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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재미있는 남자

by 격암(강국진) 2013. 9. 2.

13.9.2

나는 재미있는 남자가 되고 싶다. 재미있는 사람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환대받기 마련이다. 재미있는 남자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쓸모가 있다. 재미라는게 뭔가를 생각할 때 이제 재미라는 단어는 단순히 인기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넘어서 시대의 변화를 상징하는 핵심단어가 되어가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재미있는 사람이 무엇인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과거에 유명했던 코메디언인 심형래나 이주일의 재미를 생각하고 요즘 잘나가는 예능방송의 스타인 유재석을 생각하면 어떤 변화를 느끼는 것이다. 코미디나 드라마에는 예나 지금이나 분위기를 맞춰주는 것이 중요했다. 즉 웃기는 말이란 적당한 순간에 적당한 분위기에 적당한 말을 던지는 순발력이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심형래나 이주일은 말하자면 카리스마있는 코메디언이었다. 그들은 주변을 심형래화하고 이주일화한달까. 우리는 심형래나 이주일에게 정복당하고 항복하고 만다는 느낌이다. 그들이 등장해서 거의 똑같은 말을 해도 우리는 참을 수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그저 마이크 앞에서 아무 말도 안하고 있어도 사람들을 웃기는 코미디언. 그들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아마도 요즘 세상에서는 그런 카리스마가 통하기에는 대중이 너무나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그런 식의 카리스마있는 재미는 어느 정도 낡은 시대의 것이 되었다. 요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드라마와 영화가 시작하는것을 보면 아 이거 출생의 비밀이 있는데 결국 저 여자가 이렇게 저렇게 구해준다는 거로군 하고 바로 예측하고 평가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혼자서 사방을 지배하는 카리스마의 연기를 넘어서 전체를 살려주는 재미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항복한다. 요즘 사람들은 공식화된 재미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그들은 형태가 없는 어떤 것에 반응한다. 어느 새 코미디방송은 인기가 없고 예능방송이 방송시간을 장악한다. 무대위에서 혼자 혹은 몇사람이 서서 정해진 대본을 가지고 사람을 웃기는 식의 코메디는 이제 그다지 많지 않다.

 

언젠가 심형래가 유재석을 만나서 말하기를 이게 무슨 최고의 스타야라고 했다. 아마도 그가 보기에 유재석은 이렇다할 특기도 없고 특징도 없어보여서 일지 모른다. 사실이 그렇다. 유재석은 다 잘하는 것같으면서도 이렇다하게 특징은 없다. 따지고 보면 유재석이 특별히 웃기는 능력이 대단한 것같지 않다. 그러나 모두가 안다. 유재석이 빠지고 프로그램을 만들면 그 프로그램은 재미가 없을 것이다. 유재석은 러닝맨같은 프로그램에서 다른 사람들을 이끌면서 전체 분위기를 만들면서 웃기는 사람이다. 분위기를 만든다. 그래서 유재석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리더쉽을 말한다. 리더쉽의 재미라는 것이다.

 

재미라는 단어는 코미디나 예능프로를 넘어서 사회를 뒤덮고 있다. 이제 모든 분야에서 사람들은 재미있는 사람을 요구한다. 재미있는 사장, 재미있는 정치인, 재미있는 가수, 재미있는 남편이나 아내가 높이 평가된다. 그렇지 못할 때 사람들은 따분해하고 때로는 분노를 느끼기 까지 한다. 재미가 없다는 것은 흔히 소통없는 권위주의로 말해진다. 재미없는 남편이나 아내 그리고 재미없는 정치인은 권위적으로 모든 것을 그냥 맘대로 결정해 버리고 소통하기를 포기한 사람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전에는 사람이 재미가 없어도 큰 불편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재미없는 사람은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에 재미있는 사람은 인기와 영향력이 전보다도 더욱 크게 되는 경향이 있다. 지난 대선에서 가장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킨 사람중의 하나는 누구인가. 바로 똥꼬깊숙히와 쫄지마를 외치던 나꼼수고 그 핵심은 김어준이다. 그 이유는 그가 재미있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어떤 문맥에서 어떤 상황에서는 말이다. 말하자면 엄숙함, 비장함을 강조하던 정치판에서도 재미가 중요해 진 것이다. 

 

이쯤 되면 내가 왜 재미라는 단어가 시대를 대표하는 단어가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는지가 분명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재미란 웃음처럼 우리에게 뜻밖의 것을 던질때 생겨나는 것이다. 우리는 똑같은 것을 계속할 때 재미를 느끼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사람을 재미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가 입을 열면 무슨소리를 할지 너무 뻔하다고 생각되면 우리는 그를 만나는 시간이 낭비된 시간으로 생각하며 그나 그녀가 재미없는 인간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요즘은 분위기란 말도 자주 쓰인다. 뭐가를 말로 다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이 분위기라는 말을 쓰는 데 재미는 바로 이 분위기라는 말이 상징하는 것과도 관련이 깊다. 연애를 예로 들어보자. 데이트를 할 때 재미있는 남자와 재미없는 남자가 뭐가 다른지 말로 해서는 잘 표현되지 않는다. 똑같은 대사를 하고 똑같은 곳에서 식사를 하고 똑같은 옷을 입어도 결과는 전혀 다를 때가 많다. 물론 잘생긴 남자나 예쁜 여자의 말은 훨씬 더 잘 통하기 마련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걸 가르켜 우리는 분위기에 빠진다고 말한다. 요즘 사람들은 분위기에 잘 빠지지 않는다. 분위기를 맞춰주기 어렵다. 스스로 그러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것은 이미 사람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빠르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제 책에서 읽은 것을 그저 순서대로 하는 것으로는 상대방에게서 감동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것이다.

 

물론 이 문제는 연애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세상은 어느 분야나 빨리 변한다. 경제학법칙도 절대 계속 옳은 것이 없는데 왜냐면 사람들이 그걸 아는 세상과 모르는 세상은 이미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내일 주가가 폭등할거라고 예측하고 우리나라사람이 모두 그 예측을 안다면 내 예측은 이제 틀리게 될것이다. 사람들이 그 예측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떤 공식화되고 틀에 박힌 것으로 사고하는 사람은 빨리 변하고 복잡하게 변하는 세상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임기응변이 능하고 감수성이 능하고 뭔가 공식으로 표현되지 않는 것을 현장에서 행할 수 있는 실용주의적인 인간은 같은 지식을 가지고도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낸다. 다시 말해 경제도 그저 법칙과 공식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정부가 밀어부치면 국민은 따라간다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움직일 수 있는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의지와 꿈이 실물경제를 파괴하고 만든다. 

 

재미란, 특히 요즘 시대의 재미란 강요하는 재미라기 보다는 스며드는 재미다. 그것은 정복하는 재미라기 보다는 초대하는 재미다. 나를 직접 웃게 만드는 것이라기 보다는 웬지 그 분위기에 젖어서 나도 저런 식으로 웃고 살고 싶다고 느끼게 하는 종류의 것이다. 글로 말하면 논설문이 아니라 수필이라고 할까.

 

물론 재미란 누구에게나 똑같이 보편적이고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문화적인 공부가 필요하고 경험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과거의 카리스마있는 재미에만 반응하며 새로운 시대의 참여하는 재미를 이해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말해 그런 사람은 내게는 재미가 없다. 

 

일본에서 시트콤이 안되는 이유라던가 재미와 가정생활이라던가하는 식으로 재미에 대해서는 계속 떠들수도 있겠지만 이만 줄이기로 하자글이 너무 길어지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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