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근래 한국사회에서 가장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중에는 박원순이 들어갈 것이다. 날마다 크고 작은 뉴스가 나오면서 박원순이 어떤 식으로건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런데 정작 박원순은 스스로 한게 없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이 부분은 단순히 겸양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세상 그리고 나아가 몇몇 지식인들의 태도에 경종을 울리는 부분이 아닌가 한다.
한게 있을 수록 성공하기 쉬운 사회
나라도 그렇지만 요즘 전국 지자제가 다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고 더더욱 문제가 빠르게 심각해 지고 있다고 한다. 이같은 것은 크게는 여러가지 토건공사에서 나타나는 일이다. 송도 개발이나 모노레일을 설치한 인천의 예도 있고 거제대교가 수지를 못맞춰 지자제가 큰 돈을 해마다 물어줘야 한다. 해마다 백억씩 들어가는 유지비를 내는 청계천은 물론 수백 수천억을 날린 한강에 배띄우고 둥둥섬 짓는 일도 있다. 사실 그뿐이 아니다, 한국을 돌아다녀보면 요즘 지자제마다 뭐 안하는데가 없다고 할정도다. 축제를 하고 청사를 새로 짓고 여러가지 사업을 벌인다.
나는 실패한 사업들이 많았다는 것을 이유로 모든 사업의 추진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사업이란 성공만 할수는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세상이 정말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이런 말들로 다 설명해 낼수 없는 불합리가 존재한다.
사업추진은 누가 뭘로 하는가. 기본적으로는 정치가가 하고 세금으로 혹은 지자제의 빚으로 한다. 그럼 정치가가 뽑히는 과정은 어떠한가. 여기 두명의 정치가가 있다고 하자. 한명은 난 그냥 별로 사업 더 벌이지 않고 관리 잘해서 내실을 키우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또한명은 난 우리 고장을 싹 바꾸겠습니다. 한방이면 우리 고장 크게 성공합니다라고 말한다. 어느 쪽이 현실에 존재하는 정치가와 비슷하고 어느 쪽이 당선가능성이 높은가?
현실이 그다지 바뀔 가능성이 없다거나 현실이 이대로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실 대게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현실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바꿀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정치판에 모여든다. 그리고 그들은 대개 뭔가를 '하려고' 한다. 업적을 남기고 싶어한다. 청사를 새로짓고 축제를 시작하고 다리를 건설하고 체험마을을 만든다. 청계천을 만들고 뉴타운 사업을 시작하고 4대강 건설을 벌인다.
지방자치의 시대에 그 모든 것들은 세금으로 지자제나 국가의 빚으로 하는것인데 이러다보니 사람들은 점점 비용에는 큰 관심이 없어지는 경향도 있다. 이것은 분명 미래세대에 대한 도덕적 해이인 면도 있다. 왜냐면 결정하고 돈쓰는 것은 지금 세대지만 빚은 미래세대가 갚기 때문이다. 최소한 같이 갚는다.
그렇게 해서 뭔가를 해서 성공을 하면 당연히 업적이 된다. 그냥 보통의 경우라도 성공인지 실패인지 평가가 나오는 것은 한두해에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완전한 실패가 된다고 해도 그런 사업을 기획한 정치인은 이미 다른 자리로 옮겨간 후일터이다.
이것을 모두 한꺼번에 조망해 보면 어떤 식으로 세금이 낭비되고 사회가 부실화되는가가 뻔히 보이지 않는가? 이것은 개발을 강조하는 여당만 그런 것일까?
자신만만한 지식인
여당이 여당일수 있는 것은 야당이 여당을 정치적으로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보세력이 그다지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현실이 만들어 지는 이유에는 실로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재벌가문에 집중되는 경제적 영향력이 그중 하나일 것은 분명하다. 한마디로 잘나가는 사람들끼리 인맥으로 얽혀서 기득권을 방어하니 개혁이 잘 될리가 없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 사회의 모습에 대한 대안이 제대로 없는 것이 실로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안이란 사실 실제로 현재 사회를 대체하기 전에는 대안인지 몽상인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대안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애매한데가 있기는 하다. 아니 분명 이미 세상에는 대안적 사회에 대한 설계도가 나와있을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설계도 말고도 무수히 많은 되지도 않는 설계도와 꿈이 나와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쯤 되면 또 아름다운 이상의 자유경쟁을 그리면서 기득권세력의 악날한 방해만 없으면 대안적 사회에 대한 제대로된 선택이 그 자유경쟁에서 도출될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나는 이 부분에서 참 이해를 할수가 없다. 신자유주의 하면 펄떡 뛰고 FTA 하면 악마처럼 미워하는 사람들이 이런 방면에서의 자유에는 지나친 장미빛 환상에 젖어있다.
정치가들끼리의 경쟁이나 사상적 경쟁이나 그 기본은 다르지 않다. 누가 사람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어떤 것이 선택될 것인가. 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먼저 자신들의 마음과 자세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고 자제를 하지 않으면 그 결과는 정치인선택에서와 같은 것이 된다.
결국 어찌보면 뻥이 쎈 사람, 깊은 생각은 해보지 않고 그저 줄줄이 무슨 데이터 늘어놓고 남의 말 뒤틀고 혼자서 머리속에서 우주선 만들고 있는 사람이 선택되는 것이다.
슈스케와 나가수이후 가요프로그램에서 경선프로그램이 인기를 모은다. 그런 프로그램에서 느껴야 하는 것은 경쟁이라는 요소하나로 좋은 가수가 선택된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백분토론 같은 검투사의 쟁투에 나와서 말씨름으로 누굴이긴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또한 동시에 어떤 왜곡의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말로는 김대중이나 노무현보다 자기가 백배 더 잘할수 있다는 진보주의자가 이땅에는 가득하다. 부동산 문제 어떻게 잡지요? 라고 말하면 개그콘서트의 사마귀유치원 개그를 하듯, 어렵지 않아요 라고 말한다. 미국과의외교, 국방, 교육, 모든 문제가 다 어렵지 않다. 그렇게 어렵지 않은게 왜 실천되지 않을까? 대개 그들은 누군가의 도덕적 해이, 어떤 사회적 악, 전임정권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그렇게 똑똑하고 능력있는 분들이 왜 국민의 지지를 김대중이나 노무현과 비교할수 없이 적게 받을까? 그건 국민들이 어리석어서 그렇다. 나꼼수같은 걸 지지하는 대중은 실로 광신도이고 어리석다. 나는 세상을 구원할 설계도가 머리에 다 있는데라는 식이거나 아니면 이건 아니야 저건 아니야 라고 말하면서 대안이 뭔데라고 물으면 누가 대안이 있다나 그냥 저건 틀리다고 말하는 것 뿐이야라고 한다. 비판하는건 좋은거잖아라고 한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흥망성쇠가 있는데 망조를 만들어 내는 것은 대개 극한으로 가는 도배장이다. 그들은 1당 백이 아니라 1당 만의 힘을 발휘해서 게시판의 의미를 기어코 붕괴시키고 그 게시판에 와서 정보를 얻고 그 게시판을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그 게시판은 이제 가볼 가치가 없다는 인상을 주고 만다. 그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나쁜 사람은 아니다. 다만 그렇게 하는게 좋은거라는 확신범일 뿐이다.
맺는 말
박원순은 되도록 안하려고 하면서 가장 큰 변화를 만들어 낸다. 되도록 작은 현장에 직접가서 거기에 집중하며 남이 한것을쉽게 쉽다고 하지 않는다. 노무현을 신자유주의자로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노무현은 제약을 푼다던가 더한다던가 하는 일반론은 별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현장에 가서 보면 각각 다 상황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풀고 안풀고가 나오는 것이지 무슨무슨 주의하는 식으로 답이 안나온다는 것이다.
우리가 과장과 거품을 제거하기 위해 필요한 것, 그리고 과장과 거품을 거둬들이고 나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우리의 삶이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일 것이고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감수성과 믿음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이 세상은 다 도둑놈밖에 없다면서 도둑을 잡기 위해서 이런 저런 억압을 가해야 한다고 말하는 쪽은 대개 기득권들이다. 그들은 서민들에게 양보하기 시작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무상급식논쟁이 이런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반대로 진보주의를 자처하는 사람들중에도 기본을 잊어버린 사람은 무지 많다. 그들은 모든 것에 대해 회의하라는 서구철학적 과학주의적 가르침에 자신이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사방에 칼을 휘두른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겨우 만들어진 어떤 설계도를 맹신한다. 그 설계도는 마치 상온 핵융합기술이나 고온초전도체 같은 과학적 미래에 대한 약속처럼 정교하게 만들어져 사람들을 구원할것으로 믿어진다. 그건 대개 거품이고 그저 사람들을 갈기갈기 찢어 발기는데에만 큰 효과가 있다.
과장없는 정치, 과장없는 지식인, 과장없는 시민들이 근본으로 돌아가 그걸 지키면서 세상을 논할때에만 우리는 어떤 종류의 대안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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