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에 썼던 글들을 여러번 묶은 적이 있다. 그래서 전자파일로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그걸 프린트해서 묶어서 상자에 넣어서 보관하고 있는 것도 있다. 그 글묶음들이야 어디 논문으로 발표된 것도 아니고 출판사에서 출판된 책도 아니지만 그래도 왠지 나를 든든하게 만들어 준다.
그것은 아마 기억의 문제가 아닌가 한다. 사람은 본래 많은 것을 잘 잊어버린다. 그중에서도 나같은 사람은 말할 것이 없다. 나는 참 지독히도 기억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주민등록번호나 의료보험증 번호를 적어놓듯이 나를 글속에 적어 놓는다. 그렇게 해서 이따금 어 요즘 내가 왜 이러지 할때 그글들을 다시 읽어보고 나를 다시 발견하곤 하는 것이다. 내가 이 부실한 머릿곡에만 있는게 아니라 글속에 잘 기록되어 책상자에 들어 있다고 한다면 그것도 든든한 일이다. 나의 백업이랄까.
실제로 나는 종종 서가를 거닐거나 전자책 목록을 뒤적이면서 뭘 읽어볼까 고민하다가 보면 나에게 도움되는 글은 내가 쓴 글들인 경우를 많이 발견한다. 내가 쓴 글이 항상 남의 글보다 우수해서 그런게 아니라 내글은 나에게 있어서 내가 읽고 배운 것에 대한 최대한으로 잘 정리된 요약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랜된 글들을 읽어보면서 그래 맞아 내가 이런 것도 알고 있었고 이런 생각도 했었군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그 안에서 초라하고 비루한, 모자라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게 되기도 한다. 내가 쓴 글이라는 것을 잊고서 그래 맞아 친구,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지, 자네 마음에 드는 구만 그래 라고 생각하게도 되는 것이다.
어제도 나는 블로그의 글들을 묶어다가 책을 두권이나 만들었다. 한권은 키워드 여행이라고 되어 있는 글들로 나의 여행에 대해 모아놓은 것들인데 상당수가 사진이라서 찍어놓고 보니 우리 가족 사진첩처럼 되어버렸다. 오랜만에 전에 여행갔던 곳을 다시 보고 내가 여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었는가를 다시 느끼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렇게 모아서 읽어보니 나는 역시 새롭고 나를 궁금하게 하는 일에 항상 목말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저기에는 뭐가 있을까라던가, 이것만은 나아니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지라는 식의 일을 재미있어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떠나길 좋아하며 사는 것도 이나라 저나라 떠돌면서 살아왔을 것이다.
또하나의 책은 키워드 행복이라고 되어 있는 글들이다. 이것은 행복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썼던 것을 모은 것인데 지금의 나에게 휴식을 주는 면이 있어서 좋다. 이것은 조금씩 읽고 있어서 아직도 다 읽지 않았다.
사람이란 본래 약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약한 것일까. 사람이 배고프면 배불렀을 때의 일을 잊어버리고, 우울하면 즐거울 때의 일을 잊어버리며, 바쁠 때는 한가했을 때를 잊어버리고, 아플 때는 건강했을 때의 일을 잊어버린다. 과거를 잊어버린다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결국 나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지나고나면 아 하루 아프면 될 일을 한달을 아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라에는 역사가 있어야 한다. 역사가 없으면 나라는 있을수 없다. 마찬가지로 개개인들도 모두 나름대로의 책상자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혼란한 세상에는 자기의 백업정도는 어딘가에 만들어 두지 않으면 나의 자아가 상처입었을 때 대처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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