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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유감론

by 격암(강국진) 2012. 8. 13.

런던 올림픽의 열기가 이제 좀 가라앉는것 같다.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었고 감동과 애국심을 불러 일으켰던 올림픽은 그러나 나에게는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좀 거리를 두고 싶은 존재였다. 사람들은 올림픽이라는 행사가 주는 밝은 면은 보지만 그 뒤의 어두운 면에 대해서는 그렇게 민감한 것 같지 않다. 그러나 그 어두운 의미는 내게 마냥 대한민국을 외칠수없게 만드는 면이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올림픽을 전혀 즐기지 않거나 올림픽을 폄하하고만 싶은 생각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생각과 측면도 기록해 둘 가치가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수이건 일반 시민이건 이런 이야기를 그저 흥이나 깨는 재미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할지라도 말이다. 


챔피언의 빛이 만드는 어두움


첫번째로 내게 다가온 올림픽의 의미는 바로 1등이 모든 것을 가지는 행사이며 그렇지 않다고 해도 기껏해야 3등까지만 의미가 있고 나머지는 무의미하게 만드는 행사라는 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고 한껏 부인할수 있지만 올림픽이라는 행사의 형식 자체가 그럴 수 밖에 없다. 


그 형식은 어떤 가치판단을 근간으로 한다. 올림픽은 등수를 다투며 3등까지만 시상대에 올라가서 국가의 순위를 바꾸며 사실 금메달이 압도적으로 중요하게 보이게 만드는 경기다. 모든 것을 금메달의 숫자로 환원하기도 한다. 11명이 오랜동안 뛰는 축구의 금메달도 1개고 혼자서 10초남짓 뛰거나 총으로 쏘아 과녁을 맞추는 백미터 달리기나 사격도 금메달이 하나다. 우리가 인간의 가치는 국영수 점수에 있는게 아니라고 부정해도 수능점수로 대학입시가 결정되면 국영수점수에 목을 매야 하듯 금메달이 평가되는 기준이 있는 올림픽은 그에 따른 가치판단에 우리가 목매게 하고 결국 몰입이 심하면 심할수록 그 가치판단을 받아들이게 된다. 


올림픽의 뒤에 있는 다른 가치판단도 있다. 그것은 돈이다. 올림픽은 이미 상당히 상업화되었고 따라서 자본은 언론을 동원하여 올림픽이라는 행사를 통해 그 상업적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 사람들이며 언론은 발빠르게 누가 올림픽을 통해 얼마나 벌어들이는가를 계산하고는 한다. 


나는 올림픽에 관련된 가치판단들이 다 전부 100% 잘못되었다거나 몰상식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나는 다만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는 몰입이 지나치면 그 가치판단에 우리가 중독될수 있다는 점이 느껴질 뿐이다. 역시 인생은 한방이며 1등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생각같은거 말이다. 우리는 역시 인생은 올림픽이며 금메달을 목에건 참피언이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게 되지는 않는가? 


그런 생각을 특히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어한다. 바로 사회적 기득권이라고 할 사람들이다. 모두가 승자가 되는 같이 사는 사회같은 발상은 금메달의 빛앞에서 약자의 변명같고 비현실적인 이야기인것처럼 보일때가 많으며 승자를 영웅으로 만드는 챔피온을 향한 찬사는 역시 승자는 패자와 비교할수 없이 다르며 그들이 모든 것을 가지는 것이 화끈하고 공평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영웅은 범인과 비할수 없는 존재다. 인생은 한방이다. 한번 바벨을 들어올려 국민영웅이되고 한번 골을 넣어 인생을 바꾼다. 이것이 인생이다!라고 외치게 되기 쉽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진실의 일부일 뿐이다. 그 맞는 말에는 어두운 반대편 그림자가 있고 올림픽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분위기는 그 반대편 그림자를 더더욱 크게 만든다. 나는 그것을 말할 뿐이다. 


민족과 국가의 자랑인가?


두번째로 올림픽이 과연 민족이나 국가의 영광인가 아닌가 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앞의 말들도 그렇고 지금의 말도 그렇지만 이런 말은 김연아같은 스타 체육인은 물론 그를 좋아하는 국민들 모두가 별로 좋아하지 않을 말이기는 하다. 나는 개인적 노력 끝에 세계적인 업적을 이뤄낸 체육인들에 대해 인간적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적어도 누구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거기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를 찜찜하게 하고 구질구질하게 느끼게 만드는 것이. 한국은 올림픽에서 세계5위다. 독일보다도 위다. 이것은 한민족의 위대함, 한국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은 전체 설명의 일부일 뿐이다. 나머지 일부는 한국사회는 유독 올림픽에 목을 매는 사회라는 것이다. 우리의 뛰어남도 한 이유지만 나머지 이유는 우리는 다른 사회보다 더더욱 올림픽에서 승리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인구로 보나 경제력으로 보나 우리보다 위인 독일같은 나라보다도 더 순위에서 위에 올라설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순수히 한민족은 아리안족보다 더 뛰어나서 올림픽에서 승리한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설명이다. 


사실 특정한 나라와 비교하지 않아도 한국의 체육은 선진국의 그것에 비하면 매우 다르다. 수영이던 축구던 야구던 피겨스케이트던 한국의 체육은 엘리트 체육이며 절반은 프로스포츠적인 체육이다. 다시 말해 대중이 즐기는 가운데 뛰어난 선수가 나와서 한국을 대표하는 시스템인 것이 아니라 대중과는 매우 다른 몇명의 사람이 한국대표로 나가는 것이다. 


한국에 어쩌다가 키가 3미터가 되는 장신이 나와서 세계1등을 했다고 하자. 이것이 과연 한국인의 키가 세계최고라는 의미가 될까? 그걸로 한국자랑을 한다는 것은 마치 로또 맞은 사람이 자신이 로또를 맞을 정도로 운이 좋다고 자랑하는 그런거 아닐까? 우리는 뭘 자랑스러워 해야 할까. 우리라고 할때 우리를 대표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국에서 뛰어난 스타가 나오는 것을 좋은 일이고 매우 기쁜일이며 분명 어느정도 한국사회, 한국인의 뛰어난 점을 보여주는 일이기는 하지만 김연아 같은 스타를 통해 한국을 자랑한다는 것은 마치 스타가 된 이후에 김연아를 받아들인 고려대가 고려대를 자랑하는데 김연아를 쓰는 것같은 부끄럼을 모르는 측면을 보여준다. 도대체 김연아가 김연아가 되는데 고려대가 한일이 뭔가?


한국은 지독한 입시열풍과 승자 독식시스템때문에 스포츠에서 비상업적이고 교육적인 순수한 즐거움을 상실한지 오래되었다. 한마디로 일찌감치 죽자고 노력해서 금메달따거나 프로선수가 될 사람들이 아니면 스포츠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격리된다. 초등학생부터 입시에 바쁜나라에서 스포츠란 노는 일이고 그걸 즐거워 열심히 하려는 아이에게 어른들은 흔히 니가 그걸로 밥먹고 살수 있을것같아?라는 말을 한다. 돈과 성공이라는 가치를 제외한 체육의 가치는 거의 믿어지지 않는다. 조금있다고 해봐야 그래 열심히 공부하려면 체력도 좋아야지 정도랄까. 


우리나라에서 스포츠란게 정말 뭘까. 프로야구가 있는 야구야 그렇다고하자. 우리가 평소에 양궁이나 피겨스케이팅을 얼마나 즐기는가. 좀 과장해 말하자면 맛을 느끼지 못하는 혀를 가진 사람들이 외국에서 인기있다는 음식을 들여와 찬탄하면서 먹어대는 모습 같은 면이 우리나라 스포츠에는 있다. 압도적 세계1위를 자랑하는 한국여자양궁에 대해 우리는 한민족의 피에 활잘쏘는 DNA가 있다는 둥 하는 말을 하지만 만약 올림픽같은 세계대회가 없는 세상이 온다면 한국에서 활쏘는 여자가 얼마나 있을까. 우리는 양궁이던 국궁이던 활쏘기 좋아하는 사람들인가? 우린 결국 외국에서 붙여준 상패, 타이틀, 그런 것에 환호한다. 그 자체를 자기가 좋아하는 모습이 별로 없다. 자기가 뭘 좋아해서 한다는 상식은 거의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올림픽을 통해 드러난 어두움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올림픽은 그 즐거움과 열기만큼이나 한국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 올림픽은 올림픽이 상징하는 가치체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 한국 대중을 세뇌시키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림픽은 태능선수촌이라는 시스템과 맞물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한가지 방식을 보여준다. 그것은 이나라에서 한국이 스포츠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택해야 한다고 계속 반복되어 선전되는 이데올로기다. 


그 이데올로기는 승자가 모든 것을 가진다. 이기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인생은 결국 한방이며 고독한 것이며 승리라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와 같은 이야기를 던진다. 그 말들은 모든 이데올로기가 그렇듯 진실의 일면을 가지고 있어서 계속 반복하면 지극히 당연한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더구나 모두가 그것을 믿으면 환상은 현실이 된다. 그걸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시들시들해 지고 바보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매우 삐뚤어진 것이며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 그것에 대한 몰입이 지나치면 모든 이데올로기가 그렇듯 그 몰입은 우리를 삐뚤어지게 한다.


스포츠가 아닌 경제 분야나 학문 분야에 그런 것을 적용하는 문제가 가장 크지만 스포츠도 그렇다. 이제 우리는 상업적이지 않고 교육적인 스포츠, 그저 순수히 좋아하는 스포츠를 거의 상실했다. 인기 좋다는 야구도 직접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프로야구에 열광하는 아빠들은 아들과 캐치볼이라도 하는가? 마지막으로 공이라도 한번 때려본게 언제인가. 그게 스포츠인가? 차라리 가끔은 직접하면서 프로들의 경기에 열광하는 스타크레프트가 더 스포츠답지 않은가? 스포츠가 가지는 교육적 효과, 즐거움, 단합의 효과를 생각하는 차원에서는 애초에 등수가 의미가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등수따지는 스포츠만이 판을 친다. 


삐뚤어진 이데올로기는 지속적으로 말한다. 네가 뭔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중요치 않다고. 중요한 것은 시스템에 의해서 주어지는, 외부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금메달을 따고, 트로피를 따야 챔피언이다. 따라서 금메달을 따는 것에 집중해야지 네가 뭘 좋아하는가를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금메달도 따지 못할건데 넌 그걸 왜하냐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1등은 커녕 3등도 못하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 된다. 금메달로 상징되는 가치의 기준은 항상 외부에서 온다. 시스템에서, 외국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 판단이 외부에서 온다는 것이 진짜 중요한 점이다. 생각해 보면 3등이 아니라 세계 10등도 정말 정말 대단한 것이다. 해마다 치뤄지는 수능시험에서 전국 3등까지만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 이유는 3등까지만 대학에 가는것이 아니라서 그렇다. 우리는 자연스레 상위1%가 대단하다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도 그정도가 소위 명문대에 가기 때문이다. 공부는 왜하나. 오로지 대학에 가기 위해서 한다. 그 기준도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새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잊어버린다는 것이 기억할 만한 것이다. 그냥 그건 원래 그렇다고 생각하게 되며 그래서 어느새 세계10등따위는 당연히 챙피한 성적이 되고 마는 것이다. 


여러 판단들은 모두 어떤 문맥에서는 옳고 다른 문맥에서는 틀리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의 문맥만을 기억하고, 남이 들려주는 문맥만 기억하는 것이다. 그게 이데올로기 중독이다. 그리고 올림픽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선전해주는 창구가 되며 그렇기에 곰곰히 생각하면 우리가 어떤 이데올로기에 중독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사회는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자꾸 하지 말라고 한다. 삶이란 항상 정글속의 삶과 같은 것이며 좋아하는 일은 버리고 챔피언의 자리나 돈을 향해 뛰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을 너의 금메달에 대한 욕망에 던져넣어라. 나머지는 잊어라. 인생은 고독한 승부다라고 말한다. 누군가가 그런 이데올로기를 아주 좋아한다. 그리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잃어버렸다. 


그걸 뛰어넘을수 있어야 우리는 진정으로 올림픽을 즐길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할때 크고 짙은 그림자가 우리에게 큰 짐으로 남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잃어버렸다. 따라서 그들은 다른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런 올림픽 유감론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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