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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일상의 모험

by 격암(강국진) 2013. 6. 8.

13.6.8

우리는 항상 계획적으로 살라는 말을 듣는다. 이 말이 틀린 것일까? 생각하면 그렇지가 않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매우 틀려먹은 말이라는 생각도 든다.  왜냐면 진정으로 중요한 일이라면 계획은 항상 망가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계획을 착착 세워서 그대로 행할 수 있는 일이란 사실상 매우 단순하고 쉬운 일들밖에 없다. 우리는 청소를 할 계획을 세우고 나서 그 계획대로 하면서 음악을 듣고 심지어 다른 일에 사색에 빠질 수도 있을지 모른다. 어떤 코스를 따라 산책을 하면서도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 계획대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런 익숙한 일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일들에 대해 충분히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않다. 그래서 계획을 세워도 항상 그 계획은 어긋나고 만다. 빵을 만든다고 해보자. 그럼 밀가루를 구해야 반죽을 만들텐데 알고 보니 밀가루가 없다. 그럴 때 그럼 밀가루는 없다고 치고 반죽을 만들기로 하자라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많은 계획이란 하나둘 어긋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그 계획을 계속하는 것이 불가능해 지거나 매우 불합리해 지는 경우가 많다.

 

이같은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다.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얼마나 열심히 계획이란걸 세우고 그 계획에 집착하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대책없이, 계획없이 사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고 끝임없이 교육받아 왔고 계획이 없다는 점이나 계획대로 하지 못하는 점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도록 교육받아 왔다.

 

나는 반드시 계획없이 사는 사람이 훌룡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계획이 없다라는 것만으로는 그 사람은 오히려 가장 엉터리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그 계획이란게 이미 있으니까 엉뚱하게 다른 계획을 세워서 이 진짜 계획을 따르지 못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다만 그 계획이란 것이 의식적으로 써있는 어떤게 아니라 그냥 우리 자신 그 자체가 계획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매 순간을 나로서 세상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나로서 세상을 만날 때 자연스레 나는 내가 뭘 해야 할까라는 반응을 일으키고 그렇게 해서 일을 해나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일 것이다. 미리 뭘 계산하여, 이건 이러니까 저건 저래서 하는 식으로 자신을 제약하지 말고 그저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물론 어떤 감수성과 창의성을 전제로 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그것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느끼고 창의적으로 반응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일상의 모험이다. 왜 모험인가. 이렇게 사는 것은 내일 내달 내년에 내가 어디에 있을지에 대해 아무런 계획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것에 삶의 어려움이 있지만 동시에 재미와 보람이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 것은 실상 의미가 없다. 

 

윤리학에 대한 책에서는 윤리적인 난제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이 죄없는 한사람을 죽이면 백사람이 살아나는데 그것은 옳은 일일까 하는 식의 질문이다. 이 질문과 비슷한 다른 질문을 만들어 내는 것은 쉽다. 오늘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 당신은 성공해서 나중에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는데 오늘은 그걸 위해서 희생시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 따지고 보면 이같은 것은 모두 계획과 예측에 대한 것이다. 이런 질문의 함정은 A이면 반드시 B이다라는 전제를 굳게 믿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우리는 절대로 미래를 모른다. 실제로 예측한대로 미래가 일어났다고 해도 그것이 반드시 예측을 한 순간에 미래가 100% 확실하게 결정되어져 있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우리가 단정짓고 희망을 버렸을 뿐인 것이다. 

 

반드시 백명이 죽을 가능성이 있어도 한사람을 구해야 한다거나 미래를 위해서 오늘을 타협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답은 물론 내 가슴이 아니고 그 상황에 처한 사람의 가슴속에 있다. 그 사람이 평상시에 자신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했다면 답은 떠오르기 마련이다. 비슷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답이 완전히 반대일 수도 있지만 답은 떠오른다.  답이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답에 따라 움직이는 그것이 바로 일상의 모험이다. 결국 진정으로 가치있는 것은 그것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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