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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화의 함정

by 격암(강국진) 2013. 10. 2.

우리는 전문가를 높이 평가하고 전문가에게 기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빵은 제빵사에게, 경제는 경제학자에게, 과학은 과학자에게, 윤리는 윤리학자에게, 교육은 선생님에게 묻는 것이죠.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전문화하는 것이 현대사회의 기본조직원리니까요. 다만 모든 것이 그렇듯이 여기에 어떤 한계와 함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종종 인식되지 않고 그러다보니 부작용도 매우 큽니다. 


전문가라는 것은 세상을 여러가지 조각으로 나눈 뒤에 그 한조각 한조각에 대해 잘아는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사람들을 그 각각의 조각이라는 감옥속에 가두는 역할도 하게 됩니다. 그 감옥의 벽이 되는 것은 그 전문분야의 상식 그러니까 누구나 너무 당연히 그건 사실이 아니냐고 인정해서 그걸 의심조차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식은 상식이 아닐때가 많은데도 그런 상식에 기반한 그 분야의 사람들끼리 이야기하고 있게 되면 이제 그것은 별로 생각해 볼 가치도 없는 당연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 벽에 부딪히면 거기는 당연한 거라던가 거기는 우리 영역이 아니니 우리가 신경쓸 필요가 없는 문제가 됩니다. 생각은 멈춰집니다. 


이 전문화가 만들어 내는 문제는 따지자면 헤아릴수 없이 많지만 예를 하나 들자면 수없이 많은 자칭전문가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문제에 대해 조각을 끝없이 내면 그 조각들은 아주 작아집니다. 아주 작아지고 특이해 져서 좀 신경쓰고 공부하면 그 작은 조각에 대해서 남들은 모르는 것을 한두가지 알게 되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죠. 여기서 두가지 문제가 흔히 생깁니다. 하나는 나는 아는데 남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봤더니 잘모르더라라는 것을 기반으로 스스로를 아 나도 이제 전문가구나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자기가 '세상 모든 것'에 대해서 아는 지식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렇게 작게 만든 조각에 벽을 만들고 거기에 확신을 가지고 자부심을 가지게 되면 정말 작은 우물속에 갇힌 사람이 탄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런 것을 부추킵니다. 어디서나 뽀족한 인간을 찾습니다. 야구선수로 축구선수로 피겨스케이트 선수로 능력이 있으면 모든게 다 괜찮은 사람으로 추앙됩니다. 남의 책을 베꼈든 학벌을 속였든 옷을 벗어서 유명해졌든 터무니 없는 주장으로 고소당하고 망신당해서 유명해졌든 유명해지면 나중에는 자동적으로 일반인과는 뭔가다른 사람으로 격상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점들은 미친듯이 직함을 따고 이름을 알리는 풍조를 더 부채질 합니다. 삼성의 유명한 광고처럼 사람들은 1등만 기억합니다. 종합적으로 보았을때는 어떨까 하는 생각은 잊혀집니다. 사대강 공사건 교육이건 부동산이건 학문발전이건 세상은 점점 종합적 사고를 요구하는데 말이죠. 


언젠가 어느 신문이 -아마 조선일보라고 생각됩니다만- 한 물리학과 교수로 하여금 정치적인 면에 대해 칼럼을 쓰게 한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교수는 아마도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능력이 있겠지요. 하지만 그 교수의 사회 정치적인 의견이란 유치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의견이란 틀릴수도 있는 것이지만 자신이 틀릴수도 있다는 자기검증의 흔적은 전혀없더군요. 자신이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성공한 것을 기반으로 자신은 모든 분야에서 훌룡한 사고를 하는 인간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일간지에 명문대 교수타이틀과 함께 실리면 진짜로 지식인의 의견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누구나 어느정도는 유아론적인 면이 있을수밖에 없습니다만 이런 사람들은 완전히 폐쇄되어 내가 세상에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해봐서 다 안다고 쉽게 말하는 사람만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든 적도 있지요.  대통령이나 대학교수만 그렇겠습니까. 인터넷에는 자칭 전문가가 수없이 많이 존재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혼자 방안에서 상대성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세상이 이것을 왜 안알아줄까하고 고민하는 그런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이런 작은 자칭 전문가의 번성은 앞에서 말했듯이 문제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투자자나 소시민의 벽같은 것도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가난한 개인 농부는 자기 밭을 어떻게 가꿀까하는 질문에 몰두합니다. 그는 감히 농사철에 물부족에 대비해서 댐을 만들자라는 식으로는 사고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사고하는 것이 반드시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누구나 금방 댐을 만들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내일 우리밭에 물대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서는 곤란하니까요. 다만 그것도 분명 일종의 벽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내가 어쩔수 없으니 나는 내 작은 밭에 물대는 것에만 신경쓸수 밖에 없다라는 벽이죠. 


부동산 거품이야기가 무성합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집을 사야하는가, 팔아야 하는가. 월세가 좋은가 전세가 좋은가. 금을 사야하나, 외환에 투자해야 하나. 그런 질문들은 말하자면 개인적 선택에 대한 질문입니다. 한국이라는 정글이 있는데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더 잘살게 되는가 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런 질문은 당연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있는 정보 없는 정보 끌어모아서 더 잘 예측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 질문도 어떤 함정이 있습니다. 나라가 홍수에 잠기면 모두 살겠다고 발버둥칠것입니다. 그러면 누군가 보트에 타고 있어도 그 보트를 빼앗아 보겠다고 아비규환이 벌어질것입니다. 그러니 설사 월세가 답이건 전세가 답이건 집의 소유가 답이건 나라에 큰 우환이 펼쳐지면 안전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가족이나 친한 지인이 죽는다고 하는데 나는 안전한 곳에 있으니 안심이라고 할수가 있겠습니까. 서로 더욱 불신하게 되고 서로 더욱 나살고 너죽자라고 소리치게 되면 많은 비극이 벌어질 것입니다. 내가 최대한 머리를 써서 이제 나는 안전한 곳에 도달했다고 득의양양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또 무슨 기막힌 방법을 써서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야 말것입니다. 예를 들어 천만명쯤 외국인 불러올지 모르죠. 말도 안돼는 규모로 나라빚을 내서 자기 빚을 갚은 후에 국민들이 세금내라고 할지 모릅니다. 


소시민사고의 벽은 이 세상에 시장이라는 것이 있는 데 그게 움직이는 게임의 법칙은 이러저러하다는 상식입니다. 그 상식을 믿고 이런 저런 궁리를 하는 것은 대개 옳은 일이지만 모두가 같은 상식을 믿지 않고 있으며 그 상식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것은 위험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는 무상급식을 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를 치던 사람들이 난데없이 무상 보육을 결정하고 나중에 그렇게 하기로 결정은 내가 했지만 거기에 드는 돈은 지자체가 알아서 하라고 하는 나라입니다. 세계적으로도 한국에서도 항상 일정한 게임의 법칙에 따라 움직였던 자유시장은 존재한 적이 없었습니다. 특정테두리 내에서 특정한 시간안에서 그런 것처럼 보이는 때가 있었을 뿐입니다. 사실 사는게 그렇죠. 게임의 법칙은 항상 변화합니다. 


경제학적으로 197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어떤 그래프를 그려서 올라갔다 내려왔다하는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서 어떤 추세를 읽고 법칙을 찾아내려는 노력은 너무나 자명해 보입니다. 거기서 나온 결론도 너무나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정치에 관심있는 사람이 그런 모습을 보면 터무니가 없습니다. 박정희는 고사하고 전두환시절에도 요즘 말로 하면 삼성전자쯤 되는 회사를 야 나한테줘 하면 회사를 바쳐야 하는 그런 나라가 그정권시절의 한국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최고의 부자는 전두환이었다고 하더군요. 정권이 어떻게 변하는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옳지 않겠습니다만 정권이 변화하는 것과 아무 상관없이 그래프 그려놓고 이러니 저러니 이야기하는게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경제와 정치라는 각자의 영역에서 서로 벽을 쌓고 당연한것처럼 사고를 하면 경제의 벽안에 있는 사람은 시장의 법칙이 절대적이라고 믿고 정치의 벽안에 있는 사람은 정치의 힘이 무한대라고 믿게 됩니다. 세상은 하나인데 말이죠. 


세상의 벽이 경제와 정치만 있겠습니까. 종교나 철학을 믿는 사람은 어떤 사조나 종교의 번성이 세상을 이렇게 변하게 만들었다고 할것이고 그런 눈으로 보면 세상일은 또 그렇게 딱딱 맞아떨어질 것입니다. 세상의 벽이 경제, 정치, 종교, 철학만 있겠습니까. 벽은 끝없이 있습니다. 


글의 처음에 말씀드렸지만 이렇게 보면 전문가 전문가를 부르짖고 더더욱 세밀한 정보와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달라보일것입니다. 전문화의 위험성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진짜 핵심적인 질문은 그럼 그런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하는 것이겠지요. 


제일 쉽고 자명한 답은 모두 각자 알아서 고민하고 살아라라는 것일것입니다. 함정이 있다는 것을 알면 함정에 덜빠지니까 함정에 대해 잊어버리지않도록 하고 말입니다. 자기 인생에 대한 결정은 자기가 하는 것이니까요. 


좀 더 복잡한 답은 벽이 없이 사는건 불가능하니까 적극적으로 그 벽을 인식하고 그 벽을 사랑하고 이왕이면 괜찮은 벽에 기반해서 살아가고, 부질없는 벽은 허물어서 부질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하는 일을 줄이는 쪽이 좋다는 것일 것입니다. 모든 벽은 불완전하지만 최소한의 벽에 기대고 함부로 이것저것 믿지 않는 쪽이 좋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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