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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책 이야기

맛의 달인을 읽고

by 격암(강국진) 2014. 9. 2.

2014.9.2

나는 맛의 달인 (원제 오이신보 -美味しんぼ)이라는 만화를 좋아한다. 가리야 데츠 원작에 하나사키 아키라가 그림을 그린 이 만화는 1983년부터 그려서 백권을 넘긴 만화로 가리야 데츠는 최근에 일본 방사능 문제에 대한 폭로로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 만화는 2003년에 이미 1억권의 판매를 올린 대표적 음식만화로 지루한 정보가 많이 들어 있는 곳도 있는 음식만화인데도 원피스나 슬램덩크 같은 역대 최고의 인기 만화들과 함께 거론 된다. 

 

맛의 달인은 일본 음식과 그 주변에 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해서 작가 나름의 관점에서 설명해준다. 이 만화자체를 지나치게 요리책이나 일본에 대한 정보책자로 칭찬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이 만화의 강점은 틀릴 수 있다거나 지나친 단순화를 한다는 것을 감안하고라도 자기 의견을 가지고 말하는 점이다. 그저 두리뭉술하게 말하지 않는다. 자기 주장과 관점이 있다. 그런 만화가 아니었다면 재미가 적었을 것이다. 

 

맛의 달인은 그래도 다른 음식만화같이 황당한 면이 적다. 오히려 정보들이 매우 자세한 취재를 바탕으로 한 것이 확실이 보여서 때로는 관광책자나 음식 홍보책자로 보일 때도 있다. 때로 이 만화책을 들고 여행을 떠나고 싶을 정도다. 어쨌건 이런 정보를 책으로 나열한다면 사람들은 대개 보기 힘들어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만화를 백권이상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듣기에 이 만화가 이토록 길게 흥행한 것은 일본 사회에서의 미식열풍이 불었던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이 만화의 인기는 워낙 대단하므로 이 만화가 미식열풍을 불러일으킨 힘중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만화를 이렇게 길게 그릴 수 있고 독자로 하여금 읽게 할 수 있는 힘은 기본적으로 요리가 아니라 출연진 간의 인간관계에서 나온다. 이 만화는 아버지 우미하라 와 아들 지로가 충돌하고 서로에게 접근해 가는 이야기가 기본 줄거리다. 여기에 지로와 함께 음식을 취재하다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유우코가 또 다른 핵심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다. 

 

30년간의 스토리가 부자간의 싸움과 화해의 이야기일뿐이지만 이 단순한 이야기는 막대한 양의 문화적 재료를 첨부함으로써 풍성하고 맛있는 것이 된다. 일단 우미하라는 서예와 도예를 비롯해서 일본 문화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것이 없는 장인으로 나온다. 그리고 지로는 항상 먹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면 쓸모없고 게으르다고 나오면서도 어린 시절부터의 영재교육을 통해 보통의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것 이상의 식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문제를 플어나가는 능력을 가졌다. 만화를 보면 알게 모르게 결국 친구 무리에서 대장의 역할을 하는 것은 지로다. 따라서 책에 나오는 수많은 다른 캐릭터들이 지로에게 와서 상담을 하고 자기 문제를 풀어 나간다. 만화의 큰 틀은 지로와 유우코가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우미하라와 경쟁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자연스레 문화적인 세세함에 대한 논쟁이나 경쟁이 등장하고 인간으로 올바로 살아가는 것이란 어떤 것일까 하는 것을 고민하게 된다. 작가는 독자에게 세상은 여러각도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음식과 일본의 여러지방에 대한 정보를 다각도로 제공한다. 

 

이 만화의 또다른 기본은 장인정신이다. 이 장인정신이라는 것은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는데 있어서 핵심적으로 중요한 주제다. 이것은 일본의 장점이자 일본의 문제다. 그래서 이 단어를 키워드로 해서 이 만화를 이야기 해 볼까 싶다. 요리하는 사람을 단순한 기술자 이상의 존재로 말하면서 요리를 문화로 말하고 예술로 말하면서 더 완벽해지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할 대상으로 말하는 것이 이 만화의 기본적 추진력이다. 그런 것이 없다면 음식을 위해 이렇게까지 돈과 시간을 들이는것은 무의미하다고 여겨질 것이다. 이 만화는 틈틈이 그런 회의가 들때마다 미식을 추구한다는 것의 의미를 여러번에 걸쳐서 다시 고민하는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미식은 부자들의 돈자랑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의 장인정신에 대한 존중은 요리인은 장인이다라는 메세지 정도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 만화속에서 장인중의 하나로 말해지는 우미하라는 정재계의 어떤 인물도 무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쩔쩔매는 인물로 나오고 그러한 모습이 지극히 당연하다라는 정서가 만화에는 깔려 있다. 우미하라는 한 명의 기술자가 아니라 종합적 예술인으로 모든 것에 통하는 인간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해서 장인은 전문가 이면서도 자기 영역을 뛰어넘어서 보통 사람은 느낄 수 없는 것을 터득한 구도인처럼 여겨진다. 장인은 세상 만사에 보통 사람과는 다른 수준의 말을 할 수 있는 인간, 보통 사람들이 따르고 배워야 할 존재, 세상의 질서를 지켜나가는 존재로 여겨지는 것이다. 

 

나는 몇번인가 소설에서 혹은 만화에서 일본인들이 서로 대화를 하면서 일본이 왜 천황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때 거기서 나오는 대답은 일본인의 윤리적 가치적 수준을 지키기 위해서 일본인은 왕이 필요하다라는 것이었다. 즉 천황이 없을 때 일본대중은 뭐가 옳고 그른지를 알수 없게 되어 타락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에도 그런 대화가 나온다. 천황이 일본의 가치를 지킨다라는 이야기다. 

 

이러한 것은 왕이 없는 한국사람들에게는 이해가 안되거나 황당할 수도 있는 대화다. 일본인들은 사회적 명사, 예술가, 장인, 천황등 사회의 지도층이 일본 사회의 기본적 질서를 수호하고 가치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한국인 보다 훨씬 강하다. 한국 사람으로서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쉽게 비판적으로 말할 수 있다. 이런건 독재를 좋아하고 민주주의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말이다. 이러니까 일본사람들은 껍데기만 민주주의고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대를 이어 지역구를 세습하는 봉건제 비슷한 정치를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런 태도가 있으니까 일본 사회는 한없이 보수적이 되며, 애초에 이런 태도가 일본사회의 보수적 세력이 퍼뜨린 이데올로기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는 장인정신이 부족하다. 이것은 사실로 느껴진다. 한국은 그래서인지 뭐든지 가볍게 보인다. 대표적으로 음식도 지나치게 간단히 접근해서 대충한다. 사회적 존중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장인은 커녕 전문가로서의 자부심과 윤리가 부족해 보일 때가 있다. 장사같은거 자부심 안가지는 사람이 많다. 오래가는 가게도 드물다. 한국에 100권이 넘은 만화가있는가. 만화도 짧다. 이게 만화가라는 전문가에 대한 존중이 부족해서라는 이유가 전혀 영향을 안 미쳤다고 할 수 있을까? 

 

하물며 국가와 사회의 근간을 지켜준다는 장인수준의 인간들에 이르르면 할 말이 없다. 일본도 부패하고 일본도 말도 안되는 일이 많으며 사람은 여러가지 사람이 있지만 솔직히 말해 굳이 비교하자면 지식인 혹은 자칭 타칭 사회적 지도층의 수준에 있어서 한국은 대부분 일본을 쫒아가지 못한다고 나는 느낀다. 뛰어난 몇 사람이 한국에 있는 것이지 한국의 소위 상류층은 대부분 품격이 없고 창의성도 딱히 뛰어나지 않다. 

 

일본을 아는 사람들은 일본을 무시하지 않는다. 일본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이유가 다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대부분 이때문이다. 일본에 와서 전문가나 관료를 만나고 이 나라의 대학교수들을 만나서 이야기 해 본 한국의 지식인들은 그 폭과 깊이에 있어서 한국이 참으로 따라가기 힘들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냥 일반 대중은 종종 일본을 우습게 알지만 말이다. 세계에서 일본을 무시하는 사람은 한국인밖에 없다는 말도 있을 정도다. 

 

이런 내 감상에 분노하고 반박할 사람도 많을 것이요 또 사실 내가 사람을 만나면 얼마나 만났겠는가 이것은 그저 개인적인 감상이다. 그러나 화가 나는 사람은 화를 내더라도 내 말을 다 듣고 흥분해도 해주기를 바란다. 이에 반하여 나는 한국의 진짜 힘은 대중에 있다고 믿는다. 즉 사회적 지도층 운운하는 사람들의 수준은 크게 떨어지지만 국가전체를 들여다보면 또 다르다는 말이다. 한국대중은 지도자를 바라보면서 그 사람만 쫒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독자적으로 움직일 자기 윤리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 사회는 그래서 역동적이다. 

 

몇년전에 한국 사람이 일본에서 사람을 구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철로에 떨어진 사람을 뛰어내려 구한 것인데 그게 한국에서도 칭찬받아 마땅한 것이지만 일본에서는 더 화제가 되었던것 같다. 그 이유는 개인의 결단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은 대충대충이고 질서가 없을 때도 있지만 하려고 하면 스스로 한다. 일본인은 자기 판단력이 약해 보인다. 메뉴얼만 따라하는 사람이라는 오명은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사실 단순히 최고 지식인들을 서로 비교하는 행위는 마치 민주주의 국가와 왕족국가에서 제일 잘사는 사람들만 비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왕족이 모든 것을 가진 사우디 아라비아의 왕가의 자손들이 무식하고 어리석을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설사 굉장한 인격을 가지고 능력이 있다고 해도 과연 사우디 아라비아 같은 나라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아름다운 나라일까? 

 

나는 단순히 여기서 한국에는 장인정신이 부족하고 장인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라는 것을 지적하는 데서 멈추고 싶지는 않다. 이것은 사실이지만 그 반대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장인정신이라는게 그렇다면 있어야 하는 것일까 없어야 하는 것일까. 그런게 없으니 사회가 깊이가 없고 흔들리기 쉽다. 한국 사회를 진지하게 걱정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한국 사회에 진짜 어른 같은 어른, 진짜 권위로 인정해 줄 수 있는 인물이 더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 사람들이 각자 자기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완벽을 기해주기를 바라는 사람 많지 않은가? 설사 한국에 그런 분들이 있어도 사회가 그런 분들을 무시하고 조롱하면 한국이 살기 좋은 곳이 될 리가 없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김치나 찌게를 만드는 분이 있어도 그런 분은 조롱이나 당하고 가게는 망하는데 엉망으로 요리를 만들어 점포수 늘리면 부자되어 남들 무시하고 사는 사회라면 누가 살기가 좋을까? 정말 직업정신으로 경찰일을 열심히 해도 결국 아부나 잘하고 줄이나 잘서는 사람이 성공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아예 그렇게 자기 직업을 한줄기 사는 길로 삼아 열심히 사는 사람을 조롱한다면 그런 사회가 살기가 좋을까? 성공은 못하고 돈은 못번다고 하더라도 자부심과 존중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데 장인정신이 부족하다. 우리도 일본처럼 되자고 하면 다시 생각해 보니 앞에서도 이미 말했지만 문제가 많다. 한국 사회에 있는 민주적인 힘은 말살되고 또 어떤 세력이 엉터리로 만들어 낸 사람이 엉터리 권위로 엉터리 장인으로 등장해서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 것 같다. 한국 사회의 정치적 분열은 내가 보기엔 이 두가지 문화 즉 민주의 문화와 장인의 문화가 융화되지 못하고 충돌하는 것이다. 특히 일본의 문화를 우리의 노령층은 강하게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한국의 정치는 분열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야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흔히 여권의 사람들을 친일파적이고 매국노적이라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 

 

이것도 아니고 그 반대도 아니라는 화두의 답은 개인에게 있다. 장인정신의 본질은 훌룡한 것이다. 그것은 구도다. 내 살길을 내가 찾는 것이다. 우리는 내 살길을 내가 찾는 방면에서는 훌룡하지만 구도의 측면에서는 부족하다. 그래서 결국 인생의 방향과 평가가 쉽게 물질주의적이 되고 만다. 직업윤리가 가면 갈수록 오히려 약해 지기만 하는 것같다. 결국 일년에 3천만원 버는 사람보다 1억버는 사람이 훌룡하다는 식의 간단한 평가가 우리를 지배하기 쉽다.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곧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변호사, 선생님, 제빵사, 약사, 의사, 교수, 택시 운전사, 요리사가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일 수가 있을까? 그보다 책임감있는 직업윤리와 자부심이 우리에게 필요한 거 아닐까? 

 

반면에 장인정신의 본질은 일본에서 또 엉뚱하게 해석되어 내 살 길을 내가 찾는 다는 측면이 무시되는 것같다. 누군가가 인생에 대해 고민해서 느끼는 바가 있었고 그래서 여러분 이런 저런 측면이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고 하자. 그 분이 실제로 훌룡한 분이라고 하더라도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은 여러분도 그런 것을 스스로 생각하고 참조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메세지는 어디론가 던져버리고 그 훌룡하신 분의 사진이나 조각을 앞에 놓고 절하고 기도하거나 그 훌룡하신 분의 자손들을 대대로 높은 분으로 모시고 살면서 이러면 행운이 오고 소원이 이뤄진다더라라고 하면 곤란하다. 그 훌룡한 사람이 말했다는 말을 앞뒤 다 잘라먹고서 달달 외우고 맘대로 억지 해석을 붙이는 것은 그 훌룡한 사람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을 것이다. 

 

남을 존중하는 것이 남을 숭배하는 것으로 바뀌는 것은 내가 보잘 것없어서 그렇다. 내 안에 내가 잘 정돈되어 있으면 다른 사람을 칭찬하고 존중해도 내가 비참하고 구질구질해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지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거나 인정했다하면 이번에는 숭배하는 것처럼 엎드려 버리게 되기 쉽다. 그러다보면 비굴한 인간과 인색한 인간을 너무 쉽게 왔다갔다하게 된다. 

 

한국과 일본은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다르면서도 어딘가에서 자기를 잃었다는 것이 비슷한거 아닐까. 맛의 달인은 음식에 대한 만화지만 동시에 일본문화에 대한 것이다. 즉 일본인은 이렇게 먹고 살아왔고 지금 이렇게 먹고 있다라는 것을 통해 일본인이 세상을 사는 법을 보여준다. 거기에 이 일본만화의 가치가 있다. 이 만화를 읽는 사람은 일본인 작가가 일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싸우면서 일본발견하기에 몰두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한국도 이런 작품들이 많았으면 한다. 우리도 한국찾기가 필요하다. 그럴때 더 많은 사람이 다시 한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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