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19
어쩌면 행복한 것이란 불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정의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많은 이유들을 제거해야 하며 그렇게 했을 때의 상태를 행복한 것으로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테지만 요즘들어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나 자신을 보면서도 그렇지만- 생각나는 두가지의 주제가 있다. 그것들에 이름을 붙여 보자면 하나는 일관성의 문제고 또 하나는 이야기의 문제다.
일관성의 문제
도박사는 불행하다. 왜냐면 도박이란 애초에 확률적으로 보았을 때 도박장을 운영하는 사람들만 배부르게 만들어 주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도박을 해서 한번 따고 그만둘 수 있다면 또 모른다. 그러나 도박은 중독이 된다. 즉 잃으면 잃어서 계속하고 따면 따서 계속하므로 결국 오래 오래 도박을 하다보면 다 잃고 도박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야 즉 완벽히 희망없는 상태가 되어서야 도박을 그만두기 마련이다. 사실 그런 상태가 되어서도 도박사는 종종 마음으로 말하자면 계속 도박을 하고 있으니 도박은 어쩌면 영원히 끊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단순히 도박이 나쁘다 같은 말로 불행을 설명하려는 것은 아니다. 도박사는 세계관에 있어서 자기가 자기 꼬리를 잘라먹는 것같은 자기 모순적인데가 있다. 도박사는 불행하다. 왜냐면 도박이 긴장을 주고 실망을 주고 그다지 건전하고 가치있는 기쁨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과도한 탐욕을 추구하는 것이 도박이니까 탐욕을 이루지 못하면 실망이고 이뤄도 잠시 잠깐 일뿐 그리길게 행복하지 않으며 어느새 인생은 만신창이가 되어 삶이 불행으로 가득 차 있기 마련이다. 본인도 자기 인생이 왜이리 힘든지 모르겠다면서 한탄을 한다.
그런데 그 도박사를 바깥쪽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지적을 해준다고 하자. 그건 도박에서 져서가 아니라 도박을 하기 때문이라고. 도박을 그만둬야 당신의 인생에서 진짜 소중한 것을 위해 살게 될거라고.
그런데 이 말을 듣고 아 그래 도박이 내 인생을 망치는 구나. 도박을 하지 말자라고 한 도박사는 금방 이런 생각을 한다. 도박하지 않는 인생은 너무 공허하고 재미가 없다. 그 스릴과 꿈이 없이는 내 인생에는 희망도 없고 가슴두근거림도 없다. 그냥 나를 내버려 두라. 나는 도박없이는 삶을 살아갈 의미를 모르겠다.
내가 말하는 일관성의 문제란 자기를 망치는 그것을 인생의 의미와 재미, 희망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도박사는 그 감옥에서 탈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미 도박말고는 인생에 어떤 다른 의미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도박사의 세계에는 행복해질 방도가 없다. 도박을 해도 불행하고 도박을 안해도 불행하다. 도박 이외의 것이 없이 단순히 도박이 나쁜거지 하는 순간의 반성을 해서는 도박을 끊었다가 계속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결국 영원히 도박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쯤 읽으면 눈치챈 사람도 많겠지만 나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여러종류의 것에 대해 미련과 애착을 가지면서 이 도박사의 삶과 비슷한 삶을 산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을 벼랑끝 전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어떤 욕망과 기대를 가지고 인생을 거기에 던져넣는 것이다. 도박사도 도박을 좋아하지 않는다. 도박사도 도박이 자신을 망치게 하며 도박이 자신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벼랑끝 전술을 펼치는 사람들도 자신의 삶을 싫어한다. 그러면서 어떻게 언젠가는 복권당첨되는 것처럼 자식이 큰 출세를 한다거나 사둔 집이 크게 올라서 부자가 된다거나 급격하게 승진하여 유명하고 권세있는 인간이 된다거나 가수나 탈랜트가 되는 꿈을 꾼다. 어떤 꽁수로 팍 뜨기를 소망한다. 그러면서 10년 30년 평생이 간다.
나는 진정한 꿈을 가지는 것을 반대하는게 아니다. 내적인 욕구에 따라 남들이 뭐라 하건 그렇게 함으로서 나는 내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거라면, 남들이 성공하지 못할거라 말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며 실제로 그렇다고 해도 내가 해보고 싶어서 잘나가는 직장을 때려치고 가수가 되어 겉으로 보기에 실패한 사람은 실제로는 성공한 것이고 진정한 꿈을 쫒은 것이다. 꿈이란 성공과 실패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결단의 문제다. 진정한 꿈이란 성패에 상관없이 후회하지 않는 것이지 어떤 저열한 욕망에 조종되는 것이 아니다.
반면에 만약 돈이 벌고 싶어서 사업을 한다거나 유명해져서 자랑이 하고 싶어서 가수나 탈렌트가 된다거나 이웃들에게 큰소리좀 치고 싶어서 부자가 되고 싶다는 식의 욕망을 가지고 무리한 한 방을 노리고 있다면 그 사람은 꿈을 꾸고 있는게 아니다.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며 그걸로 자신의 인생을 다 소모해 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도박은 성공하기도 어렵고 성공해도 사실 잠시잠깐 행복할 뿐이다. 진정한 자기 내부의 목소리에 의한 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새 마음이 메말라서 그 자신의 도박이외에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된 사람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도박을 안하면 인생에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낀다. 그러므로 행복으로 가는 길을 스스로 다 차단해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야기의 문제
우리는 종종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대개 그저 하지 말라고 만 할뿐 어떻게 하면 남과 비교하지 않게 되는가에 대해서는 별로 설명이 없는 것같다. 항상 그렇지만 나를 찾는 것도 그렇고,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도 그렇고 문제는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이 핵심이 아니겠는가.
내 생각에는 남과 비교하지 않게 된다는 것은 자신을 이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개와 닭의 삶중에 어느 것이 더 행복할까 라던가 더 나아가 나무와 효모의 삶중에 어느것이 가치있는가 같은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어리둥절해 진다. 그게 비교가 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렇다. 우리는 우리와 너무나도 다른 사람때문에 자괴감에 빠지지는 않는다. 빌게이츠가 나보다 부자라서 아 나는 왜 이렇게 가난하지 라고 슬퍼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당신의 대학동창이라던가 당신의 이웃집 남자라던가 하는 사람이 당신보다 좋은 직장, 더 많은 재산, 더 큰 유명세를 얻으면 좀 더 비교하게 되는 경향이 크다. 빌게이츠는 우리와 한덩어리로 비교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가까운 누군가와는 그와 나는 같다라는 인식하에 그런데 왜 저 녀석은 더 잘나갈까, 그런데 왜 저녀석은 돈이 많을까 같은 비교를 하게 되기 쉽다.
그러나 사실상 모든 인간은 모두 서로 고립된 자신의 섬에 살고 있는거나 마찬가지다. 내가 배가 고픈데 남이 대신 밥을 먹어줄 수 없는 것처럼 따지고 보면 남산만한 귀금속 더미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이 있다고 한들 내 집의 거실에서 김치찌게를 먹는게 더 행복할수 있고 더 행복하건 덜 행복하건 내 인생은 내 인생이고 그의 인생은 그의 인생이지 어떻게 비교될게 아니다.
그런데도 비교를 한다. 왜 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우리가 너무 쉽게 너무도 많은 것들을 같은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자기라는 존재를 포함해서 세상의 여러존재를 너무 쉽게 같은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저 동창이라는 이유로 그와 나는 같으며 결과도 어느정도 같아야 할것으로 인식한다.
핵심으로 뛰어넘어가 보자면 우리는 이야기를 써보고 자신과 대화를 나눠보아야 한다. 소설을 써서 소설가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이 지금 이순간에 이자리에 서있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된 것인지에 대해 자신과 대화하고 글을 써보기도 하라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 자신의 꿈,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는 어떻게 만들어 진것이고 그 의미가 무엇일까. 돈이란게 뭐고 직업이란게 뭐고 가족은 뭐고 행복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는데 그 중심되는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여기에 서있기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되어서 여기 서있게 된 걸까.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자신과의 대화는 산책을 하면서 하면 좋다.
그렇게 자신과 대화를 오래하면 할수록 그렇게 해서 여러가지 것들이 왜 그렇게 된 것일까에 대해 통찰력을 가지면 가질수록 세상은 단순하지 않게 보이게 된다. 그것은 나라는 인간을 확장하는 일이며 나라는 인간을 중심으로 세계에 대한 아주 긴 이야기를 쓰는 일이기도 하다. 지리산 꼭대기에 유달리 빨간 조약돌이 있었다고 하자. 그 조약돌이 누군가에 의해 그리로 옮겨져서 거기 있게 된 것이든, 오랜동안 지리산 꼭대기에서 한국의 역사를 목격하면서 거기에 있어 온 것이든 그 조약돌의 역사를 알게 되면 그 조약돌은 더이상 그냥 발로 차버리고 말아도 좋을 그런 돌이 아니게 된다. 그 조약돌이 광화문 앞으로 옮겨져 유명인물의 동상이 된 돌보다 출세하지 못했고 남들의 시선을 끌지 못한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돌은 아니다. 이해를 하게 되면, 역사를 알게되면 사회적 지리적 물리적 관계를 알게 되면 조약돌은 다른 돌들과 비교될 이유가 없다.
나의 이야기가 길어지면 결국 그것이 세계에 대한 보편사가 된다. 그러면 다른 것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된다. 길가에 핀 들꽃, 창가위를 기어가는 개미 하나 하나가 다 서로 비교해서 들꽃은 장미보다 못하고 개미는 인간보다 못하는 생각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너무 게으르고 너무 바뻐서 이야기를 쓰고 자신과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그러면서 시각은 점점 좁아지고 점점 세상과 자신을 대충보고 대충 이러저러한 것을 다 같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저 집의 아파트가 내 집보다 5평좁은 것에 자부심을 가지거나 내 집의 차가 저 집차보다 천만원 싼 것에 부끄러움을 가지게 된다. 어느 집 남편이나 어느 집 아내가 어느 집 아이가 이렇다더라 하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정작 내 남편 내 아내 내 아이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게 된다.
좁쌀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면 불행으로 가는 문이 활짝 열리게 된다. 사극같은 것을 보면 선비는 반드시 출세하려고 공부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시험에 붙으려고만 공부하게 된지 오래다. 자신과 대화를 나눈다던가, 자신의 이야기따위에는 관심도 두지 않은지 오래다. 그러면 자신의 의미가 점점 줄어들게 된다. 그러면 부동산가격이 폭락한다던가 직장에서 해고당한다던가 아이가 갑자기 병에 걸려쓰러졌다던가 하는 삶에서 겪는 여러가지 충격에 약해진다. 자신의 존재의미 측면에서 아주 높은 산꼭대기 위의 좁디 좁은 땅위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거나 마찬가지다. 한뼘밖에 안되는 그곳에서 약간 밀리면 떨어져 죽을 판이다. 비교하지 않으려면 이야기를 보고 의미를 찾는 시각을 넓혀야 한다. 자기가 서있는 땅을 넓혀야 한다. 그래야 불행해 지지 않을 수 있다.
맺는 말
종종 나는 어떤 사람들을 보면서 한숨을 쉰다. 도박중독증 환자에게 도박하지 말라는 충고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 상황을 겪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들은 말한다. 내버려둬. 나는 이런게 좋아. 도박없이는 살아도 사는게 아니야. 그러다가 또 괴로우면 자기부정에 도달하고 그러다가 다시 자기 스타일의 삶으로 돌아간다. 도박을 싫어하면서도 도박으로 인생을 날리는 도박중독자의 삶과 뭐가 다른가. 누구도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는 없다. 구원해 주려고 해서도 안된다. 결국 자기 삶은 자기 선택을 살 때만 자기 삶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왼쪽도 오른쪽도 답이 아닌데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갔다가 하면서 계속 아파하는 사람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들이 행복해 질 수 있으면 싶다.
한국인들은 특히 남과 비교하는 문제가 더 심하다. 어느 나라와 비교해서 그런가 라는 질문으로 넘어가지는 말자. 본질은 내가 한국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 비교의 문제가 한국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는 것이 본질이다. 그게 그렇다면 비교하는 문제의 근원을 파고 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어른들이 책을 읽지 않고 아이들도 입시를 위해서 책을 읽는 편이다. 유명해만 진다면 어떻게 유명해지든 상관없다는 식의 시각이 널리 퍼져있는 것도 같다. 남이 어떻게 보든 결국 중요한 것은 내 삶에 대해서 내가 고민하고 그래서 내 마음의 배를 불리는 것이라는 생각은 희미하게 들린다. 나를 지키기 보다는 내가 되고 싶은 누군가를 베끼려고 하는 것같다. 돈많고 권력있는 사람들이 여자끼고 술먹고 추태를 부리는 일에 대해 누군가가 논평하기를 한국에서 내가 성공했다라는 것을 느낄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런것 뿐이라서 그렇다라고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결국 그들의 내부가 공허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래서는 행복해 질 수 없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겉으로 보기에 어떤 성공을 거둔 것 처럼 보여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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