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응사와 관계에 대한 착각

by 격암(강국진) 2013. 12. 29.

13.12.19

요즘은 시국에 대한 기분나쁜 생각들이 많았고 그게 아니더라도 딱딱한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은 부드러운 이야기이기를 바라면서 요즘 인기있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응사)를 보다가 느낀 것을 하나 쓸까 한다. 그것은 관계에 대한 흔한 착각이야기다. 

 

드라마의 완결성에 얼마나 기여하는가와는 별도로 응사에는 두 연인의 관계가 깨어지는 한가지 형태가 소개된다. 그것은 바로 서로에 대해 미안해하고 배려해주다가 깨어진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중요한 소재라고 생각하며 많은 사람들이 종종 저지르는 실수라고 생각한다. 이같은 일은 모든 가까운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이 가깝다는 것이 뭘까? 사람과 사람이 가깝다는 것을 사람들은 종종 그저 일방적으로 베푸는 관계로 해석하곤 한다. 즉 나는 저사람과 가까우니까 그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이 가까운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결과 기쁨은 공유하지만 슬픔은 공유하지 않는다던가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그 사람에게는 좋은 면만 보인다던가, 그 사람은 돌봐만 준다던가, 그 사람에게 희생만 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사실 내가 아는 많은 남자나 여자들은 이게 연애의 방식이라고 생각해서 결혼전에는 종종 뭐든지 해줄 것처럼 과장된 희생정신을 보인다. 그런 연인들은 결혼하면 그 관계가 지속되지 않고 서로 배신감을 크게 느끼면서 이혼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이혼보다 더 나쁜 것도 있다. 최악의 경우 서로의 발목을 잡으면서 평생 서로를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 관계의 기본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채말이다. 

 

이렇게 밝음과 어둠중 한쪽만 공유하게 되는 것은 희생자쪽을 맡은 사람이 언제나 희생만 하고 남에게 의지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종종 힘들면 누군가를 찾지만 기쁘면 다른 사람을 찾는 식으로 행동하면서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행동이 가지는 의미를 잘 의식하지 못한다. 슬픔은 모두의 것이지만 기쁨은 나만 잘난거라고 행동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그런 행동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인간이 중요한 뭔가를 공유한다는 것은 사실 그것이 슬픈 일이건 기쁜 일이건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따라서 중요하지만 어떤 것은 공유하고 어떤 것은 공유하지 않는다는 식의 태도를 가지고 누군가와 가깝게 지내는 것은 두 사람의 사이를 가깝게 인식할 수록 치명적인 위험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비밀이 공개되고 그것때문에 그 관계는 위기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다던가 우정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하나의 공동체로서 인간관계를 가진다고 할때 아름답고 지속될 수 있는 것이지 한 쪽으로 일방적인 관계가 될 때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희생이 누적되어 결국은 그런 관계가 더이상 유지될 수 없을 때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그 관계의 진실이 폭로되고 상처를 주는 때가 오기 때문이다.

 

추상적이 되지 않기 위해 예를 들어 보자. 여기 한 연인이 있다. 그런데 여자 혹은 남자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하자. 나쁜 병에 걸렸다거나 고민스러워 매우 우울해질 일 그러니까 직장에서 해고당한다거나 사고로 크게 다쳤다거나 뭔가의 이유로 크게 실망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런데 그 여자 혹은 그 남자는 그 문제를 다른 사람하고만 상담할 뿐 연인인 상대방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이렇게 개인적인 정보를 나누는 일은 통상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 되기 때문에 그런 일을 연인인 나와 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한다는 사실, 즉 그 다른 사람을 나보다 더 신용한다는 사실은 고민의 내용에 따라서는 인정될 수도 있다. 고민의 내용이 전문적인 일의 내용에 대한 것일 때가 그런데 그런 경우도 고민한다는 사실자체를 숨기는 것은 문제다. 대개 이런 일은 큰 배신감을 만들어 낸다. 그 배신감은 종종 매우 뼈에 사무치는 것이 될수 있다. 왜냐면 상대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는가의 본질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를 사랑스럽고 좋아한다고해도 나를 신용할 수는 없다고 한다면 사람은 기쁠 수가 없다. 그런 취급을 자기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받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일중의 하나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무신경하기 때문에 혹은 관계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일을 태연히 저지른다.

 

부모가 자식에게 이런 일을 할 때도 많다. 그저 자식에게는 뭔가를 해주기만 하고 정보를 숨기고 그러면서 자식이 공부나 승진같은 것에만 몰두하기 원하는것이다. 자식을 끔찍히 위한다고 말하지만 모든 행동의 뒤에는 자식을 못난이로 생각하는 태도가 깔려있다. 자식은 물론 부모를 사랑할수록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상처입는다. 이것은 형제간이건 친구사이건 마찬가지다. 이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상대방에게 선의를 베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런 행동은 배신이고 상대방을 모욕하는 것이며 함께 하는 공동체나 인생의 동반자의 위치에서 쫒아내는 것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문제에서 너는 신용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 것은 가장 깊은 상처다.

 

이런 의미에서 사실은 부부관계에서는 요즘 세태를 고려할때 더더욱 각별하게 앞에서 말한 것이 적용되며 평생을 동반자로 생각하는 진지한 연애라면 연인도 그렇다. 사실 요즘은 대가족 제도가 거의 붕괴되고 남아있는 최후의 생활공동체는 부부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앞에서 예를 들 때는 그 일들은 그저 내 개인의 일을 알려주지 않는거라는 정도지만 진짜 공동체일 때는 너의 것 내 것이 따로 없다. 우리 딸의 건강에 대한 일을 나와 상의 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상담하여 그 사람말을 따르는 것이 그 사람만의 일일 수 있을까? 우리 집의 재산관리에 대한 것을 나와 상의하여 결정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상의하여 결정하는 것이 정말 그 사람만의 일일 수 있을까? 

 

다시말해 두 사람의 인생이 가까워서 더 긴밀한 공동체관계에 있을수록 뭔가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개 자신이 그것을 감당할 수 없는 월권행위가 되고 만다. 부부정도의 공동체가 되면 사실상 내 몸도 내 것이 아니다. 걱정할까봐 내 건강상태를 숨긴다는 것은 아름다운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건 월권행위다. 우리는 회사의 재산을 몰래 빼돌리고 처분하는 사람을 신용하지 않고 그런 사람과는 동업을 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로맨틱한 기분에 연애를 하고 연인관계가 되었다고 해도 공유의 문제가 잘못되면 신용은 깨어진다. 부부관계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이 위험한 것이다. 

 

사실 가까운 관계란 그래서 좋은 것이면서도 위험하고 힘든 것이다. 서로 서로 기대고 살 수있으니 외롭지 않고 편하지만 신용관계에 대해 조금만 게을리하면 큰 상처를 주게 된다. 내 모든 것을 가져다 맡긴 상대가 그렇게 행동할 때 그것은 종종 서운함이나 상처정도의 일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자동차나 비행기는 걷는것보다 편하지만 세심한 정비를 하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는 사고를 만들어 내듯이 가까운 관계란 그렇게 일상적인 정비가 필요하다. 

 

오늘날 가족관계가 많이 깨어지고 대가족 관계가 점점 소홀해 지는 것은 이때문이다. 첫째로 사람들의 삶이 빨리 변화하고 복잡하여 가족이라고 해도 서로를 볼 시간이 줄어들었다. 아무 오락거리가 없는 산중에 가서 가족캠핑을 하는것이 가족관계를 좋게하는 것은 이때문이다. 핸드폰도 안터지고 인터넷도 안되고 티브이도 안나오는 곳에 갔을 때 가족말고는 아무도 없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가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로 사람들이 무신경하고 둔하다. 우리는 어떻게 가족이 나를 배신했는가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절규하는 것을 쉼없이 듣는다. 전부 날카로운 칼을 들고 흔들리는 만원버스에 타면 누군가는 결국 크게 다친다. 그러니 대가족관계라는 버스에서 너도 나도 탈출하는 것이다. 무신경하고 둔한 사람들은 관계가 어떻게 양날의 칼인지 모르고 마구 그 칼을 휘두르는 연쇄살인범이 될 수있다.

 

관계의 시작은 살피는 것이다. 그래서 작은 집단에서 리더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둘 이상의 사람이 있는 집에는 가장이 있어야 한다. 그 가장의 첫번째 역할은 듣고 살피는 것이다. 그 사람이 두루 살피고 기억하니까 그 집에 공평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있고 잊혀진 사람이 없을 수가 있다. 그런데 종종 오늘날의 가족관계에서는 이런 역할이 실종되어져 있는 가운데 그저 표면적 관계만 있다. 섣불리 민주적 관계 어쩌고 하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가족관계를 만든다. 모두가 바빠서 서로에게 무관심한 가운데 존재하는 민주주의란 있을 수 없다. 서로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그걸 모두가 해야 하지만 아쉬운대로 그걸 전담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게 가장이다. 나라에도 대통령이 있는데다가 언론같은 정보기관도 있다. 사법기관도 있다. 모두를 살피는 눈과 기억이 사라진 공동체에서는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희생하게 된다. 자신이 누군가의 상처 위에 서있는줄도 모르면서 모든게 다 내탓이라고 잘난체 하는 꼴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서로를 살피고 관계를 정비하는 일이 이렇게나 중요한데도 세상을 둘러보면 세상에는 그저 형식으로서의 관계만 엄청나게 많다. 자식과 부모간에 대화가 없는 것은 둘째치고 대화하지 않는 부부가 얼마나 많은가. 가까운 관계일수록 자연스럽게 잡담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가 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공유하지 않고 뒤에 두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나를 표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나의 치부를 들어내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신용할 때만 그렇게 할 수가 있다.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어깨에 힘주는 부모나 부모에게 배우자에게 뭔가를 숨기는 것이 많은사람들은 그렇게 되질 않는다. 그들은 이미 다른 욕망에 눈이 멀어서 같은 땅위에 서있지 않으므로 대화를 해보면 화제가 자꾸 겉돌게 되고 할 수 있는 말이 거의 없어진다. 왠지 긴장이 느껴진다. 대화하다가 실수를 하게 되면 상대방이 크게 화를 낼 것만 같거나 실제로 그렇다. 

 

가까운 관계라는 표면적 형식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데 그 안에 비밀이 누적될 때 우리는 단순히 슬픈정도가 아니라 인생을 파국으로 몰아넣을 위기에 처해있는 것이다. 돈을 들고 도망갈 동업자에게 내 통장비밀번호를 가르쳐 준거나 마찬가지다. 의식적인 배신이 아니라 무지와 무신경이 그런 일을 하게 한다. 곰곰히 생각하면 무서운 일이다.

 

 

 

 

 

 

 

'주제별 글모음 > 생활에 대하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볍게 살기.  (0) 2014.03.20
한가함과 절박함  (0) 2014.02.07
재미있는 남자  (0) 2013.09.02
웃음의 힘  (0) 2013.07.10
일상의 모험  (0) 2013.06.0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