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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대학에 대하여

한국 대학 너의 진정한 이름

by 격암(강국진) 2009. 8. 31.

2009.8.31

머릿말

 

대학이란 뭐하는 곳일까. 이것에 답하기 위해 대학의 역사를 살필 수도 있겠으나 여기서는 일반적인 상식을 살피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대학이란 고등 교육기관으로 학생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곳이며 고급 연구인력들이 연구를 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과연 한국의 대학은 대학이 맞을까 아니면 대학이 아닐까. 물론 한국의 대학들은 교육도 시키고 교수들이 연구도 한다. 하지만 그러니까 한국의 대학은 대학이 맞다고 하면 뭔가가 찜찜하다. 

 

명가명 비상명

 

조금 심한 예이기는 하나 이런 예를 들어보자. 식당이란 뭐하는 곳일까. 식당이란 돈받고 음식을 파는 곳이다. 그런데 어느 식당에서 돈받고 음식을 팔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웨이트레스들이 몸을 팔고 있었다면 어떤가. 이곳은 사창가라고 불려야 할까 식당이라고 불려야 할까. 한 식당은 주인이 조폭이고 조폭조직이 모여서 회합을 하면서 음식도 파는 곳이라고 하자. 이곳은 식당이라고 불려야 할까 아니면 조폭 사무실이라고 불려야 할까. 적어도 이 예들은 돈받고 음식을 판다면 당연히 식당이라는 결론이 틀릴 수도 있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교육도 시키고 연구도 한다고 해서 그런 곳은 전부 대학이라는 결론은 틀린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너무 쉽게 우리는 한국대학이 대학이라는 결론으로 뛰어가서는 안된다. 

 

한국대학은 뭐하는 곳인가. 

 

이렇게 너무 빠르지 않게 세상을 볼 준비를 한 후에 관련된 한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일단 대학입시라는 것은 왜 있어야 할까. 대학이 교육을 위한 곳이라면 교육을 행할 사람을 고르기 위한 것인가? 그런데 왜 골라야 할까. 서울대에서 전국 모든 국민들을 교육시킬 능력은 안되지 않냐고? 정말 그럴까? 

 

강의실 큰거 잡고 오디오 비디오 시설 동원하고 심지어 인터넷 방송까지 동원하면 전국민을 모두 교육시키는 것이 왜 안되겠는가. 도올 김용옥이 방송에 나와서 한 강의들이 대학강의와 다를 것이 무언가. 만약 당신이 숙제채점이나 학점주기가 곤란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면 당신은 문제의 핵심에 한걸음 다가간것이다. 

 

왜 전국민을 서울대학생으로 받아들이고 교육시키지 않는가. 그 이유는 서울대라는 곳이 교육시키는 기능 이상으로 서울대 졸업생이라는 졸업장을 파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가가 필요하고 입학시험을 보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서울대라는 곳은 혹은 일반적으로 한국의 대학이라는 곳은 교육을 시키는 기능이 강할까 졸업장을 파는 기능이 강할까. 대학은 교육을 하는 곳인가 자격증을 교부하는 곳인가? 

 

한국대학의 역사적 뿌리

 

한국 대학들의 과거와 현재를 보라. 우리는 본래 유교적 전통위에 서있는 나라인 반면 우리의 대학은 서양의 전통위에서 있는 기구다. 유교적 전통에 대학을 세우는거 봤는가. 즉 학문이 먼저 있고서 대학이라는 기관이 생겨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그 반대에 가깝다. 서양의 학문이 없었던 한국에 대학을 먼저 세우고 그것을 통해서 학문을 들여오고 졸업장을 교부해서 대학졸업자를 양산했다. 흑백으로 나누기는 어려우나 이것은 대학설립의 주체가 누구인가의 문제이다. 한국의 역사에서 대학은 아무래도 학자중심이라기 보다는 대학이라는 껍데기를 세우는 재단중심이 되기 쉬웠다. 한국의 하버드를 만들자면서 정답인 하버드를 보고 재단이사장이 건물도 세우고 사람도 채워넣는 식이랄까. 

 

이 차이는 중요하다. 전통과 정체성은 이렇게 탄생하기 때문이다. 만약 돈과 명예에 상관없이 지적 추구욕에서 서로의 교류를 위한 필요에 의해 단체를 만들고 그것이 대학으로 발전한 형태라면 그곳의 전통과 정체성은 그런 방향에서 즉 우리가 보통 대학이라고 부르는 곳의 문화를 갖추었을 것이다. 바로 교육과 학문의 연구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외국 대학을 흉내내려는 무수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적전통과 문화는 본질에서 벗어나지않기가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학을 설립하려면 정부의 허락을 맡아야 한다. 이같은 사실이 뭘 의미하는가. 예를 들어 수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선문답을 하는 모임을 만들었다고 하자. 이런 모임을 만드는데 정부 허가제가 필요할까? 허가제가 없으면 너도 나도 대학이라고 자기 단체에 이름을 붙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다. 졸업장 장사가 한때는 꽤 짭잘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진짜 교육과 연구는 사라지고 졸업장을 몇장이나 만들었나라던가 어떤 실적을 올렸나 같은 부분이 대학의 중심에 자리잡게 된다. 그리고 대학의 사고는 얄팍해 진다. 평가란 기존의 패러다임안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꿈꿀 수 있는 대담함은 오히려 대학의 실적을 악화시킬 것이다. 

 

한국대학의 사회적 뿌리

 

초중고등학교와 대학이 질적으로 다른 이유는 연구에 있다. 대학이란 교육을 하는 장소인 동시에 연구기관인 곳으로 이런 의미에서 대학의 진정한 뿌리는 연구에 있다. 학생이 극소수인 연구대학도 대학이지만 지적 추구는 없이 실용지식을 강의하는 교육기관은 대학이라고 부를 수가 없다. 그것은 직업학교, 평생교육을 위한 교육기관이라고 불러야 한다. 

 

이렇게 중요한 지적추구라는 것도 우리는 그 뿌리를 봐야 한다. 대학이라고 간판을 달면 한국대학의 교수들은 미국이나 유럽의 대학교수들과 같은 지적 욕망을 가지게 될까? 인간은 사회적 영향력의 산물이다. 즉 사회적으로 요구가 있기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이 그런 지식과 이성에 대한 탐구에 들어가는 것이다. 기독교가 번성하니까 신학에 대한 요구가 있고 유학이 번지면 유학적 역사관에 대한 연구가 요구되어지는 것이다. 과학기술이 사회적으로 중요시 되니까 과학기술에 대한 지적열의가 올라가는 것이다. 눈이라곤 하나도 없는 지역에서 눈썰매 만들기에 대한 지적 탐구욕구가 올라가지는 않을것이다. 한국에는 삼성반도체가 있기 때문에 반도체에 대한 관심은 보다 쉽게 사회적 서포트를 받을 수가 있다. 한국의 이슬람 인구는 극히 작으므로 이슬람 신학에 대한 연구는 주목받지 못할 것이다. 

 

한국대학의 주요목표는 종종 졸업장 판매이고 그것은 스스로의 지적열의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니므로 이것은 결과적으로 미국대학에서 가르치는 것을 우리도 가르친다는 태도가 나오게 되기 쉽다. 따라서 미국에서 박사를 받은 교수가 가르친다는 점이 중요하며 실제로 교육이 이뤄지는가는 배우는 학생, 학비를 내는 학부모, 교수, 재단등 대부분 사람들이 별로 관심없어 하는 것이다. 증서를 얻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대학이 진정한 대학으로 서려면 먼저 한국 사회는 지적 욕구를 가지고 있는가 가지고 있다면 어떤 지적 욕구를 가지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줄기세포를 연구해서 상품을 만들면 돈이 되니까 줄기세포에 관심이 있다는 식의 것은 지적 욕구가 아니다. 왜냐면 관심사는 결국 돈이지 지식이 아니므로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다른 방법을 택할것이며 사실 연구는 돈을 벌기위해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그건 마치 수영국가대표선수가 건강하다고 하니까 수영국가대표선수가 되겠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연구는 돈이 되지 않는다. 문화적 과학기술적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돈을 소망한다는 것보다 더 폭넓은 지적 연구에 대한 지지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로켓을 만든다고 하니까 이걸로 돈벌수 있냐고 바로 묻는 식이어서는 우주탐험의 강국이 될수 없다. 

 

한국사회에는 지적열의로 불리는 것이 분명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 전통적으로 개인적 수도의 의미와 출세의 의미가 강한 것같다. 하나는 선비의 자기수양이나 불교승의 수도같은 것으로 대표되고 또하나는 장원급제하여 출세하는 이미지로 대표된다. 그러나 전통적 유불의 수양은 조직화에 맞지 않으며 서양의 영향이 강해짐에 따라 무시되는 경향이 있고 출세를 염두에 둔 지식욕은 출세욕이지 지식욕이 아니다. 완전히 모르는 것을 추구하는 열의는 우리의 전통속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한국대학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이유

 

대학이라는 곳은 대학수준의 지적 전통에 의해 지적 추구를 목적으로 세워져야 하는 곳이다. 그래야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대학이 된다. 당장 회사에 가서 필요한 지식을 교육시키거나 첨단의 지적추구가 아닌 일반적인 회사원이나 기능공을 키우기 위한 곳을 우리는 직업학교라고 불러야 한다. 

 

물론 나는 직업학교가 대학보다 저질이고 나쁜 것이라고 주장할 의도가 전혀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직업학교라면 우리는 쓸데없는 대학을 버리고 직업학교를 운영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하게 될 것이다. 이름을 의대라고 붙이고 그곳에서는 요리를 가르치면 사람들은 엉터리 의사때문에 고통받게 될 것이고 정말 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름과 내용이 다르게 어떤 것을 추구하면 효율도 떨어지고 피해자도 나오게 된다. 여기서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피해자는 대개 어린 세대다. 

 

두번째는 한국에 진짜 대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한국 사회와 자신이 궁금해 하는 것을 연구하며 그런 사람들과 소통하며 사는 것을 낙으로 삼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고 토론하고 교육하는 진짜 대학이 있어야 한국도 세계적 대학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노벨상급의 인물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대학은 본래 그런 것을 위한 커뮤니티다. 거듭 말하지만 만화동호회라고 이름짓고 그 안에서 미적분공부를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자신이 정말 원하는게 뭔지, 우리 사회는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욕구가 나의 지적 욕구와 합치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회사가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학생들이 배우고 싶은 것은 뭔가. 교수는 뭘하며 시간을 쓰고 싶은가. 시민들은 어떤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줄 의향이 있는가.

 

정부가 주도하고 왜곡하는 방식으로는 그저 선진국의 흉내내기 쑈만이 계속될 뿐이다. 왜 어린 학생들은 대부분 인생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 것을 죽자고 공부하느라고 고생인가. 그들이 공부하는 영어며 수학이며 일반 다른 지식들은 대개 별 의미가 없다.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 잘 푼다고 대수학자가 되는것도 아니고 입시영어 죽자고 공부하는 것으로 영어문제가 다 없어지는것도 아니다. 회화나 원서읽는 실력은 또 다른 것이다. 왜 대학들은 교육을 원하는 사람에게 교육을 개방하지 않는가. 왜 세상에 쓸모있는 장소가 되는것을 거부하는가. 왜 있지도 않는 실력을 가장해서 폼을 잡고 그걸로 먹고 살려고 하는가. 철학도 예술도 과학도 기술도 거리로 터져나와야 하지 않는가. 세상이 궁금해 하는 문제에는 무력하기 만한 상아탑속의 지성들은 언제까지 폼만잡을 생각인가. 왜 세상이 이정도의 합리성밖에는 가지지 못하는가. 그건 대학속에 숨은 지성이라는 당신들도 그정도 밖에는 되지 않기 때문이거나 당신들만 숨어서 세상과 소통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당신들은 왜 세상으로 터져나오지 않는가. 

 

명가명 비상명이라, 이름붙여 부른 이름은 항상 옳은 이름이 아니다. 한국대학 너의 진정한 이름은 무엇인가. 무엇이라고 불리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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