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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무분류 임시

세계는 변한다.

by 격암(강국진) 2013. 6. 20.

2013.6.20

연구소에 계시는 한 분이랑 점심을 먹다가 세상은 어떻게 변하는가 하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특히 관심있는 부분은 소위 선진국이란 나라와 비 선진국이란 나라들로 이뤄진 이 세계의 구도가 어떻게 변해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 세계는 확실히 변해왔고 이미 변했으며 결정적인 변화가 오는 시기도 그리 멀지 않을 거라는 것이었지요. 물론 문제는 그 변화가 뭔가 하는 것이겠습니다.

 

요즘은 소식이 잠잠합니다만 자스민 혁명이라는 이야기가 얼마전에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브라질에 큰 시위가 생겼다는 소식이나 터키의 민중시위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는 군요. 얼마전에는 이란에서 온건한 대통령이 당선되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이 모든 것은 한마디로 세상이 민주화되어가고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이 광범위하게 실시되고 미디어가 발달해서 정보가 잘퍼지는 세상이 되자 세계 여기 저기의 나라들이 왕조식 독재식의 국가에서 민주화된 국가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나라가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사회적으로 복잡성이 증가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때는 선진국을 빼면 그 나머지 나라의 국민들은 해방직후의 우리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그저 옥수수가루나 배급받고 겨우 기아나 면하는 수준이었지만 이제 그 경제규모는 달라졌습니다.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국이 되었고 미국을 추월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하니까 중국만 성장한 것같지만 실은 온 세계의 가난한 나라들이 여기저기 성장했습니다. 인도네시아도 인도도 베트남 남미도 성장했습니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한국이 가장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는 중국입니다. 한국의 관광산업도 중국인 관광객들에 의존하는 바가 큽니다. 장사의 대상이 점점 비 선진국으로 변해갑니다.

 

미리 말하지만 중국에 핵심을 두고 미국의 시대가 가고 중국의 시대가 온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대단한 나라지만 동시에 미국같은 슈퍼파워가 되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나라입니다. 중국의 부정부패와 정치적 불안정을 근거로 중국은 거품처럼 사라질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실제로 일본도 한때는 세계를 정복할듯이 대단했지만 부동산거품붕괴와 함께 천천히 가라앉는 시대를 맞이했던 적도 있습니다. 즉 슈퍼파워가 혹은 세계의 왕이 되려면 단순히 수출 잘하는 것 한가지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핵심은 다음번 왕이나 슈퍼파워가 누가 될 것인가가 아닙니다. 핵심은 이제 왕조가 가고 공화정의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세계는 이미 민주화된 나라가 많이 있지만 국가의 차원으로 보면 실은 세계는 귀족과 왕의 시대였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소수의 나라가 대부분의 경제를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국가와 국가간에는 잔혹한 이익추구가 먼저였으니 국가차원에서 보면 우리는 여전히 왕과 귀족을 떠받드는 시대였던 셈입니다. 그런데 그게 뒤집어 진것입니다. 그리고 점점 더 추는 크게 기울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같은 나라는 미친듯이 돈을 풀어서 그 추세를 뒤집어보려고 하지만 대세는 뒤집어 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선진국도 비선진국에 물건을 팔기 위해 그들의 전략을 수정합니다. 비선진국 중심의 세상 혹은 세계민중 중심의 세상이 온 것입니다.

 

이 사진은 2021년에 첨가한 것입니다.

 

 

결국 이런 변화의 핵심에는 세계 민중의 성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도둑을 잡는 경찰은 도둑을 없애는게 일이지만 정말로 도둑이 없어지면 일이 없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세계를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사상적으로 선도하던 미국이나 서양은 세계가 진정으로 성장하자 점점 부담스런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 마치 과거의 왕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사치스럽게 소비합니다. 그 덕분에 빚은 한없이 증가만 하는데도 그렇습니다. 그 문제를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민중의 하나가 됨으로서 해결하는게 아니라 착취나 전쟁이나 돈놀이나 정치로 해결하려고 하니까 결국 모순은 점점 누적될 수 밖에 없습니다.

 

미국은 미국의 문화와 정치를 수출함으로서 현재의 지위를 누렸습니다. 세계를 미국화하는 것이 세계를 발전시키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란 주장은 사실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으며 소련의 붕괴와 함께 그 승리는 확고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산업화와 자유시장에 근거한 자본주의라는 사회적 이상은 훌룡한 모든 이상이 그러하듯이 무한히 유효한 것일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미국의 이상은 성장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팔아서 더 부유해지고 행복해지는 이상인데 이런 것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약탈적 자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왜냐면 우리는 항상 우리의 바깥 즉 우리가 물건을 팔아서 돈을 벌 대상이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개간할 숲이 있을 때 숲을 개간해서 부자가 되자고 하는 주장은 일리가 있지만 이제 숲이 없다면 개간할 것이없겠지요. 말하자면 미국적 이상의 한계는 세계에 이제 더 이상 신대륙도 없고 무지한 사람들이 사는 후진국도 별로 없다는 사실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생산해도 팔 곳이 없으면 성장할 수 없으니까요. 중국사람들이 누구에게 뭘 팔면 그들이 미국사람들처럼 소비하고 살겠습니까. 화성인이라도 있어서 미개한 화성인들에게 공장을 지어주고 생산을 하라고 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합니다.

 

성장의 한계, 세계의 비선진국의 경제적 사회적 성장은 필연적으로 우리가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볼 것을 요구합니다. 즉 성장이 아니라 유지와 조화가 이상인 그런 눈입니다. 이제 정복하거나 개명시킬 그런 대상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이런 점들은 여러사람들에게 여러 방면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런 비슷한 주장이 들려온지는 오래되었습니다. 그런 흐름에는 생태주의가 있습니다. 생명에 대한 강조가 있습니다.

 

예전의 이상이 구조를 끝없이 성장시키는 바벨탑을 세우는 것이었다면 이제 새로운 이상은 우리가 건강을 관리하듯, 살아있는 생명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듯 보다 유기적이고 효율적인 소비를 강조합니다. 끝없는 생산과 정복과 성장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지구의 암세포에서 정상세포로 변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왕국이 공화국으로 변해가는 것과 오늘날의 세계와의 유사점은 대단히 많습니다. 예를 들어 왕국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는가. 거기에서 큰 것이 바로 영토 전쟁이지요. 왕은 전쟁을 해서 영토를 확장하고 그렇게 해서 더 큰나라가 되어감에 따라 본래의 나라가 더 부유해지는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확장과 성장에 근거한 모델입니다. 그런데 그 영토확장이 불가능해질 때 민주화, 공화국화는 필요해집니다.

 

새로운 세상에서 필요한 정신이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한가지를 지적하고 글을 마칠까합니다. 그것은 우리는 누구에게 눈을 돌려야 하는가 하는 것이죠. 왕국에서는 왕의 아들이 왕이 됩니다. 공화국에서는 선거를 하니까 대중에게 인기있는자, 대중에게 선택받는자가 권력을 가집니다. 대중에게 물건을 팔아야 합니다. 대중에게 선택받는 자는 대중이 믿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결정됩니다. 저 사람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거라고 믿으니까 대중이 그를 선택하지요.

 

이대로 가면 어떤 난리가 나서 다시 한번 선진국들이 비선진국들을 착취하고 가난하게 만들지 모르나 길건 짧건 결국 왕과 귀족들은 몰락하고 민중의 세상이 올 것입니다. 지금도 물건을 팔아야 할 대상이 빠르게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우선은 미국이나 일본 유럽만 볼게 아니라 그 이외의 나라들에도 보다 많은 신경을 쓰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한국에게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새로운 이상의 창출과 현실화라는 점에서 노력이 필요합니다. 미국적 이상은 이미 죽었습니다. 전 세계 대중에게 이것이 세상사는 방식이다라고 말하고 그것을 현실화할 국가나 집단이 절실합니다. 한명의 천재가 세상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천재도 필요하지만 그 천재를 평가하고 그렇게 변해갈 나라도 꼭 필요합니다.

 

그 새로운 사상이란 부분이 존재하지만 전체와 다투지 않는 그런 사상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있지만 그 자치단체는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전체와 조화를 잊지 않는 그런 것입니다. 그것은 나아가 한 개인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동시에 환경의 중요함을 잊지 않는 그런 것입니다. 한 개인의 환경으로서 가족이나 회사가 있고 회사의 환경으로서 지역사회가 있고 지역사회의 환경으로서 더 큰 지역사회가 있을 것인데 여기서 각자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환경과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이 서구문화에서 결여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국 정복과 약탈이 되는 이유는 그것입니다. 그들은 민주주의의 선구자이지만 동시에 여전히 봉건적 사고나 제국적 사고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기도 합니다.

 

새로운 시점의 핵심에는 개인의 차원에서건 작은 공동체의 정체성 차원에서건 나와 환경이 밀접하게 관련되어져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궁극에서는 어떤 차원에서 어떤 문맥에서 말하자면 내가 생각하는 나는 진짜의 나가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르게 되고 이것은 불교의 무아사상같은 것과 통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굳이 불교니 기독교니 하는 종교색을 도입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저 사색을 통해서 심지어 현대과학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구문명은 결국 과학과 사회가 모두 한덩어리입니다. 자유시장의 이상이란 자연법칙의 발견이라는 뉴튼이래의 전통에서 만들어져 나온 것이며 그래서 서구과학의 비판이 곧 서구 사회의 비판이 되고 서구 문명의 비판이 됩니다. 그 핵심에는 뉴튼이 말하는 질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과 같은 것이 아니더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인의 수학적 정의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하지 않고 배중률에 따라 이거면 이거고 저거면 저거지만 생명은 그 정의가 애매하고 변화하며 그래서 이것과 저것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와 물질적으로 다른데 여전히 나라는 이름을 붙이고 움직이니까요.

 

한국 문화는 약탈과 착취를 이상으로 하지 않은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이 서면 5백년이고 고려왕조도 5백년입니다. 한반도의 국가들은 다른 어느곳에서 찾아볼수 없을 정도로 긴 생명을 가진 특이성을 가집니다. 그런 과거에 대해 우릭 약했기 때문이라던가 지리학적인 문제때문이라던가 하는 설명을 붙일수도 있지만 이유가 뭐건 그것이 한국문화의 뿌리에 있는 역사적 현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다른 나라보다도 민주적인 전통을 만들어 내면서 살아왔던 것입니다. 정복과 팽창에 의해서 나라가 유지되는게 아니니까요.

 

저는 그 수천년의 역사가 만들어 낸 문화가 이제 성장과 약탈이 아니라 유지와 조화를 찾아야 하는 시대에 이르러 저력을 발휘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우리의 과거에 무조건 금칠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특성을 가졌으며 그 특성이 빛을 발하는 시대로 세계가 변했다는 것입니다. 고려의 불교문화와 조선의 유교문화를 통해 우리는 매우 철학적인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불교던 유교던 그 창시자들이 된 성인이 외국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그 창시자들이 살던 나라는 그들의 이상을 실현하는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중국의 어느 왕조가 유교적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만들어 졌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조선을 만들었고 그래서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도 만들고 조선왕조실록을 기록하고 한글을 창제할 정도로 특이한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생태주의라고 하면 흔히 외국의 누군가가 창시자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 메시지를 모두 포함하고 그것을 넘어선 메시지를 가진 것이 우리의 문화에 이미 있으며 더구나 그것을 어느정도 실천해 왔다고 믿습니다. 일본의 정원과 한국의 정원을 비교하면서 한국정원의 자연미를 말하는 것만 봐도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연을 뒤틀고 변화시키기 보다는 자연과 조화되는 삶이 한국인의 삶이었습니다.

 

물론 옥토라고 해도 씨를 뿌리고 수확을 해야 뭔가가 생산되겠지요. 과거를 금칠하고 아무것도 안해도 거기서 뭔가가 튀어나와서 한국이 빛나는 국가가 되리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창조적 계승이 필요합니다. 매우 힘든 일이겠지만 새로운 세상에서 어떤 다른 나라도 해내지 못할 행복한 나라의 모범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이 일어나서 아이엠에프를 세계에서 가장 빨리 빠져나온 우리나라, 광화문을 채운 사람들이 휴지를 줍고 응원하고 시위하는 문화를 보여준 우리나라, 인구로보면 얼마되지도 않으면서 책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드라마를 만드는 등 문화적 저력을 보여주는 우리나라, 우리나라에게는 뭔가가 있습니다. 그것을 폭발시키지 못할 뿐이지.

 

세계는 변해갑니다. 그리고 당연히 외국도 그렇지만 우리도 혼란에 빠져있습니다. 변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뭔가를 그안에서 느끼는 일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미국도 훌룡하고 좋은 나라이지만 성조기만 흔들고 있어서 뭔가가 되는 시대는 절대로 아닙니다. 잘못되면 무너지는 왕조속에서 과거에 맹종한 간신으로 몰려서 당할수도 있습니다. 자아를 가져야 할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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