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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의 거리

by 격암(강국진) 2015. 3. 18.

우리는 먹고 사는 일, 각자의 코앞의 욕심에 쫒기어 사는 일을 하면서 살게 된다. 그것은 자연스럽고 필요한 일이기조차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일상에서 머리를 들고 좀 더 먼 곳을 바라보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그저 먼 곳을 바라보기만 한다면 그것도 곤란하다. 우리가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이 우리의 일상과 연결되지 못할 정도로 멀기만 한 것일때 그것들은 우리의 행동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우리가 살아갈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오랜동안 외국에서 살았다. 외국에서 살았다고 해서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천성이 사교적이지 않은 나로서는 친척이며 동창과 떨어졌는데다가 언어조차 다른 그들과 자연스레 어떤 거리를 만들게 되었다. 그들을 멀리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외국에서의 삶이란 한국에서의 삶과 비교하자면 마치 산속의 암자같은 오지에서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것과 비슷했다는 것이다. 


그같은 삶은 종종 지나치게 외로운 것이며 자극이 없는 것이고 불편한 것이다. 그러나 일상에서 머리를 들고 먼 곳에 대해 사색하고 글을 쓰는데 있어서 도움이 된다. 그렇기에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를 주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오는 것은 최대한 자제한다고 해도 그에 비하면 시장터로 돌아오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 출가한 사람이 환속하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지금은 정착에 필요한 여러가지 일들에 바쁜 것이고 그것들이 끝나면 상황은 달라지겠지만 그때는 그때의 일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뭏튼 여기는 한국이니까. 


얼마전에는 어머니를 전주의 우리집에 모셨다. 아버지를 잃고 잠도 잘 못주무시는지라 아들 옆에 있으면서 힘을 얻도록 한 것이다. 그렇게 한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고 기쁜 마음으로 했지만 아무래도 그러다보면 에너지가 없다. 


일상에서 머리를 들고 먼 곳을 바라본다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매우 심심하고 따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에너지가 넘쳐나니까 일상을 넘어가는 것이다. 에너지가 넘쳐나는 사람들은 많은 일을 하면서도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지나치게 세상에 가까워지면 그렇게 하기 힘들다는 것을 느낀다. 에너지를 아끼고 욕심을 줄여야 한다. 그렇게 하는데 실패했다고 느낄 때 나는 다시 외로운 생활이 그리워 지는 것이다. 아내는 나의 이러한 면에 대해 일찌기 느끼고 그것에 대해 불평하곤 했다. 나에게 불만을 말하기는 하지만 아내에 의하면 아내 자신도 변해서 사람들에 시달리는 것을 피하는 자기를 발견하고 놀랄 때가 있다고 한다. 그녀는 나와 결혼하기 전에는 아주 많은 사람을 계속해서 만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나는 벌써 약간 엄살을 부리고 있지만 내가 한국에 돌아온 것에 어떤 이유가 있다면 그중 하나는 세상과의 거리를 조금 더 줄이고 내가 진 빚을 갚기 위한 것이다. 나는 나 혼자 쓰기에는 지나치게 넓은 집을 구하고 그것을 아름답고 편하게 꾸미고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선은 한번도 그렇게 살아보지 않은 아내를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얼마지나지 않아 아이들이 커버리면 또 그렇게 할 이유도 기회도 없을 것이다. 지금이 거의 유일한 기회가 아닌가 한다. 


또 다른 이유는 나와 아내의 양가 친척들 특히 부모님들에게 수십년 외국 생활동안 진 빚을 갚기 위함이다. 그들에게는 많은 빚을 졌지만 그 빚중의 하나는 한국에 매년마다 한두번씩 혹은 그 이상으로 돌아와서는 그들의 집에서 자고 그들의 밥을 얻어 먹은 일이다. 이제 한국에 내가 손님을 받을 만한 집을 가지면 그들을 손님으로 맞아서 그 빚을 조금은 갚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 가구도 다 들어오지 않았는데 어머니는 두번이나 다녀가셨고 2주후에는 처제부부가 다녀간다고 한다. 빚갚기의 시작으로서는 순조롭다. 


내가 집을 꾸미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세번째 이유는 집에 대해 내가 생각만 한 것을 실제로 현실화 했을때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부자가 아닌 내가 가질 수 있는 생활공간이란 나 나름대로 사치를 부린다고 해봐야 서민이 가질 수 있는 공간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의 예산안에서 나름대로 아름답고 합리적이고 편리한 집을 만들수 있을까. 그것이 정말 우리 가족의 생활을 바꾸게 될 것인가. 나는 그것에 대한 실험을 하고 싶고 하고 있는 것이다. 


행복한 집을 만들어 우리를 지키고 그것을 내가 신세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다. 백번의 말보다 한번의 체험이 더 큰 설득력을 지니는 법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 가까이 다가간 결과 내가 삼켜지고 말지 아니면 세상으로부터 한발짝만 떨어진 거리를 계속 유지하면서 나를 지키면서 살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인문학공부니 철학공부니 하면서 세상과 큰 거리를 두는 것도 나름으로는 좋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조금은 더 넘어보고 싶다. 호떡을 만들어 팔아도 나의 호떡을 지키며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그 나름대로 큰 가치가 있는 것이 된다고 믿는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읽기 시작했다. 여행기의 내용보다 바쁜 일정속에서도 쓰기를 계속하는 괴테의 일상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괴테도 읽기와 쓰기를 계속함으로써 자기를 지켰을 것이다. 내가 의지할 것이 있다면 그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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