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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대학에 대하여

시대는 대학과 대학원의 분리를 요구한다.

by 격암(강국진) 2013. 4. 25.

2013.4.25

온 세계가 어느정도 마찬가지이지만 오늘날 한국은 교육에 대해 누적된 모순의 피해속에서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교수는 학문을 못하고, 시간강사들은 불안한 미래에 괴로워하며, 학생은 높은 학비에 시달리고 무엇보다 모두가 그런 척 할뿐 대학에서 교육이란게 이뤄지지 않는다. 대학교육은 점점 더 사기극이 되어가고 있다.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은 물론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결국 현실성있는 방법은 한가지 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대학을 대학원과 완전히 분리하고 대학교육이 대중교육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조차 어떤 사람들에게는 매우 비현실적으로 보이겠으나 나는 그게 어떤 모순이고 대학과 대학원의 분리가 뭘 말하는 것인지 그게 왜 현실적인 대안인지 설명해 보려고 한다. 

 

모순의 시작

 

3-40년전의 고등학교 교육을 생각해 보자. 지금 어린 학생들에게는 3-40년전이라고 하면 조선시대처럼 옛날로 느껴질지 모른다. 요즘 학생들은 레코드 플레이어나 흑백티브이 같은 것은 현실성이 없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곰곰히 물어보고 생각해보면 '그 낡았다는 느낌'과 교육의 현실에는 어떤 기묘한 모순이 있다. 그 낡았던 시절의 고등학교 교육내용은 결코 지금의 고등학교 교육내용보다 쉽지 않았으며 실질적으로 고등학교 교육의 내용은 거의 변하지 않았고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쉬워졌다. 저자가 일본책을 참고해서 만들었다는 수학의 정석의 초판이 나온게 1966년이라고 하는 것만 생각해 봐도 이것을 느끼게 된다. 사실 옛날 고등학생들이 오히려 더 어려운 책을 가지고 공부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인류의 지식은 댐이 무너지듯 기하급수적으로 20세기에 걸쳐서 증가했다. 모순의 시작은 단순하다. 시대가 점점 더 많은 지식을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당연한데 고등학교 교육은 그대로 같은 것을 가르친다. 오히려 점점 쉬워진다. 당연히 취업자들에게 오늘날의 회사들은 고등학교교육에서 배운 것 이상을 요구하고 따라서 대학교육은 필수가 되고 취업을 위한 준비처럼 변한다. 이런 시대적 변화속에서도 우리는 대학이 뭔지, 고등학교가 뭔지에 대해서 오래된 낡은 관습에 따라 사고하고 있다. 

 

모순의 결과

 

지식은 누적되고, 인터넷같은 정보 환경의 변화가 생기고,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수가 누적되어감에 따라, 모순도 점점 더 누적되어져 왔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점점 더 대학교육은 필수적인 것이자 기초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70%의 학생이 대학에 진학한다고 하니까 이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가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물론 그들의 대부분은 취업을 위해서 진학하는 것이며 따라서 대학에 가서도 취업에 관련된 공부에 몰두한다.

 

그런데 사실은 대학이란 취업학원같은 곳이 아니고 본래 학문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교육연구기관이었다. 이 점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누구나 야구나 축구를 보고 즐길 수 있지만 누구나 프로야구선수가 되고 프로축구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다. 내말은 대학이란 본래 학문에 대해 큰 관심과 소질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소질없으면 교육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오늘날 사람들은 실제로 대학수준의, 고등학교 교육을 넘어서는 수준의 공부가 필요하다. 하지만 양자역학이 나오던 20세기초반에 양자역학은 혁명적인 과학이론이지만 한세기가 지난 지금 그것이 대학의 기초과정에 불과하듯이, 학문을 하는 것, 연구를 하고 새 것을 찾는 것과 쌓여진 것들을 공부를 하는 것은 같지 않다.

 

지금 대학교에 있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스스로도 알겠지만 학문을 업으로 할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시대적 모순이 누적됨에 따라 학문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수업을 듣는다. 이건 좀 과장해서 말하면 소년축구교실을 매번 프로축구선수를 불러다가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하면 좋겠지만 당연히 그런 서비스는 엄청나게 비쌀 수 밖에 없다. 바람직한지조차 알수 없다.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능숙한 선생님이 메시나 호나우두보다 축구를 가르치는데 있어서 더 능할수 있다. 

 

많은 대학들은 시간강사를 고용하고 그들에게 매우 열악한 환경을 제공해서 즉 그들을 착취함으로서 이런 시대적 모순을 어느정도 해소한다. 그리고도 그 모순은 해결되지 않고 학생들은 엄청난 대학교육비를 내는 것이다. 그리고도 모순은 해결되지 않아 대학교수들은 잡일에 치여서 연구를 할수 없다고 괴로워한다. 대학교수는 기본적으로 연구능력때문에 임용되는 것인데 가르치는 일이 시간을 다 빼앗는다. 심한 경우 나는 잡일이 많아 연구를 할수 없으므로 대학을 관둔다고 하는 경우도 생긴다. 

 

대학교육이 왜 비싸야 할까? 시간강사들이 모여서 대학학부과정 강의를 해주고 그들이 지금 받는 월급정도만 받는다면 대학교 등록금이 비쌀 이유가 없다. 대학강사의 처우는 사실 고등학교 교사보다도 훨씬 못하다. 더구나 마치 공립고등학교처럼 공립대학교육선생을 두고 가르쳐도 교육의 질은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높아질 수도 있다. 왜냐면 지금 대학에 있는 사람의 대부분은 학문을 할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70%의 학생이 대학에 간다. 70%의 학생들이 프로축구선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대학교육은 필요하다. 그러나 많은 대학교수들은 솔직히 말해 강의실에서 길을 잃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지적인 수준이 비슷한 후배나 동료와 함께하는 것이고 가르치는 것이상으로 지적인 자극을 받는 것이지만 강의실을 채운 사람의 대부분은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적분이 안되고 미분방정식을 못푸는 학생들에게 혹은 기본적 논리훈련이 안된 것같은 학생들에게 고급의 학문을 가르치는 이야기가 나오면 대부분의 교수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젖거나 허탈한 웃음을 터뜨린다. 그래도 정부나 대학당국은 그들을 졸업시키라는 압력을 가한다. 이런 현실이 대학교육을 사기극처럼 만들고, 진정한 교육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 그들은 그들에게 필요한 방식의 교육이 있지만 그건 지금의 대학교수들이 잘할 수 있는 분야도 꼭 해야 하는 분야도 아니다. 

 

 대학과 대학원의 분리

 

우리는 결국 역사를 반복할 때가 된 것같다. 단순하게 말하면 그것은 지금의 대학교를 마치 지금의 고등학교처럼 만드는 것이다. 경기고 같은 비평준 명문고가 사라지듯 대학교는 평준화되고 교육내용은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대학과 대학원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대학은 연구보다는 가르치는 것에 전문화된 강사들이 고정직으로 교과목들을 가르치는 과정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런 대학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금의 고등학교가 과거의 고등학교가 가지는 영예를 상당부분 잃어버렸듯이 그렇게 될것이다. 그대신 극단적으로 말해 대학등록금이 지금 공립고등학교 등록금만큼 떨어질 수 있다. 지금 한국에는 고등학교선생님만큼의 수입과 영예를 가지는 대신, 안정적 직업을 가지면서 대학강사를 계속하고픈 사람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박사과잉의 시대다. 

 

모든 대학교가 평준화되면 대학등록금이 싸지며 실질적으로는 교육의 질은 더 올라간다. 거듭말하지만 연구와 있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은 서로 크게 다르다. 강남의 학원에 있다는 스타 강사들이 인기있는 이유는 그들이 가르치는데 뛰어나고 거기에 노력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대학은 달리기로 사람뽑아놓고 수영을 가르치라고 하는 것이나 비슷하다. 대학교수가 되는데에 있어서 압도적으로 중요한 것은 연구실적이다. 그들이 취업에만 관심있는 학생들과 함께하는 강의실이란 피차간에 괴로운 공간이 되기 쉽다. 더구나 대학수준의 지식이라고 해도 기초과정은 요즘 여러가지 시청각자료에 의해서 배울 수가 있다. 세계최고의 일반물리 강의가 생생한 비디오로 있는데 뭐하러 그런거 해본 적도 없는 연구하는 교수가 엉성하게 하는 강의를, 깊은 토론따위에는 관심도 없는 학생들이 들어야 하는가. 

 

취업을 위한 전문대학과 학문을 하는 대학으로 구분하는 것은 해소책이 안된다. 서울대는 최고우수한 학생이 들어가는 대학이니 취업을 위한 전문대학이라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취업은 서울대가 잘되니까 취업을 위해서라도 서울대로 사람들이 가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고등학교 교육수준을 높이자고 할지 모른다. 그것은 비현실적이다. 현실에서 졸업장이란 일종의 자격증이다. 고등학교 교육내용을 대학수준으로 높이는 것은 물론 가능하다. 그러나 그렇게 공부해서 타는 것이 여전히 똑같은 고등학교 졸업장이란 자격증이라면 그런 개혁이 성공할 리가 없다. 결국 대학이 중학교나 고등학교 교육처럼 필수적인 대중 교육의 한 단계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모두를 위한 대학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대학을 평준화하고, 들어가기 쉽게 하고, 명문대학같은 거 따지지 않고 전학도 쉽게 만드는 것이다. 그럴 때 본래의 대학의 기능 즉 모두를 위한 대학이 아니라 학문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의 기능도 살려낼 수 있을 것이다. 

 

맺는 말

 

경기고같은 명문고졸업생들은 물론 고등학교가 평준화 될 때 싫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명문대학의 졸업장을 가진 사람들은 현실을 인정하고 대학을 보다 대중적인 교육기관으로 전환하는 것에 상실감을 느낄 것이다. 단순하게 기득권을 버리라고 하는 것으로는 이런 변화가 납득이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순은 지금 이순간에도 누적되고 있다.  언제까지 학생들이며 교수들이 시간만 낭비하게 둘 것인가. 다만 언제냐가 문제고 적극적으로 미래를 수용하지 않으면 그 모순의 피해만 늘어날 것이다. 이런 점을 수긍하고 그 모순의 실체를 직시할 때 변화를 수용할 자세가 되지 않을까. 

 

한국사회의 여러 어려움중에서 주거의 문제와 교육의 문제는 가장 중요한 두가지 문제로 거론된다. 지금 이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모순의 피해를 입고 있는지 모른다. 그들은 필요없는 경쟁을 위해 피땀을 쏟고 서로 필요하지 않은 것을 주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그 일을 잘해낼 수있고 그럴 용의가 있는 사람들은 자리를 얻지 못하고 그럴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자괴감속에서 허우적댄다. 

 

예를 들어 가장 대학입시성적이 좋은 사람이 가장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은 옳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건 모두가 학문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전제에서나 그렇다. 인기없는 학문도 실은 매우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모두를 한 곳에 놓고 쓸데없는 경쟁을 하게 하면 학문을 해야 할 사람은 도태되고 학문에 관심없는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쉽다. 고등학교 수준에서 모든 과목을 고루 잘하는 학생이 정말 인재일까? 우리나라에서 아인쉬타인과 퀴리부인이 도태된다는 이야기는 반드시 농담이 아니다. 현실이다. 이런 희생들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소위 국가경쟁력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외면되어졌다고 해도 모순은 결국 우리 사회의 에너지를 갉아먹을 밖에 없다아무쪼록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서 이런 시대의 희생자들을 줄이는 길이 빨리 열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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