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9.7
약속하기와 채우기
우리는 자신과 많은 약속을 하고, 여러가지것을 지키려고 한다. 매일 운동을 하기로 약속을 하고, 아이들과 매일 얼마간 시간을 같이 보내기로 하고, 책을 한주일에 한 권은 읽으려고 하고, 아내와 남편이 따로 나가서 둘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 것같은 일들이다. 각자 직장에서 생기는 이런 저런 약속도 많다.
그런데 그런 약속들을 지키며 사는 일은 달리기와 비슷하다. 한걸음을 달리는 것이 다음걸음과 이어지는 법이라 한번 발이 꼬이면 때로 그걸 다시 정돈하기가 어렵고, 어쩌다가 꽈당하고 넘어질 법이면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것을 느낄 때도 있다. 아무튼 사는 것은 긴 마라톤이라 누구나 때로는 아 지금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피로를 누적시켰구나하고 느끼며 거기서 어떻게 벗어나야할지 막막한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약속들은 어떤 때는 가구와 비슷하다. 생활을 할때 하나 하나의 가구가 유용하고 아름다운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들의 조화도 중요하다. 집은 손바닥만한데 이것저것 쓸모있다고 마구 가구를 들여놓으면 집이 숨이 막히는 지경이 되고 무엇보다 각자의 가구가 가지는 유용성이나 아름다움이 훼손되고 만다.
사진과 말이 주는 교훈
내가 좋아하는 책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에도 나오고 실제로도 종종 많은 사람이 이야기하는 현상이 있다. 어떤 멋진 장소에 가서 사진을 찍어보면 실제로는 너무 멋졌는데 그 사진속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실은 사진에는 그 반대되는 마술도 존재한다. 실제로 그 장소에 가서 그 물건을 보면 그리 대단하지 않은데 사진사가 어떻게 찍었는가에 따라 너무도 근사하고 아름다운 것이 되는 일도 있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효과가 들어가지만 가장 중요한 기본적 효과는 뭘 넣고 뭘 빼는가 하는 것이다. 네모난 사진의 공간안에 사진사는 이런 저런 것은 넣고 이런 저런 것은 뺀다. 그렇게 함으로서 보는 사람이 모든 것을 넣고 보는 상황에서는 잘 알 수 없었던 것을 느끼게 한다. 예를 들어 사진을 보면 신비한 깊은 산속에나 있을 것같은 꽃밭을 찍은 것같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알고보면 사진사가 각도를 잘 잡아서 주변에 늘어서 있는 전봇대며 이웃의 담장이며 하는 것들을 지워서 그렇게 보이게 만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진의 진정한 의미는 테두리에 존재한다. 그 테두리 바깥에도 분명 무언가가 있었는데 사진은 테두리를 치고 그 안의 것만 보여준다. 사진안에 있는 것도 사진 바깥에 있는 것도 모두 중요하다. 너무 멋졌는데 사진으로는 그것을 잡을 수 없는 경우는 그 멋진 것이 사진이라는 테두리에 집어넣기 어려운 경우다. 실제로보면 별 것 아닌데 사진으로 보면 아름다운 경우는 주변의 것이 그것의 아름다움을 억압하는데 사진사가 그것을 지워버린 경우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하는 기본적인 역할은 뭘 사진안에 넣을 것인가 뺄 것인가를 선택하는것이고 그 선택이 효과를 만들어 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진만 그런게 아니다. 말도 그렇다. 사진과 마찬가지로 말의 기본적 아름다움과 효과는 뭘 말했는가 이상으로 뭘 말하지 않았는가 뭘 제거했는가 하는 가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다. 사진이 그러하듯 말도 이 세상의 모든 일을 다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여행에 대한 소감을 말하든, 우리가 왜 저 집을 사야하는가를 주장하는 말을 하든 우리는 그 말속에 넣는것이상으로 뺄 것에 신경써야 한다. 아주 멋진 해바리기 밭의 사진도 각도가 약간만 달라서 전봇대 하나가 들어가면 전혀 다른 인상이 되듯이 우리의 말도 들어가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라도 들어가면 그 느낌이 전혀 달라진다. 말의 기본적 기술은 뭘 말하는가 이상으로 뭘 빼야 하는가에 달린 것이고 이때문에 노숙한 작가들의 글을 보면 뭘 넣은 것에 감탄하는 것 이상으로 필요하지 않은 것을 쏙 빼고도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능력에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생활과 약속
우리는 흔히 1년에 걸쳐서 한가지 일을 한 사람보다는 열가지 일을 했다는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 이력서를 볼 때 일단 이력서에 쓸 것이 많은 경우가 좋다. 대학입시에 참고자료를 낼 때는 엄청난 분량의 증빙서류를 보내는게 최고로 좋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그건 사실일 수도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 인생을 길게 볼수록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떤 그림은 커다란 여백을 가지고 점 몇개 찍었는데 적당한 자리에 찍힌 그 간단한 선몇개 점몇개가 근사해 보인다. 반면에 두서없이 이것저것 채워넣기만한 그림은 볼품이 없는 경우가 많다.
요즘 아이들이 자기가 아는 것을 줄줄이 말할 때 나는 종종 이 아이들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너무 많은 것을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것을 한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느낌이다. 느낌이 강하지 못하면 결코 길게 가지 못하고 깊어지지 않는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집에 산처럼 책이 있고 그걸 읽은 것은 좋은 일이나 결코 책 몇권 더 읽었다고 반드시 그만큼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책을 한권읽고도 깊은 이해를 하고 누군가는 백권 이백권을 읽고도 그저 남의 이야기를 뜻도 모르며 줄줄 늘어놓는데 바쁘기도 하다. 정치인들이 선거에 나와 그가 살아온 이력을 검사받는 경우를 보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을텐데도 몇개의 일을 했기 때문에 그 인생은 전혀 달라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도 뭘 한것보다 뭘 하지 않는 것의 미덕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자기와의 약속이 가구와 같은 거라면 그리고 우리의 유한한 인생이 혹은 한계절 한시절의 우리의 삶이 하나의 사진이나 소설같은 예술작품이라면 여기서도 뭘 넣는것 이상으로 뭘 빼는가가 중요하다. 우리는 인생의 여백을 보통 금기시 하지만 인생은 여백이 있음으로써 비로서 작품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때로 꽈당하고 넘어져서는 도저히 일어설 수 없을 것같은 좌절을 느낀다면 그 좌절은 그림에다 이것저것 그려넣어서는 이제 감당이 안되는 상황이 되어버린 화가의 좌절같은게 아닐까. 살아있다면 누구나 더 살아갈 힘은 있다. 없는 것은 대개 희망이다. 희망이 없는것은 내가 그려야 할 화폭이 광대한 가능성을 가지고 비어있다는 것을 느낄 때보다는 여기저기 마구 채워넣어서 이제 이 그림은 수정하는게 불가능하고 구제불능이라고 느낄 때가 더 많다.
우리는 여러가지 것에 제약을 받는다. 우리가 한 말들, 스스로에게 남에게 한 약속들, 우리가 세웠던 계획들같은 것에 제약을 받는다. 그 제약은 종종 정신차려보면 너무 많다. 우리는 항상 무슨소리야 해낸게 아무 것도 없는 걸, 이것도 저것도 해야지. 매일 놀기만 하고 시간낭비만 했는데라고 한다. 그런데 노는건 뭐고 시간낭비를 했다는 것은 뭘까. 법륜스님의 스승 도문은 당시 고등학생으로 할일이 많아 바쁘다는 법륜스님을 붙잡고 너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줄도 모르면서 뭐가 바쁘냐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놀았다고 한게 실은 가장 열심히 산 것일수 있고 열심히 살았다고 한게 가장 시간낭비를 한 것일 때도 있다. 죽기전에 인생에 대해 말한 사람들은 일에 바빠서 가족과 시간을 많이 안 보낸게 후회된다고 말한다지 않는가. 한번도 멈춰서지 않았던 것이 실은 가장 비효율적으로 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반드시 이런게 옳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 소설은 많고 아름다운 사진도 많다. 연애소설도 있는가 하면 구도소설도 있고 자연의 사진도 있는가 하면 풀하나 안나온 도시의 광경을 아름답게 표현한 사진도 있다. 이게 무조건 옳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진이라면 초록 풀이 나와야 하고 소설이라면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 나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전혀 달라보이는 예술작품들에게도 공통점은 있다. 바로 뭘 빼고 뭘 넣을가에 대한 고민이다. 무조건 꽉 채운다고 예술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이 꼬이는 것같다면 이 점을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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