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공담에 대해 세상이 떠들석 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을 비판해 오곤 했는데 내가 했던 비판의 요지는 성공한 사람도 자신의 진정한 성공의 이유를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늘은 그것과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성공담에 대한 비판을 써볼까 한다.
성공담은 오직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에게만 도움이 된다. 즉 성공의 주인공이 자기를 몰라서 진정한 자기의 성공이유를 모른다는 것도 문제지만 그 성공담을 듣는 사람이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도 문제가 된다. 나무 오르는 법을 성공적으로 익힌 원숭이와 자기가 원숭이라고 생각하는 개가 있다고 해보자. 그 개는 원숭이의 성공담을 듣고 자신도 이렇게 저렇게 하면 나무에 잘 오를 수 있을거라고 착각할지 모르지만 그 개의 가장 큰 실패는 자신이 원숭이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그 개는 원숭이처럼은 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단지 개는 개고 원숭이는 원숭이니까 성공의 비결이 다르다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남의 성공담에 대해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것의 가장 큰 문제는 그 성공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자체에 있다.
추상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구체적인 예인 다이어트에 대해 생각해 보자. 오늘날 우리는 살빼는 비결에 대해 많이 이야기한다. 심지어 코메디언이 티브이에 나와서 공개적으로 살빼는 것을 방송하면 큰 인기를 얻기도 한다. 그렇다면 살빼는 것에 대한 성공담은 어떤 문제를 가질 수 있을까.
우선 그런 살빼는 비결이 진짜인가 아닌가가 문제일 것이다. 워낙 많은 방법들이 소개되니까 말이다. 두번째로는 그렇게 살을 빼도 과연 그런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가가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물어야 할 것이다. 과연 그렇게 했을 때 우리는 행복한가 하는 것이다.
나는 살빼는 것이 나쁘다던가 혹은 좋다던가 하는 이야기 이전의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건강이란 좋은 것이고 지나친 비만은 미용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하지 못한 것이므로 살을 빼는 것이 일반론적으로 좋은 일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나는 일반론적으로 담배가 몸에 나쁘다고 해서 어떤 사람이 담배를 끊는 것은 무조건 좋다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라고 생각한다. 삶의 여러요소는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그렇게 단순화 시킬때 우리는 삶의 핵심을 다 빼버리고 무슨 시험관 속의 배양식물처럼 되버릴 수도 있다.
우리는 아내를 사랑하여 그녀를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간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감동할 것이다. 자기 몸에 좋지 않은 걸 알아도 아내가 기뻐하기때문에 그녀가 만들어준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는 남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감동할 것이다. 그런데 그 남자만 생각하자면 그렇게 사는 건 바보짓이다. 희생은 바보짓이니까 말이다. 인생이 절반으로 줄어도 담배한대 피우고야 말겠다는 남자의 이야기를 우리는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다. 인생은 복잡한 것이니까 말이다.
그럼 살을 뺄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나는 다만 천천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이 했다는 그 뭔가를 성공이라고 쉽게 단정짓기 전에 그것이 멋져보이고 좋아보여도 우리는 천천히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천천히 변화해 가면서 우리는 계속 물어야 한다. 이것은 과연 내맘에 드는 것인가. 이렇게 사는 것이 좋은 일인가. 혹시 나는 지나친 댓가를 치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 멋진 양복이 입고 싶어서 집팔아서 양복입는 남자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그렇게 하지 않고 지름길을 택한다. 기가막힌 비결을 찾아서 이렇게 하면 살을 쑥 뺄수 있고 이 책만 줄줄이 외우면 아주 똑똑한 사람이 되며 이런 데이트 비결만 익히면 사랑의 승리자가 될수 있다고 하는 말에 혹하는 것이다. 남들이 30년 걸린것을 3년에 해낸 사람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부럽다. 그 비결을 알고 싶다.
그러나 기막힌 살빼는 방법은 대개 요요효과로 실패하는 일이 많고, 서둘러 이책저책 많이만 읽고 삮혀서 이해하지 않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고 보면 진짜로 앞으로 전진하고 있지 않다. 비결에 너무 의존하려고 하는 남녀는 진정한 사람의 기쁨을 맛보기 어렵고 젊어서 큰 돈을 번 스타들은 언론에서 멀어진 후 후일담이 별로인 경우가 많다.
빨리 가봐야 거기에 가면 죽을 것도 아닌데 빨리 갈 필요가 없다. 변하지 않는 어떤 궁극의 장소로 가는 거라면 죽으러 가는 것이고 거기에 가도 또 어딘가로 빨리 가야한다면 그렇게 빨리 빨리만 외치다가 사는 즐거움은 하나도 누리지 못할 것이며 더하여 무리하다가 어디선가 큰 손해를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만명에 하나 백만명에 하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 보여주는 기막힌 성공이야기를 따라하다가는 대개 만명의 하나나 백만명중의 하나가 아니라 나머지 사람중의 하나가 된다.
삶이란 대개는 균형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가만히 그대로 사는 것같아도 사실은 그건 어떤 동적인 균형이다. 우리의 몸무게가 변하지 않아도 우리가 돌멩이도 아니고 아무것도 안먹고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고 먹은 만큼을 소모하기 때문에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몸무게만 그런게 아니고 많은 것들이 우리 삶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 균형점 혹은 삶의 테두리는 당연히 그대로 존재하는게 아니라 매일 같이 가꿔주고 균형을 잡아주니까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살빼는 것에 대해 요요가 없으려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내가 더이상 특별히 뭔가를 자제하지 않아도 지금의 몸무게가 저절로 유지되는 삶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생활이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 물론 살빼기만 그런게 아니라 지식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고 재산이나 명성도 그렇다. 성공하기도 어렵지만 삶의 요요현상을 피하려면 삶의 모든 부분을 바꿔서 균형을 이뤄내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 것을 조화롭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의 삶의 테두리들을 스스로 느끼고 적절한 힘을 배분해야 할 것이다.
삶이란 또한 완전한 균형일 수가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변해간다. 우리는 한순간에 원자와 분자로 나뉘어 지거나 부패하여 흙으로 돌아가지는 않지만 우리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설혹 그렇게 보이는 부분이 있어도 다른 부분은 변하고 있으며 어떤 부분을 변하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다른 부분을 더 빨리 변하게 한다.
우리는 그렇게 굴러가는 삶을 조금씩 조금씩 조절하여 좋은 곳으로 굴려가려고 할 뿐이다. 지름길이나 획기적인 방법은 사기이거나 착각이거나 혹은 이제까지의 어리석음에 대한 보상일 뿐이다. 즉 실은 그사람이 그렇게 변할 준비가 다 되어 있는 상황에서 한가지가 그 변화를 막고 있었는데 그걸 깨달은 순간 비교적 빠른 변화가 올 수는 있을 것이다. 많은 고민을 하고 노력을 한 사람이 한가지 생각이 모잘라서 어떤 업적을 이뤄내지 못한다던가, 터무니 없이 어떤 작은 버릇때문에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던 사람이 그것을 깨닫자 큰 변화가 왔다던가 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성공담을 보고 나도 그렇게 하면 나도 그렇게 변할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 아니겠는가.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뭔가에 미친듯이 열중하는 정열이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남의 이야기를 들어도 자기를 잊지 않으면 좋은 일이고 뭔가를 미친듯이 과하게 하는 것같아도 순수하게 자신의 감정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요즘엔 광고가 너무 많다. 이런 집에 사니까 행복해요라고 말하는 예쁜 여배우의 얼굴을 보고 그 집에만살면 행복해 질거라고 엄청난 돈을 빌려 집을 사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비싼 댓가를 치뤄야 하니까. 성공담들은 대개가 아니면 전부 광고다. 정말 그 집에 사는 것이 우리가 치룰 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광고일뿐인 성공담때문에 휩쓸리는 것은 우리의 인생을 낭비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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