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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이름없는 호의

by 격암(강국진) 2012. 9. 10.

2012.9.10

나는 지금 일본 와코시의 7층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다. 이 아파트에는 내가 시작시킨 한가지 작은 호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엘리베이터에 모기향을 놓는 일이다. 여름이면 모기가 날아다닌다. 집에서는 다들 모기향을 피지만 엘리베이터에서는 모기가 한마리 들어올 때면 여간 불쾌하지 않다. 도망갈 곳이 없으니까 그렇다.  몇년간 나는 다른 사람이 그랬듯이 그저 참고 견뎠다. 그러다가 우연히 집안에 여분으로 있는 모기향을 보았을 때 이걸 엘리베이터에 걸어놓자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몇일후 나는 걸려있는 모기향 옆에 누군지 모르지만 고맙다는 쪽지가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서 해마다 이름없는 누군가가 어김없이 모기향을 걸고 또 누군가는 그나 그녀에게 고맙다는 쪽지를 남긴다. 엘리베이터에 모기향을 놓는 일이 작은 전통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내가 이 일을 거론하는 이유는 내가 행한 작은 호의를 자랑하자는 의미보다는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 작은 호의들을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이 세상에는 크고 작은 원래 그런 일들, 이런 저런 관습이며 전통이 있다. 우리는 대개 이런 관습이나 전통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관심을 가져도 부정적인 것을 중심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기 쉽다. 즉 이러저러한 전통이 얼마나 사람들을 해치고 있는가와 같은 것에 집중하기 쉬운 것이다. 우리는 좋은 것은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아프고 나쁜 것은 내가 손해보는 일이라 민감하게 반응하고는 한다. 

 

여기 가상의 형제가 있다고 하자. 어느날 형은 사교적이지 못하고 세상물정에 어두운 초등학교 동생을 자세히 보게되었다. 그 동생의 옷입은 모습을 보니 지저분하고 촌스럽기 짝이 없다. 그래서 형은 동생의 옷을 고쳐주고 이렇게 입는 거라고 말해준다. 그러나 애초에 동생은 형이 해주는 일의 의미따위는 전부 다 알지 못한다. 옷의 모양새라는게 중요한지 알고 있었더라면 자신이 노력도 했을테지만 너무 어린 동생은 신경써주는 형이 고마울뿐 정확히 형이 뭘 해주는지 모르는 것이다. 형이 그 일을 잊고 지나가면 보살핌을 받은 동생은 그저 어렴풋한 인상으로나 뭘 기억할뿐 자신이 어떤 호의를 받은가도 모르게 되고 그 일은 결국 이름없는 호의가 되고 만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도움을 받은 줄도 모르는 것이다. 

 

세상이 알아주고 받는 사람이 고마워하는 호의도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 이런 이름없는 호의가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하게도 느껴진다. 세상이 알아주는 호의는 대단한 일이라서 날마다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누구도 날마다 달리는 전차앞으로 뛰어들어가서 사람을 구하지는 않는다. 받는 사람이 고맙다고 느끼는 호의는 그 호의가 가지는 의미가 받는 사람의 상상과 이해의 영역안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 즉 사회적으로 선전되고 권해지는 호의다. 하지만 이름없는 호의는 종종 받는 사람이 자기가 뭘 받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름없는 호의가 되는 것인데 그래서 그 댓가로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 고맙다는 말도 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름없는 호의는 그 호의를 받는 사람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탱해주고 지켜주는 것이다. 바로 옷잘입는 것의 의미도 모르는 아이가 옷을 잘입고 다님으로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유명한 영화배우 톰크루즈는 케이티홈즈와의 사이에 수리라는 귀여운 딸을 낳았는데 케이티 홈즈는 딸에게 뭐든지 해주는 톰 쿠루즈를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유명인이고 부자인 톰쿠르즈는 어린 딸이 제아무리 철없는 소원을 말해도 다 해주는 그런 아버지였는데 그게 교육상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것도 결국 따지고 보면 보이지 않는 호의다. 아직 어린 수리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해주는 아빠가 최고로 보이고 잔소리하고 뭘 금지시키는 엄마는 귀찮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물론 케이티홈즈가 옳은 것이다. 

 

신경써 보기만 하면 이런 종류의 이름없는 호의를 목격하게 되는 일은 아주 흔하다. 어린세대들을 보면서 혹은 나와 처지가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가족간에도 이웃간에도 많이 있다. 아이들은 자기가 어떻게 자기가 되었는지 다 기억할 수가 없다. 어린 시절 부모가 선택한 뭔가가 아이들을 만들어 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런 세세한 것을 부모가 다 기억하지도 않을 뿐더러 아이들은 더더욱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들 중에는 실은 교통사고로 큰 일을 겪을 뻔했는데 누가 도와줘서 그걸 피한 사람들도 꽤 많을 것이다. 그런데 도와준 사람도 그걸 잊었고 호의를 받은 우리는 지나가던 어른이 소리 한번 쳐준 것의 의미를 모르고 있다. 

 

수리같은 아이는 나중에 커서 엄마 나를 지켜줘서 고맙습니다라고 생각하는 어른이 될수도 있고 그저 자기가 엄마를 귀찮게 생각하는 마음만 기억해서는 이유는 잘모르지만 엄마는 어릴때부터 싫었어라고 생각하는 어른이 될수도 있다. 이것은 선후배간에도 있는 일이고, 선생님과 제자사이에도 있는 일이며, 이웃간에도, 친구간에도 있는 일이다. 관공서에 앉아서 사람들의 편의를 봐주는 사람이나 택시운전을 하고 거리 행상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있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가 감사해 마땅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지 않다. 누가 우리를 지켜줬는지 다 알 수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 기억하는 고마운 사람들, 이름있는 호의를 베풀어준 사람들은 물론 좋은 사람일 가능성이 크지만 사실은 그저 우리가 그들을 좋아해서 그들의 호의를 기억하고 그 의미를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서 받는 사랑은 당연한 것이고 누군가에게서 받는 약간의 관심은 뼈에 사무치도록 감사하게 느끼는 경우도 있다. 

 

적어도 정치판을 보면 사람들사이에서 우리는 누구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 크게 의견이 갈린다는 점을 쉽사리 알수 있다. 그래서 정치적인 반대편 진영의 지지자들을 보면 때로는 미워하고 저주해야 마땅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야단인 것같은 느낌을 받지 않는가?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쪽 저쪽 이전에 -그것도 물론 중요한 문제겠지만- 아예 이쪽이고 저쪽이고 인식자체가 안되는 사람들이다. 법정의 살아온 이야기나 지정환신부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그런 사람들이 찢어져가는 한국사회를 붙잡아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그들은 보이는 사람들인데도 그렇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국사회를 붙잡아 온 사람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민주화운동시대가 끝나고 정치가로 나선 사람들은 맨앞에서 자신이 뛰었으며 민주화운동을 내가 이끌었노라말하기 쉽지만 그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이름없는 곳에서 이름없는 역할을 하고 이름없이 사라져간 많은 사람들때문이다. 사실 세상에는 항상 이름없이 성실한 사람들이 있다. 이름을 잘 내고 자기의 공적은 꼭 남들에게 인지시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리석어 보일 정도로 꾸준하고 소리없이 물러가는 사람들도 있다. 세상에는 부모나 선배의 사랑은 알지 못하고 나는 혼자 컷고, 나는 혼자 그 일을 다 했다라고 말하는 자식이나 후배도 있다. 자기가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를 너무 모르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생각이 깊은 사람들에게서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뭘 모르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호의에 둘러쌓여 살아왔고 살고 있는지 다 알지 못하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저 고독히 진공 속을 날아다니는 이상기체속의 입자처럼 우리는 우리를 고독한 개인으로 파악하고 잘되는 것도 내 탓, 잘 안되는 것도 내 탓 하는 식으로 모든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데 익숙하다. 그러므로 재벌2세로 태어나 승승장구해도 자신의 성공은 자신의 노력탓이라고 인식하기 쉽고 자기만큼 돈을 못 버는 사람에게 너도 나처럼 열심히 살지 그랬냐고 말할 수 있는게 사람이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했어도 실은 성공한 자신은 운이 좋았던거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우리는 이름없는 호의에 둘러쌓여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범사에 감사하라,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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