간자체 혹은 한국인들의 탐욕과 이기심에 대해 심한 좌절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 기간에 진주기생이나 초연한 태도의 스님을 만나고 죽을 기회를 우연히 넘기는 경험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을 통해 인간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고 그에 매진하는 삶을 평생 추구하게 되었다.
그는 언어에 뛰어났지만 해양대학을 졸업한 이공계출신이며 그 스스로도 과학적 사고를 강조하는 사람이다. 이는 많은 한국의 인문학전공자들과 그를 다르게 만드는 큰 원인이며 특징이다. 그는 사실을 추구한다. 바로 기자의 소명처럼 그는 사실들을 꼼꼼하고 정확하게 사회에 전달함으로서 그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유지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서구의 계몽적 사상이며 관찰을 통해 세상의 법칙을 발견한다는 과학적 태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점은 그가 외국사람들에게 주목받을 수 있게 만든 특징이기도 했을 것이다.
사실 과거의 한국은 세계와 소통하지 않으면 발전이 불가능한 이공계가 좀 더 형편이 좋았을 뿐 정치 경제 사회문제등 많은 부분에서 놀라울 정도의 후진성과 폐쇄성을 가지고 있었다. 즉 한국의 교수라고 하지만 외국의 잡지에 글을 기고하거나 외국학계와 소통하는 일은 매우 적어서 국제화되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이것은 한국의 국방이나 외교 혹은 사회 정치적 문제에 있어서 전혀 세계적 시각에 무감각한 사람들이 한국을 움직여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리영희가 기사를 쓰거나 책을 쓰면 폐쇄적 반공주의와 친미적 사고에만 빠져서 전혀 세상을 보지 못하던 한국사회는 크게 동요하고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리영희는 베트남전쟁의 실상을 한국에 알리고 중국과 수교하기전부터 중국사회주의에 대한 연구를 하며 남북한의 군사력를 비교하는 글을 써서 당시로서는 국내 누구도 잘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국내에 알린다.
이것은 물론 그가 기사와 책으로 인해 많은 고초를 겪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어 케네디를 만나러갔을 때 미국에 따라간 수행기자중 하나였는데 당시 그 정상회담의 진상을 밝히는 기사를 송고해서 특종을 내기도 한다. 그 당시 수행기자로 갔던 다른 사람들은 박정희를 옹호하는 기사만 썼는데 그 대다수가 나중에 장관, 부총리나 국회의장 으로 출세했다고 한다. 하지만 리영희는 이런 기사 때문에 그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그의 언행을 살피면 그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거니와 그는 이상적 사회시스템을 찾아헤매며 살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는 많은 한국 사람들이 무비판적으로 외치는 미국 시스템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그는 사회주의에 희망을 걸었으며 그래서 세계적으로 민중의 노력이 새로운 사회를 이룩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큰 기쁨에 차오르곤 했다. 그는 중국사회주의에 깊은 존경과 희망을 걸었지만 등소평이후 자본주의화하는 중국을 보고 관심이 사라졌고 노년에 유럽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유럽식 사회주의국가에 큰 희망을 표명하기도 했다.
리영희의 한계
리영희를 읽으면서 느낀 것은 한국의 진보가 전부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해도 상당부분 리영희의 길을 걷고 그것을 넘어서 존재한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리영희를 넘어서는 그 부분이 리영희를 좋은 쪽으로 넘어섰다기 보다는 리영희 스스로가 자신의 한계로 생각하고 방향을 트는 그 부분이다. 즉 리영희가 나는 이러저러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는 그 부분이 오히려 증폭되고 리영희가 찾고 지향하고 싶어하던 방향은 21세기가 된 지금도 제대로 대중화되고 있지 못한 것같다.
리영희의 한계는 바로 그 자신이 표명하는 그 과학주의 혹은 기자정신이다. 리영희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자료를 세세히 정리하여 보여주었다. 그런 그의 능력과 헌신성은 바로 장인정신이라고 말해야 할 존경할 만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세상이 말한 것처럼 사상의 스승이 될 수는 없었다. 왜냐면 그는 사상가나 철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상가나 철학자는 우리가 아는 것의 근본을 파헤친다. 리영희는 매우 뛰어난 능력과 용기를 가지고 당시의 한국으로서는 무지했던 부분을 크게 깨우쳐주기는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편견없는 자세라는 것에 대해 깊게 연구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그가 희망을 가지던 중국사회주의를 생각해 보자. 미국제국주의가 비판받아 마땅한 것이라는 것은 옳지만 그렇다면 중국이라는 사회는 야만성이 없다는 말인가. 최근 티벳 승려가 중국정부의 폭압적 점거에 항의하여 연쇄적으로 분신자살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고 할 수 없거니와 중국민중이 미국민중보다 더 도덕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깊은 관심을 표한 유럽사회주의국가를 생각해 봐도 그렇다. 전쟁을 통해 한번 거지가 된 적이 있다고 해도 한 사회의 자산이란 문화와 인간속에서 대물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볼 때 오늘의 유럽을 가능하게 한 것은 과거 제국주의의 시대에 착취와 정복을 통해 배불린 것들이 축적되어 내려온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는 그런 제국주의적 약탈없이도 유럽처럼 될 수있을까?
그는 많은 자료를 읽기는 했지만 시대적인 이유로 노년에 이르기 전에는 외국에 거의 나가본 적이 없다. 그는 미국문명에 빠져서 눈이 먼 유학파 교수들보다는 균형을 갖춘 눈을 가졌을지 모르나 사실 '상식'이나 '균형'이나 '편견없는' 같은 단어는 그리 쉽게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도 자신의 이런 한계를 인식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정말로 훌룡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을 넘어선 곳에 누가 있는지도 알고 있다. 바로 그가 평생 만난 사람중 가장 훌룡했다고 말하는 장일순이다.
그러나 한국의 대중은 리영희로 인해 눈을 뜨지만 리영희가 자신의 한계를 느낀 곳에서 장일순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리영희의 특성을 과대생산한다. 1980년대이후의 진보논쟁은 끝없는 세세한 지식을 탐구하는 복잡성 증가의 길로만 나아갔으며 결국 그것은 진보진영의 영원한 골치거리인 내부적 분열, 집단적 무능의 상태로 나아간다. 더 많은 외국 서적을 탐독하고 더 많은 외국 이론을 소개하는 일에만 몰두하면서 끝없이 자아를 잃어간다. 리영희는 노년에 이르러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있어서 자신은 너무 시스템에 대한 생각만 했을 뿐 인간 내부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더더욱 말들의 향연과 외부의 것에 의존하는 길을 갔던 것이다.
장일순이란 무엇인가
장일순이란 '무엇'인가라고 쓸때 나는 장일순이라는 이름을 한 개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쓰지 않고 리영희를 넘어선 것, 21세기 한국이 지금 결여하고 있는 것을 지칭하는 것으로 바꿔썼다. 그 이유는 무위당 장일순의 사상자체는 훌룡한 것이지만 대안으로서 장일순 개인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장일순이 가지고 있고 리영희가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은 무엇일까. 리영희 스스로의 입으로 들어보자.
나는 무위당처럼 넓은 의미에서의 인간과 자연과 우주와 더불어 사는 분의 사상과 자세에는 어림도 없죠. 나는 너무 서양적인 요소가 참 많아요. 사회를 직선적으로 구조적으로 이론적으로 해석하고 보려고 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나의 경우는 분석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같은 의미에서 무위당은 총괄적이랄까 종합적이랄까 잡다하게 많은 것을 이렇게 보자기에 싸서 덮고 융합해 버린단 말예요. 나는 그걸 굳이 골라서 a.b.c 이렇게 분석하고 그러니까 작은 거죠. 차원이 낮은거고. (리영희-전표열 대담 녹색평론)
리영희는 통합의 능력이 부족했다. 그리고 그와 같은 힘은 가장 근본적인 것, 예를 들어 생명이나 상식이나 인간같은 것에 대한 고민의 끝에서 나온다. 리영희는 기자로서 사회적 불의와 위선을 지적할 수 있었지만 진정한 사회적 개혁을 완성할 통합적 힘을 지닌 사상을 제시할 수는 없었고 결국 그가 스스로 인간의 힘을 간과했다고 말하게 되는 그의 한계가 나오게 된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것에 대한 고민은 윤리를 지키자가 아니라 윤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고 과학과 사실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과학을 넘은 가치와 종교의 세상을 포괄하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국은 답을 찾아 수많은 책을 읽고 수많은 나라의 혁명사를 공부하는 일에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길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은 매우 종교적인 사회다. 그리고 오늘날 그런 점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는 뒤짚으면 과학적 합리주의에도 철저하지 못한채 과학적 합리주의에 빠져서 그 정신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종교의 참된 뜻이 없으니까 본질적으로 성황당나무에 기도하는 것보다 뛰어날게 없고 오히려 더욱 타락한 사이비 종교들이 넘쳐난다.
맺는 말
우리는 탈 이데올로기의 세상을 살고 있다고들 한다. 리영희는 마지막 이데올로기적 인간인지도 모른다. 그 스스로는 다른 진보인사보다 훨씬 더 열린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어떤 이데올로기에도 빠져드는 것을 경계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좋은 세상을 만들 어떤 시스템을 찾았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적이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탈이데올로기의 세상에서 어떤 이데올로기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지독히 복잡하거나 간단한 어떤 이데올로기에 빠져드는 사람들보다 더 우위에 있는 것일까. 그렇지가 않다. 나는 오히려 탈이데올로기 같은 것을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간단한 이데올로기에 빠져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확실한 것은 돈과 명성이라는 간단한 가치관이다.
리영희는 유년시기와 기자생활을 말하면서 어떤 가치에 헌신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즉 학생이 학교에 가는 것, 어떤 사람이 기자가 되는 것은 어떤 가치를 위한 것이지 돈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이런 사고방식의 근원에는 요즘 쉽사리 부정되는 민족주의라던가 애국주의, 가족주의등 그것들을 부정하는 논리가 다 개발된 이데올로기중의 하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부정한 요즘의 사람들은 그럼 어떤가. 뭔가 대단한 것을 위해 사는가. 그렇지 않다. 공부도 돈을 위해 하고 취업도 돈을 위해 한다. 전부 취업준비생 아니면 월급쟁이다. 심지어 대학교수도 이젠 월급쟁이일뿐 어떤 사회적 의무감이나 사명감을 가지는 경우가 없으며 진정한 의미에서 책임있는 엘리트의식을 가지는 사람도 드문 것같다. 결국 그들은 돈이라는 단순한 가치에 매몰되고 크고 작은 공동체는 붕괴한다.
이데올로기란 것은 부정할 필요도 절대화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 노예가 되어서도 되지 않지만 그 존재를 너무 쉽게 부정해서도 되지 않는다. 이런 것에 대한 고민들의 끝에서 한국 사람들 하나하나가 리영희를 제대로 뛰어넘을 수 있을때 한국은 한단계 위의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고인이 되신 리영희는 그런 것을 볼 수 있다면 더욱 더 기뻐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독서와 글쓰기 >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줄리언 바지니의 빅퀘스천을 읽고 (0) | 2012.05.06 |
---|---|
이윤의 굿바이 카뮈를 읽고 (0) | 2012.04.30 |
게이샤의 추억을 읽고 (0) | 2011.12.24 |
건지 감자껍질 북클럽을 읽고 (0) | 2011.12.07 |
간디로본 우리의 모습 (0) | 2011.10.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