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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과 아파트 그리고 세대전쟁

by 격암(강국진) 2014. 2. 14.

한국에서 세대 전쟁이라는 것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점점 더 확실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이는 베이비붐 세대와 그들의 자식이나 그보다 어린 세대의 이익이 충돌하면서 생기는 일로 어쩌면 돈과 인맥등 모든 것에서 앞서는 기성세대와의 싸움이 싸움이라고 부르기에 안타까울 정도로 일방적인 것일지 모르지만 이익의 충돌 그리고 공공의식내지 공동체 의식의 파괴나 부재가 그것을 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을 점점 더 그럴듯하게 들리게 만드는 느낌이다. 


그 세대전쟁의 큰 몸통을 이루는 것은 아파트다. 한국인의 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 그중에서도 아파트는 한국인의 중요한 축재수단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성장은 둔화되고 부동산 거품이 너무 커지다 보니 이제 아파트를 가진 기성세대와 사회로 진출하고 아직 집이 없는 젊은 세대간에 싸움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들이 스스로 자각을 하고 있건 안하고 있건 말이다. 


은퇴를 하는 베이붐 세대는 재산을 대부분 부동산으로 가지고 있으며 자식은 분가하여 나갔으므로 그들의 아파트를 축소하거나 팔아서 현금화하고 그것을 은퇴자금으로 삼으려고 한다. 다시 말해 지금의 아파트 가격을 진짜 가격으로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젊은 세대에게 있어서 지금의 아파트 가격이란 노예문서나 마찬가지다. 앞으로 가격상승이 더 없고 가격이 이대로 유지되거나 심지어 떨어질거라는 전망이 있다면 지금의 아파트 한채를 사는 돈을 저축하기 위해 젊은 세대는 은퇴할때까지 거의 돈을 쓸수 없을 것이다. 즉 노년세대에게는 축재수단이었던 아파트가 더이상 축재수단이 되지 못하자 아파트를 사야하는 젊은이들에게 현재의 아파트가격이란 결국 사회가 그들을 노예화하는 일이라는 것이 아주 분명해 진 것이다. 


그러므로 젊은 세대는 아파트를 사지 않는다. 사실 사지 말아야 한다. 고성장 시대는 이미 갔다. 한국이 일본처럼 되지 않는다고 해도 아파트 가격이 과거처럼 펑펑 오를리가 없으니 억대의 빚을 내서 아파트를 분양받는 것이 상식이던 시대는 이미 간 것이다. 


전쟁의 핵심은 아파트를 두고 벌어진다. 젊은 사람들이 버티지 못하고 아파트를 사면 기성세대의 규칙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주택시장에서 떨어져나오고 부동산 거품붕괴가 일어날때까지 버틸수 있다면 젊은 세대가 승리하게 된다. 


지금의 상황을 만든 것은 결국 기성세대가 국가공동체 전부에 대해서 공공의식을 발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품이 지나치기 전에 눌렀어야 재개발을 하던 젊은 세대가 집을 사던 할 것이 아닌가. 내 아파트 값만 오른다면 나라는 어찌되도 좋다는 생각이 지금의 한국을 만든 것이다. 기성세대는 부동산 거품붕괴가 오면 다죽는다고 말할것이고 그것도 어느정도 사실일수 있지만 사실 지금 판국에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의 아파트를 사주면 기성세대는 어쩔지 몰라도 젊은세대는 죽는거나 마찬가지다. 젊은 세대가 이기적으로 생각하자면 그들은 고의적으로라도 거품붕괴를 일으켜야 살길이 있다. 물론 그것은 사회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 발상이다. 다만 여기서 한가지는 지적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부동산 거품을 일으킨 기성세대는 이기적이지 않았단 말인가?


기성세대의 규칙이 승리하는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고성장 시대를 끝낸 유럽이나 일본같은 나라를 보면 우리는 당연한 한가지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고성장이 끝났으니까 변화가 느리다. 거기에 노령화되면서 좋았던 옛날에 대한 향수에 젖는 일도 많아져서 그런 사회는 과장해서 말하면 고성장의 시대에 시간이 멈춰있다. 즉 그때 살던 그대로 계속 사는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부자가 되어 선진국이 되고 고성장시대가 끝나면 일본이나 유럽처럼 될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보는 모습은 그들이 가장 잘나가던 시대에 시간이 얼어붙은 모습에 가깝다. 물론 뒤에서 할 이야기때문에 미래는 알수 없지만 어떤 커다란 변화가 없다면 우리의 시간도 얼어붙을 것이다. 그말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아파트 촌이 우리의 미래라는 것이다. 재개발은 어렵고 다른 도시를 건설하기도 어렵다. 그런 개발은 돈이 많고 개발이익이 보장되던 시대에 잘 일어나기 때문에 고성장시대가 끝나면 이미 있는 것에 적응해서 사람들은 살기 마련이다. 


새로이 더 짓지는 않아도 이미 있는 많은 아파트에 적응하면서 한국인은 살아갈 것이다. 그게 싸기 때문이다. 선진국사람들이 백년 2백년짜리 건물을 찬양하는 것은 마땅히 좋은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의 진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은 이제 그 이상가는 것을 재건축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미국의 쌍동이 빌딩이 무너지니까 거기에 더 큰 빌딩이 서던가? 


노령화가 지속되면 노인들이 사회의 중심이 될 것이고 변화를 싫어하는 그들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방송에서 영화에서 바꾸는 것은 나쁘다, 살던대로 사는게 뭐가 나쁘냐는 말이 주문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어떻게 아는가? 그게 노인들이 중심되는 사회니까 그렇다. 그게 무엇보다 지금의 일본이다. 일본의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아름다운 얼굴을 한 배우들이 바로 그 이야기를 계속한다. 물론 그러면서 서서히 고통스럽고 희망없이 나라는 수렁에 빠지는 것이다. 


젊은 세대에게도 무기는 있다. 바로 정보기기다. 한국은 한가지점에서 특이하다. 그것은 바로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의 사용률이 전세계 최고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결국 한국에서 정보가 그렇게 소중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진짜 정보가 귀하다. 책이나 신문이나 방송이 그리고 국회가 법원이 본연의 임무를 잘 해내는 나라였다면 사람들은 서둘러 정보기기에 몰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의 괴상함을 보여주는 한가지예를 들어보자. 한국에는 매춘이 아주 흔하다. 여자나오는 술집이란게 그렇게 많다. 그런 나라인데 포르노는 또 불법이다. 한국은 법과 현실이 다른 경우가 많다. 공식적 윤리와 실질적 현실이 다른 경우가 많다. 이리저리 법은 많이 만들어서 공식적으로는 불법인 것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실질로는 어떤가. 결국 권력있는 사람들은 그 법을 안지킨다. 사람들은 바깥에서 체면을 차릴때는 근엄하기만 하다. 그러나가 친구끼리나 눈치볼것없는 부하앞에서는 아주 형편없이 행동하는 경우도 많다.


법과 현실의 괴리란 결국 기득권의 부패다. 남들보고는 다 시험쳐서 취직하라고 공식적 취직시험의 규칙은 엄하게 만들어놓고 내 자식은 구멍으로 집어넣을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가 기득권의 이상향이기 때문이다. 나는 섹스파티를 하건, 성추행을 하건 폭행을 하건 상관없지만 일반 시민들은 포르노를 봐도 안되고 폭력적 오락을 해도 안되고 성추행으로 잡혀오면 엄벌을 하는 사회 그런 사회가 기득권의 이상향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나라는 돈이 많으면 참 살기 좋은 사회라고. 


이렇게 위선이 많은 사회는 정보가 흐르지 않는다. 국민 모두를 위해서 일해야 하는 정부나 국회, 언론, 지식인들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마땅히 나눠줘야 하는 정보가 차단되고 애초에 공급되지 않는다. 왜냐면 그런 사회가 바로 기득권의 이상향이기 때문이다. 저기 높으신 분이 개발 정보하나 찍어주면 삼대가 놀고 먹을 돈을 벌수 있는 그런 사회가 기득권의 이상향이다.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는 자본주의 사회고, 시장의 논리가 하느님의 규칙처럼 중요한 사회다. 그래서 냉정하고 비인간적인 행위에도 시장의 법칙은 누구도 어쩔수가 없다는 변명이 주어진다. 그러나 실은 기득권의 이익에 관련된 곳에 따르면 내부거래, 부당경쟁으로 돈이 철철 흘러넘칠수 있게 정보가 통제되어 흐르는 사회, 그게 기득권의 이상향이다. 그러면 권력있는 집안의 자식들은 이상하게도 재태크만 하면 성공하고 군대도 안가고 취직도 척척되고 승진도 빠른 그런 세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자본주의 국가라는 것은 언제나 기묘한 발언이다.


이런 나라에서 없는 사람들의 무기, 진정한 개혁의 무기란 무엇인가. 바로 정보기기다. 정보기기는 위선을 파괴하고 없는사람들도 누리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한국같은 사회에서 그 효용이 엄청나다. 물론 한국에서 IT가 발전하는 것은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정보기기가 인기가 좋은 것은 거꾸로 좋은 정보, 진짜 정보가 드물기 때문이다. 다들 위선만 떨고 있을뿐 진짜 정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대학교수가 학생들에게 요즘 세상에 유학은 왜 가냐고 역설하지만 자기 자식은 유학보내는 즉 학생에게 말하는 것과 자식에게 말하는 것이 다른 것이 많은 그런 사회이기 때문이다. 대학교수만 그렇게 할까. 국방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내각이 모여서 남들을 종북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물론 그들의 가족도 전부 병역면제인 경우가 많은 것인 한국이 아닌가? 


그러니까 사람들은 직접 연결되어 조각난 정보를 맞춘다. 그럴때 나오는 정보만큼 가치있는 정보는 책이나 신문에서 방송에서 잘 얻을 수 없다. 전문가의 의견도 믿을수 없고 총리의 의견도 믿을수 없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이해관계가 직접 없는 시민들이 서로 짜맞춘 정보다. 그렇게 짜맞춘 정보가 기득권의 목을 죈다. 그들의 과거가 밝혀지고 현재가 밝혀진다. 아이엠에프로 대통령이 된 것이 김대중이었다면 인터넷이 없었다면 절대 대통령 될수 없었던 것이 노무현이었다. 


젊은 세대는 정보기기를 기반으로 인터넷상에서 공동체를 만든다. 기본적으로 그것이 그들이 경제적으로 파산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준다. 거기에서 일자리가 나오고 싼물건이 나오고 속지 않을 정보가 나온다. 젊은 사람들은 겨우 몸만 누일수 있는 좁은 방안에 살아도 스마트 기기로 행복하게 사는 경우가 많다. 차까지 있으면 더 좋다. 스마트 기기가 있으면 좁은 방안에서도 많은 일을 할수 있고 차가 있으면 가지 못하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좁은 방안에서 버틸수 있으면 결국 부동산 가격이 하락해서 젊은 세대도 좁은 방을 탈출하게 될 것이다. 이건 버티기 싸움이다. 


언제 어디서건 이익관계의 상충이 일고 경쟁이 있는 것은 보통이다. 그런 것에 따로 전쟁이라는 이름을 항상 붙이는 것은 아니다. 내가 세대전쟁이라고 부른 것도 사회가 상식적으로 돌아간다면 그런 충돌이나 변화가 부드럽게 일어나거나 제한되어서 전쟁으로 부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의 탐욕과 공공의식의 부재가 지나치면 결국 나만 살고 남은 죽어도 좋다는 식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미 어떤 아름다운 연착륙 같은 것은 불가능한 시대가 아닌가 생각한다. 가진 재산을 전부 집사는데 쓰는 것도 부족해서 빚을 내서 집을 산다. 학교도 빚내서 다녀야 한다. 그래서 가계부채가 천조를 능가하는 엄청난 수준이 아닌가? 5%이자만 생각해도 일년에 50조나 되는 돈이다. 엄청난 합의와 자제력이 아니면 누적된 모순은 한꺼번에 터질 것이다. 사회적 변화는 전쟁의 피해자라고 부를수 밖에 없는 피해자를 남길 것이다. 전쟁이라는 말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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