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세상보기

'안철수'를 생각하며

by 격암(강국진) 2013. 11. 29.

지난 대선이전 안철수는 제2의 노무현이 될것처럼 사람들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선거에 참여한다는 말이 없어도 서울시 시장선거 지지율이 최고였고 그가 지지한 박원순은 실제로 당선이 되기도 했다. 대선에서도 거의 단신으로 제2야당후보와 경합을 버리다 자신사퇴하는 일이 있기도 했다. 지금 돌아본다.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안철수는 과연 무엇일까.


안철수는 훌룡한 시민이다. 


나는 지난 대선무렵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안철수를 가혹하게 부정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여러종류가 있지만 제일 많은 경우가 별다른 근거없이 깜이 안된다라던가 안철수는 제2의 이명박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참 많다. 안철수는 정치가로서 실패일지 모른다. 안철수는 정치가로서 무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껏 들어난 것으로 봤을때 안철수는 가장 훌룡한 시민중의 하나다. 나는 한국사람들이 다 안철수 정도만 되면 기뻐서 춤이라도 출것 같다. 안철수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는 한국을 구할수 없다라는 투로 이야기한다. 누군가가 한국을 구하지 못하면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되는가? 그런 말의 뒤에는 누군가 '다른 이분'은 한국을 구한다는 식의 확신이 있는데 나는 누군가 다른 그 분이 누구건간에, 그런 확신이 오히려 두렵다. 김일성이나 박정희 신성화하는 것과 비슷한 것같아서. 


안철수가 왜 비난받아야 하는가. 만약 안철수가 어떻게 해서든 한자리 하려고 안달복달이었다면 다르다. 준비되지 않은자가 권력을 가지게 되는 것은 바로 악의 시작이다. 그러나 안철수의 행보는 적어도 그런 행보는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들이 안철수를 공적인 자리로 끌어오지 못해서 별별 짓을 다했다라고 하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빨리 나서지 않는다고 욕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았던가. 그래놓고 한국사회가 안철수가 한국을 구하지 못했으니 나쁘다고 비판할 수 있을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비판할수 있다 없다같은 문제의 답이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식으로 사고하고 말하는 사람들의 정신자체가 바로 우리가 처한 정치적 사회적 어려움의 핵심적 원인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왕과 독재자를 찾는 사람들로 민주정치가 되질 않는다. 그게 안철수가 되건 박원순이 되건 문재인이 되건 또다른 누가 되건 이제 누군가의 등을 밀어서 그를 단독으로 앞에 내밀고 나가서 죽으라고 하는 식의 태도는 비난받아야 한다. 이미 노무현이 죽었다. 노무현 같은 탈권위주의적 정치인은 시민들과 나란히 한줄로 어깨동무하고 전진하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래 줄거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런데 맨 앞에 던져놓고는 혼자서 매를 다 맞으라고 하니까 매맞아 죽는 것이 아닌가. 노무현이나 그밖의 여러 다른 '대안적' 지도자가 이명박이나 박근혜같이 알아서 수익구조가 만들어 지는 그런 사람이며 일이 터지면 알아서 세상이 막아주는 그런 사람들인가. 노무현이 이명박 일가처럼 4대강 주변에 땅을 온통 사놓은 그런 사람이었으면 새누리당이 공격하기 전에 그의 지지자들이 먼저 노무현을 두들겨 팼을 것이다. 


맨앞에 세워놓고 정보의 독점, 돈의 독점 같은 권력은 가지지 말라고 하면서 너 혼자 앞으로 걸어가라고 하면, 거기에 더하여 왜 한국을 못구하냐고 타박을 한다면 나가서 죽으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이러면서 한국의 정치가 후진적이다, 정치가가 무능하다 타락했다 운운하는 것이 계속된다면 한국의 정치는 영원히 그 상태로 머물것이다. 


다시말하지만 시민으로서의 안철수는 훌룡하다. 그가 한국을 구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를 비난하는 것이 바로 낡은 정치고 우리나라가 한걸음 더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다. 더 많은 권한을 주장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보다 책임감있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왕들의 싸움을 뒤에서 구경하는 무력한 백성 흉내를 내서는 안된다. 자기들이 투기에 눈이 멀어 문제를 일으키고 왜 나를 진작에 더 강력한 법으로 제재하지 않았냐고 묻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한국은 국민수준만큼의 위대함만 가질 것이다. 


안철수가 공적세계에 서있는 이유


앞에 이렇게 안철수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비난'했으니 그 다음에 무슨 소리가 나올지 이미 눈치챈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는 안철수가 실망스럽다는 이야기를 할 것이다. 왜 그런가를 쓸 것이다. 


안철수는 훌룡한 분이지만 정치판에서는 실망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제까지의 안철수를 보았을때 그는 내가 모르는 많은 말들과 시도를 했을 것이지만 시간이 지나 남아있는 것은 단 하나다. 큰 틀에서 보아 민주당대 새누리당이라는 경합구조가 한국 정치를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 둘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구조를 버리고 새판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에 깊게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단과 목표를 혼동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수단이고 필요악이지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목표는 시민들의 행복, 한국의 발전같은 것이 목표다. 행복이니 발전같은 것은 너무 광범위 하므로 그것을 위한 수단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즉 뭘해야 행복하고 발전하는가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심지어 이 수준에 이르러도 정치는 아직 등장할 때가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현 시점에서 마을만들기 같은 것이 상징하는 크고 작은 공동체를 활성화 시키고 그것이 서로 잘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그 행복과 발전에 중요한 수단이 된다고 믿는다. 이는 박원순도 강조하고 있는 것이며 잘 모르지만 심지어 안철수도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정치는 이런 큰 목표의 다음의 다음의 다음쯤에 등장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공동체 활성화에는 여러가지 법안을 만든다던가, 예산을 투자한다던가 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지역 균형발전이나 각 세대에 어떤 역할이 주어질것인가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정신적 문화적 지원도 중요하다. 의료, 통신, 교육 서비스들이 모두 그에 맞춰서 지원되어야 하고, 교과서 문제로 시끄럽지만 역사를 정립하고, 책을 번역하고, 정신문화적인 수준을 높이는 노력에 돈을 지원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잘 안된다. 왜? 그런 걸 결정할 사람을 뽑을 때 그런 복잡한 이야기를 듣고 뽑는게 아니라 우리가 남이가 라고 외치거나 저 나쁜 새누리당놈들을 무찌릅시다라고 말하면 뽑아주니까. 사람을 뽑을 때는 마치 미식축구선수 뽑듯, 덩치가 크고 힘이 세고, 폭력앞에서 용감한 싸움꾼을 뽑아놓고는 그 사람들보고 멋진 뮤지컬 공연을 하라고 하면 일이 되겠는가? 문화적 시민들이 문화적 정치가를 뽑는다. 그런데 민주당대 새누리당이라는 싸움은 그들이 모두 무식쟁이라는 현실을 가린다. 아니 정확히 말해 무식쟁이가 성공하는 게임을 만든다. 


안철수가 등장하는 장소는 사실 그 지점이다. 안철수는 지적인 이공계 인간이다. 즉 그는 인문학적인 소양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인생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깊이를 가졌으면서 동시에 전문직인 의사고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백신프로그래머였다. 밴처회사 신화를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또한 유학도 다녀온 국제적인 인간이며 젊었을때 부터 사회적 기부와 봉사를 해온 사람이다. 다수의 국민들에게 그는 새누리당과도 다르고 민주당과도 다르다. 새누리당이나 민주당 정치인들이 자신들이 안철수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말이다.


안철수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그런 사람들이 국가대사를 결정하기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정치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 않아도 그를 뽑아올리는 국민 스스로가 기성정치인들에게 실증을 내고 있다.  


과녁을 빚나간 화살


문제는 어찌저찌 정치판으로 끌려온 안철수가 그런 그의 이미지와는 다른 행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게임 규제에 대한 법률논쟁에서도 주도적 입장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인생을 논하던 안철수는 사람들 끌어모으고 파벌만드는데 시간과 힘을 다쓰는 것같다. 많은 사람들이 안철수에게 정치를 배우라고 말하지만 나는 정치따위 배우지 말라고 하고 싶다. 배워도 정치는 오랜 시간에 걸쳐서 배우는 것이지 한두해에 뭘 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안철수는 안철수로서 싸우고 선택하고 움직여야 한다. 그 결과 국민이 반대하게 되면 공적 세계에서 사라지면 그만이다. 


무엇보다 그것이 바로 노무현의 성공비결이었다. 빽없고 연줄없는 세계에서 마이너가 성공할수 있는 방법은 어딘가의 말단에 가서 뛰는게 아니라 되던 안되던 처음부터 사장이고 머리로 뛰어야 한다. 노무현이 좋은 자리 팽겨치고 아무도 안가는 경상도 선거에 뛰어드니까 그는 편하고 성공한 국회의원이나 시장이 될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래서 그는 대통령이 된 것이다. 노무현이 대선에서 이기기 전에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머리숙이고 나와 함께 세를 만들어 보자고 했으면 노풍은 없었다. 노무현이 장렬하게 실패하니까 오히려 노무현이 중요해 졌고 나중에 세가 만들어 지니까 노무현에게도 정치인들이 따라 붙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나의 진단이지만 안철수가 뽑혀 올려진 이미지가 있다면 그 이미지에서 안철수는 일을 벌여야 한다. 그는 IT전문가로 유명하며 한국은 삼성때문에라도 IT산업이 아주 중요한 이슈다. 왜 거기서 판을 뒤집을 만한 어떤 것을 주장하지 않는가. 예를 들어 -좋은 예인지는 모르겠지만- 통신의 공공성을 강조하고 통신은 수도물이나 전기처럼 생활의 기본이기 때문에 정부가 통신시장에 재진입하여 공공화해야한다고 주장할수도 있다. 사실 잘나가던 한국의 통신 환경이 개판이 된데에는 한국통신이 민영화된 것이 큰 이유가 있다라고 나는 믿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국통신이 아니고 이런 식으로 그의 주무대에서 발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면 의사인 그가 한국의료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노령화가 급진전되는 한국에서 의료개혁을 위해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IT도 의료도 아니라면 마을만들기 같은 공동체운동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는 박원순과 당을 넘어 교류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고 무엇보다 청춘의 멘토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 아닌가. 


이 모든 것을 그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신문에는 어떤 세력이 안철수와 손을 잡는다더라 같은 이야기만 나와서 안철수의 전공이 파벌들간의 세력싸움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구체적인 법안이나 이슈에 매몰되지 말고 그런 보스의 일에 집중하라고 그에게 조언하는 사람도 아마 많을 것이다. 요리사로 유명해져서 유력한 왕의 후보가 되었을지라도 요리를 관두면 제대로 된 왕도 될수가 없다. 그는 지적인 전문가인데 왜 씨름을 하고 있는가. 도대체 그의 옆에서 그의 이미지 관리를 해주는 참모는 뭘 생각하는가. 


무엇보다 정치개혁의 핵심이 뭔가. 안철수 자신도 깨닫지 못하고 있을지 모르나. 낡은 정치를 끝내고 새정치를 한다는 것은 결국 안철수 자기 자신이 대표하고 있는 사람들로 정치판을 채우자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인문적인 소양을 갖춘 전문가의 정치다. 말하는 것에 깊이가 없는 깡통 전문가도 아니고 두리뭉실한 사회과학이론 이야기만 하되 국제적, 실무적, 정량적 지식으로 가면 전문성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바로 안철수 자신 같은 사람들로 정치판을 채우면 그게 새정치다. 


그렇지만 그것을 위해 우리가 안철수 같은 사람을 많이  찾아서 그들을 정치판으로 올리는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옛날에 한 현명한 지식인이 왕에게 가서 말하길 훌룡한 덕이 있고 지식있는 사람들을 뽑아 쓰라고 했다. 그랬을때 그가 왕에게 내가 이미 이러저러한 사람들을 아는데 그들이 덕있고 지식있는 사람들입니다라고 말했다면 그는 어리석다. 그런 구조에서는 바로 그 지식인의 수준을 그 나라가 넘지 못한다. 그가 왕에게 말하길 우선 나를 높이 쓰라고 한다. 그러면 세상사람들이 보고 아 이제 저 왕이 저정도 사람도 대우해 주니 내가 가면 좋겠구나 하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안철수가 안철수로서 성공하면 제2 제3의 안철수는 저절로 나타난다. 국민앞에 안철수 이상의 인물이 나타나서 한국에서 공공을 위해 일하겠다고 할 것이다. 세력이 생긴다면 그때 저절로 세력이 생겨날 것이다. 그런데 안철수가 돌아다니면서 안철수같은 인물을 모아 세력을 만들고 그걸로 기존정치와 싸워 이기겠다고 해서 될리가 없다. 


박원순의 예를 통해서도 같은 것을 보게 된다. 박원순 하나가 서울시장으로서 성공함으로서 그는 시민운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평가를 끌어올렸다. 박원순이 공동체에 대한 강조를 하면서 서울시장일 하나를 잘하면 공동체 전문가가 사방에서 두각을 들어낼 것이다. 박원순의 당적이 민주당이지만 사람들은 박원순과 안철수는 항상 공감대가 있다고 믿는다. 세상에 박원순 안철수가 열명 백명이 있다면 세력이 왜 안생기겠는가.


그러므로 안철수가 세력을 만들고, 당을 만들고, 기존 정치세력과 파벌적으로 싸우게 되는 길에 집중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안철수가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되기 쉽다. 안철수가 민주당에 입당한다면 안철수는 당장 민주당 대표급으로 올라설것이다. 이 길이 제일 좋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주당안에 있다던가 밖에 있다던가, 민주-새누리 당과 대립각을 세운다던가 하는 문제들은 오히려 사소하다. 안철수는 대중적 기대속에서 공인인 안철수의 의미가 뭔지를 생각하고 안철수이기를 계속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 아니 되는지 안되는지를 떠나 그것이 바로 그가 바라는 세상이 오게 만드는 가장 유력한 길이다. 세력을 얻고서 세상을 바꾸겠다고 하지 말고 세상을 바꾸는 일을 그냥 시작하면 어느새 사람들은 그의 주변에 모여들 것이다. 그게 21세기식이기도 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