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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만원을 비자금이라 부르기 있기 없기.

by 격암(강국진) 2012. 5. 11.

사실 흑백론의 폐해는 내가 자주 말하는 것이라 새삼스레 다시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속의 흑백론의 문제가 워낙 심하고 최근에도 조현오 전 경찰총장의 문제로 다시 이것을 느껴서 몇마디 다시 써볼까 한다. 


200만원은 비자금일까 아닐까.


말 그대로다. 2백만원은 비자금일까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 뒤에서 결국 2백만원가지고 차명계좌가 있었다 운운한 조현오 전 경찰총장에게 분노하고 있다. 조현오가 자신을 방어하는 방법의 근간에는 이것도 차명계좌고 비자금이라고 부를수 있다라는 태도가 있다. 즉 촛점을 비자금이냐 아니냐 차명계좌냐 아니냐의 이분법에 맞추는 것이다. 


나는 그런 행동에 분노하는 사람이지만 이런 현실에 대해 그게 뭐가 비자금이야라고 당연히 아니지 말하는 것만으론 문제의 본질이 분명해 지지 않는거라고 생각하며 특히 그것이 한국에서 계속 반복되어지는 뻔한 모순을 제거할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보자. 만약 노무현이나 그 가족의 손을 거친 돈인데 다른 사람명의로 천억쯤 되는 계좌가 발견되었다고 하자. 그럼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차명계좌에 보관된 비자금이라고 말하는데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럼 그 액수가 2백만원으로 줄어들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결코 이것을 죄악으로 말하자고 하는게 아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이분법적으로 즉 이거다 아니다적으로 이야기해서 모순을 만들어 내고 사회적 분란을 만들어 내며 끝에 가서는 내가 틀린 말을 한것은 아니다로 변명을 하려고 한다. 


그렇기에 설사 조현오의 주장에 분노하는 사람도 이 이분법의 문제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른 이분법들의 예


이분법이라고 내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세상을 둘로 나누는 것인데 그런 예들은 헤아릴수 없이 많다. 예를 들어 불법선거를 했냐 안했냐, 이 정부가 뇌물을 먹었는가 안먹었는가, 너는 진보냐 보수냐 같은 질문들이 끝없이 반복된다. 요즘 화제가 되는 나꼼수도 너희들은 마초냐 아니냐 같은 질문의 연장선상에서 고생을 한적이 있다. 


이런 질문들은 종종 괴상한 주장들을 일상화 시킨다. 내 기억에 남앗던 것은 한나라당시절에 그들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부패를 가르켜 역사상 최고 부패라고 하거나 국가 경제 파탄운운하는 행동들이었다.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에 부패사건이 없었는가? 부당한 권력의 사용이 없었고 노동자가 탄합당한 사건이 없었는가? 당연히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아래에 쓰겠지만 나는 이런 사건들을 없던 것으로 하자라고 하는게 아니다. 그럼 그런 것들을 가열차게 비판하는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사실은 심지어 그것도 아니다. 


이 부분도 중요한 부분이다. 왜 사람들은 어떤 것을 아예 없던 것으로 하던가 아니면 가열차게 비판함으로 해서 아예 박멸하고 없애 버리려고 하는가. 그것의 뿌리도 사실은 이분법에 있다. 부패했던가 아니면 부패안했던가 하는 두 종류의 이름표밖에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뭐야 그러니까 그걸 무시하고 용서하고 부패같은 것은 '실질적으로' 없었다라고 해야 하는거야 아니면 부패했다고 하는거야 라고 묻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양자택일의 관점이 부질없는 말싸움을 만들어 내고 백만원 도둑질 한놈은 죽일놈인데 백억 사기친 놈은 그놈 크게 될 놈이네 식의 관점이나 둘다 똑같은 범죄자 식의 관점이 등장한다. 


근래에 사법처리에 대한 형평성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박근혜 커터칼 사건이라는게 있었다. 박근혜에게 커터칼을 들이댄 사람은 징역 10년형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에 수없이 등장하는 강간사건 같은 것을 보면 그보다 형량이 훨씬 적다. 12살 여중생을 집단 성폭행하고 집행유예를 받은 일도 최근에 있었다. 도대체 범죄다 아니다라는 걸로 정의는 실현된다고 할수 있을까?


요즘 통합진보당의 선거부정이야기로 시끄럽다. 그에 따라 달려나오는 말이 항상 보면 보수는 아무리 큰 죄를 저질러도 그러려니 하고 진보는 뭔가 일이 터지면 당장 죽일놈이 된다는 것이다. 이상득의원의 보좌관이 몇억의 돈을 받아도 그일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지금 신문에 나오는 여러사업들의 의혹을 보면 거기에 관련된 돈들이 천억 조 십조 백조 이야기가 쉽게 나온다. 그러나 아마 유시민이나 문재인이 백만원쯤 받고 부정을 저질렀다거나 하는 문제가 터지면 그 이야기가 모든 부정부패 사건을 다 뒤엎어 버릴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이유는 적어도 부분적으로 이 이분법의 문제에서 한국사회가 자유롭지 않으며 특히 진보진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더욱 취약하기 때문이며 이러한 사실을 조중동을 포함한 보수진영에서 악용하는데도 무력하게 거기에 당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많이 한다고 반드시 이 이분법의 문제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부많이 하고 개념적 명확성에 매달리기 좋아하는 사람들, 이념화가 잘되는 사람 중에 상당수는 이문제에 더욱 취약하다.  한국 사회 진보세력의 거듭된 약점은 여기에 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100% 무결점 천사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속으로 더 썩어가고 그러다가 일이 터지면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곤한다. 그런 문제가 벌어지는 근원적 문제는 윤리의식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방식의 문제다. 그들은 너무 빨리 이거다 저거다 딱지붙이기를 하는데 익숙하며 그것을 지적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적이고자 하고 합리적이고자 하는 사람은 때로 그때문에 불합리해지는 것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 이 문제는 뿌리가 깊다. 관심있는 분들은 글 말미에 링크한 옛날 글도 참고하면 좋겠다. 논리적 사고는 개념들을 인과론적으로 쌓아올리는 것이며 공부 많이했다라는 것은 그런 훈련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첫째로 물리나 수학같은 엄밀한 학문과 사회현상의 인식의 엄밀성은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개념화라는게 오류를 반드시 만들어 낸다. 그리고 논리적 구조가 길어질수록 이 오류는 누적되어 실질적으로 이 오류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사람은 괘변을 펼쳐서 뭐든지 정당화할수 있는 능력을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며 그래서 자신의 오류를 인식할수 없다. 이념에 빠진 사람이 더 멍청해 보일때가 있는 것은 이때문이다. 



있는 걸 있는 대로 보라.


그럼 이분법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사고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선거부정이나 부정부패가 있을때 이거 부정부패야 아니야, 이정도는 봐주자는 거야 아니야 같은 상황에서 답은 뭔가. 봐줘야 하나 아니면 냉정히 비판해야 하는가. 


둘다 아니다. 어떤 판단이나 이름붙이기는 최후 중의 최후에 반드시 필요할때만 하는 필요악이다. 누군가가 쓰레기를 길에 버렸다. 인터넷에서 누군가에게 듣보잡이라고 부르거나 토할 것같다라는 말을 했다. 이것은 나쁜 일인가 아닌가. 우리는 필요하다면 나는 이런 말들이 싫다라고 할수는 있다. 싫다 좋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니까 이분법이라고 해도 큰 폐해가 없다. 그러나 이런 사태를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범죄다 아니다 같은 일반적인 구분에 집어넣지 말고 사태를 그냥 사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 하다. 


받아들인다는게 그걸 용서하라거나 그것에 분노하라거나 하는게 아니다. 사실을 그냥 사실 그자체로 보는 선에서 정지하라는 것이다. 이 세상 싸움의 대다수가 아니라면 상당수는 사실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미리미리 이름붙이고 이거다 저거다 분류를 하고 말하는데서 일어난다. 그것이 논리적 오류를 누적시키고 그래서 그것이 자꾸 누적되면 김대중정권이 전두환정권이나 박정희정권보다 더 부패했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이명박과 노무현은 아무 차이가 없다라고 하는 판단이 나타난다. 


물론 현실에서 우리는 이거다 아니다라는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예를 들어 선거를 한다면 표를 주거나 말거나 둘중의 하나니까. 그러나 그때까지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인식하고 그걸 누적시키다가 그 누적된 결과들이 보여주는 전체적인 그림이 이쪽이냐 저쪽이냐를 보여주는데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빨리 그렇게 한다. 


너무 빨리 사람들을 나누고 판단해 버리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맺는 말


이런 말 다시 안쓰는 날이 오면 좋겠지만 그런 날이 가까운 시기에 올것같지는 않다. 이 문제는 거기에 대한 경각심이 없으면 빠져들지 않기가 어려우며 일단 빠져있는 사람은 탈출구를 못찾는 경우가 대다수다. 혹시 관심이 있다면 전에 내가 쓴 글도 참고해 주면 좋겠다. 


흑백논리와 백분율 논리 ( http://blog.daum.net/irepublic/7887587 )

배중률과 민족적 자존심 ( http://blog.daum.net/irepublic/78881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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