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대학에 대하여

대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

by 격암(강국진) 2011. 3. 8.

2011.3.8

저는 아내나 지인을 만나 이야기하다가 내가 하는 이야기를 스스로 듣고 아 이런 걸 좀 더 생각해 봐야겠구나 하고 생각해서 글을 쓰거나 트위터에 기록을 남기는 일이 있습니다. 어제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대학이란 지금 이시대에 뭘까, 조금 넓히면 중학교 고등학교 교육을 포함하는 교육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바보 만드는 교육

 

교육이란 뭔가를 가르치고 누군가가 뭔가를 배운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소위 창의력의 중요성을 외친지가 벌써 십수년이 지났지만 그런 방면에서 점점 더 악화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육은 더 많은 바보를 양산해 냅니다. 소설을 쓰는 것과 소설에 대한 지식 즉 누가 무슨 작품을 썼으며 어떤 평가를 받았다는 둥 하는 것과는 별개의 것입니다. 모짜르트 음악을 듣고 그것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과 모짜르트의 일생에 대한 지식, 모짜르트 음악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또한 전혀 다른 것입니다. 

 

교과서을 읽고 시험으로 평가하는 방식으로는 더더구나 4지선다형같은 문제가지고서는 창의력은 평가되기 어렵습니다. 어떤 의미로 창의력이란 권위를 극복하고 그에 반해서 생각하는 능력으로 선생님이 이게 맞다고 하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문제내고 선생님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을 맞히면 좋은 점수를 받는 시스템이 어떻게 창의력을 테스트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선생님이라고 전부 천재나 고급지식인인것도 아니죠. 솔직히 많은 선생님은 메뉴얼대로 교육하는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설혹 상식을 넘는 인재가 있다고 해도 대부분 창의력있는 그 인재를 품을 만큼의 그릇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창의력을 기르는 교육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입시교육은 예전보다 더욱 길고 치열해져서 요즘엔 더더욱 어릴때부터 아이들이 입시에 매달립니다. 입시만 문제가 아닙니다. 대학도 그러합니다. 대학에 들어나고 나서의 공부도 요즘에는 입시공부하듯합니다. 취업때문에 학점관리하는 것에 더 민감해졌기 때문이다. 학생만 그런게 아닙니다. 교수도 그렇습니다. 저는 대학생때 교환학생으로 영국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느낀 것 그리고 후일 미국에서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을 보며 느낀 것은 한국대학교육은 입시공부를 닮았다는 점입니다. 대학에서도 학생들은 자기가 흥미있어하는 어떤 주제 하나를 파고든다기 보다는 엄청나게 많은 분량의 공부할 거리를 두고 빨리 진도를 나가려고 합니다. 더 많은 수학문제를 풀고 더 많은 지식을 머리에 집어 넣는 것이 공부의 목적이며 거기에 크게 빠져 있는것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런 교육이 끝없이 가르치는 한가지 메세지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답은 네 안에 있지 않고 바깥에 있다는 것입니다. 답은 선생님이 알고 계시는 것이거나 교수가 알고 있는 것이거나 도서관에 가득한 권위있는 저자들이 쓴 책안에 있거나 하버드나 엠아티같은 유명대학에 있는 것이죠. 다시 말해 답은 내 안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빨리 저 바깥에 있는 것을 서둘러 내 안에 집어넣어야 합니다. 그래서 책을 읽어도 수백 수천권 읽기를 소망합니다. 베스트 셀러도 백과사전같은 류가 가치있게 생각되며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르는 지식을 잔뜩 가지고 있는 책이 좋은 책입니다. 거기에는 답이 내 안에 있다는 생각, 나에 기반한 진정한 가치판단이 실종되어 있습니다. 

 

이런 교육을 오래받으면 받을수록 사람은 지식이 쌓여가지만 한쪽으로는 바보가 됩니다. 권위의 노예가 되고 자기는 스스로 뭘해야 할지 전혀 모르게 됩니다. 높으신 교수를 바라보면서 저 교수가 하는 말을 잘 들으면 그렇게 될거라고 생각하는 학생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 교수의 말을 부정할 수 있는 능력을 빨리 가지는 사람만이 그 교수와 나란히 서거나 그 교수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권위주의가 만연한 한국의 고등교육은 애초에 지적인 동료로서의 대학원생이나 대학생이라는 개념을 배제합니다. 그냥 받아적는 존재가 학생이죠. 따라서 교육은 사람들을 바보로 만드는 것입니다. 

 

저라고 해서 바깥에서 배워오는 것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방안에 앉아서 제 아무리 오래 명상한다고 혼자서 양자역학을 만들어 낼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결국 '내'가 실종된 교육이란 기계화된 인간을 양산하는 것으로 길어지면 바보를 만듭니다. 진짜 소중한 답은 내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교육안에 체화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것이 오늘날 한국 교육의 현실입니다. 

 

한국에서 대학이란 무엇인가. 

 

한국에서 대학이란 뭘까요. 우선 나는 한국에 왜 백개가 넘는 개별적 존재로서의 대학이란게 있어야 하는가를 묻고 싶습니다. 이것은 꼭 대학입학자격만 증명되면 전국의 어느 캠퍼스건 가서 공부하면 되는 그런 시스템을 만들자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에 반대한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대학이라는게 뭐냐는 아주 기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은 것입니다. 

 

만약 대학이라는게 단한명의 스승이 문하생들을 받아서 가르치는 것이라면 당연히 각각의 대학은 서로다른 인격적 특성을 가지게 될것입니다. 제자들은 그 스승이 세상을 보는 시각, 그리고 그런 삶의 태도위에 쌓아 올린 지식을 배우게 되겠지요. 누가 가르치냐가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각각의 대학은 서로 완전히 다른 것을 배우는 기관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대학이 그렇습니까? 각각의 대학은 물론 우리는 차별화되는 교육이념과 커리큘럼이 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서울대와 고려대와 연세대와 포항공대와 카이스트는 우리는 서로 다르다고 우리의 문화적 역사적 정체성은 서로 다른 교육을 시킨다고 주장할것입니다. 

 

그런데 뭐가 다르며 그 차이는 어떤 가치를 가진 차이입니까. 제가 보기엔 한국 대학은 종교에 관련된 대학을 제외하면 차이가 없습니다. 한국은 획일화된 사회입니다. 대학외부가 대학을 획일화시키고 대학내부가 스스로 자기를 지킬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있는 정체성중 가장 큰것이라봐야 학연일 겁니다. 누구와 연결되게 되는가. 그런데 경쟁이 치열해지고 투명해진 사회에서 학연의 힘은 날로 떨어집니다. 게다가 그것보다 본질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대학을 여러개 가진 이유는 서울대 같은 명문대졸업생들의 졸업증서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함이거나 각 대학들이 졸업생을 배출하고 서로 뭉쳐서 한국안에 작은 패거리들을 만들어 내게 함인가요? 대학가는게 알고보면 무슨 조폭가입하는거랑 같은 건가요?

 

한국 대학들이 서로 비슷비슷한게 문제의 핵심이 아닙니다. 바로 나를 잊어버리게 만드는 고등교육을 시키는 대학도 실은 '나'가 없다는 현실이 문제입니다. 그 '나'란 한국 사회에 기반한 정체성이어야 하고, 그걸 넘어서고 포괄해서 세계와 인생에 대한 철학적 고민과 욕구에서 시작된 행위를 하는 주체여야 합니다. 즉 나의 고민, 나의 질문이란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육에 대한 자기주장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을때 모든 대학은 실은 서양대학의 조잡한 복제에 지나지 않으며 그 안에서 가르치는 학문도 실은 서양학문의 조잡한 복제, 껍데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대학은 자아가 없습니다. 한국 사회전체가 자기정체성 부족에 시달리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만 대학도 자아가 없습니다. 가치에 대한 고민의 깊이가 -그런게 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에게까지 올정도가 되질 못합니다. 따라서 모든 대학은 실은 같은 교육을 시킵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실은 전에는 교과서까지 똑같았습니다. 

 

그렇다면 동네의 조그만 슈퍼가 이마트같은 것으로 대체되듯 인터넷 동영상 강의가 전국의 대학을 한꺼번에 대체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뭐하러 연구할 시간도 없다는 교수들을 강의부담에 시달리게 하며 시간강사들을 대충 고용해서 강의합니까. 전세계의 명강의, 전국 최고의 명강의를 녹화해서 그걸 듣는게 더 경쟁력있지 않겠습니까? 성문종합영어강의를 영문학자가 제일 잘하는게 아니고 수학의 정석강의를 수학자가 제일 잘하는게 아닙니다. 강의잘하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대학뺏지가 어차피 대입시험 성적으로 결정되는 거라면 대입시험성적표를 들고다니면 충분할것입니다. 

 

그런데 진짜로 입시공부하듯 대학공부를 그렇게 하면 쓸모가 있을까요? 그게 대학에서 배워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죠. 요즘 인재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봐도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는 자기 정체성이 없고 권위주의는 개인은 물론 대학같은 집단마져 자기 정체성을 가지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 교육은 위에서 말했듯이 끊임없이 답은 네안에 있는게 아니라 저기 바깥에 있다는 메세지를 던지고 그런 권위에 굴복하게 만듭니다. 빈껍데기 인간을 양산시킵니다. 그게 인재가 아닙니다. 말은 고분고분들으니 기분은 좋을지 모르지만 인재가 아닙니다. 

 

모든 인간행위의 근본은 결국 철학적 질문입니다. 자기 철학이 없는데 사회적 뿌리가 없는데 학문이 존재할수 있는가. 근본적으로는 없습니다. 자기 철학이 없다면 자기가 학문을 하는것 같지만 결국 뭘 만드는지도 모르고 누군가의 보조역할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기철학이 없으면 결국 왜 그걸 해야하는지도 모르고 선진국에서 유행한다니까 우리도 하자면서 싸구려 하청업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임금에 시달리는 이용당하기 좋은 존재가 되는 것이죠. 

 

남의 보조역할을 하는 것을 무조건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그렇게 시작하고 누구나 그게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나'를 잊어버리면 요리사가 되겠다는 꿈에 젖어 식당에 취직해서는 접시닦는 일에만 열중해서 결국 접시닦이로 평생을 마치게 되는 꼴이 되고 말수 밖에 없습니다. 접시를 열심히 딱으면 요리를 잘하게 되는게 아니니까요. 

 

맺는 말

 

말이란 끝이 없습니다. 자기철학 자기철학하는데 그게 뭐냐고 묻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고 대학에서 자기철학이 없다는게 뭐냐, 대학에 철학자들 많지 않냐고 질문하는게 당연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질문은 순서대로 할 수 밖에 없겠죠. 

 

굶는 사람에게는 밥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는 물을 줘야겠죠. 제가 보기엔 한국의 학생들에게 가장 시급히 가르쳐야 하는 것은 자기를 가지라는 가르침입니다. 중요한 것은 네 안에 있다라는 문구는 이리저리 이미 흘러다닙니다. 그게 뭘까를 고민하는 일이 필요하고 그걸 도와주는 일도 필요하겠죠. 고민을 더 깊게하고 더 넓게 하도록 하는 일이 필요하며 결국 그안에서 자기가 갇혀있는 감옥을 자각하게 만드는 일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게 대학의 교수들이 해줘야 할 일이겠지만 현실은 제가보기엔 반대입니다. 자기의 중심을 가진 철학자라고 해도 또한 반드시 손쉽게 남을 도울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만 많은 대학교수들은 스스로가 자기가 없습니다. 심지어 철학교수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적 환경, 현재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대학시스템도 문제입니다. 오히려 거꾸로 남들을 더 어리석게 만들고 어떤 특정한 기술이나 지식에만 도통하게 만들어 나의 도구 내 팔과 같은 존재로 만들려는 시도가 세상에 가득합니다. 저는 그런 부분을 지적하며 한국의 교육은 고의로 실패했다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한국 대학에서는 내부적인 대화가 부족하다고 그걸 늘리자고 하는 말도 흔한데요. 그것도 결국 자기철학 부재의 결과일 뿐입니다. 모두를 이어줄만한 넓은 철학적 공감대가 대화의 기반이 되고 언어가 되는 것이죠. 그것이 없는 사회가 바깥은 보면서 각자 남을 복제하고 있을때 서로서로 대화할 방법도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은 어떻게 극복될수 있을까요. 당연히 쉽지 않습니다. 자기철학을 가진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으로 자 이젠 나도 독립적인 사상가가 되자라고 결심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며 특히 한 사회가 그렇게 된다는 것은 간단히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엄청난 문화적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인과 대화하다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국사람들이 모두 읽을수 있는 철학책이 한권있으면 좋겠다고 모두가 그걸 읽을때 그게 대화의 통로가 될텐데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런 책이 현실에 없다면 인생과 세계에 대한 책을 몇권선정하고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하고 하는 일을 적어도 대학구성원 모두가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도 대단히 논란이 되는 문제가 되거나 (특정한 그래서 이해하기 쉽고 간결한 해석을 모두가 읽는가) 아니면 하나마나한 애매하고 복잡한 일이 되거나 (여기저기 잡다하게 모두 받아들여서 누구도 뭐라 할수 없는 애매한 이야기가 되거나) 둘중의 하나가 되기 쉬울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 역사의 존중입니다. 나는 존중을 찬양같은 의미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되도록이면 정의로운 부모에게 태어나고 싶었지만 우리 부모는 구질구질한 인간이었다는것이 현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뭐가 되건 우리 사회의 현실은 역사적 과정을 통해 여기에 이른것이며 우리안에 있는 유교적 불교적 영향을 포함한 문화적 가치의 흔적을 부정하려고만 해서는 안됩니다. 더구나 우리는 긴 역사를 가진 나라입니다. 물려받은 것은 실은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 것이 없다면 우리나라가 자기철학을 가진다는 목표를 생각할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세째는 권위주의 청산입니다. 권위주의적 시스템은 개인을 말살하고 바보로 만듭니다. 호칭부터 바꾸는 문화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