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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사람들, 사람들

지정환 신부 이야기를 읽고

by 격암(강국진) 2012. 1. 30.

12.1.30

지정환 신부님은 벨기에 사람으로 한국전쟁 직후에 한국에 온 이래 한국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데 평생을 헌신한 분이다. 세상에 대해 아는게 많지 않은 내가 우연한 기회에 임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지정환 신부님과 임실치즈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지정환 신부님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한겨례 인터뷰에 나온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0712.html ).

 

 

지정환신부님은 유명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인터뷰를 거부하고 사신다고 한다. 전북 임실의 성당에 부임한 지정환신부님은 사람들을 설득해서 치즈사업을 벌였고 지금은 유명한 치즈마을도 있고 4개나 되는 브랜드가 치즈를 만들고 있다. 사진에 나오는 것처럼 그는 다리를 쓰지 못해 휠체어를 타고 사는데 이미 1981년에 다발성신경경화증으로 그렇게 된것이다. 그는 벨기에에 돌아가 치료해 보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돌아온 1983년이후 장애인 공동체 무지개가족의 지도신부로 일하기도 했다. 지금은 완주에 있는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라는 무료양로원 옆에 살면서 천주교 교회사의 전산화 작업을 돕고 있으며 2007년에는 호암상의 상금과 기타 수익금을 모은 5억원으로 장학재단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호암상을 받으며 봉사란 그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나는 지정환 신부님에 대해 잘 모른다. 기사하나 읽은 정도가 전부다. 당시에 한국이 아프리카보다도 가난한 나라였기에 왔다고 말하는 지정환신부님은 한국 안에서도 가난한 곳, 힘든 사람들 옆에서 평생을 보내오셨기에 대단한 감동을 준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지정환신부님을 성인처럼 만들어 그 심성이 지고지순하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마도 그러하시겠지만 나는 그렇게 많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분의 삶에 대한 기사를 읽으며 그리고 그 분이 지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공동체나 친구에 대해 한두가지 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을 쓰고 싶다. 흔한 말이긴 하지만 우리는 흔히 세상에 좋은 사람이 드물다고 말하지만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고, 세상에 친구가 없어 외롭다고 말하지만 스스로 외로운 사람들의 친구가 되려고 하는 일은 드문것 같다. 지정환신부님은 힘든 사람들의 옆에서 완전히 빈손으로 살아가는 것을 자청함으로써 많은 친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아닌가 한다. 

 

물론 지정환신부님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그에 실망하여 상처입었을 것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을 나는 하게 된다. 그의 회고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임실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산양젖으로 치즈만드는 일을 시작했는데 그가 치즈제조법을 배우려고 유럽에 3개월을 다녀왔더니 12사람중 한사람 빼고 모두가 그 일을 그만뒀을뿐 아니라 산양도 모두 팔아치웠었다는 것이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해도 좌절할 만한 일이었다. 가난하기 짝이 없고 문화도 달라 미개하게 보였을 나라의 작은 지방마을에서 팔릴지 안팔릴지도 모르는 치즈를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 쉬웠을 리가 없다. 그러나 지정환신부는 그만두지 않았고 임실치즈마을에는 지금 치즈만들기를 둘러싸고 하나의 공동체가 존재하고 있다. 임실치즈의 내분이나 그 공동체의 굳건함이 어느정도인가는 내가 잘모르지만 적어도 그런 공동체를 탄생시키고 몇십년간 유지하고 유명한 치즈브랜드를 만들어 냈다는 이제까지의 일만봐도 거기에는 뭔가 사람을 감동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반드시 치즈산업을 일으켜 돈을 벌었다던가 하는 이유가 아니다. 돈과 안락한 삶이란 애초에 지정환신부님에게 큰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니었다. 더 돈을 많이 벌고자 하는 것이 사업의 표면적 목표가 되는 것은 뻔한 일이지만 그 일을 추진하는 지정환신부님의 마음속에 있는 목표는 돈을 넘어서 존재하는 가치였을 것이다. 힘들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것 말이다. 

 

바로 그러한 것이 치즈산업이 단순히 일자리로 끝나지 않고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고 그런 공동체가 존재하기에 수십년간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치즈사업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성공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치즈마을이라는 테마파크도 운영하게 되고 말이다. 즉 돈보다는 삶이고 삶의 핵심에는 믿음이 있다. 지정환 신부님이 뿌린 것은 그 믿음의 씨앗이었다. 내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있다. 너희도 그렇게 하면 서로가 서로의 친구가 되어 모두가 살기좋은 그런 곳을 만들수 있다라는 것을 지정환 신부님은 몸소 보여주었을 것이다. 

 

리영희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나는 장일순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장일순은 지학순신부와 함께 한 동지였고 지정환신부는 지학순신부가 투옥되었을때 위험을 무릅쓰고 석방운동을 했던 일로 서로 연결 고리가 있다. 두분이 어느정도 서로를 아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장일순의 길도 어떤 의미로 마찬가지였다. 장일순이 원주에서 살면서 시작한 것도 한살림 공동체 소비자 협동조합이었다. 그는 지식인이고 예술인이었지만 대학강단이나 정치판에서 논리를 전개하는 일을 하는 대신 농민과 함께살고 무엇보다 그 속에서 우리가 서로 믿으면 다 잘살 수 있다는 믿음의 씨앗을 뿌리는 일을 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장일순이 김지하에게 한 조언은 낮은데로 가라, 낮은데로 박박 기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 역시 힘들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어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훌룡하신 분들이 한국에는 여기저기 있다. 그리고 그 분들은 꽁꽁 얼은 세상사람들의 마음을 녹이고 서로를 믿고 사랑하면 다 같이 잘살 수 있으니 다 같이 좋은 세상을 만들자라고 말하신다. 그 분들은 사람들을 나누는 일보다는 사람들을 합치는 일에 헌신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친구로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친구가 되는 그런 세상을 만든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세상을 자꾸 나누고 싸움을 부추키는 일에 매진한다. 세상에 악이 없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성인이 되지는 않는다고 해도 더더더 많은 사람들을 덩어리로 묶어서 악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남과 북이 싸우고, 전라도-경상도 지역감정이 만들어지고, 노동자와 자본가와 싸우고, 학생은 선생과 싸운다. 미국과 싸우고 일본과 싸우고 중국과도 싸운다. 

 

싸우는 일이 모두 불필요한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는 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앞에 나가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정치인같은 사람들이 세상에 큰 일을 하는 것같이 보일 때도 있고 실제로도 그럴 때도 있을 것이다. 현란한 표현과 복잡한 수치를 늘어놓는 경제학자가 세상을 돌리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고 그 분들도 실제로 중요한 일을 많이 할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하나로 붙들고 있는 것은 자신을 잘 드러내려고하지 않는 지정환신부님이나 장일순 같은 분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정작 세상을 진짜로 굴려오고 버텨온것은 그런 분들이 아닌가 한다. 

 

지금 이순간에도 한국 사회의 여러곳은 찢어질듯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사람들은 사법부를 못믿겠다고 하고 학생들은 공부좀 하게 해달라고 하고 젊은 사람들은 꿈이 없다고 하고 노인들은 엄청난 자살률을 보인다. 외롭고 힘들기 때문이다. 정부는 귀머거리로 불도저처럼 밀어부치기만 할뿐 한국 사회를 뭉칠 도덕적 품성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재벌들은 자영업자들의 고통을 나누지 않으면서 스스로 한국 사회의 일원이라고 말한다. 언론도 학계도 사법부도 경찰도 정치도 사업가도 젊은 사람도 나이든 사람도 모두 의심하면서 사회가 찢어질 것처럼 흔들린다. 이럴때 우리나라의 여기저기에서 소리없이 한국을 하나로 붙들고 계시는 많은 지정환 신부나 장일순 선생은 더더욱 고통스러울 것이다. 행복한 마을, 행복한 사회만들기란 결국 지정환 신부님같은 분이 보여주는 공동체 만들기의 길에서 밖에는 만들어 질 수가 없다. 이것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기억되기를 바란다.  

 

%지정환 신부님은 2019년에 전주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이 글은 그보다 7년전에 씌여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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