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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에세이들/경호에게

경호에게 : 과학과 근사

by 격암(강국진) 2012.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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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7

경호에게 경호야. 오늘은 아버지가 너와 함께 과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원자로 이뤄져있다.

 

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지. 이것은 아버지가 너에게 전에 여러번 이야기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널리 알려진 이야기니까 너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언뜻 들으면 그렇게 복잡한 이야기는 아니지. 레고 블럭으로 크게 만든 집이 있다고 하자. 세상의 모든 것들이 원자로 되어 있다는 말은 레고 블럭으로 만든 집이  작은 레고블럭으로 이뤄져 있다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눈사람은 눈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지. 

 

하지만 이 세상의 어떤 말들은 곰곰히 생각해 보면 아주 깊은 뜻이 있다. 예를 들어 뜨거운 돌 안에는 뜨거운 원자가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건 그렇지 않다. 사실 위에서 쓴 말이 무슨 말인지는 양자역학이라고 하는 원자에 대한 이론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잘 몰랐고 지금도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른다고 할 수도 있다. 언뜻 들으면 간단해 보이는 말도 종종 생각해보고, 공부해보고 나면 아무 것도 모르면서 그걸 듣고 뭐 간단한 이야기네 할 때와는 그 뜻이 달라져 보이지. 아버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저 말의 뒤에 있는 이야기들이고 그것들은 과학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그것들도 기억해 두면 공부하는데나 앞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생각보다는 길어 질수도 있다. 그래서 읽다보면 이런 건 과학이 아니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생각이 되면 그냥 쓸모 있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해 두렴. 그게 왜 과학 이야기인지는 언젠가 더 잘 알 수 있는 날이 올꺼야. 언제까지 얼마나 적어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읽어두고 알아두었으면 좋겠다. 

 

과학과 근사, 거의 맞는 것을 찾기. 

 

먼저 기억해 둬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대부분은 맞지만 정확히 맞지는 않는 것에 대한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은 팔이 두개 있다라는 말은 맞는 말 같지만 사고로 팔이 없어진 사람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가끔 태어날 때부터 팔이 없는 사람도 있단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 사람은 팔이 두개있다라는 말은 당연히 옳은 말처럼 이야기 하지. 그런 것을 좀 딱딱한 말로 근사라고 한다. 그러니까 사람은 팔이 두개 있다라는 말은 ‘사람은 대부분 팔이 두개지만 어떤 사람은 한개고 어떤 사람은 하나도 없으며 어떤 사람은 있어도 손가락이 없고 어떤 사람은 팔이 좀 짧고 등등’ 이렇게 끝없이 자세히 나가는 말을 근사적으로 이야기 한 것이다. 근사라는 것은 맞기는 맞지만 정확히 맞지는 않는 것이다.

 

그럼 왜 우리는 근사라는 것을 쓸까? 왜냐면 그래야 여러가지 일들이 간단해 지기 때문이지. 예를 들어 위에서 사람은 팔을 두 개 가지고 있다라는 말을 생각해 보자. 말했듯이 그건 정확히 맞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람은 팔이 몇 개인지 우리는 모른다고 할 수는 없지. 대부분은 팔이 두개니까. 그래서 운동장에 학생이 백 명이 있으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는 그 운동장에는 팔이 이백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기억해 둬야 할 몇가지 중요한 사실들이 있다. 얼마간 설명을 하기는 하겠지만 아버지가 이걸 전부 다 설명할수는 없을테니까 그냥 이것들은 맞는 말이라고 들어 두도록 해라.

 

첫째, 근사 없이는 우리는 아무 것도 말 할 수 없다. 우리가 뭔가를 말하려고 하면 그건 다 근사라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모든 것을 다 말할 수는 없다는 거다. 우선 우리가 모든 것을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말하려고 하면 끝도 없기 때문이다. 누가 철수가 학교에 가서 친구랑 축구를 했다라고 말하고 싶다고 하자. 그런데 철수가 라는 말을 꺼내자 마자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철수가 누구인지에 대해 끝없이 질문을 하는거야. 철수는 누구인가. 그러면 철수는 10살먹은 초등학생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번에는 초등학교란 무엇인가, 어디에 사는가, 부모는 누구인가, 철수는 어떻게 생겼나 손가락이 긴가 짧은가 등등 철수에 대해 계속 물어 보는 것이지. 그런데 철수에 대해서 이렇게 계속 물어본다면 우리는 끝없이 철수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꺼야. 철수는 일본에 산다라고 했더니 일본이란 나라는 무슨 나라인가 이런 식으로 질문하면 이번에는 일본에 대해 전부 설명해야 하겠지. 물론 우리가 무한히 아는 것은 아니니까 철수에 대해 진짜로 끝없이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철수가 누구인지를 일주일쯤 이야기하고서야 철수가 학교에 가서 친구랑 축구를 했다라는 말을 이야기 할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할 수가 없겠지. 위에서 말하는 것처럼 끝없이 물어보는 친구가 있다면 그런 친구하고는 이야기하는게 겁나서 도망갈지도 몰라. 그래서 우리는 근사가 필요한 것이다. 철수라는 건 대개 사람의 이름이니까 그냥 철수라는 이름만 듣고 이건 철수라는 사람이 있다는 거구나 하는 정도의 근사만을 가지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이지. 굳이 철수에 대해 더 알고 싶더라도 철수는 10살짜리 초등학생이다라는 것만을 듣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정도로 참아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그렇지 않으면 뭔가를 이야기 할 수가 없으니까.

 

둘째, 모든 과학을 포함해서 사람들이 아는 모든 지식은 다 근사다. 당연한 것이지만 이렇게 근사를 써야 하는 것은 네가 어리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은 사실 어른이건 어린이이건 누구나 근사를 써야만 이야기를 할 수가 있다. 다만 근사도 아주 간단하게 근사하는 경우가 있고 그것보다는 더 자세하게 근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일본에 살고 있다라고 할 수도 있고 그 사람이 일본의 사이타마현에 살고 있다고 할수도 있고 또 그사람이 일본 사이타마현 와코시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지. 이 모든 것은 정확히 그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근사들이다. 그러나 어떤 것은 아주 대충 말한 것이고 어떤 것은 그보다는 훨씬 더 자세히 말한 것이지.

 

대개 어른들은 나이가 든 만큼 오랜동안 이것저것을 배우고 들었기 때문에 어린이들보다는 더 자세한 근사를 쓰고 어린이들은 아직 보고 배운게 없어서 훨씬 더 간단한 근사를 쓴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아는게 없어서 뭔가를 이야기 해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어른들이 하건 어린이들이 하건 뭔가를 설명할 때에는 종종 간단히 전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쪽이 훨씬 훌룡한 설명이 된다. 처음부터 아주 자세히 계속 이야기하고 있으면 듣는 사람이 이게 뭐에 대한 이야기이고 왜 이야기하는지를 알 수 없어서 좋은 설명이 되지 못하는 것이지. 그러니까 간단하게, 단순한 근사를 써서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이 오히려 설명을 잘하는 사람이고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이것은 기억해 둬야할 중요한 점이다. 뭘 배운다는 것은 부분적으로 자세히 보는 것도 참 중요하지만 전체를 한꺼번에 보는 것도 꼭 필요하다. 전체를 한꺼번에 보려면 어쩔수 없이 우리는 자세히 보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것을 위해서는 간단한 근사가 꼭 필요하다. 

 

배운다는 것은 자동차를 만드는데 있어서 바퀴를 만들고 자동차문을 만들고 나중에 창문도 만들고 의자도 달고 하는 것같은게 아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많은 것을 배운 사람은 말하자면 자동차를 가진 사람이고 배운게 없는 사람은 자동차 바퀴와 앞자리 의자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배운다는 것은 장난감 자전거를 먼저 가지고 그 자전거를 ‘키워서’ 큰 자전거를 만들고 그걸 더 ‘키워서’ 자동차를 만들고 제트 비행기나 우주선도 만드는 것이다. 적어도 아버지는 그렇게 배우는게 옳다고 믿는다. 움직이지 않는 제트비행기보다는 움직이는 장난감 자전거가 쓸모 있기 때문이지. 당장 배운 것을 써먹어야 살아갈 수가 있는데 언제 어디에 쓸지도 모르는 것들만 잔뜩 머릿속에 넣고 살면 제트비행기를 완성하기 보다는 결국 고장난 부품만 잔뜩 가진 사람이 되기 쉽다. 그러니까 간단한 근사를 쓰는 사람이 경우에 따라서는 더 자세히 아는 사람보다 훌룡하다. 어느 한쪽만 자세히 줄줄 알지만 전체적으로 균형이 깨진 지식을 가진 사람은 날개만 있고 몸통은 없는 비행기를 가진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그사람은 작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에게 내 멋진 날개를 보라고 자랑을 할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국 백미터라도 움직일 수 있는 쪽은 자전거를 탄 쪽이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사실 어른들도 자신이 뭘 모르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다. 어떤 어른들은 어린이들에게는 근사적으로 말하지만 어른들은 그걸 정확히 안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개는 그럼 그게 정확히 뭐냐고 물으면 당황하면서 너는 어려서 말해줘도 모른다고 하거나 어떤 것을 말하면서 이것은 이것이다라고 간단히 말하는데 그건 자신이 뭘 모르는지 모르는 어른들이다. 아래에 쓰겠지만 자신이 쓰는 것이 근사인지 모르고 쓰는 것은 위험하단다. 그러니까 그런 어른들은 위험한 어른들이지. 어른이건 아이이건 자신이 뭘 정확히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 위험해 질 수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친구라고 부르는 한국말은 일본말로는 토모다치고 영어로는 프랜드다. 하지만 사실 친구는 토모다치의 근사이고 프랜드의 근사이지 정확히 같은 말은 아니야. 일본사람들과 미국사람들과 한국사람들은 서로 다르게 살기 때문에 서로 친구일때 할 수 있는 것과 서로 토모다치이거나 프랜드일 때 할 수있는 것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지. 이렇게 말하면 그럼 한국말로 친구는 정확히 무슨 뜻인데요라고 너는 물을 수 있다. 혹은 영어로 프랜드는 무슨 뜻인데요라고 너는 물을 수 있겠지. 그렇다면 앞에서 철수가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축구를 했다라는 말을 할때 내가 철수에 대해 자세히 묻는 사람에 대해 말한 것을 기억해 보도록 해라. 아버지 말은 외국어를 배우는 것도 근사를 배우는 거라는 뜻이다. 그 뜻을 정확히 알고서 친구나 토모다치나 프랜드라는 말을 쓰는게 아니라 대충 친구나 토모다치나 프랜드는 근사적으로 같은 말이라는 것을 가지고 어느 정도 뜻을 안 다음에 계속 다른 말들과 함께 쓰면서 그 차이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지.

 

그렇게 느끼게 되는 차이는 종종 말로 다 표현하기가 어렵다. 너도 네가 좋아하는 우동집에 가서 먹은 우동의 맛을 말로 다 표현하기는 어렵지 않니? 애초에 사람말이라는게 이렇게 정확한 뜻이 없이 서로 서로 같이 많이 쓰면서 점점 더 자세히 이해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사람말이 전부 근사이기 때문에 사실 무엇이든 정확히 안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은 과학을 포함해 모든 것이 근사다. 더 많이 더 자세히 보는 사람이 있고 작게 보고 더 대충 보는 사람은 있지만 우리는 결코 모든 것을 다 보고 있지는 않다.  

 

세째, 근사가 근사라는 것을 잊어버리면 실수를 하게 된다. 근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은 마지막 이야기는 왜 근사가 근사라는 것을 잊어버리면 위험한가 하는 것이다. 다시 앞에서 이야기 했던, 사람은 팔이 두 개다라는 말로 돌아가 보자. 어떤 사람이 이게 근사가 아니라 정확히 옳은 말이라고 믿으면 어떻게 될까? 이 사람이 누군가 팔이 한 개밖에 없는 사람을 만났다고 하자. 그럼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사람은 본래 팔이 두 개인데 너는 팔이 하나밖에 없으니 너는 사람이 아니구나.’ 팔이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이런 말을 들으면 아주 슬프겠지. 남들처럼 팔이 두 개가 아닌 것도 슬픈데 아예 너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어떨까. 아주 슬플 것이다. 뭔가를 너무 확실히 믿으면 그게 어떤 벽을 만들어서 누군가를 슬프게 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아는 것이 모두 근사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버려서 다른 사람들을 종종 슬프게 한단다. 어떤 때는 그 근사가 아주 엉터리 일 때도 그런다. 어른들도 포함해서 사람들은 너무 쉽게 자신이 뭔가를 안다거나 법칙을 찾았다고 믿거든. 법칙은 그렇게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나쁜 범죄자를 몇번 만났는데 그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이라는 것을 본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럼 이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은 범죄자구나라고 믿을지 모른다. 그렇게 하고서는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너는 가난하니까 범죄자구나라고 말할지 모른다. 사실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들은 착할 뿐 아니라 부자들중에도 범죄자는 많은데 말이야.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뭘 너무 강하게 믿어서 자신이 뭔가를 확실히 안다고 너무 쉽게 생각하지. 그건 슬픈 일이다.

 

그렇다면 과학은 어떨까? 혹은 수학은 어떨까? 과학이나 수학은 수없이 많은 학자들이 아주 자세히 검사하고 생각하고 기록해서 정리한 것이니까 이것들은 근사가 아니라 항상 정확한 진리가 아닐까? 1 + 1 = 2 같은 것은 확실한 것이 아닐까. 답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그랬다면 과학은 완성되고 나면 더 변할 것이 없어야 할거야. 하지만 과학은 오랜 기간동안 계속 발전했고 항상 전에는 확실한 것이라고 수백년간 믿었던 것도 그저 근사에 불과한 것이라고 알게 되고는 했지. 그건 수학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오랜동안 믿었던 뉴튼의 중력이론이나 운동이론도 20세기에는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 같은 것을 통해서 근사적으로만 맞는 것이라고 알게 되었다.


수학도 그렇다. 1 + 1 = 2가 된다는 것은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만, 어떤 약속을 지키는 동안만 그런 거란다. 예를 들어 사과 한개와 토마토 한개를 더할 수 있을까? 사자 한마리와 토끼 한마리가 같은 방에 있으면 사자가 토끼를 잡아먹어서 토끼가 사라지지 않을까? 수학도 맞는 말이지만 어떤 약속들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동안만 맞는 말이라는 것이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근사가 다 같은 것은 아니다. 과학이나 수학은 말하자면 엄청나게 좋은 근사인 것이지. 과학이나 수학이 근사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러니까 과학자들 따위는 모르는 이야기가 여기있어라고 말하는 것을 너무 쉽게 믿어서는 곤란하다. 자동차가 하늘을 날 수 없다고 해서 차라리 달리는게 더 빠르다라고 말해서는 안되지. 과학이 발전하고 있으며 변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서 과학을 무시하면 우리는 대개 과학이 발전하기 이전의 원시인처럼 살게 된다. 수학이나 과학만 그런 것도 아니다. 세상에는 어른들의 조언이라던가 상식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있다. 그 어떤 것도 절대로 맞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아라. 하지만 정말 열심히 생각하고 고민하고 배우고 하지 않고서 쉽사리 그런 것을 무시하는 것은 아주 바보같은 일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근사라는 것을 잊게 되는 큰 이유중의 하나는 우리는 종종 왜 그게 근사인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경호도 모르고 아버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누구도 아직은 그게 왜 근사인지 알지 못하는 일들이 많다. 사실 무언가가 왜 근사인지를 정확히 안다는 것은 더 자세한 근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거든. 누군가가 일본 사이타마현에 산다고 했을 때 이게 왜 근사인지를 안다는 것은 더 자세한 주소를 안다는 이야기다. 아니야 그건 근사야. 사실 우리는 일본 사이타마현 와코시에 살아라고 말할 수 있다는 이야기지. 


그런데 사람이 알고 있는 것들은 대개가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동안 일해서 또 매우 똑똑한 사람들이 노력해서 만들어 낸 것이라서 어떤 사람이 쉽사리 그게 왜 틀렸는지, 그게 왜 근사인지를 알기가 어렵다. 그렇기는 커녕 너무 확실히 옳은 것으로만 보이게 되는 것이지. 그러나 똑똑한 천재들이라고 해서 그들이 보지 못한 것이 별로 안 중요 한것은 아니다. 나중에 보면 엄청나게 중요한 것들도 과거의 천재들은 보지 못했었지. 그러니까 천재들이 하는 말이라고 해서 이건 절대적으로 옳아라고 너무 믿으면 큰 실수를 하게 될 수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절대로 맞는 거라고 믿었던 과학이론도 나중에는 다 왜 그게 근사인지 알게 되었다. 단지 수백년이 걸리고 많은 수의 천재들이 노력하고 나서야 그렇게 된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러니까 지금 절대적으로 옳아보이는 것이 있어도, 우리가 지금 왜 그게 근사라는 것인지 알지 못해도, 우리는 그게 근사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위대한 과학자들도 그것을 기억하지 않았더라면 과학은 발전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 사람들도 위대한 과학자라고 불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과학만 그런게 아니다. 일본에서, 한국에서, 미국에서 또 유럽에서 살다보면 그 안에서는 많은 것들이 원래 그런 것이고 당연한 것으로만 보인다. 우리가 뭔가를 확실한 것으로만 믿는다는 것 자체를 모른다. 그건 그저 원래 그런 것으로 생각하니까. 그 중의 어느 한 나라에서만 살면 계속 그렇게 생각하게 되기 쉽다. 그런데 그 나라의 바깥으로 나가서 다른 사람을 만나보면 우리는 많은 것들이 원래 그런 것은 아니라는것을 알게 되지. 어떤 사람들은 외국에 가서는 “너희들은 틀렸다, 이건 원래 이런 것이다” 하는 식으로 가르치려고만 든다. 모든게 사람이 만든것이고 근사라는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모든게 근사라는 것을 잊으면 실수도 하고 배우는 것도 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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