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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쓰고 읽기

블로그 글쓰기 나는 이렇게 한다.

by 격암(강국진) 2013. 11. 1.

2013.11.1

내가 블로그를 한지도 이제 6년이 되었고 나는 천개가 넘는 글을 블로그에 썼다. 그러다보니 몇번인가 글쓰기를 어떻게 하는 지에 대해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그럴때 마다 그래볼까요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같다. 그래서 오늘은 글쓰기라는 주제로 몇자 써볼까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있지만 나 스스로에게 글쓰기를 어떻게 하는데라고 묻고 답을 듣기 위해서다.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자. 블로그를 하거나 글쓰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몇번이나 물었던 질문이 있다. 어떻게 그렇게 계속 글의 주제가 생기고 그걸 쓰냐는 것이다. 흔한 대답이고 사소한 기술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것은 노트를 하는 것이다. 그냥 하루 하루를 보내다가 이런 건 이런 면이 있군 하고 생각이 나면 몇자 어디에 적어놓거나 블로그의 비공개 글에 키워드를 몇개 적어놓는다. 그러면 글감이라고 할만한 것들이 쌓인다. 그래서 당장 글을 쓰지는 못하더라도 나중에 보고 다시 그 생각을 이어나갈 수 있게 해두면 큰 도움이 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기억력이 엉망이라 이거 근사한 생각인데 라는 생각이 들어도 5분뒤에는 그게 뭐였더라 하는 판이라 이런 노트가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조언은 문제의 아주 표면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만으로는 글을 쓰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니 조금 더 심층으로 가보자. 글쓰기에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지식과 문체가 필요한데 글에서 이런 저런 좋은 예를 드는 지식이 없어서 구체성이 떨어지면 아무래도 글이 재미가 없다. 지식은 두가지에서 나온다. 하나는 당신의 개인적 경험이고 또하나는 독서다. 이것은 당연하지만 사실은 뒤에 말할 자기찾기라는 주제와 합쳐지지 않으면 이것도 간단하지는 않다. 그러나 일단은 개인적 경험과 독서가 지식을 준다라는 것만 상기시키고 넘어가자. 요점은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작가지망생들은 엄청나게 독서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양으로 승부를 보는 독서를 추천하지 않지만 글의 수준을 단기간에 어느정도 향상시키기 위해 다독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대개는 지나치게 읽기 보다는 너무 작게 읽으므로 일단 글쓰기를 하려면 읽어야 한다. 

 

또 구체적 지식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문체다. 이것을 얻기는 지식보다 더 어렵다. 이것은 마치 우리의 목소리와 같아서 좋은 성우와 나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똑같은 것을 읽어도 다른 느낌이 나며, 절세미인과 못생긴 여자가 같은 표정을 지어도 다르게 보이듯이 글을 읽는 느낌을 천양지차로 만든다. 사람들이 너는 참 글을 잘쓰네 라고 말할 때는 주로 이 문체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문체가 다르면 같은 지식을 나열해도 글은 전혀 다른 설득력을 가지며 같은 감상을 쓴 것같은데 전혀 다른 감동을 준다. 

 

문체를 얻는 기본적 방법은 많이 쓰는 것이다. 문체를 얻고서 글을 쓰는게 아니라 잘 못써도 그냥 계속 쓰는 것이다. 타고나기를 노래를 잘하니까 노래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나지 못했다면 노래를 잘하게 되는 비결은 노래를 하고 싶다는 욕망에 있다. 잘 못해도 노래를 부르고 싶다. 그래서 계속 부르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 부르면서 알게 모르게 좋아진다. 

 

그러나 지식도 문체도 문제의 다시 조금 더 심층에 있을뿐 어떤 면에서 여전히 표면에 있다는 것은 마찬가지다. 글쓰기를 하기 위해 노트에 뭘 적는다고 하지만 애초에 왜 머리에 어떤 것이 떠오를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데 뭘 적는다는 말인가. 지식을 얻고자 책을 읽지만 무작정 읽다보면 결국 재미가 없어서 포기하게 된다. 일상의 경험에서 지식을 얻는 것도 마찬가지다. 시인과 일반인이 뒷동산에 다녀와서 보고 배운것은 대개 천양지차다. 어떤 사람은 하루의 경험에서 일년동안 떠들 세부사항을 보는데 어떤 사람은 작년에 내가 뭐했더라라고 생각해도 쓸 것이 없다. 문체를 얻으려면 계속 쓰는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끝나지도 않고 뭘 쓰는지도 모르겠는 글을 몇개 쓰다보면 내 자신도 그걸 읽기 싫고 남들도 그걸 기쁘게 읽지 않을 것이며 남에게 보이기 챙피하니 결국 계속 쓰기가 안된다. 

 

이 모든 것의 아래에 있는 좀 더 심층적인 문제는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글쓰기를 하게 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좀 더 잘 대답할 수록 글쓰기는 즐거움이 되고 친구가 된다. 글을 쓰는 이유가 남에게 잘보이기 위해서라던가 블로그를 유명하게 만들어 돈좀 벌어보겠다던가, 글쓰기가 능숙해져서 남에게 자랑좀 하겠다던가 하는 외부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이유가 내부에 있으니 잘 쓰던 못 쓰던 쓰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수필가 윤오영은 그의 책 곶감과 수필에서 맘에 통하는 친구와 대화할 수 있다면 글을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는 빈 방에 홀로 앉아서 글을 쓰면서 스스로를 친구로 만들었던 것이다. 사색가들은 책안에서 친구를 찾는다. 대개는 죽고 없어진 사람들속에서 친구를 찾는 것이다. 그마저도 자기 마음과 꼭같지는 않다. 그래서 이번에는 글을 써서 스스로를 친구로 삼는 것이다. 글을 쓰는 이유가 오직 이것뿐일 이유는 없지만 적어도 윤오영같은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글을 쓰는 이유다. 그러니 글을 쓰는 것을 멈출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대단한 작가도 아니고 설사 대단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운명이라고 해도 누구나 처음이 있기 마련이다. 처음부터 대단히 고상하고 멋진 목표이기만 할 수는 없고 내 경험에 따르면 자기도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를 처음에는 명확히 모른다. 글을 쓰다가 보면서, 자신을 보면서 아 내가 이래서 글을 쓰는 구나 하고 점점 명확해지고 그것이 조금더 일반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어떤 것이 된다.

 

내 개인의 글쓰기를 돌아보면 그 시작은 세갈래다. 하나는 약간 문학적인 것인데 나는 물리학과 학생이었지만 컴퓨터 통신시절에 왠지 소설이 좀 쓰고 싶었다. SF같은게 아니고 단편 사랑이야기 같은 것들이었는데 왠지 쓰고 싶어서 썼고 웹에다가 글을 올리곤 했었다. 나는 대학교 3학년시절에 썼던 글을 못잊는다. 학교에서 교환학생시절에 대한 경험을 적은 글을 모아서 책을 만든다기에 글을 썼는데 참 내가 생각하기에도 지루하고 요점도 없는 글이었던 것이다. 웹에다 썼던 것은 그보다는 좀 더 좋았지만 그래봤자였다. 그러나 그래도 썼다. 돈을 벌기위해서나 유명해지기 위해서나 하는게 아니라 왠지 쓰고 싶어서 썼다. 그러나 그 글쓰기는 계속 될 수 없는 것이었다. 왜 쓰는지에 대해 모르니 허무한 글쓰기가 되고 말았다. 나는 글쓰기를 멈췄다. 

 

그 다음으로 시작된 글쓰기는 사회적인 것이었다. 나는 노사모가 아니었지만 노무현이 선거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대선에 나서는 그를 보면서 지지글을 한편 썼다. 한편 쓰고나니 세상에 대해 자꾸 글을 쓰게 되었다. 반드시 노무현에 대해서만 쓴 것은 아니다. 세상은 이래서는 안된다고 이런 것이 상식이 아니겠냐고 하면서 글을 썼다. 지금보다도 깊이있는 지식도 경험도 없는 때였지만 나는 왠지 사회적인 것에 관심이 가서 내가 느끼는 대로 글을 썼다. 그러나 한계는 분명했고 나는 그 한계를 돌파할 방법을 몰랐다. 

 

마지막으로 글쓰기의 원인이 되었던 것은 가족이다. 특히 나는 내가 아버지가 되고 아이가 자라서 말을 하고 나와 같이 걷게 되는 정도에 이르자 인생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적어도 약간은 더 철학적이랄수 있는 주제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합리적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같은 것을 고민하게 되었다. 주로 합리적인 아빠가 되고 싶어서였다. 아이가 하자는대로 할수는 없었지만 한 아이를 책임지게 된 아뻐로서 합리적인 아빠가 되고 싶다는 소망과 책임감은 있었기에 그렇게 하지는 못해도 그게 뭔지는 생각하게 되었고 나 자신의 출발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많은 글을 썼고 글을 쓰면서 점점 이 모든 것이, 심지어 글쓰기가 아니라 내가 물리학과에 들어가고 인공지능이라던가 뇌과학같은 것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던 것에 이르기 까지 하나의 질문으로 모여든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내게 있어서 그것은 나와 세상의 문제였다. 이 세상이 어떤 곳이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렇게 쓰면 너무 일반적이라 시시하거나 혹은 반대로 너무 대단해 보이지만 그냥 한 시시하고 평범한 아이가 세상앞에서 혼란을 느끼고 혼자된 느낌에 빠져서 가지는 당연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질문이다. 세상에는 던져졌는데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이 세상은 어떤 곳인지 모른다. 나는 뭘 무슨 기준으로 선택하면서 살아야 할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걸까. 나는 취직을 위해 물리학과에 간게 아니다. 나는 세상을 지배한다는 물리적 법칙이라는 말에 매혹되어서 물리를 배우러 갔다. 인공지능이니 뇌과학이니 하는 주제도 나에게 그런 걸 가르쳐 줄까 싶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지금 되돌아보니 그런 것이다. 어렸을 때는 훨씬 더 얼떨떨하게 그냥 단지 좋았고 끌렸으니까. 단지 재미있어보였으니까 그런 선택들을 한 것이다. 나는 과녁을 향해 쏘아진 총알이라기 보다는 바람에 따라 흔들리지만 여전히 아래로 떨어지는 낙엽이었다. 이 점은 중요하다. 특히 어린 학생에게는 그렇다. 지금은 대단한 이유따위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을 수 있다. 그냥 자신이 왠지 끌리는 그 힘에 좀 더 민감해 지려고 하는 것이면 충분하다. 

 

그게 사진일 수도 여행일 수도 인테리어나 그릇일 수도 음식일 수도 교육일 수도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일 수도 있다. 뭔가에 끌려서 한번 볼 것을 두번보고 그래서 약간 더 많은 세부사항을 보게 되고 생각하게 되면 그것이 차이를 만든다. 차이가 만들어지니까, 당연한게 아니니까 정리하고 기록할만한 가치가 있다. 남들은 다 풍경사진만 찍는데 나는 왠지 동물사진만 관심이 간다. 왜 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기 때문에 동물사진을 더 찍는다. 그러다보면 동물사진에 대해 말할 것이 생기는 것이다. 말을안해도 되고 사진만으로 충분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계속하다보면 뒤돌아 자기의 발자국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신은 어떤 보다 단순한 질문을 쫒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더더욱 들게 된다. 그래서 단순히 남을 흉내내는 것이 아닌 것이 중요하다. 여행기를 적으면 인기가 좋아서 나도 여행기를 적으니 사람들이 많이 보더라라는 식으로 글을 써서는 안된다. 인기에 연연하다보면 남의 감정과 표현을 흉내내게 된다. 따라서 시간이 지나 자신의 발자국을 보면서 자기를 발견하기는 불가능해진다. 그런 식으로 블로그를 하면 얼마 하다가 말거나 블로그가 어떤 통일성을 잃고 잡다해 보이기만 하게 될 것이다. 

 

질문이 조금 더 단순해지고 자신의 여러행동이 좀 더 잘 연결이 되면 될수록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이 머리에 떠오른다. 평범해 보이던 것들이 조금은 더 달라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노트에 적어서 나중에 생각해 봐야지 하는 아이디어가 계속 떠오르는 것이고, 여러가지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자기 관점이라는게 생겨서 읽어도 이해가 잘되고 중요한 부분이 기억도 잘된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계속 쓰게 되고 그러다보면 문체라는 것도 조금씩 생기게 되는 것같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지적하고 끝을 내자. 나는 글을 쓰는 결과물 이상으로 글을 쓰는 행위가 중요하다고 느낀다. 우리는 결국 죽지만 밥을 먹는다. 우리의 치아는 결국 썩어 없어질테지만 이를 닦는다. 명작이 태어날 것을 믿어서 글을 쓰는게 아니다. 글을 쓰는 과정과 그 결과물이 나에게 도움을 주니까 글을 쓴다. 이것은 마치 매일하는 조깅같은 것이다.

 

글쓰기는 내가 누구인지를 나에게 알려준다. 글을 쓰면서 나는 묻는다. 그리고 또다른 내가 어딘선가 답을 해주고 나는 의문을 조금을 풀게 된다. 처음에 말했지만 나는 약간의 영감과 아이디어는 가졌을 망정 뭘 쓰게 되는지 다 알면서 글을 쓰는게 아니다. 내 생각에는 그런 식으로 글을 쓰면 삼류의 글이 된다. 글이란 산책과 비슷하다. 길은 몇가지 놀라움을 가져야 걸을 재미가 있다. 그런데 미리 다 정해놓으면 그런 글은 재미가 없다. 

 

뭘 쓸지 많이 생각해 두는 것은 필요하지만 다 생각한 다음에는 오히려 좀 잊어버려야 한다. 그리고 필자라기 보다는 하나의 독자가 되어 묻는다. 세상에는 이런 질문이 있는데 말이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럼 손가락이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쓰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쓰기 위해 쓰는게 아니라 내 이야기를 스스로 읽는 첫번째 독자가 되기 위해 쓴다. 아 그런 거였군 하고 배우기 위해서,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 쓴다. 천개 이상의 글을 썼던 이유는 그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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