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근래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에서도 대학 등록금문제와 대학 학벌의 가치에 대한 논란이 있다. 학생들은 반값등록금 시위를 하는 판이고 등록금 마련을 위해 보통의 알바는 물론 여대생들이 접대부 생활을 하기도 한다고 하니 세간의 풍경은 혀를 차게 만드는 면이 있다.
이러한 풍경에서 첫번째로 가슴아프게 느껴야 하는 것은 물론 한국사회의 현재일 것이다. 이유가 뭐가 되건 자식세대를 교육시키지 않는 기성세대가 존재하는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 고등 교육은 물론 일차적으로는 자신의 문제일 것이나 나아가 부모의 문제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면 한국 사회의 문제다. 그것이 세금의 형태이건 개인적 장학금의 형태이건 혹은 부모의 희생이건 다음 세대를 교육하는 일은 분담되어 그 개인과 같이 짊어져야 할 짐인데 지금은 그렇지가 못한 것같다. 그래서 젊은 세대들이 곤란해 하고 아파한다는 이야기다.
대학은 왜가는가
이런 현실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대학교육이나 학벌에 대한 한국사회에서의 인식에도 있음에 틀림없다. 한국에는 전체 강사의 상당수가 시간강사이며 시간강사의 수입은 그야말로 형편없다. 그리고 요즘은 전체 고등학생중의 70%는 대학에 간다고 한다. 경제사정으로 못가는 사람도 있을테니까 그야말로 모든 사람이 대학에 가기를 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현실을 곰곰히 씹어보면 거기에는 괴상한 면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만약 학생들이 정말 대학에서 강의를 듣고 싶은 것이라면 즉 대학에서 가르치는 학문을 배우고 싶은 것이라면 그리고 각 대학이 정말 대학으로서 학문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면 오늘날 존재하는 한국의 현실은 완벽히 설명되기 어렵다. 즉 어느 정도는 국민들은 학벌을 높이고 싶을 뿐이고 대학은 돈 받고 졸업장 팔고 -과연 거기에 학문이 있는가는 둘째로 치고- 싶을 뿐이 아닌가? 이런 현실에서 나라에서 세금으로 대학교육을 보조한다고 해도 그것이 학문의 발전을 돕는 다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여러모로 보아 명문대에 가는 것이 나쁘지 않다. 졸업장이 취업에 도움이 되는 면이 있는데 졸업장에 연연하는 것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세상이 혼탁하면 할 수록 여러가지 일들의 본말을 따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는 것같지만 나날이 세상은 악화되어 결국은 모두가 고생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현실인것 같다.
싸움이 나서 다들 상처입고 피흘리는데 누군가가 싸우는건 좋지 않다 협력이야 말로 다같이 잘살수 있는 길이라고 했다고 하자. 그럴때 누군가는 그런 비현실적인 원칙론은 소용이 없다. 지금 내가 약하게 나가면 우리를 불신하고 공격하는 사람에게 당하고 말것이다. 세상은 어차피 불신으로 가득차 있다. 그것이 현실론이다라고 말할수 있고 이런 말은 분명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맴돌고 있으면 거기서 나만 더 잘 싸우고 살아남는 길같은 것만 연구하고 있으면 폭력과 불신은 점점 더 커져서 고통은 증가만 하게 될것이다.
대학의 기본은 학문적 발전이고 고등교육을 시행하는 것이다. 즉 학문의 발전에 관심이 있고 고등한 학문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대학에 가고 대학에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정도다. 그런데 졸업장을 받아서 명문대 출신이라는 증명을 얻고 석사 박사를 받아서 오랜 교육을 받았다는 증명서를 따고 하는 것의 껍데기에 너무 관심이 증대되면 배가 산으로 간다.
이렇게 한번 물어보자.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자신이 그 대학교육을 받으면서 쓴 돈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 보고 곰곰히 자신의 대학생활을 생각한 끝에 만약 그 대학에서 졸업장을 주지 않는다면 그 경험이 그 돈의 가치만큼 있었다고 말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과연 전국민이 모두 대학에 가고 싶어할 만큼이나 그 경험이 그렇게 가치있는 것이었을까.
본말이 뒤짚어지고 그것이 결국 한국대학을 더 악화시키고 한국 국민들을 다 힘들게 한다. 다들 비싼 등록금을 무슨 원죄처럼 지불해야 하고 대학은 대학대로 기형적으로 변한다. 대학입시합격에 교육의 목적이 있다면 학교는 학교가 아니라 입시학원이 된다. 학생많이 받아서 취업시키는게 대학의 목적이 된다면 대학은 취업학원이 되고 만다. 그런 가운데 정말 가치있는 것들이 이야기되고 가르쳐질 근간은 상실되고 말기 쉽다.
대학의 종말
국자가 있지만 이 국자는 주로 못을 박기 위해 쓴다면 이 국자는 국자일까 망치일까. 이름과 형태를 가진 것의 뒤에는 어떤 철학적 근간이 있다. 철학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게 들리면 어떤 아이디어와 논리가 있다고 해도 좋다. 국자는 국자의 용도를 생각해서 그런 형태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국자가 망치로 쓰이게 되면 당장은 망치도 없는데 이거라도 감지덕지라고 할지 모르나 종국에 그 국자는 그 존재의 가치를 의심받게 될것이다. 어느 순간 망치로 대체되고 말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은 어떤 철학적 근간을 가진 것일까를 고민하는 것이 망각되면, 그리하여 그냥 뭐 좋은게 좋은거지 하는 식으로 당장의 눈앞의 현실에만 맞추는 식으로 나아가면 결국 대학은 망치로 쓰이는 국자꼴이 날것이다. 이미 교육버블이라는 말이 미국에서 쓰이거니와 어느 순간 대학졸업장이 가치가 없다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 대학이라는 기관의 존립근거는 마치 부동산거품이 꺼지듯 무너지고 무너진 신뢰는 다시 쌓아올리기 어려워질 것이다.
나는 대학이 일반론적으로나 한국이라는 특수성속에서나 모두 심각한 위협속에 있다고 믿는다. 대학이 일반론적으로 위협속에 있게 되는 까닭은 절대성의 상실이라는 요즘의 세태속에 있다. 대학이란 지식을 쌓고 물려주는 장소다. 지식의 폭발과 절대성 상실이라는 상황은 이러한 존재로서의 대학이 제대로 기능하기 어렵게 만든다.
말하자면 대학이란 지식사회의 중앙집권제 같은 것이다. 대학의 권위, 교수의 권위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하게 만들고 그 역할이 대학의 권위를 만들어 낸다. 모든 지식을 모으고 정리해서 더 빠른 발전을 도모하고 지식의 유실을 막는다. 그런데 왜 요즘은 정치사회적으로 지방자치시대가 열리는가. 중앙집권제식으로 사회를 굴리기에 사회가 너무도 복잡하고 빨리 변하기 때문이다. 중앙집권제를 유지하면 작고 큰 현장에서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진다. 대학이라는 기관의 일반론적 위기란 비슷한데가 있다. 지식의 폭발과 절대성 상실의 시대에 대학은 무능한 중앙집권기관같은 모습을 보인다. 정치적 중앙집권장치가 그러하듯 대학은 더욱 규모를 늘려서 이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내부적 복잡성이 증가하여 관료화되고 썩어가기 쉽다. 그리고 중앙집권체제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정당한 요구를 하는 사람에 대한 억압의 형태로 해석되기 쉽다.
인터넷 검색으로 무장한 다수의 네티즌으로 이뤄진 인터넷 수사대 혹은 집단지성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진 대학교수란 있기 힘들다. 그들은 어떤 가정과 어떤 전통속에 세워진 내부적 전문가로서 어떤 분야에 대해서는 세계 전부와 싸워도 이길수 있을 정도로 전문적일수는 있다. 그것은 무시할 수 없는 점이다. 그러나 현실문제란 그런게 하나도 없다. 현실문제는 오직 일반론적 시각을 가진 제너럴리스트만 풀수있고 전문가인 스페셜리스트는 제너럴리스트를 도울 수 있을 뿐이다.
핵발전소를 짓거나 4대강 공사를 하거나 FTA를 하거나 세금을 내리거나 올리거나 하는 등 모든 상황에서 하나의 측면이 가치판단을 결정하는 경우는 없다. 여성문제가 교육문제고 교육문제가 노인문제며 노인문제가 인문학의 문제다. 요즘처럼 하나의 변화가 다른쪽으로 파급되는 속력도 빠른 시대에 문제의 분리란 하나마나한 소리다.
요즘 대학은, 적어도 이공계에서는 10년만 지나면 첨단학문이라는게 확확바뀌는 문제를 겪는다. 그렇다면 성과없으면 교수를 마구 잘라내는 풍토를 만들던가 아니면 끝없이 교수를 충원할 비용을 구해야 한다. 교수도 마구 잘라야 할 것인가? 교수수준의 전문가가 되려면 오랜 기간의 공부가 필요하며 그런 사람들이 갑자기 나가서 노동을 할수도 없다. 취업에 도움이 안되는 즉 돈이 안되는 학과가 없어지고 교수들에게 성과 위주로 쥐어짜는 행정이 생기고 대학은 돈버는데 혈안이 되는 것에는 이런 문제가 어느정도는 있을 수 밖에 없다. 즉 대학이라는 기관의 시대적 위기다. 지식의 중앙집권제의 위기다.
한국의 위기는 이보다 더 심각하다. 한마디로 한국에는 철학적 근간이 부실하다. 세상일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융통성이 강하고 설득력이 있는 철학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철학을 바탕으로 대학의 구조가 만들어지고 시대의 변화에 대처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 대학의 정체성이다. 대학의 일반론적 위기란 어떤 의미로 이데올로기적 위기다. 절대적 이데올로기가 없기 때문에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이다. 21세기는 포스트모던한 시대니까 그렇다.
한국대학의 위기는 절대적이고 뭐고 간에 대학이 철학이라고 부를만한 것을 가지고 있는가를 느끼는 것 자체가 어려울 정도이기 때문이다. 대학이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가치판단에서 나타난다. 돈이 좋은건 너나할것없이 중요하므로 왜 이것은 돈이 안되도 하는가, 왜 학생을 교수를 이렇게 대우하는가에 대한 나름의 가치판단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가치가 있으니까 그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그걸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단순히 직업학교가 되버린 대학은 그런게 없으니 당장은 어떨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붕괴한다. 학문은 그저 취업을 위한 지식이고 대학은 그저 교수들에게 단순한 직장에 불과하며 강의는 학원강의처럼 지식을 파는 장소에 불과하다.
이렇게 말해보자. 어떤 사람이 물리학을 전공하기로 했다고 하자. 그 사람이 물리학의 직업적 안정성이나 돈을 얼마나 벌까, 나중에 교수할수 있을까 같은 것에 신경쓰는 것을 사람들이 '현실적'이라고 종종 말하지만 그리고 물론 중요한 것이지만 그 사람이 진짜로 물질적으로 현실적이라면 애초에 은행에 취업하는게 좋다. 누군가가 어떤 전문가가 되는 것은 가치때문이다. 그리고 가치는 철학에서 세상에 대한 나름의 해석과 시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 그런게 얼마나 있는가? 마치 부동산값 지켜주면 전과가 잔뜩 있는 사람이라도 대통령 뽑아주겠다는 모습과 다를게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한국대학은 더더욱 위기인것이다.
맺는 말
다시정리해 보자. 전쟁터에서는 총을 잘쏘는 사람이 생존확률이 높다. 그러나 진정한 해결은 전쟁을 멈추는 것이지 총쏘는 법을 더 잘 연습하는것에 있지 않다. 학벌에 목매는 풍조는 껍데기에 신경쓰는 우리 문화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그러다보니 뭐가 뭔지 모르게 된면이 있다. 이런 저런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이야기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가 된다.
뭐가 그럼 가장 원천적이고 근본적인 것일까. 철학이다. 그런데 철학은 철학인데 이 세상에서 실제로 고민하고 실천하는 철학이다. 남이 쓴 글을 학문적으로 분석하고 쌓아올려서 성을 쌓아놓은 철학이 아니다. 진정한 철학자라면 철학자의 이름 한명도 말하는 법없이도 자신의 메세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하는거 아닐까. 기존의 철학자들의 이론과 사고는 그것이 제아무리 훌룡한 것이라고 해도 수단에 불과하다. 즉 내 밥상의 밥을 퍼먹을 숟가락이다. 그런데 숟가락구하느라고 밥을 한수저도 못먹는다면 웃기는 일이다. 좋은 숟가락이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밥을 먹는 일이 아니겠는가.
철학하면 뭐가 되는가. 우리의 가치판단이 나온다. 나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때야 할것인지에 대한 나름의 느낌이다. 물론 나름의 느낌을 가진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무서운 일이다. 그냥 주어진 시스템을 당연한것으로 알고 거기에 순응하는 편이 현실적으로 보이고 나름의 느낌 운운하는 것은 자살적 행위로 보일수도 있다. 실제로 한 개인으로 보았을때는 자살적 행위일수도 있다. 눈하나만 있는 세상에서 눈두개인 사람이 괴물이니까. 그러나 모두가 순응해 버리면 상황은 결국 악화되고 내리막길만 생긴다. 전쟁이 더 격화되어 모두가 죽어가도 말리는 사람도 없게 된다. 그런 근본을 외면하고 무슨 생각을 해봐도 뭐가 옳은지 답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학벌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그것은 대학이 뭔가에 달려있고 대학이 뭔가하는 것은 한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선택하는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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