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무분류 임시

레밀리터리블과 웃음의 가치

by 격암(강국진) 2013. 2. 15.

2013.2.15

아내가 재미있는 비디오가 있다면서 레밀리터리블을 보여주었다. 십여분간 재미있게 보고 나니 일본 방송에서도 이 비디오가 일본어 자막과 함께 나왔었더랜다. 그래서 일본인 친구들이 그걸 보고 이야기 하더라는 말도 전해 주었다. 레밀리터리블은 BBC와 미국 방송 심지어 알자리라같은 곳에서도 관심을 보일정도의 화제의 비디오가 되었다고 했다. 

나는 레밀리터리블 자체에 대해서는 그리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재미있는 비디오 자체는 보고 즐기면 그만이다. 다만 이런 비디오를 것을 계기로 웃음의 가치에 대해 몇마디 적어두고 싶다. 

 

 

 

무엇이 레밀리터리블을 재미있게 하는가.

레밀리테리블이 재미있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쉽게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답은 여러가지로 나올텐데 그게 정상이다. 각자 자기의 느낌과 이유가 있을 테니까. 그러나 웃음의 근원적 이유는 있다. 그것은 죄수와 간수라는 장발장과 자베르의 인간관계를 눈치우는 병사와 당직 사관의 인간관계에 투영시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장발장의 이야기가 약간의 수정만 하면 공군병사의 이야기에 구조적으로 그대로 들어 맞게 된다는 사실에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그런데 그 웃음은 뭘 말하는 것일까. 그 웃음은 평등한 정신과 창의력에 대한 반응이다. 코미디는 매우 민주적인 정신에 의해서 만들어 진다. 코미디는 진지하게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게 아니다. 그렇게 주장하려면 더 엄숙한 비판자의 입장을 취해야 한다. 코미디는 기본적으로 광대나 바보의 언어적 도구다. 기본적으로 이런 우스꽝스러운걸 만드는 나도 똑똑하지는 않지만... 하는 말을 배경으로 시작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서 어떤 것이 지적될 때 메세지는 이렇게 된다. 나같은 바보도 보는 걸, 너희들은 왜 못보는가. 나도 틀릴지 모르지만 이런 것도 옳은 것 아닌 가. 이런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코미디는 평등을 강조한다. 왕이나 대통령이 코미디의 소재가 되는 것은 코미디가 왕이나 대통령을 보통 사람들의 수준으로까지 끌어 내리기 때문이다. 왕이 나서서 거지흉내를 내도 마찬가지다. 코미디는 그 이야기에 출연한 사람들 중의 어느 하나를 절대적 존재로 만든다기 보다는 모두를 평등하게 만든다. 따라서 코미디는 모두를 화합시키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반가운 것이 되지만 절대적인것을 숭상하는 사람에게는 종종 불쾌한 것이 된다. 예를 들어 기독교 신자라면 기독교의 하나님을 소재로한 코미디는 신성모독이라고 불쾌해 할지 모른다. 그들은 그들의 옆에까지 끌어내려진 하나님은 보고 싶지 않을테니까.

우리는 왜 웃는가. 여담이지만 사람이 자기 몸을 스스로 간지럽혔을 때 웃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예측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코미디를 보고 웃는 것은 몸을 간지럽혔을 때 웃는 것과 다르지만 마찬가지로 예측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엉뚱하고 기발하고 그런 식으로 일상에서 볼 수 없는 것에 우리는 웃는다. 망치는 못을 박는 것인데 그걸로 머리를 긁으면 어떨까. 그걸 스프를 떠먹는 스푼으로 쓰면 어떨까. 그러면 별로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웃긴다. 평상시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코믹한 상황은 우리가 늘상 보는 일상을 떠나서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에 의해서만 보여진다. 물론 진짜 바보는 자신이 코미디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만 남에게는 코미디를 보여준다. 보온병을 들고 근엄하게 아는 척하면서 폭탄 이야기를 했던 국회의원은 얼마나 웃기는가. 그것은 특히 이명박 정부에서 이명박대통령을 포함한 상당수의 정부인사가 군면제자라는 배경적 사실때문에, 그러면서도 걸핏하면 북한과 싸우니 마니 하는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때문에 더더욱 웃기는 코미디가 된다. 물론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그걸 코미디로 보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왜 웃지 못하는가.

우리가 웃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뭔가를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그는 우리와 다르다. 나는 너와 다르다고, 그 차이가 절대적 중요성을 가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중 누구도 나는 그런게 하나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넓이와 장소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는 무지와 망각의 벽을 세운다. 예를 들어 어떤 바보가 보통 인간이 개를 취급하는 것처럼 개에게 취급받는다면 그것은 웃기는 상황일 것이다. 그런데 특정한 바보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개에게 개취급 받는 미래를 본다면 별로 안 웃길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개보다 우월하다는 생각, 우리는 개와 다르다는 생각을  대개 믿기 때문이다. 개가 코미디를 이해할 정도로 똑똑하다면 그런 걸보고 웃을테지만 말이다.

모든 사람들이 어떤 곳에서 절대적인 것을 믿는게 있다고 해서 사람들간에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잘 웃지 못하고 코미디를 이해하지 못한다. 심지어 티브이 코미디를 보고 고소를 하는 국회의원도 있다. 욕설을 내뱉는것과 코미디를 하는 것의 차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링컨은 살아생전에 자기자신을 소재로 해서 농담을 하는 것을 즐겼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농담이 전혀 통할 것같지 않은 정치인은 많다. 한국에서 그런 정치인을 찾는 것은 그렇지 않은 정치인을 찾는것보다 훨씬 쉽다. 왜 그럴까.

바로 그들이 민주적이지 않고 권위주의적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창의적이지 않기 때문에 재미있는 농담을 만들 수 없는 것이며 여기서 창의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사실 남과 나의 입장을 뒤바꿔 보는 능력도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웃음은 입장바꾸기에서 발생한다. 주어진 걸 그저 익숙하고 편한대로만 보는 그들은 정치가라기보다는 대개 지배자로 불려야 한다. 그들이 하려고 하는건 그것이니까. 

웃지 못하는 사람들은 뭘 절대적으로 생각할까.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그것은 대개 자신들의 기득권이다. 내가 대통령인데 내가 박사인데 내가 교수인데 내가 직장상사인데 내가 선생인데 이러저러한 대접은 당연히 받아야 한다라는 생각을 절대적으로 하는 사람은, 물론 어떤 문맥에서 그런 차이는 실재로 존재하는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그 이전에 우리는 모두 하나의 인격체로서 동등하다는 전제따위는 잊어버린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웃음이 없다. 

그런 사람들은 나쁜 경우 사악한 압제자고 좋은 경우도 굳어질대로 굳어진 기계같은 사람이다. 모든 것은 규칙으로 정해져서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로 창의력이니 변화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러면 웃을 수가 없다. 코미디 안에 들어 있는 새로움을 꽤뚫어 볼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웃음이 없다는 것은 생명의 입장에서 보면 죽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생명은 굳어지면 죽으니까. 

레밀리터리블과 한국의 이미지

싸이 비디오가 큰 화제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레밀리터리블이 아직 그정도는 아니지만 해외에서 화제가 된다고 하니 매우 기쁘다. 왜냐면 그런 코믹한 비디오는 한국의 이미지를 많이 개선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 비디오의 안보다 바깥쪽을 먼저 무의식적으로 느낄 것이다. 

그 바깥쪽이란건 한국이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는 나라라는 점이다. 그렇지 못할 때 이런 종류의 코미디는 어떤 권위를 무너뜨렸다고 해서 당장 처벌받을 테니까. 그렇다고 할 때 애초에 이런 코미디가 제대로 만들어 질 리가 없으니까. 

어느 나라나 요즘은 문제가 있다. 어느 나라도 천국이 아니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한국이 그만큼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사는 것을 견딜만하게 만드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은 객관적으로 돈을 더 번다던가 휴가가 더 길다던가 하는 것 이상으로 힘들고 짜증날 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그걸 해버릴 수 있는 자유다. 왕처럼 산다고 해도 조금의 자유도 없다면 왕노릇은 금방 노예신세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무엇보다 재미있는 웃음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나라가 가장 살만한 나라처럼 느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에는 코미디를 억누르려는 세력이 많다. 신세계에서는 전태일평전같은 것을 금서목록운운하면서 감시한다. 그런 사람들이 코미디를 이해할 수 있을리가 없다. 솔직히 권위주의적인 우리나라분위기를 생각할 때  이번 레밀리터리블을 보면서 나는 권위적인 한국의 군부에서 무슨 말도 안되는 짓이라도 해서 나라망신을 시키지 않을까하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격이란게 뭔가. 인터넷에 글쓴다고 사법처리한 그 순간, 코미디언을 국회의원이 고소하는 그 순간, 한국의 국격이란건 흙탕물에 빠지는 것이다. 웃음은 권위주의의 적이며 개혁적인 사람, 민주적인 사람의 친구였다. 그건 항상 그래왔다. 그렇기 때문에  웃음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벌거벗은 임금님은 웃기는 이야기다. 왜냐면 어린애도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아는데 모두가 아닌 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임금님은 그것을 지적받기 싫어한다. 

확실히 모든 권위가 나쁜 것은 아니다. 모든 권위를 한꺼번에 다 벗어던지기에는 역량의 부족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권위란 고정된 것, 변하지 않는 것이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 절대적인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진짜 행복한 나라다. 그것이 물론 진짜 창의적인 나라, 진실이 넘치는 나라이기도 하다. 

어려운 현실을 이겨낸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유머감각이라고 한다. 지금까지의 글을 읽은 사람은 이게 단순히 낙천적인 사람이 생존확률이 높다는 이야기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유머감각을 가진 사람이 어려움을 잘 이겨내는 것은 절대적인 것에 잘 안빠지고 창의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언제나 고민거리가 있다. 웃음은 그런 현실을 견뎌내는 힘이 된다. 웃음은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게 한다. 

아무쪼록 한국이 웃기는 비디오로 세계에 많은 웃음을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싶다.  일단 레밀리터리블의 노래나 들으며 웃어보는게 좋겠다. 

 

  

 

 

 

 

 

'주제별 글모음 > 무분류 임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는 변한다.  (0) 2013.06.20
인식과 욕망  (0) 2013.05.26
사회적 동물의 탄생  (0) 2013.01.11
말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는가  (0) 2012.12.28
환상을 파는 사업  (0) 2012.12.0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