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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에세이들/경호에게

경호에게 : 과학과 나

by 격암(강국진) 2012. 12. 18.

2012.12.18

과학과 나

 

경호에게

 

자. 여기까지 읽느라 수고 많았다. 하지만 재미도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마침내 처음에 이야기한 원자의 이야기와 몇가지 이야기를 하고 이 짧은 과학 이야기를 마칠까 한다. 물론 이걸로 과학을 많이 배운 건 아니지. 과학이라는 큰 건물의 모양을 멀리서 약간 봤달까. 어느 방에 들어가면 뭐가 있는지는 이제 앞으로 배워야 할 것이다.

 

우선 우리가 이제까지 이야기한 것들을 다시 한번 보자. 우리는 근사라는게 뭔지 그게 왜 필요한지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서 개념이라는게 근사를 위해 필요하다고 했지. 그런데 단순히 개념을 많이 만들면 도움이 안되기 때문에 우리는 법칙을 찾았다고 했다. 그리고 법칙을 찾는 것은 바로 정확히 자세히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했지. 바로 티코 브라헤가 행성의 위치를 정확히 봤기 때문에 케플러의 법칙이 나왔듯이 말이야. 그리고 그렇게 발견된 법칙은 다시 다른 법칙이나 더 일반화된 법칙을 찾는데 쓰인다. 그렇게 해서 뉴턴의 법칙같은 것을 알게 된 것이지. 그리고 그렇게 계속 법칙을 찾는 동안에 우리는 여러가지 중요한 것을 발견하게 되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저기 뭔가가 있다!

 

한 아이가 가을에 창밖을 보고 있다고 하자. 이 아이는 과학이라고는 전혀 모르지만 머리는 꽤 좋은 아이고 특히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지. 이 아이는 창문밖에서 단풍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단풍잎은 돌멩이 같이 무거운 것이 곧장 떨어지는 것처럼 그렇게 떨어지지 않고 이리 저리 흔들리면서 돌기도 하고 바람이라도 불면 종이비행기처럼 크게 돌면서 떨어지기도 하지. 그 아이는 그렇게 단풍잎이 떨어지는 것을 여러번 보면 아마도 한가지 개념을 생각해 낼 지도 모른다. 바로 공기라는 것이지.

 

이 공기는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뭔가가 떨어지는 것을 보면 뭔가 보이지 않는 것이 그걸 방해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고 보면 물속에 들어가서 입을 벌리면 공기방울이 올라가는 것을 볼 수도 있다. 아. 그러니까 저기 뭔가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라고 이 아이는 생각하는 것이지.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힘이 뭔가를 한다. 그러면 보통 우리는 뭔가가 있어서 그 힘을 만든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아이는 그것을 공기라고 부르기로 한다. 물론 실제로 세상사람들이 모두 그걸 공기라고 부르지. 이건 내가 만들어 낸 이야기니까 아이가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지.

 

앞에서 티코 브라헤-요하네스 케플러-아이작 뉴턴을 이야기하면서  현대과학이란 많이 정확히 보고 거기서 법칙을 찾는데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자 뉴턴을 역사상 최고의 과학자로 기억하게 할만큼 이런 법칙을 찾는 일이 성공적이었다면 사람들은 뭘 했을까? 열심히 그걸 하고 또 하는 것이지, 바로 그걸 열심히 반복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더 더 더 자세히 더 더 더 많이 보고 법칙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겠어? 사람들은 성공했던 기억을 잘 잊지 않는다. 누군가가 축구로 칭찬을 들으면 축구만 열심히 하려고 하고, 어느 날 빨간 양말을 신고 가서 복권을 샀더니 당첨이 되었다고 하면 계속 빨간 양말을 신고 복권 사는 일을 계속 하기도 하지. 이렇게 성공했던 방법을 계속 쓰는 것은 반드시 좋기만 한것은 아니다. 그래도 한번 해보니 성공했던 방법이 있다면 누구나 그걸 또 해보고 싶겠지? 더 이상은 그렇게 해서 잘 안된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는 말이야.

 

사람들은 망원경을 발명해서 우주를 더 잘 관찰했다. 현미경을 발명해서 더 작은 것들을 보기도 했지. 점점 더 큰 기계로 그렇게 했지. 그리고 무엇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기록하고 거기서 법칙을 찾아낼 수학도 많이 발달했다.

 

그러는 가운데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그 중에는 지금은 브라운 운동이라고 불리는 것을 발견 한 일이 있다. 1827년 생물학자였던 로버트 브라운은 현미경을 가지고 물속에 있는 꽃가루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물위에 떠있는 물체들이 움직이는 것이 이상해 보였던 것이지.

 

다시 위에서 이야기했던 단풍잎과 공기로 돌아가 보자. 우리가 말했던 아이가 본 단풍잎은 공기때문에 이리저리 흔들거리기는 하지만 대개 부드럽게 움직이면서 떨어진다. 그런데 만약 그런게 아니였다면 아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단풍잎이 떨어지는데 마치 핀볼기계에서 쇠구슬이 여기 저기 부딛히면서 움직이는 것처럼, 검정 당구공들이 많이 있는 곳에 하얀 당구공을 던졌을때처럼 부드럽지 않게 여기저기 탁탁탁 부딛히는 것처럼 흔들리거리면서 움직였다면 그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이는 공기를 볼 수는 없다는 것을 기억해라. 다만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 할 뿐이지. 전에는 아이는 보통 과학을 모르는 사람이 투명한 물이나 기름을 생각하듯이, 공기를 연속적이고 부드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아이는 비틀거리고 부르르 떨듯이 움직이는 단풍잎을 보고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바로 공기란 보이지 않지만 수없이 많은 작은 탁구공들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지. 바로 아래의 그림같이 된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야. 한 중간에 있는 약간 큰 하얀 원은 바로 우리가 볼 수 있는 꽃가루를 나타내는 것이고 작은 검정공들은 볼 수는 없지만 꽃가루를 흔들리게 하는 ‘탁구공’들이다. 훗날 사람들은 이 작은 탁구공들이라고 하는 것을 분자라고 부르게 되었고 분자는 다시 원자라는 것들이 몇개씩 합쳐져서 생기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고분자라고 해서 아주 많은 원자들이 합쳐져서 생기는 분자도 있지만 말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분자 중의 하나는 바로 물분자지. 사람 몸은 대부분 물로 되어 있고 지구의 표면도 대부분 물로 덮혀 있으니까. 물분자는 산소 원자 하나와 수소 원자 두개가 합쳐진 분자다.

 

 

실제로는 단풍잎은 부드럽게 움직인다. 하지만 단풍잎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 그러니까 매우 가볍고 작은 먼지나 물속의 꽃가루에서 나온 물질 같은 것들을  ‘자세히’ 보면 그런 부드럽지 않은, 비틀거리고 떠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지. 그런 식으로 움직이는 것을 브라운 운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물론 실제로는 이렇게 간단하게 사람들이 브라운 운동같은 것을 보고 간단히 아 저기 뭔가가 있구나 하고 믿은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개념을 받아 들이는 것은 어렵다. 믿고 나면 너무 당연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이지. 지구가 움직인다는 것도 사람들은 처음엔 안 믿었다고 했지? 원자라는 것에 대해 증거가 될만한 것들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은 이미 여러명 있었다. 그런 사람들중 현대과학적인 원자론을 처음 주장한 사람은 존 달턴인데 달턴은 이미 1805년에 물질들이 합쳐질 때 아무렇게나 합쳐지는게 아니라 어떤 비율로만 합쳐지는 것을 보고 원자라는게 있다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수소와 산소가 합쳐지면 물이 되는데 항상 수소 두컵에 산소 한컵씩을 합쳐야 전부 물이 된다. 수소가 더 있거나 산소가 더 있어도 비율이 맞지 않는 부분은 물로 되지 않고 남는단 말이야.

 

그러나 역시 보이지 않는 것을 믿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달턴의 원자를 사람들이 굳게 믿게 되기까지는 백년이 걸린다. 하늘의 행성이 도는 궤도도 하늘에 줄이 그어져 있는게 아니고, 행성의 위치를 재는 것에는 항상 오차가 있기 때문에 타원궤도를 쉽게 볼 수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티코 브라헤가 정확하게 측정하자 케플러가 수학적으로 타원궤도를 찾아낸 것이다. 원자에 관련된 여러 실험도 다 오차가 있었기 때문에 19세기의 사람들은 원자가 실제로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었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20세기초가 되자. 사람들은 더 정확히 측정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수학도 발달해서 원자라는게 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더 잘 예측을 할 수 있게 되었지. 1905년에 알버트 아인쉬타인은 브라운 운동에 대한 수학이론을 발표한다. 그리고 이 이론이 말하는 법칙이 옳다는 것이 확인되었지. 예측대로 되는가를 확인해 보니까 맞았거든. 케플러의 법칙을 믿고 뉴턴의 법칙을 믿듯이 원자라는게 존재한다는 것을 이제 누구나 믿게 되었다.

 

개념의 번역

 

우리가 보통 한국말을 영어나 일본어로 한다던가 반대로 일본어를 한국어로 한다던가 하는 것을 번역이라고 한다. 우리는 항상 더 좋은 개념들로 세상을 근사하는 거라고 아주 여러번 말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보통 쓰는 말들, 그러니까 고양이라던가, 예쁘다던가 살아있다던가 하는 말들도 바로 사람들이 만들어 쓰는 개념들이다. 원자라는 것도 세상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중의 하나지. 새로운 개념을 만들면 우리가 매일 쓰는 말들은 그 새로운 개념들로 설명을 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의미로 번역을 하는 것이지.

 

예를 들어 뜨겁다는 것은 원자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뜨거운 물은 물분자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고 뜨거운 다리미는 서로 연결된 철의 원자들이 흔들리는 스프링처럼 빠르게 진동하고 있다는 뜻이지. 고무풍선이 바람을 넣으면 둥글게 부푸는 것은 공기 안에 있는 분자들이 고무로 된 풍선을 두들겨 대기 때문이다. 얼음이 녹는다는 것은 서로 같은 형태를 유지하면서 연결되어서 얼음결정을 이루고 있던 물분자들이 떨어져 나오는 것을 말하지. 탄다는 것은 산소와 어떤 원자가 합쳐지는 것을 말한다. 수소가 타면 물이 생기는데 이것은 수소와 산소가 합쳐져서 물이 생긴다는것이지. 우리가 음식을 먹고 소화를 시킨다는 것은 사실 우리 몸속에서 그 음식들을 태우는 것과 같다. 우리는 산소를 들이마시고 그대신 이산화탄소를 내뱉지. 나무를 태워도 공기중의 산소는 나무안의 탄소와 합쳐져서 이산화탄소가 나온다. 우리가 보통 쓰는 말들을 계속 쓰지 않고 새로운 개념을 쓰는 이유는 새로운 개념을 써야 세상에 있는 여러가지 일들에 대해 간단하면서도 정확한 설명을 만들어 낼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물론 보통 때는 여전히 탄다던가 뜨겁다던가 하는 말들을 쓰지.  

 

원자라는 개념이 중요한 것은 원자라는 개념을 가지고 많은 수의 말들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뉴튼의 법칙을 알게 되자 행성을 움직이는 천사라던가 잘라진 자기 나무가지를 다시 그 나무로 잡아당기는 신비로운 힘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지. 마찬가지로 원자의 개념으로 세상을 보자. 아주 많은 것들이 분명하고 간단하게 보이게, 다시 말해서 설명되게 된 것이지. 간단한 이해 혹은 간단한 이론은 예측을 만들어 낸다. 보지 않고도 알게 된다는 것이지.  

 

과학자들이 만들어 내는 개념들 혹은 말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일상에서도 쓰게 된다. 그리고 과학적으로 의미가 불분명하다고 생각되는 말들은 전에는 잘 쓰였는데 점점 안 쓰게 되기도 하지. 예를 들어 몇백년전의 한국에서는 이와 기라고 하는 말들을 썼는데 그게 현대과학에 나오는 개념중의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요즘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 말들은 널리 쓰이는 말로 설명하려고 하면 설명이 매우 길어진다. 말하자면 다른 레고블록하고 잘 안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계속 설명을 길게 해야 하는 것이지. 잘 쓰지 않는 개념들은 사라진다. 반면에 새로운 개념이 좋다고 하면 사람들이 그걸 더 쓰게 되는 것이지. 뉴턴의 운동법칙중의 하나는 관성의 법칙이다. 관성의 법칙이란 움직이던 것은 어떤 힘이 그걸 바꾸지 않으면 움직이던 대로 움직인다는 것이지. 그런데 사람들은 습관과 비슷한 뜻으로 관성이라는 말을 많이 쓰기도 한다. 구심력이나 원심력같은 말도 물리학에서 쓰던 말인데 좀 다른 뜻으로도 많이 쓰인다. 사람들이 세상을 뉴턴의 법칙들로 보는 일이 많기 때문이지. 물리같은 것을 몰라도 그런 곳에서 나온 개념들을 쓰면 자연스레 물리학적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세상을 보게 된다. 그리고 세상은 그렇게 보이지.

 

그런데 이렇게 세상을 설명해 놓고 나면 우리는 뭔가 아주 중요한 것이 뒤에 남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원자라는 것으로 이렇게 많은 것을 설명할 수있다면 즉 누군가가 뭐뭐뭐는 원자가 이렇게 된거고 뭐뭐뭐는 원자가 저렇게 된거고 하는 설명을 한다고 하자. 그러면 누군가가 물을 것이다. 그렇다면 원자는 뭔가요?하고 말이다. 20세기 초반은 바로 이 '그렇다면 원자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연구가 가장 활발히 이뤄졌다.

 

과학과 나

 

1905년은 과학의 역사에 있어서 기적이 일어난 해라고 말해지곤 한다. 그리고 알버트 아인쉬타인을 누구나 최고의 과학자라고 말하게 만든 해이기도 하지. 그는 4개의 이론을 한 해에 발표하는데 그 이론 하나하나가 너무나 엄청난 이론이었기 때문이지. 그 중 하나가 바로 위에서 말한 브라운 운동에 대한 이론이었고 나머지 세개는 특수 상대성이론, 에너지와 물질이 같은 거라는 E=mc^2이라는 유명한 물리법칙을 말한 이론 그리고 아인쉬타인이 노벨상을 타게한 광전자 효과라는 것에 대한 이론이었다. 광전자효과가 뭔지를 설명할 생각은 없지만 이 이론이 얼마지나지 않아 양자이론이라는 것을 만들어 내는 데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는 것은 말해 두고 싶구나. 아인쉬타인은 현대과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양자이론은 원자라는 것을 믿게 되자 자연스레 사람들이 질문하게 된 질문에 답하면서 발전한 과학이론이다. 그것은 바로 그럼 원자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지. 원자는 뭘로 이뤄져있을까, 원자는 그 안에 뭘 어떻게 가지고 있을까. 레고블럭의 세계는 레고블럭으로 이뤄져 있지만 우리는 레고 블럭을 보면서 블럭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라고 할수 있지 않니? 같은 질문이 나오게 된 것이지. 사람들은 다시 원자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더 많은 실험을 하고, 더 많은 것을 기록하고 그 안에서 어떤 법칙이 있는가를 찾았다. 그래서 발견한 것이 바로 양자이론이다. 양자이론이 나오자 케플러의 법칙이 뉴턴의 법칙에서 나오는 특별한 경우이듯이 뉴턴의 법칙이 양자이론의 근사이며 특별한 경우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뭐 공평하게 말하자면 앞에서 말했듯이 뉴턴의 법칙을 가지고 일반화를 생각한 끝에 양자이론도 나온 것이니까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이지. 양자이론을 믿는 사람도 있었지만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중에는 바로 알버트 아인쉬타인도 있었지. 그러나 결국 양자이론의 예측이 옳다는 것들을 확인하게 되었고 양자이론은 받아들여졌다.

 

뉴턴의 법칙은 상대성이론에 의해서도 근사라는 것이 밝혀졌다. 양자이론은 아주 작은 세계에서 뉴튼의 법칙이 잘 안 맞는다고 말하지만 상대성이론은 아주 빠른 것에 대한 것이다. 어떤 물건은 빛의 속도 –빛은 1초에 30만 킬로미터를 간다-보다 훨씬 느릴 때는 뉴턴의 법칙들대로 움직이지만 빛의 속도에 가까울정도가 되면 뉴턴의 법칙이 나쁜 근사가 된다. 상대성이론도 역시 자연의 법칙들을 자세히 살피고 그것을 더 일반화해서 발견했으며 이론이 말하는 예측을 시험해서 맞는 이론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지.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이론같은 새로운 과학은 여러가지 놀라운 이야기를 남긴다.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이론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는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의 이야기보다 더 흥미롭고 신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진 이 이론들은 한가지 중요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마치 세상을 자세히 봤더니 거기에 원자가 있더라라는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다.

 

뭔가를 보는 것을 관찰이라하고 그렇게 하는 사람을 관찰자라고 하는 데 케플러가 별을 볼 때 당연히 그는 별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는 것은 그걸 보는 관찰자 하고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뉴턴이 뉴턴법칙들을 발견하고 그것들로 세상을 설명할 때도 이 세상은 이렇다 저렇다라는 이야기지, 그걸 누가 보고 있다 즉 관찰자는 어디에 있다 같은 이야기는 없었다.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어떤 영화를 보고 왔다고 하자. 그 영화에 대해 그 사람은 글을 쓴다. 이 영화는 이런 게 나오고 저런게 나오고 하는 식이다. 그렇게 글을 쓰면서 그는 중요할 수도 있는 사실을 빼놓는다. 그건 바로 그 영화를 그 사람이 봤다는 것이지. 그 영화관에 그 사람이 앉아있었다는 것이지. 전에 객관적, 주관적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을 기억할 지 모르겠다. 세상을 주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세상을 내가 믿는 대로 느끼는 대로 보는 것을 말한다. 객관적이라는 것은 세상사람들이 모두 보는 대로 보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그 영화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이란 객관적이어야 하며 그 영화에 대해 객관적으로 글을 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 글에 어떤 사람이 그 영화를 봤는 지를 안 적는 거야. 누가 보든 그 영화는 자기가 본대로의 그 영화일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지. 자세히 적기만 하면 되고 누가 그 영화를 보았는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상대성 이론과 양자이론은 그게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세상을 자세히 보니까 그들은 거기서 바로 자기 자신, 관찰자를 발견하게 된거야. 누가 영화를 보는가가 항상 중요하다는 것이지.

 

예를 들어 상자를 하나 만들고 그 안에 고양이가 한마리 들어 있다고 생각하자. 우리는 보통 그 상자 안을 볼 수 없다고 해도 그 상자안에 있는 고양이는 살아있거나 죽어있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고양이가 죽었거나 살아있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기 때문이지. 고양이는 죽었거나 죽지 않았거나 둘중의 하나가 아닐까? 뉴욕과 동경과 서울에서 아이들이 태어난다고 하자. 그 아이들 중에 누가 가장 먼저 태어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 모를 수도 있지만 정답은 항상 하나라고 생각했었지.  

 

굉장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현대 과학은 그게 그렇지 않다고 말하거든. 이게 무슨 소리야하고 걱정하지는 마라. 이건 누구에게나 이상하게 들리는 이야기니까. 현대과학에 따르면 어떤 특정한 조건들을 만족하면 고양이는 내가 상자를 열기전에는 죽은 것도 살은 것도 아닌 상태에 있다. 어느 아기가 먼저 태어났는가 하는 것도 보는 사람에 따라 즉 움직이는 사람과 서있는 사람들에게 서로 답이 다르다. 앞에서 말한 이야기에서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는 쉬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야기고 –쉬뢰딩거는 양자이론을 발전시킨 과학자들 중의 하나다- 두번째 이야기는 상대성이론에서 동시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고 말하니까 객관적인 세계라는게 무슨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이게 무슨말인가 하거나 앞으로는 방문을 열기전에는 그 방안에 있는 사람이유령처럼 살지도 죽지도 않은 상태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양자효과나 상대성이론의 효과는 우리가 보통 살아가는 가는 세상에서 그렇게 직접적으로 보고 들을 수 있는게 아니거든. 뭐야 그렇다면 그런걸 알아서 뭐해라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아주 작은 효과가 어떤 때는 우리가 상상도 할수 없을 만큼 큰 결과를 줄 때가 있다. 그 이야기는 아래에서 조금 더 하기로 하자.

 

양자이론이나 상대성이론이 어렵게 느껴진다고 해서 겁먹을 것은 없다. 무엇보다 너는 아직 그런 걸 이해하기에는 아는 것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나도 중학교때 상대성이론에 대한 책을 열심히 읽은 적이 있다. 다 이해는 하지 못했지만 아주 열심히 여러번 읽었기 때문에 거의 책을 외울정도였고 상대성이론에 대해 줄줄이 오랜동안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였지. 그래서 나는 그래도 내가 상대성이론을 조금은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이론같은 것은 수학을 배우지 않고 말로 풀어쓴 것을 읽은 거로는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다. 나도 대학에서 물리학과에 진학한 후에 공부를 해보니까 다 엉터리더군. 내가 어떤 엉터리 생각을 했었는가도 이젠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알았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다 엉터리였었다는 것은 기억한다.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는 현대 과학은 우리가 보통 아는 것과 다르다는 것 그리고 현대 물리학을 이해하는데는 수학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관심이 있다면 언젠가 공부해봐도 좋겠지. 제대로 공부하기 전에 그 이상 나가서 내가 뭔가를 안다고 생각하면 대개 착각이다.

 

미래의 과학

 

언젠가 누군가가 나에게 미래의 과학은 어떤 것일까 하는 질문을 재미삼아 물어본 적이있다.  그 답은 누구도 모르는 미래에 대한 것이니까 누구도 확실히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말했던 것을 생각하고 실제로 어떤 과학 연구들이 있어왔나 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상상을 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과학은 관찰하고 자료를 모으고 법칙을 찾아 내고 새로운 개념을 가지고 세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앞에서 현대과학의 시작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행성의 운동에 대해 이야기 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요하네스 케플러가 케플러의 법칙들을 찾았지. 그런데 행성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공기가 없는 진공속을 움직인다. 어찌보면 가장 단순한 움직임이지. 그러니까 법칙도 비교적 쉽게 찾아진다. 처음부터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거기서 무슨 법칙을 찾으려고 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간단한 법칙을 찾고 나니까 17세기의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찾았다. 세상을 관찰하면 법칙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은 이제 훨씬 커졌고 세상의 물질들에 대한 지식들이 더욱 더 쌓였다. 18세기에 안토니에 라브와지에는 질량보존의 법칙을 발표하고 여러가지 물질들이 반응하고 생성되는 것, 그중에서도 특히 뭔가가 타는 것을 설명하는 화학도 발전하게 되었다. 19세기에는 화학반응들을 설명할 수 있는 원자론을 달턴이 말했는가 하면 모든 생명은 진화해서 현재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는 생명에 대한 이론인 진화론이 다윈에 의해 발표되었다.

 

우리가 어떤 법칙을 알면 그것은 다른 법칙을 찾는 방법이 된다. 우리는 그걸로 세상을 관찰하는것이지. 물질에 대한 이론들인 물리나 화학에 대한 지식이 쌓이니까 우리가 생명을 보는 방법도 바뀌게 되었다. 말하자면 인간의 몸속에서는 무슨 화학변화가 일어나는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인간과 새는 화학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같은 질문도 던질 수 있는 것이지. 20세기가 되자 클릭과 왓슨이 유전적 정보를 가진 DNA를 찾아 진화란 바로 유전정보를 가진 이 DNA가 변화하는 것이라고 진화의 내용을 더 확실하게 만들었다. 사람과 새의 차이는 결국 DNA의 차이라는 것이지. DNA란 결국 분자다. 양자이론은 화학과 물리를 이어준 이론이고 DNA가 발견되자 생물학과 화학이 이어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결국 생명중의 하나인 인간이란 DNA라는 분자가 여러가지 반응을 거쳐서 작동한 결과 만들어 지는 것이지.

 

그렇다면 지금은 사람들이 뭘 열심히 관찰하면서 거기서 법칙을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을까. 물론 많은 사람들이 많은 일을 한다. 하지만 뉴턴시대와는 차이가 있다. 뉴턴시대에는 말하자면 이 세상에는 그저 몇개의 법칙이 있고 그걸 모두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뉴턴은 하느님을 믿는 종교적인 사람이었다. 세상을 움직이는 훌룡한 법칙을 찾으면 그게 하느님이 얼마나 훌룡한가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지.

 

요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다르다. 믿는 것도 다르다. 우리가 원자 안을 들여다 보았듯이 더 작은 세계로 가서 더 강력한 법칙을 찾아내더라도 그 법칙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주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이런 대단한 법칙이 있으니 하느님은 참 대단하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거든. 모두가 종교적인것도 아니고. 우리는 다른 걸 원한다. 그리고 그건 경호가 원하는 거랑 크게 다르지 않다. 좋은 물건들을 가지고 싶다던가, 좋은 친구를 가지고 싶고, 행복하게 살기 원한다. 다들 사이좋게 사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사람들마다 원하는 것은 조금씩 다를 테니까 하고 싶은 것은 아주 많겠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하나의 질문과 연결되어져 있다. 바로 나는 누구인가, 인간이란 어떤 생명인가하는 것이지.

 

결국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이다. 왜냐면 우리가 사람이니까. 예를 들어 개의 병을 고치는 연구와 사람의 병을 고치는 연구가 있다고 할 때 뭐가 더 중요할까. 보통은 사람의 병을 고치는 연구가 더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결국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과학이란 것은 한국어나 음악처럼 세상을 말하는 언어라고 말했지. 그런데 그 세상을 보는 건 결국 사람이거든. 그러니까 점점 사람 자체에 대한 연구로 방향이 가까워질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언제 행복할까, 우리는 왜 무언가를 원할까. 왜 세상은 우리에게 이렇게 보일까.

 

세상을 보고 그 세상을 알겠다는 것이 과학이라면 그 세상을 그렇게 보이게 만드는 것은 우리 마음이고 의식이다. 생명을 보는 연구는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물론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는 것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은 뇌를 연구하는 것이지. 뇌를 어떻게 연구할까? 우리가 아는 것으로 한다. 물리적으로 화학적으로 유전학적으로 연구한다. 결국 우리는 다시 우리가 세상에서 배운 것을 가지고 뇌란 어떤 곳인가를 관찰하는 것이지. 이렇게 우리가 발견한 법칙들은 다시 다른 법칙들을 발견하는데 쓰인다. 바로 인간의 마음이 어떤 것인가를 결정하는 법칙들이다. 더 많이 더 자세히 더 정확히 봐서 우리는 그런 법칙을 발견해 내려고 하지만 인간의 마음이나 생명을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이해하게 해줄 수 있는 법칙은 아직 발견되고 있지 않다. 

 

어려운 과학은 배워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공부란 어렵다. 적어도 항상 재미만 있지는 않지. 공부란 해야 하는 것일까, 하고 싶으니까 하는 것일까. 어려운 과학을 배워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과학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면 과학따위는 전혀 몰라도 상관없지 않을까.

 

모두가 과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과학은 세상을 보는 한가지 방법이지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게다가 과학적 방법이란걸 착각하고 함부로 쓰면 좋지 않은 결과도 나온다. 처음부터 말했지? 근사가 근사라는 것을 잊으면 실수를 하게 된다고. 지금 있는 과학을 의심하고 새로운 과학을 만드는 사람이 진짜 과학자라면 진짜 과학자는 그걸 잊지 않는다. 그런데 과학을 조금만 아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우리는 모든 걸 안다고, 이건 이게 확실하다고 너무 쉽게 말한단 말이야.

 

내가 생각하기에 과학이 우리에게 해주는 것중의 하나는 과학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겸손하다는 것은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지. 과학은 우리가 뭘 안다는게 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모른다. 우리는 불확실한 세상을 살고 있다.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뭔가를 배울 수도 있고 뭘 배울까를 선택할 수도 있다. 미래에도 결국 우리는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뭔가를 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이상한 이야기인가를 보여주는 한가지 예가 있다. 과학뿐만 아니라 모든 공부가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게 이걸까 저걸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러면 답은 이거 아니면 저거라고 생각하지. 예를 들어 경호는 남자일까 여자일까라고 묻는다면 경호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도 답은 남자 아니면 여자 둘중의 하나 일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우동은 일본요리일까 중국요리일까라고 묻는다면 답은 둘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지. 이렇게 맞던 틀리던 둘중의 하나다라고 하는 것을 딱딱한 말로는 배중률이라고 한다. 경호는 한국인이다라고 말하면 답은 그렇다이거나 아니다이거나 둘중의 하나라는 것이지.

 

수학자들은 수천년간 우리가 어떤 질문을 하면 우리가 그 답을 모를 뿐이지 항상 답은 맞거나 틀린거라고 생각했다. 배중률은 절대로 옳은거라고 생각한 것이지.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와서 그게 그런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이때문에 수학자들은 편이 갈려서 수학이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가지고 고민하고 있다. 초등학생이라면 수학이 뭐냐고 하면 간단히 답을 할것같은데 세계적인 천재들이 모여서 수학이 뭔지 모르겠다고 고민하고 있는 것이지.

 

위에서 말했던 쉬뢰딩거의 고양이같은 이야기도 생각해 보렴. 우리는 당연히 상자속의 고양이는지금 살아있거나 죽어있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누가 고양이는 지금 살아있다라고 말하면 그걸 우리가 모를수는 있어도 그 말은 옳거나 틀리거나 둘중의 하나일거라고 생각하지. 그런데 양자이론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거든.

 

이렇게 머리 아프고 이상한 것은 공부하기도 힘들고 모든 사람이 공부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다만 그게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우리가 사람인 것은 DNA때문이고 DNA는 많은 원자가 모인 고분자다. 그런 고분자가 그런 모습을 계속 가질 수 있는 것은 양자효과 때문이다. 만약 양자효과가 없었다면 사람은 금방 죽을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사람은 계속 사람일수 없다. DNA가 마구 바뀔 것이기 때문이지. 아니 애초에 생명이란게 생기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세상은 딱딱한 것은 하나도 없는 물렁물렁한 것들로만 이뤄져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 사람이 사람이고 우리가 우리 자신일수 있더라고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하늘에 있는 태양에서 에너지를 보내주기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태양에너지라는건 바로 원자들이 합쳐지는 현상인 핵융합에서 나오는 에너지다. 나무가 타거나 하는 것과 같은 게 아니기 때문에 양자이론이 없었다면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지. 고양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다는 이상한 이야기는 이렇게 보면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상한 이야기라고 해서 안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을 알겠지?

 

처음에 근사니 개념이니 하는 말을 하기 전에 아버지가 한말을 기억하니? 아버지는 주로 한가지 일에 대해 말을 하겠다고 했지.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원자로 이뤄져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를 설명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뭔가가 무슨 뜻인가 하는 것은 우리가 뭘 알고 어떤 식으로 그걸 보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작은 못 하나는 그냥 그것만 볼때는 그저 못이지만 알고보면 그게 의자에서 떨어진거라고 할때 그것은 ‘의자의 일부분인 못’ 인것이고 그것없이는 의자가 부서지게 되는 못인 것이지. 그저 못일때는 작은 쇠조각이지만 의자의 한조각일때는 그것없이는 의자가 부서지게 되는 중요한 조각이 되는 것이지. 그러니까 항상 하는 말이긴 하지만 너는 네가 뭔가를 안다고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아라. 전에 들었던 어떤 말을 다시 듣는다고 해도 나는 그것을 안다고 너무 쉽게 이야기하지 말아라. 중요한 건 그 한조각의 말보다 그 말이 서로 어디에 연결되나 하는 것이다. 그걸 문맥이라고 하지. 문맥에 따라서 말의 뜻, 말의 의미는 바뀐다. 그런데 우리는 결코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전에 들었던 말도 새로 배운 다른 것에 따라 다른 의미, 다른 뜻을 가지게 된다.

 

아버지가 이 몇개의 글들을 통해서 너에게 주고 싶은 것은 작고 가늘은 뼈다. 가늘지만 지금의 네가 전부 다 알기에는 힘든 곳에까지 이어진 긴 뼈지. 앞으로 책을 읽고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면 많은 자세한 것들을 알게 될텐데 그것을 이 뼈에 살처럼 붙일 수 있으면 좋겠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렇게 새로운 것들, 자세한 것들을 더 많이 알게 되면 지금의 네가 전부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의미가 보일 지도 모른다. 그때 쯤에 이 글들을 다시 한번 더 읽어보는 것도 좋겠지.

 

그 동안 너는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배우는 것들이 네가 알고 있는 것과 이 이야기들과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새로운 지식을 배워도 그저 외울 뿐이라면 무슨 뜻이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결국 재미도 없고 잊어버리게 된다. 어디에 써야 하는지 잘 모르니까 학교시험이 끝나면 바로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지. 그런 식으로 공부하는 것을 오래하면 결국 공부를 잘 할 수가 없다. 항상 뭔가를 배우면 이게 무슨 뜻인지, 새로운 뜻을 찾을 수 있는지, 내가 이미 알고 있던 것이 이것 때문에 새로운 뜻을 가지게 되는 것인지 생각해라. 생각하고 생각해서 규칙을 찾고 그래서 더 간단하게 더 정확하게 많은 것을 알려고 하는 것, 그게 바로 공부하는 것이고 그게 바로 과학이다. 과학은 그렇게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지. 옛날 옛적에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수소원자였습니다. 이렇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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